기후 리스크 관리한다더니...손 놓은 국민연금

기후변화 관련 중점관리 기업 0곳
기후 리스크 적극 관리하는 해외 연기금과 대조적

서울 국민연금공단 지역본부의 모습. 2025.2.20. 사진=뉴스1
서울 국민연금공단 지역본부의 모습. 2025.2.20. 사진=뉴스1


국민연금이 기후변화를 중점관리사안으로 지정하고도 비공개 대화 대상 기업조차 선정하지 않는 등 사실상 기후 대응에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기후 싱크탱크 기후솔루션이 발간한 '기업을 움직이는 국민연금 - 기후 리스크 관리의 한계와 개선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기후변화 관련 중점관리 대상 기업으로 지정된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연금은 2023년 3월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개정해 중점관리사안에 ‘기후변화 관련 위험 관리가 필요한 사안’을 추가한 바 있다. 투자 대상 기업 중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면서도 감축 계획 및 조치가 미흡하거나 이로 인해 기업가치 하락 위험이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전략 개선을 요구하거나 주주제안을 진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으나, 실제 활동은 전무한 상황이다.

국민연금 중점관리기업 관리 현황. 2024년 10월 기준. 자료=기후솔루션
국민연금 중점관리기업 관리 현황. 2024년 10월 기준. 자료=기후솔루션


기후솔루션은 “비공개 대화 대상 기업 선정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른 중점관리사안 중 배당정책·임원 보수 등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된 항목은 물론, 기후변화와 같은 시기에 도입된 산업안전 항목에서도 4곳의 비공개 대화 대상 기업이 선정된 것을 감안하면 기후변화 대응 실적은 현저히 저조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 사안과 관련해 비공개 대화 대상 기업을 ‘3곳 내외’로 선정하도록 한 규정 자체도 한계로 지적됐다. 해외 주요 연기금이 기후 리스크 개선을 위해 매년 수십에서 수백 개의 기업과 대화를 진행하는 것과 비교하면, 국민연금의 활동 범위는 소수의 기업에 국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해외 연기금은 기업과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탈탄소화를 유도할 뿐만 아니라, 기금 수익률을 보전하기 위해 경영 관여형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GPIF)은 2017년 전체 포트폴리오의 탈탄소 수준을 분석하고, 2019년 이러한 분석 결과를 담은 기후변화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기업 관여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노르웨이 정부 연기금(GPFG)의 경우, 포트폴리오 내 모든 기업이 늦어도 2040년까지 ‘2050 넷제로’를 위한 목표 및 계획을 수립해 직·간접 배출량을 감축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기업이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경우 투자 철회, 주주권 행사, 이사회 구성 투표 등 후속 조치를 취한다. 2024년에는 기후 관련 중점관리 기업 267곳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수행했으며, 중점관리 기업의 목록과 기업별 대화 주제를 웹사이트 및 보고서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네덜란드 공적연기금(ABP) 역시 전력, 건설자재, 운송 등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산업을 우선적으로 저탄소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ABP가 2023년 한 해 동안 진행한 기업과의 대화 433건 중 절반 이상(233건)이 기후 및 환경 주제였으며, 노르웨이 연금과 마찬가지로 그 내용을 웹사이트 및 보고서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캘스터스)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290건의 기후변화 관련 주주제안을 검토하고, 이 중 기후변화와 직접 연관된 140여 건의 안건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등 수탁자 책임 원칙에 따라 공개적으로 기업과 대화하고 있다.

보고서 저자인 황보은영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 연구원은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 소득을 책임지는 사회 안전망이자,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라며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 강화를 유도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방식으로 장기적인 수익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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