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2주 만에 이사님이 性비밀을 털어놨어요” [강홍민의 끝까지 간다]

국내 상위권 아웃소싱 기업 임원, 직원에 수차례 성희롱 발언
제보자 “괴롭힘 최초 신고 이후 사측의 적절한 조사 이뤄지지 않아” 주장

*해당 기사와 무관 (게티이미지뱅크)
*해당 기사와 무관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최상위권 AICC(인공지능컨텍트센터) 아웃소싱 기업에서 성희롱·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사측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으나 사건을 축소하려는 움직임과 퇴사종용 등으로 2차 피해가 가해졌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해 3월 O기업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ㄱ씨는 입사 2주 만에 소속 부서의 임원 ㄴ씨로부터 성추행 및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ㄱ씨는 “입사한 지 2주밖에 안됐는데 둘이 저녁식사를 하자고 강요했고, 식사 당일 데려다 줄 테니 차를 가지고 오지 말라고 수차례 얘기했다”며 “식사 자리에서도 일 얘기가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라며, 자신이 이혼한 이야기, 부인과의 잠자리 트러블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놨다”고 주장했다.

또 “여자를 안고 싶다”, “포옹하고 싶다”, “ㄱ씨는 매력적인데 왜 연애를 하지 않느냐”, “남자 만나면 뭐하냐” 등 업무와 무관한 성적인 발언을 이어갔다고 ㄱ씨는 주장했다.

ㄱ씨는 “너무나 당황스럽고 불쾌했지만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이라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난감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ㄴ이사는 자신이 털어놓은 이야기가 비밀이라며 지켜달라는 의미로 손가락 약속을 강요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ㄱ씨는 손가락을 걸었지만 ㄴ이사는 ㄱ씨의 손을 쓰다듬는 행위를 했다.

이후 ㄴ씨는 사내 성희롱 조사에 제출한 반박문을 통해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라 아이와 하던 행동으로 손을 만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ㄱ씨는 해당 사건 이후 ㄴ씨의 성희롱적 발언은 사내에서도 수차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신고서 가해자에 전달한 조사관···“그런 것도 고발이 되냐” 압박
반복적인 성희롱적 발언에 ㄱ씨는 작년 10월, 사내 신고센터에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성추행 건을 신고했다. 하지만 피해자 보호와 진상규명이 아닌 2차 가해로 보이는 사측의 압박이 있었다고 ㄱ씨는 주장하고 있다.

ㄱ씨는 피해 사실이 담긴 피해자 신고서를 사내 조사관(인사담당)에게 전달했으나 이 과정에서 조사관은 ㄱ씨가 작성한 신고서 원본을 ㄴ이사에게 전달했다.

ㄱ씨는 “50장에 달하는 피해자 신고서를 전부 가해자에게 전달하고도 저한테 얘기조차 해주지 않았다”면서 “경찰에 신고를 해도 진술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가해자에게 피해자 신고서를 전달하지 않는데, 가해자의 방어권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회사가 이럴 수 있느냐”고 분노했다.

뿐만 아니라 해당 사건으로 조사관과의 상담에서도 2차 가해가 발생했다고 ㄱ씨는 주장했다.

조사관은 ㄱ씨와의 상담과정에서 “그런 것도 고발이 되느냐”, “한 번 아니냐”, “어차피 노동청에 신고해도 우리(회사)가 조사한다” 등 사측이 사건을 축소시키려는 발언을 들었다고 ㄱ씨는 주장했다.

또한 ㄱ씨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사측 임원과의 면담과정에서 조사관이 가해자에게 피해자 신고서 전문을 전달한 부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해당 임원은 “(피해자 신고서를 가해자에게 넘긴 것은)가해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서”라며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소송을 하던지 고발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ㄱ씨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이후에도 사측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조사나 업무정지 등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사측의 직장 내 괴롭힘 조사시스템을 지적했다.

ㄱ씨는 “최초 신고가 작년 10월이었고, 가해자가 소명을 했는데도 징계위원회가 꾸려지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를 압박하는 사측의 대응에 무력감을 느낀다”면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이 신고를 주저하게 되는 이유”라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의3) 회사는 직장 내 괴롭힘의 최초 신고가 접수되면 피해자·가해자 분리조치가 우선으로 실시돼야 하며, 사건에 대해 신속하게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사건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이후 괴롭힘에 대한 판단이 이뤄지면 가해자 및 피해자에 대한 조치가 이뤄지게 된다.

회사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한 이후 신고 및 피해 근로자 등에게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경력직 입사 6개월 만에 직무 변경
여기에 ㄱ씨는 작년 상반기부터 업무배제 당하다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기존 홍보업무에서 타 팀으로 전보됐다. ㄱ씨는 이 또한 부당 전보조치라고 주장했다.

또 상급자인 ㄴ씨의 지시로 자사 홍보대행사에 문의한 내용을 갑질로 둔갑시켜 조사하겠다는 사측의 입장도 ㄱ씨는 이해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ㄱ씨는 “이직 당시 상급자인 ㄴ씨가 외부 미팅 등 홍보업무에 지원을 약속했는데 그런 부분들이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한 번도 경험이 없는 부서로 이동시킨 건 보복성 조치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ㄴ씨의 지시로 홍보대행사에 문의한 걸 두고 갑질 행위라며 조사하겠다고 하는 것도 협박”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ㄱ씨는 직장 내 괴롭힘의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다.

ㄱ씨는 “병원에서는 상태가 위험해 보여 입원을 권유했으나 현재 상황이 그럴 수 없어 약물치료만 받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해당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사측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해당 사건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