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선언한 독일,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 [EDITOR's LETTER]
입력 2025-03-17 08:41:09
수정 2025-03-17 08:41:09

오늘의 주제는 독일입니다. 독일은 전차군단, 히든 챔피언, 모범 국가, 유럽의 엔진, 자동차 강국 등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여행지로는 그다지 인기가 없습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 비해 선호도가 낮습니다. 아마 평야 지대가 많고 지중해에 접하지 않은 자연환경 탓이 클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독일이 ‘음악의 나라’라는 특징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여행은 보는 것이 중요한데 음악은 듣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음악의 나라입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헨델, 베토벤, 멘델스존, 바그너, 브람스, 슈만 등이 모두 독일 출신입니다.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미술로 더 유명합니다. 현대미술의 아버지 세잔, 마티스, 들라크루아, 반 고흐, 고갱, 렘브란트, 쿠르베, 뒤샹 등이 모두 두 나라 출신입니다.
독일 문화가 다르게 진화한 배경은 종교개혁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1517년 마르틴 루터는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며 종교개혁에 불을 붙였습니다. 면죄부는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발행된 것입니다. 루터는 호화롭게 성당을 장식하는 미술품과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부패의 원인이라고 지목했습니다. 독일 교회에 성화 장식을 금지했습니다. 미술품의 강력한 수요처가 사라지며 화가가 설 땅도 좁아졌습니다. 독일 교회는 미술품 대신 영적 기운을 불어넣을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것이 음악이었습니다. 바흐는 종교음악의 대부였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독일 문화에서는 이성과 합리, 철학적 사고, 질서 등이 중요한 키워드가 됩니다. 이런 나라가 유럽에서 벌어진 큰 전쟁을 대부분 일으킨 당사자란 점은 약간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어찌됐건 독일 문화의 키워드 핵심에는 질서와 절제란 단어가 자리 잡았습니다. 언어에도 나타납니다. 한국말로 “괜찮냐?”는 무탈한 상태냐는 뜻입니다. 일어는 “다이조부(大丈夫)?”라고 묻습니다. 일본에서는 대장부답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한 상태입니다. 미국에서는 “OK?”라고 묻습니다. all correct, 즉 올바른 상태가 바람직하다고 보는 겁니다. 독일은 “Alles in Ordnung(규율 정돈)?” 모든 것이 질서 속에 있는 것을 정상 상태로 보는 것이지요. 질서와 규율을 중시하는 독일 자본주의를 어떤 학자들은 ‘질서 자본주의’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문화적 영향력은 정부의 정책에도 나타납니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가 본격화됩니다. 당사국은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었고 프랑스도 휘청거렸습니다. 이들은 지중해에 있는 라틴 계열 국가들이었습니다. 세상을 즐기고 오늘의 만족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독일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질서의 나라’는 방만한 나라에 대한 지원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독일 재정 건전화를 위해 부채비율 상한선을 헌법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유럽 강자 독일은 다시 유럽의 병자로 전락하기 직전입니다. 경제가 어려우면 정부가 적절히 나서야 하지만 재정 보수주의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에너지는 러시아에, 시장은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한 것도 패착이 됐습니다. 두 개의 전쟁(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무역전쟁)으로 독일 경제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 광범위하게 난민을 받아들이고, 원전을 폐기하는 가치에 집착한 정책은 사회불안과 에너지 부족으로 이어졌습니다.
유럽의 강자가 유럽의 병자가 됐고,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영웅에서 책임자가 되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독일이 재정 보수주의 정책을 폐기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방위산업에 대규모로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역사적 노선 전환에 시장은 환호하며 주가는 급등했습니다. 그 결말은 미지수지만.
독일은 오랜 기간 한국의 벤치마킹 대상이었습니다. 이제는 독일의 실패에서 배울 때입니다. 정책은 유연해야 하고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피해야 합니다. 가치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그 가치 자체를 파괴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독일이 알려준 교훈입니다.
이 글을 쓰는 시간 한국에서는 아직 대통령 탄핵 심판이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정책을 놓고 얘기할 시간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