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에서 한 미국인 관광객이 야생 새끼 웜뱃을 붙잡는 영상을 올렸다가 거센 비난을 받으며 결국 호주를 떠났다. 부정적 여론에 호주 정부까지 나서 비자 취소 가능성을 언급하자 자진 출국을 선택한 것이다.
13일(현지 시각) CNN은 웜뱃을 붙잡아 논란이 된 미국인 관광객이 이날 아침 자발적으로 호주를 떠났다고 보도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은 인스타그램에서 9만 2,000여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미국인 인플루언서 샘 존스다. 그는 최근 호주의 한 시골길에서 야생 새끼 웜뱃을 붙잡아 올리는 영상을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했다.
영상에는 그가 새끼 웜뱃을 데리고 차량으로 달려가자, 어미 웜뱃이 그 뒤를 쫓아오는 장면이 담겼다. 그는 웜뱃을 카메라에 비춰 보이며 “아기 웜뱃을 잡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새끼 웜뱃이 몸부림치며 소리를 내자, 그는 결국 웜뱃을 길가에 내려놓았다.

해당 영상이 확산하면서 존스는 호주 국민의 공분을 사게 됐다. 온라인에서는 그의 추방을 요구하는 청원에 1만 명 이상이 서명했으며, 호주 정부도 즉각 개입했다.
토니 버크 호주 내무부 장관은 성명을 통해 “존스의 비자를 검토 중이며, 체류 조건을 위반했다면 비자를 취소할 것”이라며 “그의 뒷모습을 보는 게 기다려진다”고 밝혔다. 이어 “존스가 다시 호주 입국 비자를 신청하더라도 엄격한 심사를 받게 될 것이며, 재입국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덧붙였다.
페니 웡 호주 외무부 장관도 이 사건을 두고 "꽤 끔찍하다"고 표현했으며,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웜뱃은 순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라며 "인플루언서에게 다른 호주 동물을 제안한다. 새끼 악어를 어미로부터 빼앗고 운을 시험해 보라"고 비꼬았다.
호주 웜뱃보호협회는 존스가 "새끼 웜뱃을 도로에 다시 내려놓아 교통사고 위험을 초래했다"면서 “SNS '좋아요'를 위해 웜뱃을 무책임하게 다뤘다"고 비판했다.
여론이 악화하자 존스는 해당 영상을 삭제하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호주 국영 방송사 ABC에 따르면, 그는 “웜뱃을 1분 정도 조심스럽게 안고 있다가 어미에게 돌려줬다”며 “둘 다 무사히 숲으로 돌아갔다”고 해명했다. 이어 야생 동물에 해를 입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존스는 13일(현지 시각) 호주를 떠났다. 이에 대해 버크 장관은 “호주에서 아기 웜뱃이 되기에 이보다 좋은 날은 없었다”고 말하며 그의 출국 사실을 전했다.
웜뱃은 호주에만 서식하는 유대류 동물로, 현재 세 종 중 두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영상 속 웜뱃은 멸종 위기 종으로 간주되지는 않지만, 호주 법에 따라 보호되고 있다. 호주 법상 야생 웜뱃을 포획하거나 해치는 행위는 불법이다.
호주 동물구호단체(WIRES)의 수의사 타냐 비숍은 CNN에 “웜뱃은 교통량 증가, 서식지 감소, 피부 질환 등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호주의 모든 야생동물은 가능한 많은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호주에서 야생동물을 만난다면, 조용히 멀리서 지켜보고, 영상을 촬영하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민주 기자 min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