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머슴이 편한 당신, 회사를 떠나라[박찬희의 경영전략]

"만만한 머슴들의 아전정치가 벌어지면 회사는 싸구려 프로세서를 탑재한 컴퓨터, 저질 엔진을 단 자동차가 되는 셈이다"


나라가 망해도 권력은 지키려는 국왕과 정치꾼들, 그들에 시달리며 나라를 지키는 고독한 장군. 역사물에 자주 나오는 장면이다. 이순신의 신화가 그렇고 드라마 ‘도깨비’의 주연처럼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더 극적인 서사도 등장한다. 그런데 경영학 책에는 유능한 경영자가 최선의 전략을 세우고 유능한 인재들과 실천하는 동화 같은 얘기가 나온다. 이런 한심한 경영학을 외워서 대단한 듯 떠들고 시험까지 보니 대학과 교수는 짜증의 대상이다.

전략 수준의 경영은 유치한 ‘인사기법’이 아닌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가 부딪히고 나 살자고 남 등치는 음모와 선동이 난무하는 현실을 다룬다. 더러운 현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심지어 아름답게 포장하는 얼치기 경영학은 세상을 속이는 사기극의 분장 소품일 뿐이다. 출퇴근 길에 생각의 밑천이 될 몇 가지 사례들을 생각해 보자.
남다른 재능이 부담된다면
미국의 철강왕으로 불린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는 생전에 “자기보다 우수한 사람을 곁에 모을 줄 알았던 자, 여기에 잠들다”는 묘비명을 원했다. 자기보다 더 우수한 사람을 알아보기도 힘든데 모아서 일하기는 더 어렵다. 우수한 사람이 숙이고 와주지도 않고 잘난 재능이 아니꼽다고 기를 꺾으려다 원수가 된다. 재능을 시샘하는 못난이들이 떼를 지어 괴롭히면 바보가 된다.

개발연대의 한 축을 이룬 모 기업인은 회사 안팎의 만만찮은 인물들과 날 선 긴장을 즐겼는데 “만만한 사람 편히 부리려는 용기 없는 경영자가 되는 날 즉시 은퇴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그 기업인의 일대기를 보면 어느 순간부터 만만한 캐릭터들이 핵심 위치를 채워간 흔적이 보인다.

새로운 일을 찾아 더 잘하려면 피곤하다. 그런 인생만이 가치로운 것도 아니다. 사업해서 돈 버는 일이 좋은 아버지, 착한 딸보다 대단한 것도 아니다. 다만 경영자는 주주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맡았으니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근로자와 이해관계자들의 신뢰에 보답해야 한다. 더 잘하려니 유능함이 필요하고 잘난 재능을 (기어오를까 부담스럽고 말대답하니 짜증 나도) 살려서 써야 한다. 마음 편히 살려고 용맹하고 존경받는 장군을 숙청한 왕은 적군의 볼모가 된다.

경영자는 원래 바쁘고 피곤한 일이다. 만만하게 부릴 머슴이나 찾는 용기 없는 경영자는 은퇴해서 편하게 놀든지 대충 떠들다 말아도 되는 쉬운 일을 하면 된다. 권세와 명예가 아쉬워 자리를 지키고 싶다면 이미 남의 돈으로 폼 잡는 도둑이 됐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애써 물려주려 하나 생각도 든다.

‘경영마인드’란 돈만 밝히는 짓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 무슨 일을 왜 하는지 확인하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 사람의 뜻을 모으는 것이다.
만만한 머슴이 더 위험해
대기업을 물려받은 G 회장, 나름 능력과 업적을 인정받는 잘난 중역들을 대하면 피곤하다. 사회 곳곳에 있는 잘난 친구들과 언제 내 뒤통수를 칠지 불안하다. 사립대학을 운영하는 친구가 기막힌 답을 준다. “만만한 애들 쓰다 버려. 지들이 뭘 어쩌겠어? 잘난 애들이 설친다고 뭐가 되는 세상도 아니고 쏠쏠하게 단물 빼는 데 성가실 뿐”이란 얘기다.

실제로 만만한 머슴들을 부리니 너무나 편하다. 말대답 없이 복종하고 무리한 일도 몸 바쳐 해낸다. 자기가 옳다고 다투기보다 요령껏 끼리끼리 어울리니 일처리도 빠르다. 부스러기 권력에도 감동해서 나름 잘난 말 많은 사람들을 밟아준다. 예전엔 함부로 못하던 ‘과감한’ 일들을 시켜보니 이 또한 군말 없이 해낸다. 착착 돌아가는 회사, 군말 없이 따르는 수하들로 자신감이 붙은 G 회장, 쏠쏠한 사업 이권에 맛이 들자 개인 부동산을 회사에 떠넘기고 구내식당, 매점까지 챙기더니 계열사 합병과 분할에 시세조종까지 얹어 돈을 만든다.

정책 방향이니 여론이니 들먹이며 말만 많던 잘난 사람들보다 미덥기 그지없다. 복잡하고 잘된다는 보장도 없는 머리 아픈 일들보다 훨씬 좋다. 직접 즉시 ‘내 돈’이 되니까. 그래서 머슴이 아전이 되고 대신(大臣)에 장군까지 된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전략은 남다른 능력이 필요하다. 만만한 수하들이 군권(軍權)을 휘두르는 순간 회사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동네 아전들과 병정놀이 하다 전쟁터에 가면 이길 수가 없다.

당장 편하자고 이런 패거리 눈가림질에 얹혀 지내는 사이 만만한 머슴들에게 약점을 잡힌다. 복종이 충성은 아니고 눈치껏 둘러대며 끼리끼리 손잡고 버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무능할수록 더욱 절실하니 그들의 생존본능은 처절하고 부스러기 권력과 이권에 중독되고 집단 이익으로 엉키면 못 할 일이 없다. 투서 한 장으로 돌팔매를 맞다 감옥에 갈 수 있는 세상에 오히려 머슴이 갑이 된다.

만만한 머슴들이 얼렁뚱땅 해치운 일들은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 ‘안 되면 되게 하라’며 군말 없이 해낸 일들은 눈가림 조작, 우격다짐 로비였을 뿐이고 이제 거액의 소송에 더해서 형사 절차까지 이어진다. 문제해결을 도울 능력자들은 모두 떠났거나 남아 있어도 고개를 돌린다. 머슴들 손에 있는 약점들이 언제 증거자료가 될지 모르니 상전이 따로 없다. 망한 회사를 헐값에 먹으려는 분들에게 들고 갈지도 모른다.
전략계획의 숨은 1인치
요령껏 둘러대며 권력을 파먹는 아전정치, 심부름 값에서 입막음으로 진화하는 이권 놀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도와줄 사람도 많다. 물정 모르는 경영자의 가족과 지인들을 포획해서 우군으로 삼고 아직도 말 많은 ‘나름 잘난 분들’을 다스리면 그 뿌리는 단단해진다. G 회장이 ‘해먹기’에 나선 순간 쏠쏠한 이권편취는 관행이 된다. 애쓴 수하들에게 주는 심부름 값을 보며 다들 내 몫의 ‘권리’를 개발한다. 통근버스에 채용전형 외주까지. 그래서 회사는 비대해지고 관리부문은 권세를 키운다.

좋은 뜻으로 경영자에게 조언하려는 지인들도 우호적 정보가 넘쳐나면 쓴소리를 할 자신이 없어진다. 공연히 나섰다 찍히느니 실익을 생각하는 순간 만만한 머슴들의 궁정정치에 포획된다. 쏠쏠한 이권에 더해서 그럴듯한 기사에 유튜브 콘텐츠까지 후원해서 가족과 지인들을 포획하는 기법은 이미 널리 쓰이고 있다. 만만한 머슴들 대충 쓰고 버린다고? 달라진 세상에 어림도 없는 일이다.

전략계획은 다양한 시각이 엇갈리며 답을 찾는 정치적 과정이다. 이 과정이 잘못되면 아둔한 사람들의 한심한 생각이 판을 주도해서 미래를 망친다. 용기 없는 경영자가 당장 편하자고 만만한 머슴들과 소꿉놀이를 시작하면 막강한 능력자들의 공세를 당해낼 수 없다. 단단한 경쟁자, 경영권을 흔드는 투자자, 미디어와 정치집단까지. 경영학 책에는 이런 진짜 심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영화에선 유능한 장군의 카리스마에 부하들이 목숨 걸고 따른다. 대중의 로망이 투영된 점도 있지만 전쟁은 힘들어도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경영에선 무난하게 지위와 월급을 챙기려는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만만한 머슴이 힘을 얻으면 순식간에 대세가 된다. 용기 없는 경영자가 대충 편하자고 잘난 사람들 멀리하고 만만한 이들에 파묻히면 회사는 미래가 없고 해먹기 잔치판이 된다. 경영자는 머슴들에게 목줄을 잡히고.

회사에 모조리 잘나고 대단한 사람만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경영자의 중요한 일이 실행되는 과정에 만만한 머슴들의 아전정치가 벌어지면 회사는 신경망과 주요 관절이 썩은 몸과 다를 바 없다. 싸구려 프로세서를 탑재한 컴퓨터, 저질 엔진을 단 자동차가 되는 셈이다. 지금 당신의 회사와 경영자는 어떻습니까?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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