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족·은퇴족의 ‘화려한 도피처’…대형 도서관, 핫플 된 이유


(전쟁기념관에 위치한 6.25 전쟁 아카이브 센터/사진=조수아 인턴기자)

네이버 지도에서 맛집이 아닌데도 리뷰가 많은 곳이 있다. 최근 핫플로 떠오르는 대형 도서관들이다. 후기창에는 ‘카페처럼 편안한 분위기에 음악까지 나오며 전망도 너무 예쁜 도서관’처럼 일반적인 도서관에선 보기 힘든 리뷰가 있는가 하면 ‘여기서 공부하다가 내려가서 라멘 먹고 정류장 옆 카페에 가면 딱 좋다’며 도서관 맛집 루트를 소개하기도 한다.

도서관이 핫플레이스가 됐다. 유튜브에는 ‘이색도서관 BEST 6’이나 ‘건축전공자가 추천하는 서울 독서 공간 7곳’ 같은 시설 좋은 도서관들을 추천하는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떤 유튜버들은 ‘도서관 투어’를 하며 유명 도서관들을 방문해 비교하기도 한다.

공부하려면 폐쇄적인 독서실에 가거나 돈을 내고 스터디 카페에 가던 것과 달리, 공부와 힐링, 시설과 프로그램을 두루 즐기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최근 ‘숲속 도서관’도 주목받고 있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숲속 도서관’의 언급량은 지난 5월부터 증가해 6월 들어서는 전년 동기 대비 86% 증가했다. 이용 후기를 살펴보면, 본격적인 독서를 위해 찾는 사람보다는 ‘공부하면서 풍경도 보고 힐링 돼서’ 방문했다는 반응이 많다.

그러나 핫플이 된 대형 도서관 뒤에는 이면이 존재한다. 집이 불편해진 시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취업하지 못한 20대와 독립하지 못한 30대,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집에서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혼자만의 공간을 위해 도서관으로 모였다는 분석이 나온다.쉬었음 청년•캥거루족 “나홀로 공간”

(손기정 문화 도서관. /사진=조수아 인턴기자)

2030의 ‘나홀로 공간’에 대한 니즈가 높아졌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설문조사 결과 20대(87.2%)와 30대(82%)가 나홀로 공간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전체 평균인 81.1%와 비교하면 4050보다 나홀로 공간에 대한 욕구가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혼자만의 공간을 가지기는 더 어려워졌다. 가장 큰 이유는 독립이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캥거루족’ 비율 1위다. 2022년 기준 부모님과 사는 한국 20대 비율은 81%로 OECD 평균(50%)의 1.6배에 달한다.

황광훈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이 2024년 발표한 ‘청년패널조사로 본 2030 캥거루족의 현황 및 특징’ 논문을 보면 국내 25~29세의 캥거루족 비중은 80% 내외였다. 30~34세 캥거루족 비중은 2020년 53.1%로 이보다 적은 듯 보이지만 2012년(45.9%) 대비 7.2%포인트나 늘어 캥거루족 증가를 주도했다.

독립에 성공한 20대도 사정이 다르진 않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20대의 67.8%가 오피스텔이나 원룸 등 협소한 공간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 서울의 경우 19~39세 청년 44.21%가 약 15평(50㎡) 미만의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혀졌다.

2030에게 더 이상 집은 쉼의 공간이 아니다. 통계청의 ‘2025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까지의 기간은 11.3개월로 2004년 통계 집계 이래 역대 최장 수준이던 2024년 11.5개월에서 0.2개월 줄었다. 취업이나 진학을 준비하지 않고 그냥 ‘쉬는 청년’ 인구는 올해 2월 처음으로 50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이 가족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회복할 공간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지역 거점형 대형 도서관인 셈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5월 서울에 개관한 ‘강동숲속도서관’은 사색을 즐기면서 독서와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SNS에서 화제가 됐다. 방문자들은 오픈런해야 앉을 수 있는 핫플이 됐다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또 광주에 위치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 도서관’은 자리마다 플레이리스트로 연결되는 QR코드가 있어 독서하며 영화 OST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도서관으로 SNS에서 입소문을 탔다.
은퇴 후 자격증 공부 ‘수험생 아빠’
(정년퇴직 후 도서관을 찾는 5060세대가 늘고 있다./사진=조수아 인턴기자)

퇴직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매일 아침 도서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빅데이터 플랫폼 ‘도서관 정보나루’에 따르면 서울지역 도서관의 50대 회원 비중은 2021년 8.2%에서 2025년(1월 기준) 10.12%로 늘었다. 60세 이상 회원 비중 역시 4.9%(2021년)에서 6.74%(2025년)로 증가했다.

주거지가 밀집한 경기 지역의 경우 도서관은 고령층 여가 생활을 담당하는 기반 시설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50대 회원 비중은 2021년 7.45%에서 2025년 10.26%로 늘었고 60대 이상 회원은 4.57%에서 7.08%로 확대됐다. 전체 이용자 중 50대 이상이 17.34%에 달하는 셈이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거나 퇴직한 중장년층이 재취업을 위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가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0대 국가기술자격 필기시험 응시자는 연평균 9.2% 증가했다. 이 기간 전체 수험인원이 평균 1.7% 늘어난 것과 대조되는 수치다.

전체 이용객은 줄어든 반면 장·노년층 비중은 증가하자 지방자치단체들은 도서관을 전시와 콘서트, 강연 등을 하는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도서를 보관하는 문헌정보실과 열람실 중심의 정적인 기존 분위기를 확 바꾸겠다는 취지다. 주요 이용자의 연령대에 맞춰 ‘어르신 스마트폰 교육’, ‘재취업 자격증 강좌’도 운영한다. 서울에선 고령층을 겨냥한 생활영어교실 강좌를 개설하는 곳도 적지 않다.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도서관

(강동 숲속 도서관. /사진=도서관 홈페이지)

공공 도서관들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여 기존의 전통적 모습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지식 저장 및 대출 공간을 넘어 독서, 사교, 문화교류 등이 통합된 복합문화공간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이다.

2018년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 보고서에서는 미래의 도서관이 기존의 전통적 모델에서 벗어나 이용자 중심의 기능적 공간으로 전환해야 함을 지적했다. 도서관이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넘어 이용자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는 다각적인 공간으로 변해야 한다고 시사했다.

이 보고서의 영향으로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도서관 정책에서 ‘일상생활’, ‘이용자 중심’, ‘커뮤니티 연계’, ‘미래사회 대응’ 등의 키워드가 부각되고 있으며 이는 도서관이 사회적 변화와 이용자의 다원적 요구에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도서관이 동적인 공간으로 기능하면서 도서관당 평균 좌석 수는 2014년 367석에서 2023년 282석으로 23.16% 감소했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도서관 열람실은 계속 줄어드는 분위기”라며 “도서관을 북적이면서 활동적인 공간으로 바꿔나가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고 했다.

조수아 인턴기자 joshu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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