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드러낼수록 힙하다…트렌드 중심에 선 ‘오타쿠코어’[최수진의 패션채널]
입력 2025-09-15 16:00:04
수정 2025-09-15 16:43:46
애니메이션·만화·게임 등
특정 문화를 드러내는 패션, 일상복으로
취향을 드러내는 가장 솔직한 방식
젊은층서 인기 얻으며 관련 검색량 급증
애니메이션 장르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를 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특정 집단을 타깃으로 해 관객층이 제한되고, 대작과 개봉 일정이 겹칠 경우 스크린 수에서도 밀리기 때문이죠. 그런데, 최근 영화 산업의 불황과 맞물리면서 비주류로 평가받던 애니메이션이 새로운 주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올해 3월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던 것도 같은 이유인 거죠.
이런 흐름 속에서 ‘오타쿠’까지 하나의 트렌드로 올라섰습니다. 오타쿠는 애니메이션·만화·게임 등 특정 문화에 깊게 몰입한 사람을 깎아내리는 단어로 사용됐습니다. 2020년 CGV 아르바이트 직원이 관람객을 오타쿠로 지칭한 게 논란이 되자 CGV 측에서 공식 사과를 했을 만큼 민감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오타쿠에 대한 인식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패션업계에서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통하고 있거든요. 심지어 트렌디하다(최신 유행과 맞닿았다는 뜻)는 평가까지 받습니다. 취향을 드러내는 가장 솔직한 방식이라는 이유를 넘어 하나의 장르가 됐습니다.
지난해 유행한 긱시크도 같은 맥락에서 유행했습니다. 괴짜라는 뜻의 ‘긱(Geek)’과 세련됐다는 의미의 ‘시크(Chic)’의 합성어로, 모범생 스타일을 의미합니다. 무릎을 덮는 치마, 투박한 디자인의 니트, 단정한 셔츠 등이 대표적인 제품이었죠.
여기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게 ‘오타쿠코어’입니다. 오타쿠코어는 ‘오타쿠’와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스타일인 ‘놈코어(normcore)’의 합성어로, 특정 문화를 드러내는 패션을 일상복으로 활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카카오스타일에 따르면 올해 1~8월 ‘오타쿠코어’와 관련된 상품 검색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오타쿠는 전년 동기 대비 123%, 갸루는 137% 뛰었습니다. 이전까지 ‘서브 패션’으로 불리던 일명 ‘오타쿠 패션’이 개인의 취향을 보여주는 새로운 패션 트렌드로 부상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외에도 △오타쿠 티셔츠 800% △오타쿠 가방 550% △이타백(좋아하는 캐릭터나 굿즈가 드러나는 투명 가방) 259% △콘서트화 936% △앞머리 헤어핀 721% 등으로 집계됐습니다. 캐릭터, 일러스트 등이 그려진 의류 상품은 물론이고, 패션에 간단하게 포인트를 줄 수 있는 가방, 신발과 같은 소품/잡화류 검색량도 급증했습니다.
카카오스타일 관계자는 “오타쿠코어는 개인의 취향과 취미를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며 “이러한 흐름 속 패션을 통해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표현하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젊은층이 많이 사용하는 에이블리에서도 같은 흐름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올해 1~8월 에이블리 빅데이터 분석 결과, ‘애니 티셔츠(애니메이션 티셔츠)’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35% 증가했으며, ‘애니 굿즈(애니메이션 굿즈)’ 검색량은 같은 기간 185% 늘어 가장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특히, 에이블리에서 ‘진격의 거인’ 검색량은 835% 급증했고, ‘귀멸의 칼날’ 역시 95% 늘었습니다. 인기 작품의 흥행이 관련 굿즈와 패션 아이템 소비로 연결되는 모습인데요.
또한 일본풍 화장 트렌드와 맞물려 ‘갸루 메이크업’에 대한 관심도 확대되며 ‘갸루’ 키워드 검색량은 178% 증가했습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최근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 영향력의 확대로 특정 캐릭터 자체 또는 작품 속 인물의 스타일에서 모티브를 얻은 패션, 뷰티 상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라며 “과거 스타일 트렌드 변화가 색상, 짜임, 패턴 등을 중심으로 나타났다면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콘텐츠에서 비롯된 스타일 역시 대중적인 취향으로 자리 잡으며 향후 주목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