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허제 맞을라” 반년 만에 5억…달리는 ‘뒷구정’ 성동구 부동산[비즈니스 포커스]
입력 2025-09-30 07:59:05
수정 2025-09-30 07:59:05
9월 23일 오후 서울 성동구 옥수동 K 공인중개사무소는 분주했다. 이날 이곳에서 매수인, 매도인이 만나 아파트 잔금을 치르기로 돼 있었다. 이미 젊은 커플 한 쌍이 앉아 거래 상대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K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대출 규제 등으로 거래가 많지 않은데도 높은 호가에 거래가 일어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새로 집을 내놓는 매도인도 높은 가격을 부르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동구 아파트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성동구는 9월 내내 매주 서울 자치구 중 가장 높은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을 나타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강남 3구와 용산은 물론 강북 한강변 경쟁지역인 마포 상승률도 웃돌고 있다.
시세를 이끄는 것은 성수동부터 옥수동으로 이어지는 ‘한강 벨트’이다. 이들 지역은 한강 조망과 인근 녹지의 존재로 인한 쾌적한 환경, 무엇보다 한강만 건너면 강남권에 진입할 수 있어 ‘뒷구정동’(압구정동 뒤라는 위치를 나타내는 말)이라 불리는 입지를 두루 갖췄다. 무엇보다 오랜 재개발 등으로 신규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젊은 수요자에게 매력 있는 상품을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금리인하와 입주 물량 감소 여파로 서울 집값이 오르는 상황에서 토지거래허가제 등 규제 여파도 성동구에 수요가 집중되는 데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반년 만에 5억원 상승…옥수 파크힐스 59㎡ 인기
옥수동 대장주는 2016년 입주한 ‘e편한세상 옥수 파크힐스’이다. 요즘 해당 단지에서 가장 인기 타입은 전용면적 59㎡이다. 이 타입은 올해 초 17억원 선에서 6월 들어 22억원대 실거래를 기록했다. 9월 초 22억9000만원에 최고가를 찍은 뒤 최근 호가는 23억~24억원 수준이다.
2012년에 입주한 바로 옆 단지 ‘래미안 옥수 리버젠’ 59㎡도 1억~2억원가량의 가격 차를 두고 e편한세상 옥수 파크힐스를 따라가고 있다. e편한세상 옥수 파크힐스는 1996가구, 래미안 옥수 리버젠은 1511가구 규모의 신축, 준신축 대단지로 거주 환경도 뛰어나다.
이들 단지는 3호선 금호역 역세권으로 지하철로 강북 업무지구, 동호대교만 건너면 강남권인 입지에 자리하고 있다. 일부 세대에 한강 조망이 가능한 것도 큰 강점이다. 신축, 대단지, 한강 조망이라는 서울 고가 아파트의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5호선 신금호역 초역세권에는 ‘신금호 파크자이’와 ‘e편한세상 금호 파크힐스’가 위치한다. e편한세상 금호 파크힐스 59㎡ 타입은 8월 말 19억원 실거래가를 기록했다. e편한세상 금호 파크힐스 호가가 21억원까지 높아진 상태에서 전용면적 84㎡ 최고 실거래가는 23억원으로 격차가 줄어든 상태이다. 재개발·재건축에 강남 키즈·투자자도 몰려
매봉산 아래 언덕배기, 일명 ‘달동네’라 불리던 판자촌이 밀집된 것으로 유명했던 옥수, 금호동 일대는 재개발 등의 정비사업을 통해 아파트가 들어서며 점차 주거지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1982년 입주한 한남하이츠 아파트 외에 단지들 대부분은 재개발을 통해 지어졌다. 옥수 극동아파트, 금호 두산아파트, 옥수 삼성아파트 등이 재개발 사업으로 탄생했다. e편한세상 옥수 파크힐스(옥수13구역), 래미안 옥수 리버젠(옥수12구역), e편한세상 금호파크힐스(금호15구역), 신금호 파크자이(금호13구역)도 재개발을 통해 조성됐다.
그러다 지난 2016년 본격화한 서울 부동산 상승기에 역세권, 직주근접, 한강 조망, 강남 접근성 등의 강점을 무기로 래미안 옥수 리버젠, 서울숲 푸르지오 등 신축 아파트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강남에 부족한 새 아파트가 더 저렴한 가격에 시장에 나오면서 유명 연예인과 일명 ‘강남 키즈’들이 다수 유입됐다.
인접한 용산구 한남동에 ‘한남더힐’, ‘유엔빌리지’ 같은 고급 주거지가 각광 받으면서 그 수혜도 보게 됐다. 옥수동과 독서당로를 통해 이어져 있고 일부 상권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토허제·6억원 주담대 제한 수혜주로
이처럼 젊은 실수요가 매수인의 상당수를 차지하면서 59㎡ 타입 시세가 급등했다. 특히 e편한세상 옥수 파크힐스 59㎡ 타입은 소형 면적인데도 평면이 잘 빠졌다는 특징이 있다. 통상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은 소형 평면이 신도시 아파트만큼 좋지 못한데 가장 선호도가 높은 D타입은 4베이 판상형이다.
무엇보다 6·27 대책 이후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되면서 이 지역 소형 타입 인기가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 집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자 정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추가 지정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마음이 급한 수요자들도 매수에 나서는 분위기다.
옥수동 소재 한 부동산 관계자는 “매수인은 젊은 실수요가 많으며 실거주와 갭투자 목적이 각각 절반 정도”라며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전에 사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금호동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갭투자자들의 경우에도 일단 집값이 더 오르거나 규제가 강화되기 전에 일단 사두고 나중에 여건이 되면 실거주하겠다는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숲을 중심으로 ‘하이엔드(high-end)’ 주거 시장이 형성된 성수동에서도 새 아파트가 인기다. 서울숲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르네상스’ 계획 일환으로 뚝섬 경마장 부지에 조성한 시민공원이다. 공원에 인접한 부지는 4개 특별계획구역으로 나뉘어 분양됐다. 지금의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갤러리아 포레’ 등 고급 주상복합이 이를 통해 조성됐다.
한강 전면에 위치한 유명 아파트 ‘서울숲 트리마제’는 지역주택조합이 추진되다가 공매로 넘어갔던 부지를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가 인수해 조성한 단지다. 이처럼 서울숲이라는 콘텐츠와 랜드마크급 고급 단지가 들어서면서 성수동의 낡은 주택가와 공장지대는 리모델링 등을 통해 새로운 상권으로 거듭났다. 삼표 레미콘 부지 이전과 성수전략정비구역 재개발이라는 개발 호재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면서 주거 선호도 역시 높아지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전용면적 164㎡는 지난 8월 80억원에 실거래됐고 트리마제 69㎡도 같은 달에 각각 37억원, 30억원으로 두 차례 손바뀜이 됐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옥수동, 금호동 등 성동구 아파트 수요 대부분은 강남 출퇴근 직장인인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새 아파트를 선호하거나 대출 규제로 인해 우선 성동구에 진입한 뒤 추후 강남으로 이사할 계획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다만 성수동 소유주나 매수 대기자들은 성수동이 강남급 지역으로 보고 있거나 향후 강남 수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결국 성동구 아파트의 상품성이 지금의 상승세를 이끈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