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랜드마크 새 아파트 평당 2억, 시세 상승 기대감 높아져
급격한 공사비, 금융비용 상승으로 코너에 몰린 듯했던 서울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이 활황을 맞이하고 있다. 새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어서다. 사업의 주체인 조합원들이 투자해야 하는 비용 대비 효과가 높아졌다.
재개발 전문가인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대표는 “신축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재건축, 재개발 시장도 좋아지는 중”이라며 “인근 새 아파트 시세가 워낙 높게 형성돼 분담금에 대한 조합원들의 저항감이 약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시세를 이끄는 지역은 일명 ‘한강 벨트’의 중심을 차지한 반포 새 아파트이다. ‘래미안 원베일리’ 실거래 가격이 3.3㎡(평)당 2억원을 찍은 가운데 ‘래미안 트리니원’(반포주공1단지 3주구), ‘디에이치 클래스트’(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등이 나란히 분양과 입주를 앞두고 있다.
시장에선 한강변에 조성될 디에이치 클래스트가 래미안 원베일리 가격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5002가구에 달하는 규모와 더 새로운 버전의 아파트라는 측면에서 당분간 강남권에 대적할 단지가 없을 전망이다.
반포1·2·4주구는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5층 높이 저층 재건축 대단지로 대지 지분이 높아 일부 조합원들이 ‘1+1’(아파트 한 채를 더 분양받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기존(2120가구) 대비 세대 수가 2배 이상 많이 나왔다.
앞으로 같은 반포지구는 물론 압구정과 한강 건너편 성수, 한남, 여의도에도 바통을 이을 재건축, 재개발 사업지가 많다. 이들 지역 재건축, 재개발 사업 대부분은 반포1·2·4주구에 비해 사업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통적으로 강남 최고 부촌으로 여겨지는 압구정 현대는 최고 층수가 15층에 달한다.
이에 따라 일부 단지는 이미 조합원 분담금을 10억원까지 추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업은 대체로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그동안 ‘반포 재건축 신화’가 증명한 자산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민간 주택공급을 활성화하기 위해 관련 규제 완화를 통해 신속한 사업 진행 고삐를 당기고 있다. 공사비 높아도…상품성에 주목
반포1·2·4주구 재건축 사업의 비례율은 약 100% 선으로 알려졌다. ‘압구정 신현대’ 재건축 구역인 압구정 특별계획구역2(압구정2구역)의 비례율은 60%선에서 42%로 떨어졌다. 비례율은 기존 자산의 가치(종전자산 평가액) 총합 대비 사업 이후 자산 가치(종후자산 평가액)의 총합에서 사업비용을 뺀 수치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수익성을 나타낸다.
통상 비례율이 100%가 안되면 조합원 분담금이 느는 등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비례율은 실제로 분담금을 계산할 때 활용된다. 조합원 분양가에서 조합원별 권리가액을 빼면 분담금이 나오는데 종전자산 평가액에 비례율을 적용한 것이 바로 권리가액이다.
실제로 최근 압구정2구역 조합이 발표한 조합원 분담금은 기존 아파트와 비슷한 면적을 분양 받을 경우에도 10억원에 달한다. 일부 전용면적 155㎡ 조합원은 106㎡, 116㎡ 등 더 좁은 면적을 분양 받아도 각각 3억140만원, 6억3990만원을 내야 하는 것으로 나오자 다른 조합원과 분담금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며 반발하기도 했다.
조합 측은 3.3㎡당 1150만원에 달하는 공사비와 최근 주택시세가 오르며 종전자산평가액이 대폭 상승했다는 점 등을 높은 분담금이 산출된 배경으로 설명했다. 부동산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서울에서 100억원이 넘는 아파트 거래가 총 29건으로 이 중 압구정 아파트 거래는 11건이었다.
압구정2구역은 2023년 지구단위계획 전환과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확정에 따라 최고 65층 높이 아파트로 거듭날 예정이다. 이 같은 초고층 건물은 지반공사와 골조, 화재 대피시설 마련 등에 비용이 더 들어 공사비도 더 비싸다.
일부의 반발에도 사업은 우선 진행 중이다. 9월 27일 열린 총회에서 압구정2구역은 조합원 90%의 찬성으로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총 공사비는 2조7488억원에 달한다. 현대건설은 조합원들에게 입주 후 최장 4년까지 분담금 납부를 유예하는 조건을 내세웠다. 강북 고급 아파트도 3.3㎡당 2억원
이처럼 특히 한강변 지역일수록 공사비가 비싸도 초고층 아파트 조성에 열심이다. 그만큼 조합원이 한강조망 세대를 분양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단지 자체가 랜드마크로서 가치가 커지는 효과도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입지’뿐 아니라 ‘상품성’도 아파트 가치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로 보고 있다. 특히 새 아파트가 귀한 서울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테크에 따르면 올해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연식은 23.6년이다. 전국에서 가장 노후화한 상태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하이엔드(High-end) 아파트가 입주하면서 소비자들 눈높이는 높아졌다. 성수동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는 고층 세대도 천장고가 2.9m에 달한다. 이 단지 역시 최근 3.3㎡당 2억원이 넘는 실거래가 나왔다. 올해 2월 전용면적 159㎡(61평형)가 135억원에 손바뀜된 것이다. 지난해 실거래가 110억원보다 가격이 25억원 올랐다.
이에 재개발을 추진 중인 성수전략정비구역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곳 역시 초고층 설계로 공사비가 높아지면서 추정 분담금도 오르고 있지만 최근 사업이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실거주 측면에서 상품성이 높은 아파트에 대한 시장의 평가도 높아지고 있다”며 “반포에서는 앞으로 5000가구 이상 규모에 대형 커뮤니티를 갖춘 디에이치 클래스트가 기존 단지들의 시세를 뛰어넘어 대장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표는 “특히 대출 규제 이후 강남 아파트를 매수하지 못한 일부 수요가 대체재로 상품성이 높은 강북 한강변 신축아파트를 매입하는 사례가 많아 성동구 집값도 오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간 공급에 팔 걷은 정부, 재초환은 변수
정부와 지자체도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9월 7일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내놓고 정비계획 수립과 조합설립, 관리처분인가 등 주요 행정절차를 개선해 재건축, 재개발 사업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내놨다. 용적률 특례 확대도 추진 중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신속통합기획 2.0’ 차원에서 인허가 절차 간소화 및 이주 촉진 대책을 내놨다. 정비구역 면적과 정비기반시설 규모 등 경미한 변경 사항은 관할 자치구가 직접 인가할 수 있도록 한다. 재건축, 재개발, 가로주택정비사업, 리모델링 등을 통해 2031년까지 총 31만 가구를 착공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시가 목표한 연평균 5만 호 착공이 현실화되기는 어렵더라도 그동안 신통기획을 통해 보여준 민간주택 공급의 의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는 측면에서는 높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합원들 자금력이나 시세 상승 동력의 측면에서 몇몇 서울 한강변 핵심 지역과 달리 외곽지역의 재건축, 재개발 사업은 다소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 재건축 사업에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라는 변수도 남아 있다.
강영훈 대표는 “현재 재초환을 적용 받아 청구서를 받은 단지가 없어 아직 그 위력을 실감한 재건축 조합원이 많지 않을 수가 있다”며 “결국 재건축 사업을 활성화하고 착공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사업의 변수가 될 수 있는 재초환 폐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