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하이닉스는 왜…주식은 ‘롱’과 ‘숏’의 전쟁터

[커버스토리 : 어서와 국장은 처음이지?]


AI 대표주인 SK하이닉스 주가가 고점 대비 무려 54% 급락했다. 최태원 회장이 사비 50억원을 들여 주식을 샀다는 뉴스마저 소용이 없었다. 기업의 실적이나 기초체력(펀더멘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주가는 급락했다. 어제의 호재가 오늘의 악재로 바뀌고, 아침의 상승세가 오후의 폭락으로 돌아서는 기이한 장세가 이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아시아 시장 혼란에 제대로 대응 못했다”먼저 증권가에서 가장 많이 쓰는 두 가지 기본 용어부터 정리해 보자. 주식시장의 언어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롱(Long, 매수 베팅): “주가가 오를 것이다”에 돈을 거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주식투자, 즉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모든 행위가 ‘롱’이다. AI 시대가 올 것을 믿고 SK하이닉스 주식을 사 모으는 것도 ‘롱 포지션’을 잡았다고 부른다.
숏(Short, 매도 베팅): “주가가 떨어질 것이다”에 돈을 거는 것이다. 주식을 빌려 먼저 판 뒤 주가가 떨어지면 싸게 다시 사서 갚아 차익을 남기는 ‘공매도’가 대표적이다. 주가가 떨어져야 돈을 버는 세력을 ‘숏 플레이어’라고 부른다.

주식시장은 ‘롱을 치는 사람(상승론자)’과 ‘숏을 치는 사람(하락론자)’의 치열한 전쟁터다. 흔히 하이닉스 주식을 10개 사면 그 회사로 돈이 들어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단 1원도 들어가지 않는다. 내가 낸 돈은 주식을 판 다른 투자자의 통장으로 들어간다.

기업이 투자자들의 돈을 받는 순간은 딱 두 번뿐이다. 처음 상장할 때 주식을 대중에게 최초로 파는 IPO(기업공개)와 사업 자금이 더 필요해 주식을 새로 찍는 유상증자 때다(대가 없이 주식을 무료로 나눠주는 ‘무상증자’도 있다).

이 두 번의 순간을 제외하면 매일 터지는 수조원의 거래는 그저 ‘투자자 간의 손바꿈’일 뿐이다. 최근 SK하이닉스의 폭락 역시 기업의 기초체력이 무너져서가 아니라 이 중고거래 장터에서 주식을 쥔 투자자들이 숏 세력의 사냥에 몰려 헐값에 주식을 넘겨댔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7월 증시를 무너뜨린 공범은 여럿이다. 우선 글로벌 빅테크(하이퍼스케일러)의 AI 투자 대비 수익성에 의문이 제기된 ‘AI 거품론’이 불을 지폈고 미국 중앙은행(Fed)의 고금리 장기화가 자금줄을 죄었다. 여기에 금융당국마저 실패라고 자인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과 빚투로 얼룩진 체질적 불안함까지 더해지며 시장은 작은 충격에도 사방으로 파편이 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실적마저 튼튼한 SK하이닉스 같은 우량주도 이 파편을 피하진 못했다. 폭락의 진짜 원인은 기업의 펀더멘털이 아니라 빚으로 쌓아 올린 거대 자금이 무너져 내리며 터진 ‘수급 폭탄’이었다. 주가가 얼마든 따지지 않고 무조건 던져야만 하는 강제 매도 물량이 시장을 그대로 초토화한 것이다. 그리고 그 비극적인 메커니즘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가 바로 ‘레오폴드’로 알려진 2001년생 20대 천재 투자자의 이야기다.

사건의 주인공은 2001년생 독일 출신의 청년 레오폴드 애셴브레너다. 오픈AI 출신인 그는 2024년 “머지않아 세상은 AI의 진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상황 인지)’라는 이름의 헤지펀드를 차렸다. AI 관련 종목을 족족 맞혀 ‘AI계의 노스트라다무스’라 불렸고 순식간에 30조원이 넘는 거금을 모았다.

그는 AI의 미래를 누구보다 강력하게 믿었던 대표적인 ‘롱 플레이어’였다. 그는 앤트로픽, SK하이닉스, 샌디스크와 같은 핵심 AI 반도체 종목에 자신의 돈과 투자금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문제는 AI에 대한 그의 강한 신념이 ‘레버리지(Leverage, 빚내서 투자하기)’와 결합했다는 점이다. 레버리지란 내 돈 1억원에 남의 돈 3억원을 빌려 총 4억원어치 주식을 사는 기술이다. 주가가 10% 오르면 내 원금 대비 40%의 대박 수익을 남기지만 반대로 주가가 10%만 떨어져도 원금의 40%가 날아가는 위험천만한 ‘외줄 타기’다.

레오폴드는 30조원의 펀드 자금에 3~4배가 넘는 무지막지한 레버리지를 걸고 “SK하이닉스와 AI 주가는 계속 오른다”며 롱 포지션을 잡았다. 증시라는 놀이기구에 ‘4배속 폭주 엔진’을 달아놓은 셈이었다. 실제로 6월 말 기준 그의 연초 대비 수익률은 무려 94.4%에 달하며 시장의 모든 거대 펀드들을 압도했다. 2위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관련 펀드(White House Asset Management, +53.9%)마저 크게 따돌린 압도적인 1위였다.

하지만 7월에 접어들며 상황은 급반전됐다. Fed의 금리인하 지연 우려와 글로벌 빅테크(하이퍼스케일러)의 AI 과잉 투자 논란이 재점화됐다. 결정적으로 7월 10일 SK하이닉스의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이 폭락의 방아쇠를 당겼다.

ADR은 미국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 직접 오지 않고도 달러로 SK하이닉스 주식을 편하게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든 ‘미국판 분신 주식’이다. 환전과 거래 절차가 대폭 줄어들자 월가의 거대 자금은 달러 빚을 끌어다 쓰며 SK하이닉스 베팅에 대거 올라탔다.

문제는 이 무렵 국내 증시에서도 지난 5월 말 금융당국이 허용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광풍을 일으키고 있었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 한 종목의 상승에 2배로 빚을 내어 베팅하는 고위험 상품에 국내외 자금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결국 미국에서는 ADR, 한국에서는 단일종목 레버리지라는 두 개의 거대한 빚투 엔진이 동시에 돌아가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AI 거품론으로 주가가 흔들리자 빚으로 쌓아 올린 탑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미국 증시에서는 큰손들이 달러 빚으로 사두었던 ADR을 한꺼번에 던지는 ‘연쇄 매도(언와인딩)’가 터졌다.

곧이어 한국 증시(본주)에서도 빚을 내어 SK하이닉스를 사두었던 개인과 펀드들의 주식이 버티지 못하고 무더기로 강제 매각당하는 ‘본주 청산’이 연쇄 폭발했다.

결국 미국 파생상품과 국내 레버리지 구조가 최악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SK하이닉스 주가는 6월 고점 대비 무려 50% 수직 낙하했다. 4배 레버리지를 썼던 레오폴드 역시 이 폭풍우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이 과정에서 금융 시장의 가장 무서운 악마인 ‘마진콜(Margin Call)’이 발동했다.

마진콜이란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가 “주가가 폭락해 담보가 부족하니 당장 현금을 채워 넣으라”고 넣는 빚 독촉 전화다. 기한 내에 현금을 채우지 못하면 증권사는 투자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식을 강제로 팔아 치우는데 이것이 바로 ‘반대매매(강제 청산)’다.

마진콜을 받은 레오폴드는 빚을 갚기 위해 현금을 구하러 뛰어다녔다. 하지만 펀드의 손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시장의 어느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대출 기관들의 마진콜 압박이 거세졌다.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샌디스크, 블룸에너지, 네비우스그룹 등 그가 담았던 AI 공급망 관련 주요 종목들이 일제히 폭락하면서 펀드는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극심한 자금난에 몰렸다.

결국 레오폴드는 빚으로 사들였던 주식 포트폴리오의 대부분을 켄 그리핀이 이끄는 월가의 거대 헤지펀드 시타델(Citadel)에 넘겨야 했다. 외신들은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 펀드의 몰락 원인으로 한국 메모리 종목에서 터져 나온 매도발 마진콜을 지적하며, 이것이 다른 글로벌 AI 주가로 전이되는 악순환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실제 레오폴드 역시 7월 24일 투자자에게 보낸 서한에서 “아시아 시장의 혼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실책을 인정했다.

시장 일각에선 시타델이 일부러 금리 관련 악재 소문을 퍼뜨려 AI주를 급락시킨 뒤 무너진 펀드를 헐값에 삼켰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월가에서는 과도한 레버리지로 약점을 노출한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도태된 ‘하이에나들의 싸움’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국내 증시의 타격도 상당했다. SK하이닉스 한 종목에서 터져 나온 비극은 단지 특정 기업이나 펀드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초 23%에서 올 6월 말 55%로 높아졌다. 특정 종목의 쏠림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발생한 레버리지 청산 폭탄은 곧 코스피 전체를 흔드는 초대형 수급 충격으로 확산할 수밖에 없었다.

과도한 레버리지가 부른 수급 충격이 증시를 크게 흔들자 정부도 긴급 대응에 나섰다. 재정경제부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개인별 투자한도를 설정하고 모의거래를 도입하는 등 변동성을 키운 빚투 상품에 대한 추가 규제 방안을 즉시 추진하기로 했다.

증시 전문가들의 하반기 시장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다만 이번 급락이 기업 펀더멘털의 훼손 때문이 아니라는 점에는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북미 빅테크의 AI 예약이 2028년까지 완료되는 등 메모리 공급 부족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레버리지 청산과 수급 충격은 상당 부분 마무리됐다”며 “8월부터는 뚜렷한 실적 개선을 바탕으로 한 반도체 업종 중심의 실적 장세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