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과 구리, 전성시대 도래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미국 등 세계 주요국들의 그린경제 추진과 이에 따른 수소에너지와 전기자동차 확대 움직임으로 인해 핵심 원자재인 백금, 구리 등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백금(platinum, 원소기호 Pt)은 금(Au)과는 전혀 다르며 금에 합금을 한 화이트골드와는 달리 천연적으로 하얀 색깔을 띤 희귀한 금속이다. 백금의 이름은 ‘작은 은’을 뜻하는 스페인어 플라티나(platina)에서 유래됐다.
스페인의 군인이자 천문학자인 안토니오 데 울로아가 1748년 그의 저서 <남미의 서해안 탐험기>에서 백금을 ‘핀토의 작은 은(Platina del Pinto)’이라고 명명했다. 당시 유럽인들은 백금을 녹일 수 없어서 ‘미지의 금속’이라고 불렀다. 백금은 융점(섭씨 1768도)이 상당히 높아 19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용해시켜 다룰 수 있었다.
백금은 ‘귀금속의 다이아몬드’라고도 불릴 정도로 고급 보석으로 사용된다. 지구상에서 백금이 발견되는 곳은 아주 적으며 금보다 35배나 더 희귀하기 때문이다. 백금은 이처럼 금과 같은 귀금속으로 분류되지만 대부분 산업용으로 쓰인다. 연간 생산량 중 60%가 산업용으로 쓰이기 때문에 ‘실물경제의 바로미터’라고 불린다.
백금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산업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백금을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자동차 회사로, 배기가스를 정화하는 촉매제의 원자재로 사용된다. 특히 백금은 물에서 수소를 끌어내는 전기분해 과정과 연료전지에서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백금이 최근 들어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해 각국이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50년까지 탄소 중립(제로)을 목표로 하는 친환경 그린경제 정책을 추진하면서 백금 가격이 오르고 있다. 그린경제는 친환경과 저탄소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를 말한다. 각국은 그린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수소에너지와 전기차 등을 적극 개발하고 있다.
백금은 그린경제에서 필수적인 금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금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연료전지를 꼽을 수 있다. 연료전지란 수소 등을 투입해 화학반응을 일으켜 전기를 만드는 장치인데 이를 만들려면 백금이 꼭 필요하다. 게다가 수소를 얻기 위해 물을 전기분해하는 과정에서도 백금이 사용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20년 11월 백금 가격은 14%나 올라 트로이온스당 964.90달러를 기록했다. 트로이온스는 영국 런던 금시장협회(LBMA)에서 사용하는 기준으로 1트로이온스는 31g이다.
그런데 백금 가격은 10년 전에도 크게 오른 적이 있었다. 당시 선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던 디젤 자동차의 배기가스 처리 장치에 백금이 촉매제로 쓰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자동차업계가 보다 값이 싼 팔라듐을 백금 대체재로 사용하면서 값이 하락했고 디젤 자동차가 시장에서 인기를 잃으면서 백금 값은 더욱 내려갔다. 백금 가격은 2015년 이후 큰 변동이 없었다. 2020년 초만 해도 백금 가격은 지지부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신차 생산이 줄어들면서 백금 수요도 덩달아 감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각국이 친환경 에너지 사용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백금 수요가 다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수소전기차에 쓰이는 백금 수요가 디젤차보다 4배 이상 많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배기가스 정화용 촉매의 경우에는 팔라듐도 가능하지만 수소 기술에서는 백금만 촉매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백금의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는데 공급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세계백금투자협회(WPIC)는 2021년 백금 수요가 공급보다 120만 온스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백금은 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생산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공급 규모가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바이든, 친환경차 시대 앞당긴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월 20일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첫 조치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했던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다시 가입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그린 뉴딜 정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공약한 만큼 백금 수요는 날개를 달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이런 공약에 따라 미국에서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차 시대가 앞당겨질 전망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2050년까지 미국을 탄소 중립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연방정부와 공공기관의 자동차 300만 대와 스쿨버스 50만 대를 모두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그의 공약을 보면 △2030년까지 전기차 충전소 50만 개 추가 신설 및 모든 버스 생산을 무탄소 전기버스로 전환 △전기차 관련 세제 혜택 및 친환경 자동차 생산 기업 인센티브 제공 △내연기관 차량 소유주가 친환경차로 바꿀 시 인센티브 제공 등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의 대표적인 스포츠카인 1967년식 콜벳 2세대 스팅레이를 소장하고 있으며, 부통령 시절 경호 문제로 콜벳을 운전하지 못하자 불평했을 정도로 ‘자동차광’이다. 그는 “자동차 산업은 미국의 상징”이라면서 “미국이 21세기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다시 장악할 것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전기차의 선두주자인 테슬라는 물론 자동차업계의 빅3(GM, 포드, FCA)가 본격적으로 전기차 생산에 적극 나설 것이 분명하다.
백금도 바이든의 그린 뉴딜 정책에 힘입어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 원자재 시장분석 업체 CRU그룹의 키릴 키릴렌코 애널리스트는 “연료전지에는 디젤차 촉매로 쓰이는 분량보다 4배 많은 백금이 쓰일 것”이라면서 “백금 투자는 세계적인 전기차 트렌드에 따라 장기적으로 이익을 얻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유럽 각국도 오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추진하면서 전기차 사용을 크게 늘릴 계획이다. 실제로 노르웨이는 2025년, 영국과 네덜란드는 2030년, 프랑스는 2040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아일랜드는 2030년부터 내연기관 차량 등록을 금지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캐나다 퀘벡주도 2035년부터 같은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다. 중국도 2035년부터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백금 수요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세계백금투자위원회의 트레버 레이먼드 연구원은 “요즘처럼 백금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란 전망을 과거에는 본 적이 없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금속 전문가들은 “백금은 이제 장기적인 가격 상승세의 초반부에 있다”고 지적했다. 말 그대로 ‘백금 시대의 도래’라고 볼 수 있다.
백금이 이처럼 각광을 받고 있는 가운데 구리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경제학자보다 실물경제를 더 잘 예측해 ‘닥터 코퍼(Dr.Copper, 구리 박사)’라는 별명이 붙은 구리는 가격이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구리 가격은 지난 11월 톤당 7569달러까지 상승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극심했던 2020년 3월(4939달러)보다 53% 높은 수준이다.
구리는 건설, 전기, 전자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널리 쓰이는 원자재다. 경기 변동에 따라 구리 수요와 가격이 움직인다. 구리 가격이 경기 전환점을 선행적으로 보여 주는 지표로 꼽히는 이유다. 구리 가격이 오르고 있는 것은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고 대규모 재정지출을 공약한 미국 차기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 세계 경제가 회복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주요국 가운데 경제가 가장 빠르게 회복되면서 구리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미국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 정제된 구리를 역대 최고치인 440만 톤을 수입하며 가격 상승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구리 수요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은 2021년에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제조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 정부가 이른바 ‘쌍순환(雙循環) 전략’을 추진하면서 내수 부문의 역할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쌍순환 전략은 미국의 압박과 세계 경제 침체 등 불확실성 속에서 내수에 중점을 두고 경제 자립에 주력하면서도 대외 개방 확대 기조는 유지한다는 것을 말한다. 특히 중국 정부는 14억 명에 달하는 거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기술 자립과 첨단 제조업 육성 등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중국으로선 이런 전략을 위해 구리 등 원자재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가 하면 미국 차기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 뉴딜 정책에서도 구리가 필수적인 원자재라고 말할 수 있다. 구리는 전기차 생산을 비롯해 태양광 패널과 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 및 리튬이온 배터리에 사용된다. 예를 들어 전기차 1대당 구리 사용량은 90kg으로 내연차(15kg)에 비해 6배나 많다.
전기차 보급을 늘리기 위해선 추가로 20만 톤의 구리가 필요하다. 또 재생에너지 분야에선 기존보다 5배나 더 많은 구리가 사용될 것으로 추산된다. 금속 전문가인 로빈 바는 “중국이 2000년부터 인프라 구축을 시작했을 때도 구리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며 “바이든 정부가 그린 뉴딜 정책을 추진하면 구리 수요가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CRU 컨설턴트의 주마나 살리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바이든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에 따라 구리 등 원자재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금속 전문가들은 구리의 급속한 수요 증가에 따라 2020년대 중반에 공급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구리 공급을 늘리려면 새로운 광산을 개발해야 하지만 생산까지 최소 5~6년이 걸리고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광산 개발 비용이 증가해 공급이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기차 생산 증가에 따라 앞으로 배터리에 사용되는 리튬의 수요도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리튬은 전기차 및 리튬이온 배터리 수요 증가로 인해 ‘하얀 석유’라고 불릴 정도로 그 중요성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다. 특히 각국이 전기차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리튬의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다.
리튬은 아직까지는 배터리 분야에서 사실상 대체재가 없는 금속이다. 에너지 밀도가 높고 수명이 긴 리튬 배터리는 한 번 충전해 오래 써야 하는 중대형 전기차부터 작고 얇은 5세대(5G) 이동통신 기기까지 모두 사용된다. 영국의 시장조사기관인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는 2022년 이후 리튬 가격이 점차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리튬 세계 최대 생산국은 호주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리튬이 매장돼 있는 국가는 볼리비아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볼리비아에는 4000만 톤 이상의 리튬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는 전 세계 매장량의 22.7%에 해당한다. 아르헨티나, 칠레 등에도 상당량의 리튬이 매장돼 있다. 따라서 각국이 리튬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게다가 니켈, 알루미늄 등 전기차에 쓰이는 원자재들도 수요가 늘어나면서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시모나 감바리니 캐피털이코노믹스 원자재 이코노미스트는 “백금, 구리, 리튬, 니켈 등의 가격은 앞으로 계속 오를 것이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아무튼 미국 등 각국이 탄소 중립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백금과 구리 등이 대세가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8호(2021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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