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신중년, 다시 인생 시동을 걸다

[한경 머니=공인호 기자] 100세 시대, ‘중년’의 정의가 다시 쓰이고 있다. 과거 ‘장년’ 세대였던 5060세대가 ‘신(新)중년’으로 불리는가 하면 2차 베이비붐 세대나 에코세대까지 폭넓게 ‘신중년’의 범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100세 시대의 허리인 신중년들. 대한민국의 허리는 건강할까. 다가올 노후를 준비하기 위한 리부트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사전적 의미의 중년은 ‘40세 안팎의 나이’이지만,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의료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인간의 기대 수명을 100세까지 연장시키면서 인간의 생애주기에 대한 인식 변화가 동반했다. 우리 정부 역시 지난 2017년 5060세대를 ‘신중년’으로 명명하며 ‘신중년 인생 3모작 기반 구축 계획’을 발표한 바 있으며, 올해 고용노동부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한 신중년 전문 퇴직인력 활용 방안을 발표했다. 신중년 세대가 우리 사회의 잉여세대로 전락하지 않도록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또 매년 우리 사회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해 온 서울대의 김난도 교수팀은 2020년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오팔(OPAL)세대’를 제시하며, 5060세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밀레니얼 세대와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사회적 노력과 함께 5060세대를 바라보는 시각도 점차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오팔세대?
김난도 교수팀은 ‘오팔세대’에 대해 은퇴 후 새로운 일자리에 도전하고 젊은이들 못지않은 활발한 여가 활동을 추구하는 세대라고 분석했다. 과거 5060세대를 상징하는 색이 노년을 상징하는 ‘실버’였다면, 지금의 신중년은 형형색색의 ‘오팔’의 색을 닮았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들 세대는 젊은 층의 취향과 브랜드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자신들만의 콘텐츠를 구매하며 젊은 층과는 또 다른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석의 이면에는 신중년이 처한 ‘비자발적’ 경제활동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 5060세대의 경우 다른 세대와 달리 부모 부양과 자식 양육이라는 경제적 이중고를 겪는 유일한 세대다. 지난 5월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일자리를 그만둘 당시의 나이(49.4세)와 희망 근로 상한(73세)의 격차는 23년에 달했다. 실제로도 후기 신중년인 65~69세의 경우 2019년 기준 경제활동 참가율이 49.5%(남성 61.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초고령 사회인 일본과 유사한 수치다.
중장년층 대부분이 은퇴 이후 20여 년 동안 고용과 소득이 불안정한 2차 노동시장에 내몰리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한데, 올해 기준 5060세대 연령대는 총 인구의 29%인 15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지속된 출산율 하락으로 인해 2030년에는 총 인구의 3분의 1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5060세대의 경제 여건과 삶의 질이 곧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위기’의 2차 베이비붐 세대
사실 5060세대의 경우 오랜 직장생활 이후 은퇴를 앞두거나 인생 2막에 접어든 시기라는 측면에서 다른 연령대에 비해 경제적으로 안정적일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5060세대 내에서도 집단별로 적잖은 격차를 나타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1955~1963년생(만 57~65세)까지 900만 명을 1차 베이비붐 세대, 이후 1968~1976년생(만 44~52세)을 2차 베이비붐 세대로 일컫는데 ‘사전적 의미’의 중년은 2차 베이비붐 세대에 가깝다.

이들 2차 베이비붐 세대 역시 860만 명에 달하는 인구 규모를 갖고 있지만, 신소비층으로 주목받는 1차 베이비붐 세대와 달리 ‘패싱세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책적·사회적 무관심에 직면해 있다. 이와 관련해 <신중년이 온다>의 저자 조창완 작가는 2차 베이비붐 세대를 ‘100만 세대’로 규정하고 “급격한 경제 성장의 과실을 나눈 1차 베이비붐 세대와 달리 2차 베이비붐 세대, 즉 우리 사회의 중년들이 걸어 온 길은 치열한 생존 경쟁이었다”고 회고한다. ‘100만 세대’는 1차 베이비붐 시대 이후 한 해 출생아 수가 100만 명에 달하는 유일한 세대라는 측면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이들 100만 세대는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교실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매년 ‘100만 학도’와의 경쟁 속에 대학에 입학했다. 정치적 격변기를 거쳐 가까스로 대학을 졸업해서는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벽에 부닥쳐 취업 전선에서 또다시 좌절을 겪어야 했다. 갓 50대 안팎에 접어든 이들 세대는 이제는 퇴직 압박에 시달리며 ‘100세 시대’라는 기나긴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이들 100만 세대는 60대가 주축인 오팔세대는 물론, 에코세대(1979~1992년생)와 비교해도 경제적 우위에 있다고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이후 4년간 전 연령대에서 한계가구의 비중이 꾸준히 증가한 가운데 유독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증가세가 가팔랐다.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 자영업 비중이 높은 탓인데,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연령대 역시 100만 세대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측해 볼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나라의 정년 및 관련 제도들은 이들 부모 세대에 맞춰져 있어 조기 퇴직은 물론 정상적 퇴직 이후에도 금전적·사회적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조 작가는 “상당수 100만 세대는 이미 풍찬노숙에 들어간 사람이 많다. 더욱이 앞선 1차 베이비붐 세대처럼 제대로 된 자산을 갖춘 경우도 많지 않다”며 “더 큰 문제는 100만 세대의 움직임에 따라 우리나라의 미래가 움직인다는 것이다. 위로는 70대가 넘은 부모 세대를 모시고 아래로는 20대에 접어든 자식을 둔 100만 세대가 무너질 경우 이 나라의 미래는 혼돈의 연속일 것이다”고 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을 피하기 위해서는 100만 세대가 진보적 가치를 유지하면서 더 오랜 기간 현역에 있어야 향후 우리 사회에 발생할 수 있는 인구 문제 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생 2모작’은 선택 아닌 필수
‘일자리가 최고의 재테크’라는 말이 있다. 눈앞에 은퇴를 앞뒀거나 이미 은퇴한 신중년 세대들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얘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50대의 89.3%가 ‘건강이 허락하는 한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과거 조사 때(78.7%)와 비교해 보면 현업에 대한 의지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 취업 시장을 지탱해 온 제조업 일자리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생존 경쟁이 치열한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인구 감소로 인해 신규 노동자의 취업 시장 진출이 줄어드는 만큼 중장년층의 일자리 기회는 더 많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찍부터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이 사실상 ‘완전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현재 취업 시장에 유입되는 1992년생의 경우 73만 명가량, 5년 뒤인 1997년생은 67만여 명, 그 이후 5년 뒤인 2002년생은 49만여 명에 불과하다.

다만 경제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질 좋은 일자리보다는 생계형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공무원이나 교사, 공기업 직원 등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이 아니라면 대다수 중년들은 인생 2모작은 물론 3모작까지 준비해야 한다. 문제는 50대의 대부분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둘 경우에 대비해 준비한 바가 없다’는 점이다. 조 작가는 “앞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을 돌보는 일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공간 혁명은 인간의 노동을 최소화시킨다”며 “과거 사람들이 어렵사리 연결하던 고가도로의 위험한 작업도 지금은 드론 등 첨단 장비를 통해 해결한다. 이런 세상 속에서 자신의 무기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게 남은 30~40년의 행복을 결정짓는다”고 조언했다.

그는 최근 들어 퇴직자의 재취업이나 생활에 관한 많은 책들이 나오는데, 이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 ‘잘할 수 있는 것’에 무게중심을 둘 것을 제안했다. 말재주가 있다면 지역에 필요한 문화해설사를 생각해 볼 수 있고, 외국어가 가능하다면 여행 가이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투자의 대가 짐 로저스의 조언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로저스는 농업과 관광 산업이 한국의 미래 먹거리로 급부상할 것이라고 예측해 왔다. 이는 가까운 중국에 비해 한국 땅이 갖는 이점 때문인데, 약재 등 농수산물에 대한 체계적 관리가 가능하다면 중장년층의 귀농이 인생 후반기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인생 2막, 새로운 도전>도 참고해 볼 만하다. 고용정보원은 베이비부머들이 도전하기에 적합한 직업 30개를 선정해 ‘틈새도전형’, ‘사회공헌·취미형’, ‘미래준비형’ 세 가지 유형으로 소개하고 있다. ‘틈새도전형’은 베이비부머의 가장 큰 장점인 직장생활 경력과 풍부한 인생 경험, 이를 통해 구축한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도전할 수 있는 직종으로, 특정 분야 전문 지식이나 경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다소 높을 수 있다.
‘사회공헌·취미형’은 그동안 쌓은 경력과 경험을 활용해 사회에 기여하거나 취미 삼아 일할 수 있는 직업들로, 직장생활, 내 집 마련, 자녀 교육, 부모 봉양 등으로 다른 의미의 직업을 찾고자 하는 베이비부머들에게 추천할 만한 직업이다. 다만, 대개 시간제나 프리랜서로 일하거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운영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익 측면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다. ‘미래준비형’은 앞으로 활성화가 기대되는 새로운 직업들로, 아직 국내에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지만 미래 일자리 수요가 있는 직업들이다. 다만 이들 직업은 아직까지 노동시장에 정착하기에는 준비 과정 및 일자리 확보 등이 미비하다는 한계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6호(2020년 11월) 기사입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