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4색 미각, K디저트의 달콤한 유혹 ①

[한경 머니 = 이동찬 기자 | 사진 서범세·김기남 기자] 요즘 한국을 상징하는 알파벳 ‘K’를 붙이면,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해진다. 국내 아이돌 그룹이 이끄는 K팝은 이미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고, K뷰티 또한 세계인들에게 제품력을 인정받았다. K푸드도 마찬가지.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두 유 노우 김치?’로 시작했건만, 지금은 불고기와 비빔밥은 물론, 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불닭볶음면을 김치에 말아먹기도 한다. 그렇다면 다음은 K디저트의 차례다. 사실 한국의 전통 디저트는 우리들에게도 낯선 감이 있지만, 알고 보면 꽤나 매혹적인 간식들이 즐비하다. 우리네 선조들이 즐겼던 주전부리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K디저트가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다.

놋그릇 가지런히 김순영
“놋그릇과 한식의 만남, 시골 어머니 정성 담아” 이름마저 정갈한 ‘놋그릇 가지런히’ 카페를 이끄는 김순영 대표는 경남 무형문화재 제14호 징장 이용구 선생의 며느리이자, 전수자인 이경동 선생의 아내다. 아들 또한 가업을 잇고 있어 3대가 일일이 손으로 두드려 가며 질 좋은 놋그릇을 만든다. 이 카페는 정성으로 탄생한 놋그릇이 손님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다. 우리네 간식들이 놋그릇에 ‘가지런히’ 담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것 같다.
카페 이름이 매력적이에요.
“놋그릇 가지런히는 3대가 놋그릇을 만드는 ‘놋이공방’에서 운영하는 카페입니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 주고, 놋그릇과 어울리는 정갈함과 단아함을 표현하기 위해 ‘가지런히’라는 단어를 붙이기로 했어요. 저희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반영한 것이죠.”
카페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어렵게 만든 물건이 제 가치를 발휘하려면,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이 맞아야 해요. 그래서 소비자들과의 소통의 공간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누구나 쉽게 와서 놋그릇과 그 정성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카페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서양 스타일이 아닌, 전통적인 놋그릇과 어울릴 수 있는 담백한 한국의 디저트를 내놓자고 생각했죠. 우리가 어렸을 적 먹고 자란 주전부리들을 생각하며 메뉴를 구성했습니다.”

경남 거창에서 올라온 팥을 손으로 일일이 개어 만든 단팥죽과 얼린 홍시에 단팥 고명을 얹은 홍시단팥, 생강에 부드러운 라테를 접목한 생강꿀라테
1층에 위치한 놋그릇 가지런히 카페의 내부.
어쩐지 메뉴들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단순히 디저트를 먹는 게 아니라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느껴질 수 있도록 만들고 있어요. 예를 들면, 미숫가루는 메뉴 앞에 ‘시골 어머니의 정성을 담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는데, 실제로 경남 거창에 계신 저희 친정어머니께서 직접 준비하신 곡물 12가지를 쪄서 살짝 볶은 다음 빻아요. 약간 노르스름한 색깔이 나는 것이, 다른 미숫가루와는 차별화된 점이죠. 셰프들도 연륜이 있는 분들을 고용하고 있어요. 저희와 같은 마음으로 생산자와 손님들 사이의 중간 역할을 잘 해 주시는 분들이죠.”
시골에서 올라온 재료라 더 정감이 가네요.
“제철 재료들을 활용하고, 또 엄선해서 디저트를 만들려고 해요. 단팥죽의 팥도 역시 친정어머니가 직접 농사지은 팥을 사용하는데, 일일이 손으로 개고 걸러서 단팥죽을 만들고 있어요. 또한 떡을 넣지 않아서 단팥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했죠. 팥도 굉장히 꼼꼼하게 검수하는데, 삶았을 때 팥 속이 비는 경우가 있어요. 상태가 좋지 않으면 다 반품을 하니까, 시골 할머니들이 손사래를 치기도 해요.”
요즘은 놋그릇을 흔히 볼 순 없잖아요. 손님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놋그릇에 디저트를 담아 내가면, 손님들이 대접받는 느낌이 들어 좋다고 해요. 사실 놋그릇에 디저트를 먹는 건 쉽게 접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죠. 놋그릇이 제수용품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쓰임새를 직접 보고 경험하지 못하면 잘 몰라요. 놋그릇에 예쁘게 음식이 세팅해서 나가면, 손님들도 놋그릇을 사용해 보고 싶고 또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어지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혼수용품으로 놋으로 된 디저트 세트를 제작하기도 했어요.”

사실 저도 놋그릇을 제수용품으로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주인공 도민준(김수현 분)이 놋그릇에 식사하는 모습이 놀랍기도 하고, 인상적이었어요.
“실제로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미스터 선샤인>에 나오는 놋그릇들을 저희 놋이공방에서 협찬했어요. 지금은 곧 방영 예정인 TV 드라마 <철인왕후>에도 놋그릇을 협찬하고 있고요. 매스컴의 영향이 커서인지, 방영 이후로 일본인과 중국인들의 문의가 많아졌고, 또 드라마에 나온 그대로 주문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어요.”

놋이의 제품들은 모두 손으로 일일이 두드려 만든 방짜유기로, 특유의 형태와 빛깔을 자랑한다.
놋그릇과 한식 디저트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시는 것 같아요.
“재료와 방식은 전통적이지만 이를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풀어 내려고 해요. 그래서 놋으로 와인 쿨러나 파스타 볼, 샐러드 볼을 만들기도 하죠. 디저트도 젊은 층의 입맛에 맞게 조금씩 변화를 줬어요. 대부분 한식 디저트를 한다고 하면 쌍화차 같은 걸 떠올리는데, 좀 고루해 보일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메뉴를 만들 때 고민을 많이 하고, 자문도 많이 받았어요. 얼린 홍시도 그냥 나가면 밋밋하니, 팥빙수처럼 단팥 고명을 올리는 걸 고안했고요. 생강은 체온을 높여 면역력을 올려 주는 좋은 재료지만, 특유의 매운 맛 때문에 꺼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우유와 거품을 더한 라테를 접목해 목 넘김을 부드럽게 만들었어요. 또 어린 아이들을 위해 음료와 함께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도록 현미 절편을 살짝 구워 아이스크림과 함께 구성하는 등 전 연령층이 쉽게 한식 디저트에 다가갈 수 있도록 약간의 변화를 가미했습니다.”

메뉴를 더 확장하실 계획도 있나요.
“조금이라도 제대로 하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당분간 메뉴를 더 확장할 계획은 없어요. 지금의 메뉴로도 충분히 놋그릇과 한식 디저트가 돋보일 수 있거든요. 여름 메뉴로 수박 셔벗이 인기가 많은데, 물론 홍시와 살구로도 셔벗을 만들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는 구색을 맞추기보다는 그냥 지금의 메뉴들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예요.”
한식 디저트가 세계로 진출할 수 있을까요.
“물론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지금 전 세계의 이슈가 건강이잖아요. 한식 디저트는 맛도 맛이지만, 건강에 참 좋은 것들이에요. 홍시는 자연의 햇빛과 이슬을 먹으며 계절을 견뎌 마침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거잖아요. 현미와 검정깨, 미숫가루 등은 건강한 한 끼 대용으로도 충분하고요. 치즈와 밀가루는 많이 먹으면 속이 부대끼고 불편하지만, 한식 디저트의 재료들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먹던 것이고, 또 예로부터 조상들이 먹었기 때문에 전혀 부담이 없어요. 또 만드는 사람의 정성도 듬뿍 들어가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직접 먹는 사람은 감으로 다 느낄 수 있죠.”
놋그릇 가지런히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물론 전 세계의 음식을 담는 그릇이 놋그릇이길 바라지만, 그건 좀 힘들 것 같아요.(웃음) 놋그릇을 널리 알리기 위해선 의식주로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놋으로 장신구나 소품들을 만들 수 있음을 알리고, 담긴 음식이 더 빛날 수 있도록 놋그릇의 디자인 또한 끊임없이 개발해야겠죠. 현대에서도 전통이 사랑받을 수 있도록. 그 소통의 창구가 바로 이 카페가 될 거예요. 이 카페에서 전문가와 함께 하는 토크 콘서트처럼, 전통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해 보고 싶어요.”


티테라피 행랑 이은경
“건강한 한국 차, 달달하게 즐기세요”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 윤보선길이라 불리는 골목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티테라피 행랑’이라는 작은 카페를 만날 수 있다. 윤보선가의 일부에 자리 잡은 이곳은 옛 가옥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 난다. 티테라피의 이은경 대표는 지난해에 본점이었던 신사점을 정리하고 행랑점만 남길 만큼, 애착이 있는 공간이라고 이곳을 언급한다. 그녀는 이곳에서 가장 한국적인 차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하는 중이다.
티테라피 행랑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2008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카페와 클리닉, 스쿨이 합쳐진 공간으로 티테라피를 오픈했어요. 같이 시작했던 한의학 교수님과 함께 한방차를 세련되게 풀고 싶었어요. 식물의 뿌리나 껍질 들은 오랫동안 우리네 선조들이 먹어 온 차의 재료이긴 하지만 한참 끓여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죠. 이를 허브티처럼 즐기도록 만들기 위해 연구했고, 티백처럼 우려 낼 수 있는 처리 공법을 개발했어요. 현재 교수님은 부산에서 교수직으로 임명되셔서 내려가신 상태고, 티테라피스트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요.”
티테라피스트가 어떤 개념인지 궁금해요.
“차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라고 보시면 돼요. 손님들에게 차를 권해 줄 때 어떤 맛과 향을 좋아하는지를 먼저 여쭙고 그에 맞춰서 차를 내어드리고 있어요. 또 차에는 테라피적인 요소들을 무시할 수 없기에 부가적으로 머리가 아프다거나 소화가 안 되면 우리네 선조들이 먹고 마셨던, 효과가 있는 약초들을 추천하고 왜 그런 증상이 생겼는지를 같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자신에게 맞는 차를 고를 수 있도록 차트도 만드셨더라고요.
“한의학의 사상체질을 기반으로 하지만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나누지 않고 네 가지 컬러로 카테고리를 구성했습니다. 각 컬러마다 맞는 차들이 있고요. 재료들은 모두 물처럼 마셔도 되기 때문에 혹여 컬러가 알고 있던 자신의 사상체질과 맞지 않더라도 부작용 없이 편하게 드실 수 있도록 고안했어요. 사실 이런 차트를 통해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 이 과정만으로도 반 이상 치유가 이뤄졌다고 봐요. 평소에는 자기가 잠을 잘 자는지, 소화는 잘하고 있는지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하니까요.”
재래 박하와 감초, 곽향으로 우려낸 티테라피 행랑의 시그니처 향통차.
오미자를 하룻밤 냉침해 설탕과 올리고당을 섞은 아이스 오미자차.
향통차를 많이 찾는 것 같던데요.
“생각이 많아지면 기가 뭉쳐 위로 올라가 머리가 뜨거워지고 눈과 입술, 피부가 건조해지죠. 반대로 탁 트인 곳에 가면 몸도 릴렉스해지면서 기가 사방으로 뻗게 돼요. 향도 멀리 퍼지는 성질을 갖고 있잖아요. 그래서 향이 좋은 차들은 뭉친 기운을 퍼뜨리는 역할을 해요. 향통차는 재래 박하와 감초, 곽향이 블렌딩 됐어요. 화한 향이 나는 박하는 뭉친 기운을 풀어 주고, 감초가 더해져 목 넘김을 부드럽고 달달하게 만들어 주죠. 코리아 민트라고 불리는 곽향은 방아 잎을 따서 말린 재료로, 허브의 향을 더해 줍니다.”

가을을 맞아 추천해 주시는 차가 있다면.
“오미자는 가을이 제철이에요. 햇오미자를 말려서 1년을 두고두고 쓰는 거죠. 이 말린 오미자를 하룻밤 찬물에 재우는 냉침 과정을 거치면 빨갛게 우러나오는데 기호에 맞게 설탕이나 올리고당을 섞어 마시면 됩니다. 오미자는 시원하게 해서 먹는 게 좋아요. 또는 햇오미자를 설탕과 1대1의 비율로 절인 후 며칠 뒤에 뜨거운 물이나 차가운 물에 희석해 마시면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어요. 가을에 오미자를 구해서 직접 해 드시는 걸 추천합니다.”
취향에 따라 블렌딩해 마실 수 있는 티 세트도 판매한다.
윤보선가의 일부를 그대로 보존한 내부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방차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을까요.
“실제로 카페에 일본인들이 많이 찾아오세요. 저와 스태프들 모두 일본어가 가능해서 일본에서 방문하는 분들을 직접 응대하는데, 티 클래스 참여도 높고 반응이 좋아요. 중국 소아 한방병원에도 저희 제품을 납품한 적이 있어요. 아이들이 먹기 쉬운 재료들을 제공했는데, 차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 오히려 역수출을 한 셈이죠. 기분이 좋았어요. 최근에는 두바이 관광공사 관계자들도 두바이에도 이런 차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습니다.”
티테라피와 한방차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옛날 기록들을 보면, 서양인들이 조선에는 좋은 차나무가 많은데 사람들이 이파리를 먹지 않고 식물의 뿌리나 귤껍질과 같은 것을 끓여 먹는다고 적혀 있어요.
<조선왕조실록>에도 찻잎이 아닌 약초들을 활용한 차들이 200가지 이상 나와요. 이런 재료들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코리안 티’ 하면 티테라피의 차들이 먼저 떠오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차 또한 한방 재료에 머물지 않고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다양하고 새로운 재료들을 찾고 있어요.”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4호(2020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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