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자력갱생식 ‘반도체 굴기’ 나서나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미국 정부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중국의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중국과 화웨이도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을 앞세운 ‘난니완 프로젝트’를 꺼내 들었다. 애국주의를 앞세운 중국의 ‘맞불’은 성공할 수 있을까.
난니완(南泥湾)은 중국 산시성 옌안에서 남동쪽으로 90km 떨어져 있는 계곡을 말한다. 중국 공산당의 주력 부대 중 하나인 팔로군(八路軍)이 항일전쟁(1937~1945년) 때 일본군의 공격과 봉쇄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황무지를 개간해 식량을 자급자족하며 일본군과 싸웠다. 이곳은 현재 중국 공산당의 혁명 성지다. 당시 팔로군의 이런 불굴의 투지와 인내를 ‘난니완 정신’이라고 부른다.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중국의 화훼이가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제재 조치에 맞서 ‘난니완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난니완 프로젝트는 화훼이가 당시처럼 미국의 기술과 제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술과 중국산 부품으로 각종 제품을 제조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화웨이는 미국 정부의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제품 생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5월 화웨이와 114개 계열사를 ‘거래제한 기업 리스트’에 올리고 인텔, 퀄컴, 브로드컴 등 미국 반도체기업들의 거래를 금지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지난 6월 30일 화웨이를 미국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공식 지정했다. 미국 정부는 또 오는 9월부터 자국의 소프트웨어와 기술을 활용한 외국 반도체 제조업체가 화웨이에 반도체부품을 공급할 수 없다는 내용의 새롭게 개정된 수출규제 조치를 시행할 계획이다.
화웨이가 난니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해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천명한 ‘자력갱생’ 전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자력갱생은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이 주창한 경제 이론이다. 마오 전 주석은 과거 집권했을 당시 북한과 마찬가지로 자급자족의 폐쇄형 국가경제 정책을 추진했는데, 당시 선전 구호는 ‘자력갱생·자급자족’이었다.
시 주석은 지난해 신년사를 통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자력갱생과 고군분투로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지난 5월 공산당 지도부 모임인 정치국 회의에서 ‘경제 자력갱생’을 기치로 내걸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홍콩 국가보안법’ 사태를 기점으로 미국 등 서방과의 갈등과 대립이 갈수록 심화되자 중국이 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추진하게 된 셈이다. 회사 이름이 ‘중화민족을 위해 분투한다(中華有爲)’라는 뜻인 화웨이(華爲)가 중국 공산당의 자력갱생과 자급자족 전략을 추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화웨이의 난니완 프로젝트에는 주력 사업 대부분이 포함될 것이 분명하다. 화웨이는 난니완 프로젝트의 첫 작품으로 지난 8월 17일 새로운 노트북 모델을 공개했다. 이 제품에는 미국 기술에 의존한 부품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화웨이는 또 독자적인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인 훙멍(鸿蒙, harmony)을 개발하는 등 기술 자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화웨이는 오는 9월 10일 열리는 연례 개발자회의에서 업그레이드 된 훙멍 OS를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중국 최대 전기자동차기업인 비야디(BYD)는 지난 7월 13일 화웨이와 손잡고 5세대(5G) 기술을 탑재한 신규 세단 ‘한(HAN) EV 5G’ 자동차를 처음 출시했다. 이 차량에는 화웨이의 훙멍 OS와 하이카(HiCar) 시스템이 탑재됐다. 화웨이는 비야디와 함께 스마트폰 P40 모델도 내놨다. 이 스마트폰의 뒷면 중앙에 차량 이미지가, 우측 상단에 ‘HAN’이란 차량 브랜드가 새겨져 있다.
비야디와 화웨이가 중국 전기자동차와 스마트폰 시장의 대표 주자인 만큼 양사의 협력이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청둥 최고경영자(CEO)는 “훙멍이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맞이해 스마트폰 외에도 태블릿, TV, 인공지능(AI) 스피커, 전기자동차 등 여러 곳에 쓰이는 범용 OS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난니완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은
화웨이의 난니완 프로젝트가 앞으로 어느 정도 성공할까. 시장에선 일단 단기적으론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화웨이 스마트폰의 약진을 들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 2·4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5580만 대를 판매해 점유율 20.0%로 사상 첫 1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5420만 대(19.5%)를, 애플은 3760만 대(13.5%)를 각각 판매해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화웨이의 스마트폰 판매가 크게 늘어난 것은 코로나19 사태와 중국 내수시장에서 선전(?)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가운데 경제 회복 조짐을 보이는 중국에선 국민들이 화웨이 스마트폰을 집중적으로 구입했다. 실제로 화웨이의 중국 내수 판매 비중은 역대 최고치인 71%까지 상승했다.
화훼이의 약진은 스마트폰의 성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중국 국민들의 ‘애국주의 소비’ 때문이다. 중국에선 최근 ‘궈차오’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궈차오는 중국 전통문화를 의미하는 ‘궈(國)’와 유행을 뜻하는 ‘차오(潮)’를 합한 단어로 중국 제품을 사용하자는 운동이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으로 신냉전에 돌입하면서 중국의 젊은 세대가 ‘애국 소비’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 출생자를 뜻하는 ‘주링허우’와 ‘링링허우’ 세대가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외국 제품을 쓰는 사람은 매국노’, ‘중국 제품을 쓰지 않는 사람은 중국인이 아니다’ 등의 글을 올리면서 중국 제품 구매를 촉구하고 있다.
게다가 화웨이가 미국 정부의 집중적인 제재 대상이 되자 이들은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자면서 앞장서고 있다. 이들의 이런 태도는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후 중국 공산당이 애국주의 교육을 강화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 톈안먼 민주화 시위로 위기를 느꼈던 중국 공산당은 1994년부터 모든 초등학교 교과서에 애국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도록 지시했고, 모든 언론이 일정 횟수 이상의 애국주의 고취 영상을 내보내도록 강제했다. 이후 26년이 지난 지금 이런 애국주의 교육에 사실상 세뇌 당한 젊은 층이 미국 등 서방에 대해 적개심까지 보이고 있다.
시 주석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강조해 온 것도 애국주의를 부추기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애국주의는 중화민족 정신의 핵심”이라면서 “애국주의 정신을 힘껏 드높이고 애국주의 교육을 국민 교육과 정신문명 건설의 전 과정에 구현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시 주석은 지난 7월 21일 25개 기술 기업들의 CEO들과 비공개 회의를 갖고 “외국 제조업체들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고 애쓰고 있는 데다 미국과 중국 간 탈동조화도 심화하고 있다”면서 “애국과 혁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애국주의는 중국 기업의 영광스러운 전통”이라면서 “기업들이 정부와 공산당의 요구에 맞게 전략을 짜 달라”고 당부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 정부는 앞으로 국민들의 ‘애국주의 소비’는 물론 기업들의 ‘애국주의 경영’을 더욱 강조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기술 자립을 위해 반도체 산업에 최대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하는 등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이번 조치를 보면 15년 이상 사업을 해 온 반도체 제조기업이 28나노미터(㎚, 1㎚는 100만 분의 1㎜) 혹은 이보다 더 고도화한 공정을 적용할 경우 최대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한다는 것이다. 28㎚ 이상 65㎚ 이하 공정을 보유한 기업의 경우에는 5년간 법인세를 면제하고 이후 5년간 세율을 낮춘다는 방침이다. 혜택은 반도체 제조기업이 처음 이익을 내는 해부터 시행된다.
반도체의 성능 향상은 회로선 폭을 얼마나 미세하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미세할수록 연산처리 능력이 높아져 성능이 좋아지기 때문인데, 그만큼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다. 중국 반도체기업의 초미세화 공정 능력은 미국, 한국 등의 반도체기업들에 훨씬 뒤처져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미 7㎚ 공정 개발에 성공했다.
중국 정부는 또 칩 디자인, 포장 테스트와 관련 장비, 재료 및 소프트웨어기업에 최초 2년간 수익을 법인 소득세에서 면제하고 3년 동안 법정세율을 25~50% 할인해 줄 방침이다. 이와 함께 반도체와 소프트웨어기업의 중국 내외 주식시장 상장과 자금 모집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기업에 대한 파격적인 세제 혜택은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제재 조치에 맞서 기술 자립을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로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SMIC(중신궈지, 中芯國際)가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이 분명하다. 중국 국영기업으로 분류되는 SMIC는 올해 설비에 43억 달러를 투입하는 등 기술력 향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MIC는 현재 14㎚ 중심의 파운드리 공정을 연말까지 7㎚로 업그레이드해 자국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방침이다.
특히 SMIC는 화웨이와의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화웨이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에서도 SMIC와 손잡고 자급화에 나서고 있다. 화웨이는 미국 정부의 제재로 세계 최대 파운드리업체인 대만의 TSMC와 거래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SMIC와 손잡고 AP 등 주요 반도체 생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SMIC는 베이징 경제기술개발구 관리위원회와 함께 자본금 50억 달러 규모의 합작법인을 세우고 베이징에 생산라인 2개를 건설할 예정이다. SMIC가 TSMC, 삼성전자 등과 비교해 첨단 공정 분야에서 뒤떨어지지만 중국 정부의 지원과 화웨이 물량 확보로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업체들도 이번 조치에 따라 상당히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D램 시장에서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올 연말께 17㎚ D램을, 칭화 유니그룹 산하의 YMTC는 128단 낸드플래시 제품을 각각 양산할 계획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야심 찬 ‘반도체 굴기’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시장조사기관인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반도체 자급률은 2014년 대비 0.6%포인트 증가한 15.7%에 그쳤으며 2024년 자급률도 20.7%가 될 전망이다. 그 이유는 세계 1위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국의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를 비롯해 램리서치 등이 중국 반도체기업들에 장비를 더 이상 수출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반도체기업들은 고급 인력을 충분하게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물론 반도체기업들은 ‘자력갱생’이란 구호를 앞세우면서 총력을 기울일 것이 분명하다.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제재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만, 국민이 애국주의 소비로 뒤를 받쳐 주고 정부가 무조건 견인할 경우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실현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아무튼 역사적으로 볼 때 난니완 프로젝트까지 들고 나온 화웨이의 행보와 중국 정부의 자력갱생식 반도체 굴기 계획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4호(2020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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