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백정림 갤러리 이고 대표·<앤티크의 발견> 저자 | 사진 서범세 기자] 격식을 강조하는 동양의 차에 비하면, 홍차는 비교적 가볍게 마실 수 있어서인지 요즘 우리 가까이에 성큼 다가와 있다. 영국 홍차 문화 즐기기.
(사진) 정교하게 스털링으로 핸드 페인팅한 아르누보 시대의 코발트블루 화병 겸 촛대에 여름 내내 꽃을 피우는 사계조팝이 아름답다.
17세기 유럽에 전해진 세 가지 검은 음료 중에서 초콜릿과 커피는 프랑스에서 각광 받았다. 우리가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중심가에서 보게 되는 많은 초콜릿 상점과 카페의 모습은 17세기에도 많이 다르지 않았던 파리의 모습이었다.
반면에 영국에서는 중국의 녹차가 변형된 홍차가 각광을 받았다. 영국에서 홍차 문화가 널리 퍼진 데에는 영국의 음습한 날씨와 좋지 않은 수질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연중 대부분 뼛속까지 스며드는 음습하고 스산한 날씨로 인해 영국인들은 홍차가 전해지기 이전부터 식물의 뿌리를 달여 마시는 음차 습관이 있었다.
왕비의 아름다운 티파티
차는 언제부터 유럽에 소개됐을까. 차가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된 것은 16세기 초 포르투갈 사람들에 의해서였다. 선교 활동을 위해서 일본을 방문한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일본의 신비로운 차 문화에 특히 깊은 관심을 가졌고, 17세기 초가 되면서 교역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네덜란드 상인들에 의해서 신비로운 동양의 차는 유럽 각국으로 퍼져나가게 됐다.
19세기 초까지 이어져 온 유럽 상류층 자제들의 문화 체험 여행이었던 ‘그랑투르’에서 네덜란드에서의 일본 차 문화 체험은 빠지지 않는 목록이었다. 네덜란드를 통해서 유럽에 전해지기 시작한 동양의 신비로운 차 문화는 영국인들의 생활에 깊숙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1662년 찰스 2세와 결혼한 포르투갈의 캐서린 브라간자 공주는 영국 상류사회의 차 문화 전파와 무관하지 않다. 당시 왕족의 결혼이 그러했듯 양국 간 정략적 결혼이었던 찰스 2세와의 결혼을 위해 캐서린 공주는 인도 뭄바이 영토와 더불어 7척의 배에 귀한 설탕과 소금, 그리고 차를 가득 싣고 영국에 도착했다.
캐서린 공주가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녀가 한 첫 번째 주문은 뱃멀미를 달래 줄 수 있는 차를 내오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캐서린의 차 마시는 습관은 귀족사회에서 빠르게 퍼져 나가게 됐는데, 이는 그녀의 불행했던 결혼생활과도 연관이 깊다.
수많은 사생아를 둔 것으로 유명한 찰스 2세의 바람기와 외국 땅에서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왕비는 차 한 잔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녀는 외로움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왕실 티파티에 귀족 부인들을 초대했고, 차는 점차 왕실과 귀족 문화를 상징하는 귀한 존재가 됐다. 지금도 온전하게 보존돼 있는 런던 근교의 ‘햄 하우스’라는 저택에는 캐서린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티룸이 남아 있다.
(사진_위부터 시계방향) 코발트블루 크리스털 디너 접시와 레이어드 된 스카이블루 톤의 베리볼, 유려한 곡선의 베네치안 와인 글라스(아르누보), 핑크 꽃무늬가 사랑스러운 리모주 티 잔(빅토리안), 오렌지 톤으로 기하학적인 무늬를 그려 넣은 티 잔(아르데코), 스털링이 오버레이 된 코발트블루 샷 글라스(아르누보), 화병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넉넉한 사이즈의 블루 맥주잔(1970년대).
왕비의 아름다운 티파티는 영국의 상류층들을 차 문화로 깊숙이 끌어들였다. 귀족들은 앞다투어 차와 도구를 구입하는 데 열을 올렸고, 이는 사치와 낭비를 조장했던 18세기 절대왕정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맞아 떨어졌다. 당시 절대왕정의 왕들은 귀족들로 하여금 사치를 통해 부를 탕진하게 함으로써 왕의 권력을 넘보지 않는 순종적인 귀족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때마침 상류사회에 불어 닥친 차와 도자기의 열풍은 많은 귀족들이 그들의 부를 쉽게 탕진하게 만들었다.
부를 잃어버린 귀족들은 왕의 권력에 의탁하는 순한 양이 돼 더 이상 왕에게 도전하지 않게 됐고 18세기의 절대왕정은 그렇게 완성됐다. 상류층의 차에 대한 과시욕과 호기심은 차를 상류층의 필수품으로 등극하게 만들었고, 그들은 저마다 가장 멋진 찻잔과 차도구로 티 룸을 장식하고 싶어 했다. 우리가 유럽을 여행하며 흔히 보게 되는 차 도구를 손에 든 초상화는 이러한 17세기와 18세기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귀족의 시간, 애프터눈 티타임
요즘은 커피 일색의 카페 혹은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도 홍차나 허브티를 대부분 판매하고 있으니 우리들의 차 생활도 꽤 다양해진 느낌이다. 17세기 홍차 문화의 번성은 19세기에 이르러 다과를 곁들여 먹는 애프터눈 티파티로 이어졌다.
오늘날 애프터눈 티파티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애프터눈 티파티는 브런치 카페의 유행 이후 젊은 여성들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사진 주제로 많이 등장할 만큼 인기 있는 차 문화다. 영국에서 유래돼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즐거운 오후의 시간을 만들어 주는 애프터눈 티파티는 빅토리안 시대 문화의 아이콘이었던 베드포드 공작부인으로부터 유래됐다. 당시 상류층 부인들이 누구나 닮고 싶어 했던 베드포드 공작부인이 즐겼던 티파티는 애프터눈 티파티라 불리며 주변의 귀부인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사진_위부터 시계방향) 스털링이 오버레이 된 레몬 접시(아르데코), 화려한 채색이 돋보이는 세브르 디너 접시(아르데코), 핑크와 그린의 조화가 아름다운 베네치안 센터피스(아르누보).
상류층 부인들은 저마다의 집에서 애프터눈 티파티를 열어 지인들과 오후를 즐기게 됐다.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서 탄생된 티파티였기에 애프터눈 티파티에는 늘 풍성한 티푸드가 함께했다. 3단 트레이가 등장했고, 제일 아랫단에는 영국 정통의 샌드위치인 오이와 달걀 샌드위치가 놓여졌다. 두 번째 칸에는 스콘과 구운 과자, 그리고 맨 위 칸에는 초콜릿 등 달콤한 디저트가 놓였다. 지금도 영국인이 즐기는 하루 다섯 번의 티타임 중에서 가장 귀족적인 티타임으로 여겨지는 애프터눈 티파티에는 때때로 샴페인이 홍차와 함께 제공되기도 한다.
여름의 절정을 거치며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이 더위가 지나고 나면 차 마시기 좋은 계절인 가을이 이어질 것이다. 태어나 처음 겪어 보는 세계적인 유행병에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빼앗긴 느낌도 들지만, 그러나 어찌하랴.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계절은 속절없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고 있다. 사회적인 교류가 줄어든 요즘 가정에서 나만의 공간과 사색을 즐기는 지혜를 권하고 싶다. 그러니 나를 위한 조그만 위로일 수 있는 잘 우려진 차 한 잔을 음미해 보자. 행복은 늘 그렇듯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기에.
앤티크 컬렉터 백정림은…
하우스 갤러리 이고의 백정림 대표는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 컬렉터로서, 품격 있고 따뜻한 홈 문화의 전도사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티크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티크 컬렉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 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고갤러리 02-6221-4988, 블로그 blog.naver.com/yigo_gallery, 인스타그램 yigo_gallery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3호(2020년 08월) 기사입니다.]
(사진) 정교하게 스털링으로 핸드 페인팅한 아르누보 시대의 코발트블루 화병 겸 촛대에 여름 내내 꽃을 피우는 사계조팝이 아름답다.
17세기 유럽에 전해진 세 가지 검은 음료 중에서 초콜릿과 커피는 프랑스에서 각광 받았다. 우리가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중심가에서 보게 되는 많은 초콜릿 상점과 카페의 모습은 17세기에도 많이 다르지 않았던 파리의 모습이었다.
반면에 영국에서는 중국의 녹차가 변형된 홍차가 각광을 받았다. 영국에서 홍차 문화가 널리 퍼진 데에는 영국의 음습한 날씨와 좋지 않은 수질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연중 대부분 뼛속까지 스며드는 음습하고 스산한 날씨로 인해 영국인들은 홍차가 전해지기 이전부터 식물의 뿌리를 달여 마시는 음차 습관이 있었다.
왕비의 아름다운 티파티
차는 언제부터 유럽에 소개됐을까. 차가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된 것은 16세기 초 포르투갈 사람들에 의해서였다. 선교 활동을 위해서 일본을 방문한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일본의 신비로운 차 문화에 특히 깊은 관심을 가졌고, 17세기 초가 되면서 교역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네덜란드 상인들에 의해서 신비로운 동양의 차는 유럽 각국으로 퍼져나가게 됐다.
19세기 초까지 이어져 온 유럽 상류층 자제들의 문화 체험 여행이었던 ‘그랑투르’에서 네덜란드에서의 일본 차 문화 체험은 빠지지 않는 목록이었다. 네덜란드를 통해서 유럽에 전해지기 시작한 동양의 신비로운 차 문화는 영국인들의 생활에 깊숙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1662년 찰스 2세와 결혼한 포르투갈의 캐서린 브라간자 공주는 영국 상류사회의 차 문화 전파와 무관하지 않다. 당시 왕족의 결혼이 그러했듯 양국 간 정략적 결혼이었던 찰스 2세와의 결혼을 위해 캐서린 공주는 인도 뭄바이 영토와 더불어 7척의 배에 귀한 설탕과 소금, 그리고 차를 가득 싣고 영국에 도착했다.
캐서린 공주가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녀가 한 첫 번째 주문은 뱃멀미를 달래 줄 수 있는 차를 내오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캐서린의 차 마시는 습관은 귀족사회에서 빠르게 퍼져 나가게 됐는데, 이는 그녀의 불행했던 결혼생활과도 연관이 깊다.
수많은 사생아를 둔 것으로 유명한 찰스 2세의 바람기와 외국 땅에서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왕비는 차 한 잔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녀는 외로움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왕실 티파티에 귀족 부인들을 초대했고, 차는 점차 왕실과 귀족 문화를 상징하는 귀한 존재가 됐다. 지금도 온전하게 보존돼 있는 런던 근교의 ‘햄 하우스’라는 저택에는 캐서린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티룸이 남아 있다.
(사진_위부터 시계방향) 코발트블루 크리스털 디너 접시와 레이어드 된 스카이블루 톤의 베리볼, 유려한 곡선의 베네치안 와인 글라스(아르누보), 핑크 꽃무늬가 사랑스러운 리모주 티 잔(빅토리안), 오렌지 톤으로 기하학적인 무늬를 그려 넣은 티 잔(아르데코), 스털링이 오버레이 된 코발트블루 샷 글라스(아르누보), 화병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넉넉한 사이즈의 블루 맥주잔(1970년대).
왕비의 아름다운 티파티는 영국의 상류층들을 차 문화로 깊숙이 끌어들였다. 귀족들은 앞다투어 차와 도구를 구입하는 데 열을 올렸고, 이는 사치와 낭비를 조장했던 18세기 절대왕정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맞아 떨어졌다. 당시 절대왕정의 왕들은 귀족들로 하여금 사치를 통해 부를 탕진하게 함으로써 왕의 권력을 넘보지 않는 순종적인 귀족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때마침 상류사회에 불어 닥친 차와 도자기의 열풍은 많은 귀족들이 그들의 부를 쉽게 탕진하게 만들었다.
부를 잃어버린 귀족들은 왕의 권력에 의탁하는 순한 양이 돼 더 이상 왕에게 도전하지 않게 됐고 18세기의 절대왕정은 그렇게 완성됐다. 상류층의 차에 대한 과시욕과 호기심은 차를 상류층의 필수품으로 등극하게 만들었고, 그들은 저마다 가장 멋진 찻잔과 차도구로 티 룸을 장식하고 싶어 했다. 우리가 유럽을 여행하며 흔히 보게 되는 차 도구를 손에 든 초상화는 이러한 17세기와 18세기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귀족의 시간, 애프터눈 티타임
요즘은 커피 일색의 카페 혹은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도 홍차나 허브티를 대부분 판매하고 있으니 우리들의 차 생활도 꽤 다양해진 느낌이다. 17세기 홍차 문화의 번성은 19세기에 이르러 다과를 곁들여 먹는 애프터눈 티파티로 이어졌다.
오늘날 애프터눈 티파티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애프터눈 티파티는 브런치 카페의 유행 이후 젊은 여성들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사진 주제로 많이 등장할 만큼 인기 있는 차 문화다. 영국에서 유래돼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즐거운 오후의 시간을 만들어 주는 애프터눈 티파티는 빅토리안 시대 문화의 아이콘이었던 베드포드 공작부인으로부터 유래됐다. 당시 상류층 부인들이 누구나 닮고 싶어 했던 베드포드 공작부인이 즐겼던 티파티는 애프터눈 티파티라 불리며 주변의 귀부인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사진_위부터 시계방향) 스털링이 오버레이 된 레몬 접시(아르데코), 화려한 채색이 돋보이는 세브르 디너 접시(아르데코), 핑크와 그린의 조화가 아름다운 베네치안 센터피스(아르누보).
상류층 부인들은 저마다의 집에서 애프터눈 티파티를 열어 지인들과 오후를 즐기게 됐다.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서 탄생된 티파티였기에 애프터눈 티파티에는 늘 풍성한 티푸드가 함께했다. 3단 트레이가 등장했고, 제일 아랫단에는 영국 정통의 샌드위치인 오이와 달걀 샌드위치가 놓여졌다. 두 번째 칸에는 스콘과 구운 과자, 그리고 맨 위 칸에는 초콜릿 등 달콤한 디저트가 놓였다. 지금도 영국인이 즐기는 하루 다섯 번의 티타임 중에서 가장 귀족적인 티타임으로 여겨지는 애프터눈 티파티에는 때때로 샴페인이 홍차와 함께 제공되기도 한다.
여름의 절정을 거치며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이 더위가 지나고 나면 차 마시기 좋은 계절인 가을이 이어질 것이다. 태어나 처음 겪어 보는 세계적인 유행병에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빼앗긴 느낌도 들지만, 그러나 어찌하랴.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계절은 속절없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고 있다. 사회적인 교류가 줄어든 요즘 가정에서 나만의 공간과 사색을 즐기는 지혜를 권하고 싶다. 그러니 나를 위한 조그만 위로일 수 있는 잘 우려진 차 한 잔을 음미해 보자. 행복은 늘 그렇듯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기에.
앤티크 컬렉터 백정림은…
하우스 갤러리 이고의 백정림 대표는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 컬렉터로서, 품격 있고 따뜻한 홈 문화의 전도사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티크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티크 컬렉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 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고갤러리 02-6221-4988, 블로그 blog.naver.com/yigo_gallery, 인스타그램 yigo_gallery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3호(2020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