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장인(大韓匠人) 7. 전통부채 3대째, 대나무의 바람을 전하다, 부채장인 김주용

[한경 머니 = 글·사진 이헌 작가·패션 칼럼니스트·스타일리스트] 바람을 벗 삼아 자란 대나무, 그 대나무를 깎고 쪼개 만드는 바람, 부채. 풍미라곤 없는 플라스틱과 저품질의 중국산 대나무가 그 바람을 대신하지 않기를 바라는 바람으로 3대째 전남 구례에서 대나무를 키우고, 배고, 쪼개고, 삶고, 말려 전통부채를 만드는 죽호 김주용을 소개한다. 물려받은 유산과 부친이 못다 이룬 꿈을 스스로 조합해 완성해 가는 부채장인의 꿈, 그리고 대한민국 부채의 미래에 대해.

아버지의 유산인 수만 개의 대나무 조각 앞에 선 죽호 김주용
부채의 종류와 의미
필자는 진지하게 진짜를 추구하는 이에게 쉬이 매료되곤 한다. 본 칼럼 역시 그러한 진짜를 추구하는 30, 40대 대한의 젊은이들을 널리 알리고 독려하고자 시작됐는데, 이런 취향에 유독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바버샵’이라는 의류 편집매장의 대표다.
물론, 그가 하는 일이 옷과 구두를 수입하거나 만들어 판매하는 패션이란 카테고리에 국한돼 있긴 하나, 그의 관심사는 독하게 오래전 방식을 고집하거나,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해 온 것들을 향한다. 그래서 매장을 열고 제품을 소개한 지 10년이 된 지금까지 제대로 만든 물건에 애정을 갖고 제품을 제작하는 브랜드나, 공장을 찾아 소개해 온 것으로 주변엔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지난 봄 전남 구례에 부채를 주문하러 다녀왔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바 있다. 그리고는 얼마 전 그의 매장에 깔끔하고 아담한 방구부채 네 종류가 소개된 것을 보았다. 필자 역시 한국적 아름다움을 담은 것으로 휴대하기 좋은 부채를 으뜸으로 쳐 왔던 지라,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던 20년 전 대나무로 엮은 단선 하나를 챙겨 가 들고 다니면서 만나는 외국 친구들에게 아이스 브레이커로 활용하며 관심을 불러일으키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쯤 되면 부채의 종류가 궁금해질 것이다.
부채는 크게 단선(團扇)과 접선(摺扇)으로 나뉜다. 단선은 막대 같은 손잡이를 중심으로 부챗살에 다양한 재료를 붙여 만든 둥근 형태의 부채를 말하는데 원선(圓扇)이라고도 하고 우리말로 방구부채라고도 한다. 접선은 접는 부채를 일컫는 것으로 접첩선(摺疊扇)이라고도 한다. 흔히 합죽선(合竹扇)이라고 불리는 부채가 대표적인 접선이다. 그 후로도 기회만 되면 과하게 멋을 부리지 않고 심심하게 만든 방구부채를 해외의 친구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실제로 잘 만든 방구부채는 단아하면서도 견고해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몇 해 더위도 식히고 어른들 앞에선 하품도 가려 주며, 민망한 세상사에서 눈도 가리고 마음도 보호하는 좋은 동무가 돼 준다. 최근에는 한동안 애지중지 하던 것을 어린 딸아이가 망가뜨려 쓰던 것을 대신할 똘똘한 물건을 찾고 있었는데, 우연히 바버샵에서 임자를 만난 것이다. 그곳의 황재환 대표를 통해 좀 더 자세히 부채의 종류이며, 바버샵을 위한 부채의 기획 과정을 전해 들었고, 그 부채를 만든 대한민국의 마지막이 될 부채장인을 만나서 부채 만들기와 그의 포부에 대해 들어보기로 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대숲에 선 김주용
전남 구례에서 3대째 이어진 부채장인
죽호 김주용은 3대째 전남 구례에서 부채를 만드는 부채장인이다. 후에 더 상세히 소개하겠지만, 부채장인이라 알려진 이들은 대부분 부챗살을 공급받아 부채 자체를 만드는 이들이 대부분이며, 그나마 대를 잇는 후손들이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실제 대나무 숲을 관리하면서 대나무를 키우고, 고르고, 자르고, 삶고, 말리고, 쪼개 부챗살을 만들고, 그 부챗살로 직접 부채를 만들 수 있는 젊은 인재로서는 김주용이 유일하다고 하겠다.
공대를 졸업한 그가 부채장인으로 스스로를 다짐하고 자리매김하기까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우선 그의 가족사를 들어 보는 것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대한민국 부채의 역사와 현실을 돌아보는 길이 되겠다.
사실상 부채가 무더위를 식히는 유일한 수단이며,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부채의 재료가 대나무 말고는 없던 시절엔 전국의 부채쟁이들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전남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충남을 가로지르다 경기와 충북의 경계를 이루며 치악산을 거쳐 강릉에 이르는 차령산맥을 북방한계선으로 자라는 대나무는 예로부터 담양이나 구례의 것을 최고로 쳤기 때문이다.
열대지방에서는 어른 아름드리만큼도 자라는 왕대나무는 고온 다습한 지역에서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성장하는 무른 나무지만, 사실상 대나무가 자랄 수 있는 극한의 상황인 대한민국의 남쪽 산기슭에서 자란 대나무들은 물을 과하게 머금지 않고 추위를 견디며 자라 옹골차고 탄성이 좋아 부채를 만들기에 최고의 재료다. 그런 이유로 구례로 모여들던 부채쟁이들은 겨우내 동내 산자락에 자생하던 대나무를 짊어지고 고향으로 돌아와 한 해 가족을 먹여 살릴 부채를 만들곤 했다. 그런 부챗살을 만들 대나무를 구하러 구례를 찾은 부채쟁이들에게 작업할 공간을 내주어 작업이 이어지는 동안 쉬며 작업할 장소를 제공하는 일로 부채와 연을 맺은 이가 김주용의 조부였다.
부채쟁이들과 부대끼며 부챗살 만드는 일에 익숙해진 그는 산업화와 분업화의 경향과 함께 겨울마다 옮겨 다니기가 버거워진 전국의 부채쟁이들의 요청으로 부챗살 만드는 일을 대신해 부챗살을 공급하는 ‘살집’을 열게 된다. 값싼 중국산 대나무 살을 인해전술처럼 쏟아내기 전, 그리고 탄성과 굵기를 조절하기가 수월한 저렴한 플라스틱 부채가 보편화되기 전까지 그의 집은 구례의 50여 명, 많게는 7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중요한 부챗살 공급원이었다.
그러나 저급한 중국산과 플라스틱 부채가 기승을 부리면서 하나둘 부챗살을 찾는 이들도, 부채를 만드는 이들도 줄어들면서 부채 산업과 생계 걱정으로 고심에 빠진 김주용의 부친은 스트레스로 병을 얻게 된다. 누워 있는 아버지를 어찌 모른척하겠는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 딱 1년만 아버지를 돕자고 고향으로 향한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까지 구례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1 죽호바람 입구의 대형 캘리그라피 2 아버지의 염원이 담긴 수만 개의 대나무 조각 3 마무리 작업에 사용되는 한지 4 기계로 초벌작업을 하고 수작업으로 마무리하는 부채 손잡이 5 손잡이 작업을 기다리는 부채들
6 건조장에서 건조 중인 부채들 7 부채의 크기가 커지면 마디가 긴 대나무를 사용해야 한다. 살을 길이와 대나무의 품질을 확인하는 김주용 8 살을 발라 완성해 둔 부채들. 색을 입힌 한지를 바르는 도배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9 일일이 열을 가해 살의 형태를 잡는 곡두선의 살 놓는 모습
합죽선과 대한민국 부채의 가치
흔히 전통문화와 관련된 공예품 하면 무형문화재라는 제도를 떠올리게 된다. 이는 국가에서 지정하는 중요무형문화재와 시도에서 지정하는 일반 무형문화재로 나뉜다. 무형문화제는 ‘문화재 보호법’에 의거해 보존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기능 및 예능에 대해 지정되는 것으로 사실상 형태가 없으니 그 예능과 기능을 지닌 자연인이 대상이 된다. 하지만 무형문화재로의 지정이 자연스레 생계의 안정이나 누구나 우러를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은 아닌데, 이는 전통의 계승이라는 개념으로 후학의 양성이라는 측면의 지원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뒤를 이을 도재를 위한 지원금 정도가 문화재로 지정된 이들이 기대할 수 있는 지원의 전부다. 무형문화재에 대한 이런 박한 지원에 대한 사실과는 별도로, 상당히 놀라운 사실은 부채 제작과 관련해서는 상당히 최근인 2015년에야 중요무형문화재 선정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128호로 김동식 선자장이 지정됐는데, 우리가 전통문화를 떠올리며 합죽선이나 태극선을 쉽사리 떠올린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무척이나 뒤늦은 지정이라는 데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게다가 대표적인 접선인 전주의 합죽선은 중국의 진나라 때부터 이미 존재했고 고려시대에 부채의 선진국인 중국에서 서긍이라는 자가 “고려 사람들은 접을 수 있는 신기한 부채를 들고 다닌다”고 언급한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와 탁월한 가치를 지녔으니 부채에 관한 국가적인 차원의 관심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우리 합죽선의 가치와 유명세는 대단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인데, 그 가치는 솜씨 좋은 장인들의 기술력 덕도 있지만 원재료인 대나무의 높은 품질에도 그 공을 돌려야 한다. 공예라면 그 집요한 전통과 예의 심도 있는 대물림으로 이름 높은 이웃나라 일본조차 부채, 특히 대나무로 만든 부채에 관한 한 대한민국 전남의 차지고 탄성 좋은 왕죽으로 만든 것에 미치는 제품을 만들어 내진 못하니 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고 자랑하는 일에 우리 모두의 관심이 많이 부족했다는 반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본래 합죽선은 제작 공정이 까다로워 6개로 분리된 공방을 통해 제작됐다고 한다. 대나무를 얇게 잘라 재료를 만드는 초조방, 민어 부레를 삶아 부레풀로 살 두 개를 붙여 하나의 살로 만드는 정련방, 속살과 겉대에 인두로 문양을 새기는 낙죽방, 광을 내고 속살을 다듬는 광방, 부채에 한지를 붙이는 도배방, 금속 장식 고리인 사북을 부채에 고정하는 사북방이 그것인데, 조선시대엔 부채의 크기와 살의 수가 신분에 따라 제한되기도 했으니, 자연스럽게 신분을 드러내는 주요한 장신구였을 테고, 권력이나 신분제도가 공고했던 당시의 정황상 수요가 많았을 테니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빛을 발했을 것이다. 이렇게 고도의 발전과 분화를 보였던 합죽선의 제작은 그만큼 어렵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으니 이 모든 작업을 아우르는 전문가를 보유하는 일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10 죽호바람 3대의 염원이 담긴 합죽선. 김주용이 지난해 만족할 만한 완성품 제작에 성공했다. 11 오래된 부채는 새로운 형태의 부채의 모티프가 되기도 한다. 12 필자의 대원선을 마무리하는 김주용 13 준비된 재료로 가느다란 살을 만드는 작업 14 만들어진 살은 일일이 손으로 비벼 가시를 제거해 품질을 균일하게 한다.
15 반당대를 만들기 위해 대나무를 쪼개는 모습 16 태극선을 위한 한지 작업. 뭉그러진 그의 손에서 장인의 집념이 느껴진다. 17 건조작업 중인 김주용
죽호바람, 대한민국 부채의 미래
죽호바람의 공장 한편엔 수만 개의 반당대라 불리는 쪼개 놓은 대나무 조각들이 있다. 모두 현재 생산되고 있는 방구부채는 물론 김주용 부친의 평생 숙원 사업이었던 합죽선 제작을 위해 기본이 되는 재료들이다.
김주용의 부친은 생전에 더 가치 있고, 더 많은 관심을 받는 합죽선을 죽호바람의 이름으로 생산하길 원했다. 아무래도 무형문화재이자 기술자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쪽은 초조방에 해당하는 원료 공급자보다는 부채를 실제로 제작하는 초조방 이후의 작업자들이었을 테고,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던 방구부채보다는 왕에게 진상하거나, 사대부 같은 지체 높은 이들이 사용하던 합죽선이 더 좋은 가격에 시장에서 사랑을 받아 오던 터다.
김주용의 청년기 동안 집안 일을 거들며 아버지로부터 들은 얘기도 좀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작업이었으니 아들에게 가업을 이을 것을 강요한 바 없으나 김주용은 아버지가 줄곧 합죽선이 아버지의 오랜 염원이었던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셀 수 없이 많은 반당대를 만들어 공장 한쪽을 가득 채운 것은 생계를 이어갈 방구부채를 만들 재료를 염두에 두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자신만의 합죽선을 완성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가격 경쟁에서 의미가 없어진 중저가의 방구부채와 몇몇 무형문화재들을 위한 부채살 공급원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 직접 합죽선을 제작 생산하는 부채 제작의 온전한 시작과 끝을 염원해 왔던 것이다. 아버지의 바람을 진작부터 알고 있던 죽호 김주용은 15, 16년의 시간을 공들여 드디어 그 준비를 끝마쳤다. 얇게 대나무 껍질을 저며 살을 만들고 닥나무로 정성껏 뜬 한지를 그 사이에 두고 2개의 길이가 다른 살을 붙여 만드는 부채의 최고봉인 합죽선 제작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룬 것이다.
김주용이 부채에 마음을 붙이기 전, 아버지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땠을까. 부채 제작에 안성맞춤인 대숲을 낀 토지를 구매하고, 대금을 치르지 못하고 쓰러져 가는 부채 제작업체들로부터 대금 대신 부채 제작 기계를 받아 오는 매몰차지 못한 아버지를 보며 어머니와 함께 한숨을 내쉬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그 한숨은 대한민국 부채의 미래를 고민한 긴 숨으로 이어졌다.
아버지가 물려준 대숲에서 잘 자란 대나무 바라보는 모습에, 그리고 아버지가 남겨준 수만 개의 반당대 앞에선 그로부터 확신에 찬 미소를 보았다. 구례에 뿌리를 내리고 대나무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삼대는 대나무로 가족을 일구고, 이제는 대나무에서 이는 바람으로 세상에 잔잔한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지금 장맛비 속에, 시원한 대 바람이 불던 구례를 추억하며 죽호가 만든 큼직한 방구부채를 흔들고 있다. 내년엔 크고 튼튼한 죽호의 합죽선이 내 손에 쥐여 있으란 기대감으로 여덟 번째 대한장인을 갈음한다.
도움말 바버샵 황재환 대표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3호(2020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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