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ㅣ참고 도서 <여행하는 인간>] 김 부장은 우울하다. 원래대로라면 일주일 뒤 스페인행 비행기에 올랐을 거였다. 이날만 기다리며 견뎌 왔는데…. 여행이 막혔다. 그의 해방구도 사라졌다. 그는 여전히 여행이 다시 시작될 날을 기다린다.
‘낙(樂)’이 없어졌다. 일정을 짜며 몇날며칠 고민하던 재미도, 구글에서 맛집을 검색하던 재미도, 침대 위 머리맡 세계지도에 여행지에서 사온 마그넷을 붙이는 재미까지도. 하루아침에 모든 게 사라졌다. 여행자의 일상이 무너진 것이다.
현대인에게 여행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전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꼽는 ‘버킷 리스트’일 만큼 우리는 저마다 여행에 대한 열망과 필요를 내재하고 있다.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2019년 국가 간 이동하는 전 세계 관광객 수(도착 기준)는 14억6100만 명에 달했다. 중복을 포함한 규모이나, 단순 셈하면 전 세계 인구 5명 중 1명이 해외여행을 다녔다는 얘기다. 지난 2009년 8억9200만 명에서 10년간 64%가량 늘었다. 20년 전인 1999년 6억3300만 명과 비교하면 20년간 2.5배 늘어난 수준이다. 그야말로 여행이 일상이 된 시대다.
우리는 늘 여행을 그리워하고, 여행 중에는 끝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다음을 기약한다. 우리는 왜 이토록 여행에 빠져든 것일까.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 12가지
정신과의사이자 여행전도사로 알려진 문요한 씨는 그의 책 <여행하는 인간>에서 여행이 필요한 이유를 새로움, 휴식, 자유, 취향, 치유, 도전, 연결, 행복, 유연함, 각성, 노스탤지어, 전환이라는 12개의 키워드로 제시한다. 그는 현대인에게 여행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자, 동반자이며 치유자라고 힘주어 말한다. 다음은 그가 전하는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다.
새로움으로의 여행 2007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400명 가운데 75%가 업무와 관련해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답했다. 매너리즘은 권태를 부르며 삶을 정체시킨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함을 알려주는 신호인 셈이다. 이때 자극은 노력 없이 주어지는 편한 자극이 아니라 적절한 노력과 스트레스를 동반한 건강한 자극이어야 한다. 외부 환경의 변화와 새로운 경험은 우리의 뇌를 깨우고 삶에 새로움을 불어넣는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매너리즘에 대한 좋은 처방이다.
휴식으로의 여행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지금 당장 생존의 위협을 가하지는 않지만 끝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계속해서 고무줄을 잡아당기고 있는 상황과도 같다. 고무줄은 결국, 탄성을 잃고 축 늘어질 것이다. 우리는 탄성을 잃어버리기 직전에서야 겨우 휴식을 갖는다. 대표적인 것이 여행이다. 여행은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고 주도적으로 시간을 쓰는 방법을 익힐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자유로의 여행 정신질환 중에 ‘캐빈 피버’라는 용어가 있다. 폐쇄된 곳이나 좁은 공간에 장기간 체류할 때 생기는 답답함, 불안, 짜증 등의 정서적인 불안정감을 뜻한다. 많은 도시인이 캐빈 피버를 앓고 있고, 벗어나기를 원한다. 과감히 농촌이나 산속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사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도시인은 미봉책을 택한다. 바로 여행이다. 우리가 늘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는 비좁은 환경에 억지로 맞추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넓고 먼 곳을 동경하는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유다.
취향으로의 여행 우리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만난다. 하지만 더 중요한 만남은, 내 안에 감추어진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이다.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야외 오페라 공연을 보고 오페라의 세계에 눈을 뜨거나, 와이너리 투어 후에 와인에 깊이 빠져들거나, 해변에서 승마 투어를 한 뒤 승마에 심취할 수도 있다.
치유로의 여행 우리가 희망을 갖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망각할 수 있어서다. 여행 중에는 나쁜 일을 빨리 잊어버릴 수 있다. 여행은 공간의 이동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치유의 힘이 있다. 안 좋은 일이 벌어진 특정 공간이나 갈등 관계에 있는 어떤 사람 곁을 떠나는 것 자체가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게 할뿐더러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공간의 변화는 망각의 시간을 단축시킨다.
도전으로의 여행 우리 모두는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 이를 넘어서려고 하는 본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오직 한계 밖으로 나가는 경험을 통해서만 자신에게 감춰진 더 큰 힘을 찾아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가장 큰 기쁨을 누리도록 설계돼 있다. 여행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그래서다. 여행은 도전이며 건강한 스트레스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기쁨은 순수한 즐거움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즐거움이 버무려진 ‘칵테일 감정’임을 깨닫는다.
연결로의 여행 여행은 우리의 마음을 열고 관계에 깊이를 더해 주는 시간이다. 굳이 잘 보일 필요도 없고, 무언가를 꾸미거나 감출 필요도 없다. 어떤 경우에는 성별, 나이, 문화, 언어의 차이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구분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을 회복한다.
행복으로의 여행 여행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순화시키고 감각을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더 생생하게 느끼거나 듣게 되고, 더 뚜렷하게 바라보고, 더 주의 깊게 맛보거나 만져 보게 된다. 여행지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깨어난다. ‘깨어 있는 몸’, 그것이야말로 모든 것과 교감할 준비가 돼 있는 여행자의 몸이다.
유연함으로의 여행 확실성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여행은 재미없고 좁아지고 닫히게 된다. 그러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순간, 여행은 보다 즐겁고 넓어지고 열리게 된다. 여행은 불확실성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가려는 우리에게 불확실성과 친구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각성으로의 여행 여행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시야가 달라지고, 사색의 시간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여행을 할 때는 잡념이 줄어들고 우리의 생각이 한곳에 보다 깊이 머무를 수 있다. 생각이 깊어지기에 자기와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는 일상에서 쉽게 갖지 못했던 시간이다. 외부의 자극에 휘둘리며 자기를 잊고 살아오다가 여행을 통해 비로소 자기와 마주하는 것이다.
노스탤지어로의 여행 삶의 강렬한 경험은 시간의 흐름을 붙잡는 힘이 있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직후 우리의 시점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적 현재’가 된다. 여행이 끝났음에도 그 당시의 장면, 생각, 느낌, 감각 등이 되살아난다. 지난 아름다운 시간을 음미하는 기쁨이다. 행복이 또 행복을 낳는 행복의 보너스다. 그렇기에 여행은 불멸의 기억이 된다.
전환으로의 여행 어떤 여행은 삶에 잠시 활력을 주지만 어떤 여행은 인생 전체를 바꿔놓기도 한다. 삶은 전환의 연속이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번의 전환을 맞이한다. 여행은 능동적 전환의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여행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여행을 통해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여행에서 ‘메타노이아’,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마음의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누군가는 여행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행자들은 여행에는 대체제가 없다고 단언한다. 여행은 ‘현대인에게 가장 위대한 스승이자, 동반자이며 치유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여행을 꿈꾸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2호(2020년 07월) 기사입니다.]
‘낙(樂)’이 없어졌다. 일정을 짜며 몇날며칠 고민하던 재미도, 구글에서 맛집을 검색하던 재미도, 침대 위 머리맡 세계지도에 여행지에서 사온 마그넷을 붙이는 재미까지도. 하루아침에 모든 게 사라졌다. 여행자의 일상이 무너진 것이다.
현대인에게 여행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전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꼽는 ‘버킷 리스트’일 만큼 우리는 저마다 여행에 대한 열망과 필요를 내재하고 있다.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2019년 국가 간 이동하는 전 세계 관광객 수(도착 기준)는 14억6100만 명에 달했다. 중복을 포함한 규모이나, 단순 셈하면 전 세계 인구 5명 중 1명이 해외여행을 다녔다는 얘기다. 지난 2009년 8억9200만 명에서 10년간 64%가량 늘었다. 20년 전인 1999년 6억3300만 명과 비교하면 20년간 2.5배 늘어난 수준이다. 그야말로 여행이 일상이 된 시대다.
우리는 늘 여행을 그리워하고, 여행 중에는 끝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다음을 기약한다. 우리는 왜 이토록 여행에 빠져든 것일까.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 12가지
정신과의사이자 여행전도사로 알려진 문요한 씨는 그의 책 <여행하는 인간>에서 여행이 필요한 이유를 새로움, 휴식, 자유, 취향, 치유, 도전, 연결, 행복, 유연함, 각성, 노스탤지어, 전환이라는 12개의 키워드로 제시한다. 그는 현대인에게 여행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자, 동반자이며 치유자라고 힘주어 말한다. 다음은 그가 전하는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다.
새로움으로의 여행 2007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400명 가운데 75%가 업무와 관련해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답했다. 매너리즘은 권태를 부르며 삶을 정체시킨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함을 알려주는 신호인 셈이다. 이때 자극은 노력 없이 주어지는 편한 자극이 아니라 적절한 노력과 스트레스를 동반한 건강한 자극이어야 한다. 외부 환경의 변화와 새로운 경험은 우리의 뇌를 깨우고 삶에 새로움을 불어넣는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매너리즘에 대한 좋은 처방이다.
휴식으로의 여행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지금 당장 생존의 위협을 가하지는 않지만 끝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계속해서 고무줄을 잡아당기고 있는 상황과도 같다. 고무줄은 결국, 탄성을 잃고 축 늘어질 것이다. 우리는 탄성을 잃어버리기 직전에서야 겨우 휴식을 갖는다. 대표적인 것이 여행이다. 여행은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고 주도적으로 시간을 쓰는 방법을 익힐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자유로의 여행 정신질환 중에 ‘캐빈 피버’라는 용어가 있다. 폐쇄된 곳이나 좁은 공간에 장기간 체류할 때 생기는 답답함, 불안, 짜증 등의 정서적인 불안정감을 뜻한다. 많은 도시인이 캐빈 피버를 앓고 있고, 벗어나기를 원한다. 과감히 농촌이나 산속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사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도시인은 미봉책을 택한다. 바로 여행이다. 우리가 늘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는 비좁은 환경에 억지로 맞추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넓고 먼 곳을 동경하는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유다.
취향으로의 여행 우리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만난다. 하지만 더 중요한 만남은, 내 안에 감추어진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이다.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야외 오페라 공연을 보고 오페라의 세계에 눈을 뜨거나, 와이너리 투어 후에 와인에 깊이 빠져들거나, 해변에서 승마 투어를 한 뒤 승마에 심취할 수도 있다.
치유로의 여행 우리가 희망을 갖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망각할 수 있어서다. 여행 중에는 나쁜 일을 빨리 잊어버릴 수 있다. 여행은 공간의 이동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치유의 힘이 있다. 안 좋은 일이 벌어진 특정 공간이나 갈등 관계에 있는 어떤 사람 곁을 떠나는 것 자체가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게 할뿐더러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공간의 변화는 망각의 시간을 단축시킨다.
도전으로의 여행 우리 모두는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 이를 넘어서려고 하는 본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오직 한계 밖으로 나가는 경험을 통해서만 자신에게 감춰진 더 큰 힘을 찾아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가장 큰 기쁨을 누리도록 설계돼 있다. 여행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그래서다. 여행은 도전이며 건강한 스트레스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기쁨은 순수한 즐거움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즐거움이 버무려진 ‘칵테일 감정’임을 깨닫는다.
연결로의 여행 여행은 우리의 마음을 열고 관계에 깊이를 더해 주는 시간이다. 굳이 잘 보일 필요도 없고, 무언가를 꾸미거나 감출 필요도 없다. 어떤 경우에는 성별, 나이, 문화, 언어의 차이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구분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을 회복한다.
행복으로의 여행 여행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순화시키고 감각을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더 생생하게 느끼거나 듣게 되고, 더 뚜렷하게 바라보고, 더 주의 깊게 맛보거나 만져 보게 된다. 여행지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깨어난다. ‘깨어 있는 몸’, 그것이야말로 모든 것과 교감할 준비가 돼 있는 여행자의 몸이다.
유연함으로의 여행 확실성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여행은 재미없고 좁아지고 닫히게 된다. 그러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순간, 여행은 보다 즐겁고 넓어지고 열리게 된다. 여행은 불확실성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가려는 우리에게 불확실성과 친구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각성으로의 여행 여행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시야가 달라지고, 사색의 시간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여행을 할 때는 잡념이 줄어들고 우리의 생각이 한곳에 보다 깊이 머무를 수 있다. 생각이 깊어지기에 자기와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는 일상에서 쉽게 갖지 못했던 시간이다. 외부의 자극에 휘둘리며 자기를 잊고 살아오다가 여행을 통해 비로소 자기와 마주하는 것이다.
노스탤지어로의 여행 삶의 강렬한 경험은 시간의 흐름을 붙잡는 힘이 있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직후 우리의 시점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적 현재’가 된다. 여행이 끝났음에도 그 당시의 장면, 생각, 느낌, 감각 등이 되살아난다. 지난 아름다운 시간을 음미하는 기쁨이다. 행복이 또 행복을 낳는 행복의 보너스다. 그렇기에 여행은 불멸의 기억이 된다.
전환으로의 여행 어떤 여행은 삶에 잠시 활력을 주지만 어떤 여행은 인생 전체를 바꿔놓기도 한다. 삶은 전환의 연속이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번의 전환을 맞이한다. 여행은 능동적 전환의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여행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여행을 통해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여행에서 ‘메타노이아’,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마음의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누군가는 여행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행자들은 여행에는 대체제가 없다고 단언한다. 여행은 ‘현대인에게 가장 위대한 스승이자, 동반자이며 치유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여행을 꿈꾸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2호(2020년 0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