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한경 머니 = 윤서윤 독서활동가] 1986년생 장류진 작가가 지은 <일의 기쁨과 슬픔>의 제목은 프랑스 소설가인 알랭 드 보통의 동명 에세이에서 차용했다. 알랭 드 보통이 사람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썼다면, 장류진은 동시대의 2030대 회사원을 통해 돈을 쓰는 ‘기쁨과 슬픔’을 몹시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같은 또래의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이유다.자본주의 세상은 주고받음이 명확하다. 너무 명확해서 가끔은 실체 없는 존재에 화가 나기도 한다. 돈이란 어떤 형태로는 사람을 비루하게 만들며, 세상에 속해 있는 나는 적응할 수밖에 없다. ‘갑’이라는 위치보다 ‘을’, ’병’ 심하면 ‘정’에 속해 있는 위치 때문에 겪는 부당함은 언제나 감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적응하기 마련이다. 일개 소시민이 무엇을 할 수 있으랴. 그저 갑질로 포장되는 상황이 놓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문장을 아로새기며, 나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친다.
단편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은 20대 여성 직장인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등장인물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보기도,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라는 문장을 덕담으로 삼기도 하며, 현재의 직장인의 모습에 반가움을 표현한다. 표제작이자 첫 소설이 출판사 홈페이지에 업로드 됐을 당시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독자들이 기다리기도 했다. 이미 입소문이 난 소설은 판교 테크노밸리 스타트업 종사자들의 필독서로 불렸다. 스크럼, 애자일, 영어 이름 등 어설프게 실리콘밸리를 따라 하는 현실이 웃프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에 굴욕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견뎌 내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단숨에 읽게 하는 힘을 느낀다.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은 프랑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의 동명 에세이에서 차용했다. 프랑스 작가는 다양한 직업을 통해서 우리가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면, 1986년생 장류진 작가는 젊은 회사원을 통해서 돈을 쓰는 기쁨과 애환을 보여 준다. 월급을 카드포인트로 받아야 한다는 거북이 알은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을 멈추고 현실에 적응을 한다. 그런 거북이 알을 보면서 급여 날에 맞춰 여행 계획을 세우고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는 기쁨. 직장인들이라면 한 번쯤은 느껴 봤을 것이다.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의 설렘을 잊지 못한다. 가장 기뻤던 것은 내가 번 돈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 입사 전에는 이렇게 계산도 해 봤다. 이제 세후 201만원, 월세 50, 관리비 7, 공과금 10, 인터넷 1, 핸드폰 요금이랑 할부금 7, 남친은 없지만 혹시 모르나 언젠가를 대비한 결혼자금용 적금 55(…) 이렇게 쓰고 나면 남는 게 35. 앞으로는 교통비 포함 하루 만천원씩 쓰는 게 목표였다.” (159쪽)
한 달 용돈이 30만 원도 채 되지 않았을 시절. 아끼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테이크아웃 2000원이라는 말에 주문한 아메리카노는 얼음을 추가했다는 이유로 4500원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을 자주 겪는다. 4500원을 지출하고 나면 점심 값은 7000원 아니, 교통비를 제외한 5000원으로 점심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주문했어도 그냥 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첫 출근’이니까 혹은 기분이 안 좋으니까라며 커피를 마셔야 하는 이유를 찾곤 한다.
계산대로 삶이 진행되지 않는 건 음식점뿐만이 아니다. 학창시절 ‘진로’에 맞춰 꿈을 찾고, 설계한 대로 시간을 채웠지만,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될까? <잘 살겠습니다>의 화자도 마찬가지다.
“나는 왜 이년 동안 거기에 있었을까. 이력서에 빼곡했던 내 모든 경력이 전략기획팀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내가 일을 못해서 그랬나. 그런데 시켜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까. 무엇보다 지금은 같은 부서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연봉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나야 할까. 구재가 일을 잘해서? 대체 얼마나 잘 하길래? 딱 천삼십만원어치만큼?” (27쪽)
입사 후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서 원하는 팀으로 전출됐지만, 기분이 좋을 수만은 없다. 호기롭게 ‘빛나 언니한테 가르쳐 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원을 내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원을 내면 만이천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29쪽)라고 말은 하지만, 그녀와 화자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을 뿐이다. 성에 따라서 연봉이 다르다는 말은 들었지만,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을 알게 되며 어떨까. 거북이 알처럼 급여를 포인트로 받는 상황만큼 견디기 힘들까.
직장 밖에서 2030대의 삶
여자라면 한 번쯤 겪어 봤고, 겪지 않아도 불안한 건 새벽의 남자들일 것이다. <새벽의 방문자들>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사 간 화자에게 새벽에 성매매를 하려는 남자들이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문을 사이에 두고, 열리지 않는 문을 바라보는 남자들과 절대 열기 어려운 문 틈 사이로 공포가 형성된다. 새벽에 초인종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잠금장치를 늘리는 등 나름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새벽 초인종 소리. 급기야 화자는 초인종을 누른 시간과 인상착의를 메모하고, 모니터 속 사람을 사진 찍어 프린트를 한다. 평범한 남성들이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표정은 비슷했다.
“별일 아니라고 주문을 거는 듯한 태연함, 남에게 들키기 싫은 일을 할 때의 부끄러움, 돌연 술이 확 깨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의 주저함. 그러면서도 어쨌든 곧 벌어지게 될 눈먼 섹스에 대한 설렘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얼굴.”(183쪽)
그들이 초인종을 누를 때면, 초인종 소리마저 경박스럽게 들린다고 한다. 여성은 댓글 모니터링으로 게시물 규정에 어긋나는 댓글을 찾아내거나 신고 된 댓글을 직접 확인하고 블라인드 처리를 한다. 하는 업무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할 만큼 규제를 할수록 사람들은 단어를 교묘하게 속여 올린다고 했다. 성매매를 하기 위해 방문한 새벽의 남자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화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상황을 피하는 것. 여성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에 대한 표현일 수도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학창시절 꿈꿨던 낭만이 아닐까. <탐페레 공항> 속 핀란드에서 만난 노인은 ‘사랑에 빠졌다’라고 표현한다. 주인공은 나름 고심해서 결정한 학원과 어학연수가 나에게는 특별했지만 남들도 한 번씩 경험했던 유행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라고 쓰지만 나는 오래 걸렸다. 어학연수를 다녀온 건 아니지만, 내 스펙이 남들과 비슷하거나 더 나쁘다는 걸 깨닫는 건 최근 다시 이력서를 쓰면서였다.) 나는 이력서를 쓸 때마다 작아지는 내 자신을 포장하기 바빴다. 회사들은 필요한 스펙 외에 요구하는 게 많았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PD가 되기 위한 프로그램 다루는 능력과 일정 수준의 어학 점수, 회사에서 진행하는 배경 지식과 더불어 인성이었다.
수많은 회사 중에 나 하나 들어갈 곳 없겠어’라는 약간의 자만을 섞어 수많은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연락이 온 곳은 없었다. 그때마다 약간의 픽션을 가미해 이력서를 다시 썼다. 인사 담당자의 눈에 띄기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력서를 제출해야 할 때마다 마주해야 했던 건 인사 담당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안다는 것, 현실을 직면하는 용기가 여전히 부족하다. 화자도 나와 같을까. 6년 전 만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낭만을 지키는 청년이 있다. <다소 낮음>의 장우다. 장우는 무명의 아티스트로 여자친구 덕분에 스타가 됐다. 그는 명예나 돈보다 생명을 중요하게 여긴다. 정글 같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순수 청년이다. 유튜브 덕분에 기획사 사장이 찾아와 2집 앨범을 내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시간이 촉박하다며 거절한다. 그럼에도 장우가 계속 확인하는 건 ‘조회수 1,013,574 | 좋아요 11만 | 싫어요 651’(115쪽)이다. 며칠째 숫자가 변하지 않아도 늘 조회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는 사람이라면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신경 쓰이는 게 조회 숫자들이다. 조회수나 통장의 숫자가 나를 대변해 주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헷갈리게 한다. 에너지효율 4등급. ‘다소 낮음’은 장우를 대변해 주는 단어일까. 길고양이를 집에 데려오고,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에게 전 재산을 내어 줄 정도로 따뜻함이 묻어난 장우에게 ‘다소 낮음’이라는 표현이 안타깝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나는 이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단편집 첫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잘 살겠습니다>는 작가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자 2030세대에게 하고 싶은 문장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장우 같은 무명이면서도 ‘전문가’라는 표현이 조금 모자란 위치에 있을 수 있다. 이들이 채워야 할 것은 사라지지 않는 과거와 마주해 빈 종이를 채우는 것. 때로는 잊어버린 과거라고 하더라도 현재에 충실한 그들을 응원한다. 이는 작가도 마찬가지일 것. 장류진의 최근 작품 <연수>에서는
“잘 하고 있어”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들이 10년 후에도 잘 살고 있다는 후속편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함께 즐길 콘텐츠 추천박상영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2020년) 기승전-‘실패’다. 매일 야식을 먹지 않겠다며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삭제하고 다시 다운로드 하기를 수차례. 생활 유머로 페이지를 넘기기가 아쉬울 정도다. 매일을 무언가 결심한다는 건 실패하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실패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코엔 형제 <인사이드 르윈> (2014년) 무일푼의 뮤지션이 살아가는 로드 무비. 비틀린 인생과 음악이 아름다움을 선사할 수 있다.
데이미언 셔젤 <라라랜드> (2016년)너무 유명해서 많은 문장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별을 좇는 두 주인공의 인생은 재즈와 같음을 보여 주는 영화. 자동차 클랙슨마저 음악처럼 들리는 건 영화의 힘만은 아닐 것.
윤서윤 독서활동가는…
회사를 다니다 독서토론 매력에 빠져 현재 독서활동가로 활동 중이다. 서울, 경기 등 가리지 않고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만나며 각자 느낀 책과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눈다. <이젠, 함께 쓰기다> 공저자로 참여했으며, 격주간지 <기획회의>의 ‘책이 바꾼 삶’에 참여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1호(2020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