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 ] 보험은 잘만 활용하면 고단한 삶을 헤쳐 나가는 데 훌륭한 무기가 된다. 자신이 가진 무기가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이 가입한 보험이 무엇을 보장해 주는지 알아야 질병과 사고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보험이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지 살펴보자.
가입할까, 말까. 보험 가입을 앞두고 한번은 갈등해 봤을 것이다. 보험을 승률이 떨어지는 게임이라고 기피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게 보험의 속성이다. 당첨 확률이 매우 높은 복권은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살 수 있다. 아니라면 당첨금이 형편없을 것이다. 보험도 마찬가지다. 보험은 내가 짊어진 위험을 상대에게 이전하는 수단이다. 이때 위험을 이전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 보험료다. 당연히 위험이 발생할 확률이 높으면 보험료가 비쌀 수밖에 없다. 아니면 보험금이 적거나.
그래서 보험은 발생할 확률은 낮고 손실 규모는 큰 위험을 상대에게 이전하는 도구로 많이 사용된다.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한번 발생하면 가계를 파산으로 이끄는 위험에서 우리를 지켜 준다.
확률과 기대값을 구분하고 있는가?
보험 계약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보험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진 사람도 많다. 자신에게 좀처럼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비하려고 비싼 보험료를 낸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마치 당첨 가능성이 희박한 복권을 샀을 때처럼. 사람들이 이 같은 생각을 하는 까닭은 확률과 기대값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 사례는 마이클 모부신이 쓴 <운과 실력의 성공 방정식>에 나온 내용을 일부 변형한 것이다.
지금 당신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에 있다. 1000번을 투자했을 때 999번은 이기고 1번만 지는 게임이 있다면 베팅에 참여하겠는가. 물어보나 마나 대답은 뻔하다. 승률이 99.9%나 되는 게임을 마다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설명을 들어 보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이번에는 승패에 따른 손익을 따져 볼 차례다. 게임에서 이기면 1달러를 받지만, 지면 1만 달러를 내야 한다. 그래도 게임에 참여하겠는가. 이번에는 “그렇다”고 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게임을 반복하면 게임당 평균 -9달러가 넘는 손실을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률만 보고 게임에 참여하겠다던 사람도, 기대값을 계산해 보고 망설이지 않을까. 이번에는 승률이 반대인 게임을 살펴보자. 게임을 하면 1000번에 1번은 이기고, 나머지 999번은 지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에 참여하겠는가. 패할 확률이 99.9%나 되는 게임에 “참여하겠다”고 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 거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승패에 따른 손익을 알고 나면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이 게임에서 이겼을 때는 1만 달러를 받지만, 졌을 때는 1달러만 내면 된다. 그렇다면 게임을 반복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게임당 9달러가 넘는다. 이쯤 되면 구미가 당기는가.따라서 도박을 할 때는 승률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기대값을 따져 봐야 한다. 이는 보험 계약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보험료가 게임에 참여할 때 내는 판돈이라면, 보험금이 승리할 때 받는 수당이라고 할 수 있다. 보험금은 질병이나 사고를 당해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는 거액의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 따라서 보험금을 받을 확률이 아니라 기대값을 봐야 한다.
심지어 보장성 보험에 가입할지 여부를 결정할 때 승률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질병이나 사고는 젊어서 보다 나이가 들었을 때 많이 발생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먼 미래에 일어날 일보다는 지금 당장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중심으로 판단한다. 보험료가 게임에 참여할 때 내는 판돈이고 보험금이 승리할 때 받는 수당이라고 치면, 젊어서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은 매달 판돈을 내고 게임에 참여해 판판이 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게임에 기꺼이 참여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치명적 위험에 대비할 풋옵션은 사 뒀나
당장 발생할 가능성이 적은 질병이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주식투자자가 외가격 풋옵션을 하나 사 두는 것과 유사하다. 풋옵션이란 특정 자산을 장래 정해진 시점에 사전에 정해 둔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 권리를 행사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주당 1000원인 주식을 3개월 뒤 900원에 팔 수 있는 풋옵션을 매수했다고 치자. 3개월 뒤 옵션 만기가 도래했을 때 주가가 여전히 1000원을 유지하고 있다면 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 1000원짜리 주식을 900원에 팔 이유는 없다. 하지만 3개월 뒤 주가가 800원으로 떨어지면 풋옵션을 행사할 것이다. 풋옵션을 행사하면 800원짜리 주식을 900원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현물 주식에서 200원을 손해 봤지만 풋옵션을 행사하면 100원을 만회할 수 있다.
옵션 매수자가 만기가 도래했을 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가격을 ‘행사가격’이라고 한다. 옵션을 매수하는 자가 매도자에게 지불하는 비용을 ‘프리미엄’이라고 한다. 풋옵션 매수자는 매입 당시 기초자산가격보다 행사가격이 낮을수록 프리미엄을 덜 지급한다. 기초자산가격이 1000원이라고 할 때, 행사가격 900원인 풋옵션보다 800원이나 700원 하는 풋옵션의 프리미엄이 적다. 주가가 거기까지 하락할 확률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이렇게 옵션행사 가격이 기초자산의 시장가격보다 한참 낮아 옵션을 즉시 행사하면 손해를 보는 옵션을 외가격 옵션이라고 한다.
기초자산가격이 크게 하락하지 않으면 외가격 풋옵션은 행사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렇게 되면 매수할 때 지불한 프리미엄을 손해 본다. 하지만 만기 때 기초자산가격이 행사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커다란 수익을 얻게 된다. 그리고 수익을 가지고 기초자산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을 보전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적은 보험료로 사망에 따른 소득 상실이나 질병 치료비를 보전할 수 있는 보험의 역할도 풋옵션과 유사하다. 당장 가장이 사망하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거나 다칠 확률이 높지 않을수록 적은 보험료를 부담하고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일종의 외가격 풋옵션을 구입하는 셈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보험가입자가 죽거나 아프거나 다칠 확률은 높아진다. 풋옵션으로 보면 기초자산가격이 행사가격에 근접하게 되는 셈인데, 이 경우 옵션 프리미엄은 크게 상승한다.
우발부채에 대응할 우발자산은 있나
젊어서는 질병이나 사고로 병원에 갈 일도 많지 않다. 그래서 다달이 보험료를 납부하느니, 그 돈을 저축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면 아프거나 다치면 저축 금액을 의료비로 사용하더라도 그런 일이 없을 때는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다.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이 말이 맞으려면 어느 정도 재산을 모을 때까지 아프거나 다쳐서는 안 된다. 모아 둔 돈이 있어야 비싼 치료비도 받고, 치료를 받는 동안 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질병이나 사고를 우리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질병이나 사고는 ‘우발부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업회계 용어로 아직 채무로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장래에 돌발 사태가 발생하면 채무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은 부채를 뜻한다. 우발부채는 재무상태표에서 부채로 인식하지는 않지만, 미래에 자원이 유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주석에 기재한다. 가계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레 가족 구성원이 아프거나 다치면, 당장 소득이 줄고 지출이 늘어난다. 아직 발생하지 않았지만, 일단 발생하면 채무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발부채에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언제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대비하려고 거액의 자금을 항상 준비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발부채는 우발자산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질병과 사고, 사망으로 갑작스레 목돈이 필요할 때, 보험금이 우발자산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우발자산으로서 보험의 효과는 아래 그림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가입 이후 언제든지 질병이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해진 보험금을 수령한다. 그리고 이 보험금으로 의료비를 충당할 수 있다. 하지만 적금에 가입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아래 그림에서 파란색 부분(A)이 의료비 마련을 위해 적금에 가입한 사람의 잔고인데, 만기가 다 돼서야 의료비를 충당할 만큼 자금이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전에 질병과 사고가 발생하면 의료비가 부족하게 된다. 따라서 적금 대신 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주황색 부분(B)에 해당하는 만큼 질병이나 사고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보장은 종신토록 유지되는가
여기까지 설명을 들으면 아직 의료비를 충당할 만한 자금을 모아 두지 못한 사람에게 보험은 좋은 무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의료비 정도는 감당할 만큼 돈을 모아 둔 사람에게도 보험은 여전히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을까. 특히 은퇴를 앞둔 50대들 중에 이 같은 질문을 많이 한다. 웬만큼 돈을 모아 둔 50대에게 질병과 사고는 우발적인 사건이지만 치명적인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은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도 그럴지는 좀 더 따져 봐야 한다. 은퇴생활 초기에 질병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치료비야 감당할 수 있겠지만 노후자금이 조기에 바닥날 수 있다. 반대로 별 탈 없이 생활하다가 은퇴 후반에 질병이나 사고를 맞을 수도 있는데, 이때는 치료비를 감당할 만큼 재산이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
부부 중 한 사람의 병치레를 감당하느라 남은 배우자의 생계가 어려워질 때도 있다. 따라서 은퇴 당시만 아니라 본인과 배우자가 사망할 때까지 의료비를 감당할 만한 재산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부담이 다른 가족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언제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대비하려고 가뜩이나 많지도 않은 은퇴자금 중 일부를 따로 떼어 두기보다는 보장성 보험을 이용하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일 수도 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사망에 가까워질수록 의료비 부담은 커지는 데 반해, 은퇴 자산(C)은 줄어든다. 심지어 남은 은퇴 자산을 가지고는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 경우 의료비 부담이 그대로 배우자나 자녀에게 전가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장성 보험에 있으면 은퇴 후반에도 의료비를 충당할 만한 여력을 갖게 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점검해야 할까
그렇다면 삶의 무기가 될 보험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우선 자기가 현재 가입하고 있는 보험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내 보험 찾아 줌’ 사이트를 이용하면 자신이 가입한 보험 종류와 보장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가입한 보험 상품을 파악했으면 보험회사에 요청해 보험증권을 재발행해 받아 두는 것이 좋다. 보험증권에는 어떨 때 보험금을 얼마만큼 받을 수 있는지 기재돼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프거나 다쳤다고 해서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보험회사는 가입자의 청구가 있어야 보험금을 지급한다. 보험금을 청구하려면 어떨 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명심하자. 보험료를 내려고 보험에 가입한 것이 아니라, 보험금을 받으려고 가입했다는 사실을.
다음 순서는 노후에 필요한 보장의 크기를 살펴야 한다. 여기서는 고령자에게 거액의 치료비와 간병비가 들어가는 암, 심혈관 질환, 치매, 치아 관련 질환을 중심으로 발병률과 치료비용 등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리고 각각의 질병 치료에 필요한 비용과 자신이 가입하고 있는 보험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금액을 비교해 보면 부족하거나 남는 보장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보험은 추가로 가입하고, 필요 없는 것은 정리한다. 새로 보험에 가입할 때는 보장 내용뿐만 아니라 보장 기간도 함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보험료 납부 기간은 언제까지고 납부할 여력은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자칫 보험금만 욕심내다가 중도에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하면, 정작 필요할 때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다. 당장 필요 없어 보인다고 보험 계약을 무작정 해지해서는 안 된다. 보험을 해지하기 전에는 잃어버리는 보장이 무엇인지 반드시 살펴야 한다. 지금 판매되는 보험에서 보장해 주지 않는 질병이나 사고를 오래된 보험에서는 보장해 주는 것이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1호(2020년 06월) 기사입니다.]
가입할까, 말까. 보험 가입을 앞두고 한번은 갈등해 봤을 것이다. 보험을 승률이 떨어지는 게임이라고 기피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게 보험의 속성이다. 당첨 확률이 매우 높은 복권은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살 수 있다. 아니라면 당첨금이 형편없을 것이다. 보험도 마찬가지다. 보험은 내가 짊어진 위험을 상대에게 이전하는 수단이다. 이때 위험을 이전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 보험료다. 당연히 위험이 발생할 확률이 높으면 보험료가 비쌀 수밖에 없다. 아니면 보험금이 적거나.
그래서 보험은 발생할 확률은 낮고 손실 규모는 큰 위험을 상대에게 이전하는 도구로 많이 사용된다.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한번 발생하면 가계를 파산으로 이끄는 위험에서 우리를 지켜 준다.
확률과 기대값을 구분하고 있는가?
보험 계약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보험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진 사람도 많다. 자신에게 좀처럼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비하려고 비싼 보험료를 낸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마치 당첨 가능성이 희박한 복권을 샀을 때처럼. 사람들이 이 같은 생각을 하는 까닭은 확률과 기대값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 사례는 마이클 모부신이 쓴 <운과 실력의 성공 방정식>에 나온 내용을 일부 변형한 것이다.
지금 당신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에 있다. 1000번을 투자했을 때 999번은 이기고 1번만 지는 게임이 있다면 베팅에 참여하겠는가. 물어보나 마나 대답은 뻔하다. 승률이 99.9%나 되는 게임을 마다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설명을 들어 보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이번에는 승패에 따른 손익을 따져 볼 차례다. 게임에서 이기면 1달러를 받지만, 지면 1만 달러를 내야 한다. 그래도 게임에 참여하겠는가. 이번에는 “그렇다”고 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게임을 반복하면 게임당 평균 -9달러가 넘는 손실을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률만 보고 게임에 참여하겠다던 사람도, 기대값을 계산해 보고 망설이지 않을까. 이번에는 승률이 반대인 게임을 살펴보자. 게임을 하면 1000번에 1번은 이기고, 나머지 999번은 지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에 참여하겠는가. 패할 확률이 99.9%나 되는 게임에 “참여하겠다”고 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 거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승패에 따른 손익을 알고 나면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이 게임에서 이겼을 때는 1만 달러를 받지만, 졌을 때는 1달러만 내면 된다. 그렇다면 게임을 반복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게임당 9달러가 넘는다. 이쯤 되면 구미가 당기는가.따라서 도박을 할 때는 승률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기대값을 따져 봐야 한다. 이는 보험 계약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보험료가 게임에 참여할 때 내는 판돈이라면, 보험금이 승리할 때 받는 수당이라고 할 수 있다. 보험금은 질병이나 사고를 당해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는 거액의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 따라서 보험금을 받을 확률이 아니라 기대값을 봐야 한다.
심지어 보장성 보험에 가입할지 여부를 결정할 때 승률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질병이나 사고는 젊어서 보다 나이가 들었을 때 많이 발생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먼 미래에 일어날 일보다는 지금 당장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중심으로 판단한다. 보험료가 게임에 참여할 때 내는 판돈이고 보험금이 승리할 때 받는 수당이라고 치면, 젊어서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은 매달 판돈을 내고 게임에 참여해 판판이 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게임에 기꺼이 참여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치명적 위험에 대비할 풋옵션은 사 뒀나
당장 발생할 가능성이 적은 질병이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주식투자자가 외가격 풋옵션을 하나 사 두는 것과 유사하다. 풋옵션이란 특정 자산을 장래 정해진 시점에 사전에 정해 둔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 권리를 행사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주당 1000원인 주식을 3개월 뒤 900원에 팔 수 있는 풋옵션을 매수했다고 치자. 3개월 뒤 옵션 만기가 도래했을 때 주가가 여전히 1000원을 유지하고 있다면 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 1000원짜리 주식을 900원에 팔 이유는 없다. 하지만 3개월 뒤 주가가 800원으로 떨어지면 풋옵션을 행사할 것이다. 풋옵션을 행사하면 800원짜리 주식을 900원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현물 주식에서 200원을 손해 봤지만 풋옵션을 행사하면 100원을 만회할 수 있다.
옵션 매수자가 만기가 도래했을 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가격을 ‘행사가격’이라고 한다. 옵션을 매수하는 자가 매도자에게 지불하는 비용을 ‘프리미엄’이라고 한다. 풋옵션 매수자는 매입 당시 기초자산가격보다 행사가격이 낮을수록 프리미엄을 덜 지급한다. 기초자산가격이 1000원이라고 할 때, 행사가격 900원인 풋옵션보다 800원이나 700원 하는 풋옵션의 프리미엄이 적다. 주가가 거기까지 하락할 확률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이렇게 옵션행사 가격이 기초자산의 시장가격보다 한참 낮아 옵션을 즉시 행사하면 손해를 보는 옵션을 외가격 옵션이라고 한다.
기초자산가격이 크게 하락하지 않으면 외가격 풋옵션은 행사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렇게 되면 매수할 때 지불한 프리미엄을 손해 본다. 하지만 만기 때 기초자산가격이 행사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커다란 수익을 얻게 된다. 그리고 수익을 가지고 기초자산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을 보전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적은 보험료로 사망에 따른 소득 상실이나 질병 치료비를 보전할 수 있는 보험의 역할도 풋옵션과 유사하다. 당장 가장이 사망하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거나 다칠 확률이 높지 않을수록 적은 보험료를 부담하고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일종의 외가격 풋옵션을 구입하는 셈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보험가입자가 죽거나 아프거나 다칠 확률은 높아진다. 풋옵션으로 보면 기초자산가격이 행사가격에 근접하게 되는 셈인데, 이 경우 옵션 프리미엄은 크게 상승한다.
우발부채에 대응할 우발자산은 있나
젊어서는 질병이나 사고로 병원에 갈 일도 많지 않다. 그래서 다달이 보험료를 납부하느니, 그 돈을 저축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면 아프거나 다치면 저축 금액을 의료비로 사용하더라도 그런 일이 없을 때는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다.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이 말이 맞으려면 어느 정도 재산을 모을 때까지 아프거나 다쳐서는 안 된다. 모아 둔 돈이 있어야 비싼 치료비도 받고, 치료를 받는 동안 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질병이나 사고를 우리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질병이나 사고는 ‘우발부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업회계 용어로 아직 채무로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장래에 돌발 사태가 발생하면 채무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은 부채를 뜻한다. 우발부채는 재무상태표에서 부채로 인식하지는 않지만, 미래에 자원이 유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주석에 기재한다. 가계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레 가족 구성원이 아프거나 다치면, 당장 소득이 줄고 지출이 늘어난다. 아직 발생하지 않았지만, 일단 발생하면 채무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발부채에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언제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대비하려고 거액의 자금을 항상 준비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발부채는 우발자산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질병과 사고, 사망으로 갑작스레 목돈이 필요할 때, 보험금이 우발자산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우발자산으로서 보험의 효과는 아래 그림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가입 이후 언제든지 질병이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해진 보험금을 수령한다. 그리고 이 보험금으로 의료비를 충당할 수 있다. 하지만 적금에 가입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아래 그림에서 파란색 부분(A)이 의료비 마련을 위해 적금에 가입한 사람의 잔고인데, 만기가 다 돼서야 의료비를 충당할 만큼 자금이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전에 질병과 사고가 발생하면 의료비가 부족하게 된다. 따라서 적금 대신 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주황색 부분(B)에 해당하는 만큼 질병이나 사고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보장은 종신토록 유지되는가
여기까지 설명을 들으면 아직 의료비를 충당할 만한 자금을 모아 두지 못한 사람에게 보험은 좋은 무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의료비 정도는 감당할 만큼 돈을 모아 둔 사람에게도 보험은 여전히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을까. 특히 은퇴를 앞둔 50대들 중에 이 같은 질문을 많이 한다. 웬만큼 돈을 모아 둔 50대에게 질병과 사고는 우발적인 사건이지만 치명적인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은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도 그럴지는 좀 더 따져 봐야 한다. 은퇴생활 초기에 질병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치료비야 감당할 수 있겠지만 노후자금이 조기에 바닥날 수 있다. 반대로 별 탈 없이 생활하다가 은퇴 후반에 질병이나 사고를 맞을 수도 있는데, 이때는 치료비를 감당할 만큼 재산이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
부부 중 한 사람의 병치레를 감당하느라 남은 배우자의 생계가 어려워질 때도 있다. 따라서 은퇴 당시만 아니라 본인과 배우자가 사망할 때까지 의료비를 감당할 만한 재산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부담이 다른 가족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언제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대비하려고 가뜩이나 많지도 않은 은퇴자금 중 일부를 따로 떼어 두기보다는 보장성 보험을 이용하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일 수도 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사망에 가까워질수록 의료비 부담은 커지는 데 반해, 은퇴 자산(C)은 줄어든다. 심지어 남은 은퇴 자산을 가지고는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 경우 의료비 부담이 그대로 배우자나 자녀에게 전가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장성 보험에 있으면 은퇴 후반에도 의료비를 충당할 만한 여력을 갖게 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점검해야 할까
그렇다면 삶의 무기가 될 보험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우선 자기가 현재 가입하고 있는 보험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내 보험 찾아 줌’ 사이트를 이용하면 자신이 가입한 보험 종류와 보장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가입한 보험 상품을 파악했으면 보험회사에 요청해 보험증권을 재발행해 받아 두는 것이 좋다. 보험증권에는 어떨 때 보험금을 얼마만큼 받을 수 있는지 기재돼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프거나 다쳤다고 해서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보험회사는 가입자의 청구가 있어야 보험금을 지급한다. 보험금을 청구하려면 어떨 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명심하자. 보험료를 내려고 보험에 가입한 것이 아니라, 보험금을 받으려고 가입했다는 사실을.
다음 순서는 노후에 필요한 보장의 크기를 살펴야 한다. 여기서는 고령자에게 거액의 치료비와 간병비가 들어가는 암, 심혈관 질환, 치매, 치아 관련 질환을 중심으로 발병률과 치료비용 등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리고 각각의 질병 치료에 필요한 비용과 자신이 가입하고 있는 보험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금액을 비교해 보면 부족하거나 남는 보장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보험은 추가로 가입하고, 필요 없는 것은 정리한다. 새로 보험에 가입할 때는 보장 내용뿐만 아니라 보장 기간도 함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보험료 납부 기간은 언제까지고 납부할 여력은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자칫 보험금만 욕심내다가 중도에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하면, 정작 필요할 때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다. 당장 필요 없어 보인다고 보험 계약을 무작정 해지해서는 안 된다. 보험을 해지하기 전에는 잃어버리는 보장이 무엇인지 반드시 살펴야 한다. 지금 판매되는 보험에서 보장해 주지 않는 질병이나 사고를 오래된 보험에서는 보장해 주는 것이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1호(2020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