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 최근 개인연금과 퇴직연금 가입자 중에 적립금을 다른 금융회사로 옮기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유는 뭘까. 그리고 연금이체를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없을까.
대다수 금융상품은 일단 가입하고 나면 다른 금융회사로 옮기기 어렵다. 하지만 연금저축이나 퇴직연금은 예외다. 장기간 운용해야 하는 이들 상품의 특성을 고려해 금융회사의 서비스나 수익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적립금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는데, 이를 ‘연금계좌이체’ 또는 줄여서 ‘연금이체’라고 한다.
연금이체가 가능한 것과 실제 이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별개의 문제다. ‘관성’이라고 하든, ‘귀차니즘’이라고 하든 사람들은 웬만해서 한번 정한 것을 바꾸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연금이체가 늘어난다면 나름 이유가 있지 않을까. 최근 연금이체가 늘어나는 까닭은 크게 3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첫째, 초저금리 시대의 도래다. 예·적금 등 금리형 상품에만 투자해서는 기나긴 노후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 없게 됐다. 둘째, 연금에서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 다양해졌다. 특히 최근에는 상장지수펀드(ETF)와 리츠(REITs)를 투자할 수 있는 증권사로 연금 자산을 이동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셋째, 이체 절차가 대폭 간소화됐다. 종전에는 연금이체를 하려면 가입한 금융회사와 옮기려는 금융회사를 모두 방문해야 했지만, 지금은 옮기려는 금융회사 1곳만 방문하면 된다. 심지어 금융회사를 방문하지 않고 웹이나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이체할 수도 있다.
8人8色, 연금이체 상황별 체크 사항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연금이체를 하려는 이유도 제각기 다양하다. 낮은 금리를 피하고 높은 수익을 찾아 떠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여기저기 흩어진 연금을 한곳에 모아서 연금을 받으려는 사람도 있고, 직장을 떠나며 받은 퇴직급여를 연금계좌로 이체하거나 만기가 도래한 금융상품 적립금을 연금계좌로 이체하려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는 8가지 상황에서 연금이체를 할 때 체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CASE 1 》》 연금저축보험·신탁을 펀드로 변경하는 경우
금융회사 간 이체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은 연금저축이다. 연금저축 가입자는 저축금액에 대해 연간 최대 400만 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연금저축은 보험, 신탁, 펀드 3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체 건 가운데는 보험이나 신탁을 펀드로 갈아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보험과 신탁을 펀드로 갈아탈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
먼저 이체로 잃어버리는 것을 살펴야 한다. 펀드는 투자 성과에 따라 원금을 손해 볼 수 있지만, 보험과 신탁은 그렇지 않다. 특히 보험 가입자는 5000만 원까지 예금자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종신형 연금을 선택할 수 있는 데 반해, 펀드는 그렇지 못하다. 오래전에 보험에 가입했다면 반드시 금리를 확인해야 한다. 2000년대 초반에 판매된 보험 중에는 고금리를 확정적으로 보장하는 것도 있고, 변동금리라고 하더라도 최저보증이율이 상당히 높다.
다음은 이체로 얻는 게 무엇인지 살필 차례다. 펀드의 장점은 장기 투자를 했을 때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7년까지 17년 동안 매월 말 자금을 적립한다고 했을 때, 연평균 수익률이 6.32%나 됐다. 과거의 성과가 미래 수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요즘 같은 초저금리 시대에 매력적인 수익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점검이 끝났으면 행동할 차례다. 이체 절차는 간단하다. 옮기려는 금융회사를 방문해 계좌를 개설하고 이체 신청을 하면 된다. 금융회사를 방문하지 않고 홈페이지나 앱에서도 이체할 수 있다. 이체가 완료됐으면 투자 상품을 선택해야 한다. 연금저축펀드는 계좌 하나에서 여러 개의 펀드를 골라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투자할 수 있다.
CASE 2 》》 옛 개인연금저축을 다른 금융회사로 이체하는 경우
옛 개인연금저축을 이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옛 개인연금은 1994년 6월부터 2000년 12월까지 판매된 연금 상품이다. 2001년에 연금저축이 도입되면서 신규 판매가 중단되기는 했지만, 기존 가입자는 계속 저축하면서 소득공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옛 개인연금 가입자는 매 분기마다 300만 원까지 저축할 수 있고, 저축한 금액의 40%를 소득공제 받는다. 연간 소득공제 한도는 72만 원이다.
연금저축과 마찬가지로 옛 개인연금저축도 보험, 신탁, 펀드가 있고, 금융회사 간 이체가 가능하다. 저금리로 인해 보험이나 신탁을 펀드로 이체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확인해야 할 사항은 연금저축을 이체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옛 개인연금저축펀드에서는 하나의 펀드에만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집중 투자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려면 다양한 지역과 자산에 분산투자를 하는 펀드를 골라야 한다.
CASE 3 》》 IRP에서 가입한 예금을 펀드로 바꾸려는 경우
연금저축 이외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금융상품으로 개인형퇴직연금(IRP)이 있다. IRP 가입자는 한 해 저축금액에 대해 최대 700만 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연금저축은 보험, 신탁, 펀드가 나눠져 있는 데 반해, IRP 가입자는 하나의 계좌에서 금리형 상품부터 실적배당 상품까지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금융회사로 갈아타기 전에 현재 가입한 금융회사에 원하는 상품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IRP는 은행, 증권, 보험사에서 가입할 수 있는데, 금융권과 회사별로 제공하는 상품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일반 펀드는 은행, 증권, 보험에서 가입할 수 있지만, ETF와 리츠, 인프라펀드와 같이 거래소에 상장된 상품은 증권사에서만 가입할 수 있다.
IRP 가입자는 채권형 펀드, 채권혼합형 펀드, 타깃데이트펀드(TDF)와 같이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상품에는 적립금을 전부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주식형 펀드, 하이일드 채권형 펀드, 리츠와 같이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금융상품에는 적립금 중 70%만 투자할 수 있다.
CASE 4 》》 연금저축과 IRP에서 ETF와 리츠에 투자하려는 경우
최근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ETF와 리츠 투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ETF를 활용하면 국내외 주식과 채권뿐 아니라 금, 은, 원유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 리츠를 활용하면 오피스, 리테일, 호텔 등 다양한 부동산에 간접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ETF와 리츠는 주식처럼 거래소에서 사고 팔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ETF와 리츠에 투자하려면 적립금을 주식 거래가 가능한 증권사로 이체해야 한다.
연금저축 가입자는 ETF에는 투자할 수 있지만 리츠는 안 된다. 하지만 IRP 가입자는 둘 다 투자할 수 있다. 다만 연금저축과 IRP 가입자는 국내에 상장된 ETF에만 투자할 수 있는데, 레버리지와 인버스 ETF는 투자할 수 없다. IRP 가입자는 이 밖에도 달러선물, 원자재, 금, 은 ETF에도 투자할 수 없다.
CASE 5 》》 ISA 가입자가 만기자금을 연금계좌로 이체하는 경우
올해부터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만기자금을 연금계좌(연금저축, IRP)로 이체하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ISA에서 발생한 이자와 배당 수익은 최대 200만 원(서민형 400만 원)까지 비과세하고, 200만 원 초과 수익은 분리과세(9.9%) 한다.
ISA는 만기가 5년이므로 2021년이면 대규모 만기가 도래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정부는 ISA 만기자금을 노후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기자금을 연금계좌로 이체하면 이체금액의 10%(최대 300만 원)를 세액공제 해 주기로 했다.
최대로 세액공제 효과를 보려면 만기 때 적립금이 3000만 원 이상 돼야 한다. 따라서 ISA 가입자는 만기가 언제인지, 현재 적립된 금액이 얼마인지 확인하고, 만기까지 남은 기간 동안 저축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아직 ISA에 가입하고 있지 않다면, 2021년 연말까지 가입할 수 있다.
CASE 6 》》 DC형 퇴직연금 가입자가 연금사업자를 변경하는 경우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가입자는 자신의 퇴직계좌에 이체된 퇴직급여를 직접 운용한다. 이때 근로자의 퇴직급여를 맡아서 관리하는 금융회사를 연금사업자라고 한다.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할 때는 하나 이상의 연금사업자를 선정해야 하는데, 복수로 선정하는 곳도 많다. 복수의 연금사업자를 선정한 회사에서는 근로자가 연금사업자를 바꿀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한다.
연금사업자를 변경할 때는 예금이나 펀드에 투자한 적립금을 현금화해 이전해야 한다. 그런데 예금 등 원리금보장 상품은 만기 전에 해지하면 약정된 금리를 받을 수 없다. 펀드 등 실적배당 상품은 해지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해외 펀드를 해지할 때는 일주일 이상이 소요되기도 한다.
연금사업자를 변경한 다음에는 운용 지시를 해야 한다. 이때는 적립금과 부담금 운용 지시를 따로 해야 한다. 적립금이 이미 퇴직계좌에 쌓여 있는 돈이라면, 부담금은 미래에 적립될 돈이다. 둘 다 같은 상품에 투자할 수도 있지만 각기 다른 상품에 투자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적립금은 자금 규모가 크기 때문에 주식 비중이 낮은 펀드에 투자하더라도, 부담금은 상대적으로 주식투자 비중이 높은 상품에 투자할 수도 있다.
CASE 7 》》 연금저축과 IRP 상호 간 자금을 이체하는 경우
은퇴를 앞두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연금저축과 IRP를 한곳으로 모아 연금을 수령하려는 사람도 있다. 이때 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연금저축 적립금을 IRP로 옮길 수도 있고, 반대로 IRP 적립금을 연금저축으로 이체할 수도 있다.
연금저축과 IRP를 상호 간 이체하려면, 가입자가 55세 이상이고 연금계좌 가입 기간이 5년이 넘어야 한다. 다만 퇴직금이 적립된 연금계좌 적립금은 가입 기간과 상관없이 이체할 수 있다. 다만 2013년 3월 1일 이후에 개설한 연금계좌 적립금을 2013년 2월 이전에 이전한 계좌로 이체할 수는 없다.
연금저축과 IRP 중 어디로 통합하는 것이 나을까. 투자 상품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IRP가 낫다. IRP에서는 하나의 계좌에서 예·적금 등 원리금보장 상품부터 펀드와 같은 실적배당 상품까지 다양한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데 반해, 연금저축은 그렇지 못하다. 연금저축보험과 같은 금리형 상품이 있지만, 연금저축펀드에서는 실적배당 상품에만 투자할 수 있다. IRP에서는 리츠에 투자할 수 있지만, 연금저축에서는 할 수 없다.
수수료 면에서는 연금저축이 낫다. 연금저축에는 계좌 관리 수수료가 없지만, IRP 가입자는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수수료는 회사마다 차이가 다른데, 2020년 3월 기준으로 은행권 수수료는 연평균 0.37~0.44%, 보험사는 0.38~43%, 증권사는 0.27~0.32% 정도 된다. 따라서 똑같은 펀드에 가입하는 경우라면 IRP보다는 연금저축으로 적립금을 통합하는 것이 낫다.
CASE 8 》》 퇴직금을 연금계좌로 이체하는 경우
직장을 떠날 때 받은 퇴직금을 연금계좌로 이체하는 경우도 있다. 퇴직금을 일시에 수령하면 퇴직소득세를 납부해야 하지만, 연금계좌로 이체할 경우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세금은 연금계좌에서 퇴직급여를 인출할 때 부과한다. 이때 연금계좌에 이체된 퇴직급여를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하면 퇴직소득세율의 70%에 해당하는 연금소득세를 납부하면 된다. 실제 연금 수령 연차가 10년을 넘어서면 세율은 퇴직소득세율의 60%로 떨어진다.
퇴직자는 퇴직금을 맡아서 운용할 금융회사도 정해야 하는 한편, 연금저축과 IRP 중 어디에서 연금을 받을지도 정해야 한다. 투자 상품 종류와 수수료는 ‘CASE 7’을 참조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연금 수령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자.
종신토록 연금을 수령하고 싶다면 생명보험사의 IRP에 퇴직금을 이체하면 된다. 퇴직금 중 일부를 목돈으로 인출할 생각이 있다면 IRP보다는 연금저축이 낫다. IRP는 부분 인출이 안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증권사에는 ‘비정기 연금’ 형태로 가입자가 필요하면 수시로 자금을 찾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0호(2020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