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세계 경제는 연일 낙관론과 비관론이 엇갈리고 있다. 정확히는 ‘아무도 모르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재테크 시장의 미래는 어떻게 예측되고 있을까.
2020년대 세계 경제는 ‘뉴 노멀’로 요약된다. 종전의 이론과 규범, 관행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용어다. 미래 예측까지 어려우면 ‘뉴 앱노멀’로 구별한다. 뉴 노멀 시대에 발생하는 모든 행위는 첫 단계인 정확한 원인 진단부터 어려워 대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2020년대 세계 경제는 ‘디스토피아’가 자주 발생해 예상치 못했던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돼 왔다. 디스토피아란 토머스 모어가 인간 현실세계의 이상향으로 제시했던 유토피아의 반대 개념인 반(反)이상향으로, 사전에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지구상 가장 어두운 상황을 말한다.
2가지 의미가 합쳐진 뉴 노멀 디스토피아의 첫 사례에 해당하는 코로나19는 초기 충격이 유난히 큰 것이 또 다른 특징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하자마자 모든 사람이 공포에 휩싸이고, 세계 주가가 순식간에 폭락한 것은 하이먼 민스크 이론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nobody knows’, 즉 아무도 모르는 위험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른다’면 모든 경제 활동은 멈출 수밖에 없다. 죽인 시체와 같다는 의미의 ‘좀비 경제’라는 용어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정국 경제의 좀비화 정도를 알 수 있는 대용 변수인 통화유통속도, 통화승수, 예대 회전율 등과 같은 각종 경제활력 지표도 속속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추세다.
세계화에도 충격이 불가피하다. 전염성이 강한 뉴 노멀 디스토피아는 입국 제한 등을 통해 사람의 이동부터 차단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면 상품과 자본의 이동도 제한된다. 코로나19 충격이 커질수록 ‘세계화’보다 ‘자급자족(autarky)’ 경제의 필요성이 고개를 드는 것은 앞으로 각국 경제정책에 많은 변화를 몰고 올 움직임이다.
정책 대응도 쉽지 않다. 금융위기 직후 대공황 전문가였던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의 방식처럼 각국 중앙은행은 유동성을 긴급 공급하고 금리를 대폭 내리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 당황한 각국 최고통수권자는 감세와 재정지출을 서둘러 추진하고 있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아무도 모른다’라는 상황은 반드시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연준이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1913년 설립 이래 가 보지 않는 길을 걷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까지 매입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제한 달러화를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중앙은행의 고유 기능인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의미다.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초(超)저금리와 양적완화(QE)로 돈이 많이 풀리는 여건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줄거나 백신 개발 소식만 들리면 주가가 빠르게 오르고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 한없이 추락할 것으로 보였던 미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에서 ‘바닥론’과 ‘데드 캣 바운스’ 논쟁이 일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증시 논쟁, 폭락 vs 반등
올해 4월 이후 주가 움직임을 보면 증시 바닥론이 제기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한때 34배까지 높아졌던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도 24배로 낮아져 거품이 해소됐다. CAPE는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가 개발한 주가 적정성을 따지는 가장 정확한 지표다. 주가수익비율(PER), 주당순이익(EPS) 등 다른 지표도 적정 수준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주가 반등이 본격적인 하락에 앞서 잠시 나타나는 ‘데드 캣 바운스’라는 것이다. 가장 본질적인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치료제나 백신 개발 등에 아무런 진전도 없지 않느냐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미국에서 확진자 수가 갈수록 늘어나는 점을 감안하면 주가가 또다시 폭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주가가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는 여러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경기에 의해 좌우된다. 주가 흐름과 관련해 경기를 볼 때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언제 ‘저점(tough)’이 될 것인가 여부다. 국면 전환 분석에 가장 유용한 마코브 스위치 모델로 추정해 보면 이번 경기 순환의 저점은 올해 2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주가의 경기 선행성’이다. 그랜저 심즈(Granger Sims) 인과관계 검증 등을 통해 보면 최근에 주가는 경기에 약 3개월 정도 앞서가는 것으로 나온다. 종전의 6개월 정도에서 크게 앞당겨진 것은 모든 것이 보이는 증강현실(AR)과 초연결 시대의 도래로 그만큼 정보 시차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경기 저점과 주가 선행성으로 볼 때 올해 2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이 -25%(JP모건), -30%(모건스탠리), -34%(골드만삭스, -24%에서 하향 수정) 중 어느 것이 나오든 큰 의미는 없다. 올해 2분기 성장률 속보치가 확인되는 시점도 7월이다. 앞으로 주가 흐름은 올해 3분기 이후 성장률이 어떻게 나오느냐가 중요하다. 한국 증시도 마찬가지다.
미국 경제 앞날과 관련해 극단적인 2가지 시각이 동시에 나와 화제다. ‘닥터 둠’으로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대공황보다 더 심각한 ‘아이(I)’자형의 극단적인 비관론을 펼치고 있다. 반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코로나19가 진정되면 강하게 회복할 것이라는 ‘브이(V)’자형 낙관론을 주장해 대조적이다.
증시 논쟁과 조합해 보면 앞으로 미국 경기가 루비니 교수의 ‘I’자형 시각대로 간다면 최근 주가 반등은 데드 캣 바운스다. 하지만 파월 의장의 ‘V’자형 시각대로 간다면 증시 바닥론에 힘이 실린다. 지금 주식을 샀다면 증시가 전자대로 흐를 경우 ‘손실’, 후자대로 흐를 경우 ‘수익’이 난다는 의미다.
경기와 증시 논쟁은 달러 가치 향방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연준은 초당 100만 달러를 풀어내고 있다. 이처럼 달러화가 많이 풀릴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트리핀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리핀 딜레마란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 등을 통해 달러화를 계속 공급해야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달러 가치가 떨어져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연준이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하지마자 달러 가치가 폭락할 것이라는 시각이 곧바로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운용자인 래이 달리오는 달러화가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로 잘 알려진 로버트 기요사키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유망한 재테크 수단으로 달러화를 사 두면 안 된다고 전망했다.
현재 국제통화제도는 1976년 킹스턴 회담(길게는 스미스소니언 체제 포함) 이후 시장의 자연스러운 힘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국가 간 조약이나 국제협약이 뒷받침되지 않아 ‘없는 시스템(non system)’으로 지칭된다. 그 결과 킹스턴 회담 이후 달러 중심의 브레턴우즈 체제는 이전보다 느슨하고 불안한 형태로 유지돼 왔다.
시스템이 없는 국제통화제도에서는 기축통화의 신뢰성이 저하되더라도 이를 조정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 새로운 기축통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는 통화는 없다. 유일한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대외 불균형을 시정하려고 하지만, 무역흑자국은 이를 조정할 유인이 없어 환율전쟁이 수시로 발생돼 왔다.
연준의 무제한 양적완화로 달러 가치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할 경우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더 이상 ‘글로벌 시뇨리지(global seigniorage: 화폐발행 차익)’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반면 다른 국가는 브레턴우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담했던 과다한 달러화 보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달러 유동성에서 자유로운 국가를 중심으로 외화 보유에서 달러 비중을 낮추는 탈(脫)달러화 추세가 더 빨라지고 있다. 디지털 통화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세계 교역에서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는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zation: 세계화 쇠퇴)’에 맞춰 결제통화상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형태의 자급자족(autarky) 성향이다.
연준이 달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은 풀린 달러화를 환수하는 출구전략이다. 하지만 2015년 12월 금리 인상 이후 추진됐던 출구전략 추진 과정에서 입증됐듯이 실행에 옮겨서 순조롭게 추진하기가 어렵다.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달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화폐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크게 3가지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장 선호하는 ‘금본위제 부활’이다. 연준이 달러화 공급 계획을 발표할 때마다 금값이 오르는 것도 이 요인이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적인 금 공급량 제한과 금 보유국에 또 다른 특혜가 집중된다는 점에서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다른 하나는 온라인과 모바일 시대에 맞춰 ‘디지털 달러화’ 도입을 앞당기는 방안이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로 더 빨라질 전망이다. 연준은 디지털 달러화 도입을 위한 사전작업을 마무리해 놓은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페이스북의 ‘리브라’를 디지털 달러화로 격상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화폐 거래 단위를 축소하는 ‘리디노미네이션’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국민의 저항이 의외로 큰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는 데에는 해당국 통화의 대외 위상이 증가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이 방안이 논의되는 것은 연준의 무제한 양적완화로 가장 크게 우려되는 달러 가치 폭락과 인플레이션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최종 권한을 갖고 있는 연준은 화폐개혁보다 출구전략을 선택한다는 입장이지만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제통화제도에서 다가올 커다란 변화에 미리 대비해 놓아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그 어느 국민보다 달러화를 많이 사 둔 한국 국민은 달러화가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우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래절벽 겪는 부동산 시장은
달러 가치 향방과 함께 또 하나 주목해서 바라봐야 할 것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거래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대형 상업용 부동산과 고급 주택 가격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거래절벽이란 대형 상업용 건물과 고급 주택을 내놓아도 매수 심리가 얼어붙어 거래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정상적인 시스템이 무너진 여건에서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만이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미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인하와 양적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했다. ‘부채 경감 증후군(debt deflation syndrome)’에 빠진 경제주체는 능력 이상의 돈을 빌려 투자했다.
주가에 이어 세계 부동산 가격도 거침없이 올랐다.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이 산출하는 세계주택가격지수는 170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전 수준인 159를 훨씬 뛰어넘었다.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 등으로 평가해 보더라도 세계 부동산 시장은 거품이 심하게 낀 것으로 나온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세계 부동산 시장은 뉴욕, 런던, 베를린, 토론토, 밴쿠버, 시드니, 상하이, 서울 등 주요 도시가 주도해 온 점이 또 다른 특징이다. 용도별로는 주택 시장보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같은 주택 시장이라도 고급 주택일수록, 규모별로는 대형 부동산일수록 가격이 많이 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대형 상업용 건물과 고급 주택은 대체재가 제한돼 가격 변화에 따른 수요량 변화가 민감하지 않은 비탄력적인 시장이다.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비탄력적일수록 공급 곡선이 우측으로 이동되면 가격 하락 폭이 커진다. 4년 전 IMF의 ‘주택가격 대폭락(GHC)’ 경고가 최근에 다시 고개를 드는 것도 이 이론적 근거에서 나오는 우려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세계가치사슬 붕괴 이상으로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 자산 소득이 줄어들면 소비가 감소돼 경기를 둔화시키는 ‘역(逆)자산 효과’ 때문이다. 같은 가격 변화 폭이라도 상승할 때 자산 효과보다 하락할 때 역자산 효과가 더 큰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역자산 효과는 소비 이론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항상소득가설’과 프랑코 모딜리아니의 ‘생애주기가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정 가구는 생애에 걸쳐 소비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성향, 즉 은퇴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소비는 현재 소득과 미래에 기대되는 소득뿐만 아니라 보유 자산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주택 가격 변화에 따른 민간소비지출 탄력성은 0.1∼0.15 정도다. 하지만 한국 아파트의 가격 변화에 따른 민간소비지출 탄력성은 0.23으로 미국보다 2배 가깝게 높게 나온다. 한국 국민의 재테크에서 70% 내외를 차지하고 있는 아파트가 환금성이 높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돼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크게 떨어질 경우 금융사가 운용하는 각종 부동산 펀드에 증거금 부족 현상인 마진 콜이 발생되면 더 큰 문제다. 마진 콜을 응하는 디레버리지 과정에서 기존에 투자해 놓았던 부동산까지 처분해야 하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가능성 때문이다. 그때는 ‘제2의 리먼브러더스 사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동산 시장 움직임이 긴박하다. 각국 중앙은행이 추진하고 있는 금리 인하는 차선책이다. 코로나19 사태를 조기에 진정시키는 것만이 최선의 부동산 활성화 대책이다. 이제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국민이 방역 관련 기본 수칙을 지키는 동시에 남을 배려하는 ‘프로 보노 퍼빌릭코(pro bono publico, 공공선)’ 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0호(2020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