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중년에게도 특별한 ‘something’이 있다.
남들보다 조금 다른 삶으로 조금 더 행복한 사람들, 중년 덕후들을 만났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1973년생으로 올해 만 47세인 김성익이라고 합니다. 약 18년 정도 모바일 게임회사에서 개발 업무를 해 왔고 최근에 1인 개발 인디게임을 준비하면서 사무실 겸 프라모델 작업장인 마이스터 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3명의 딸들과 아내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묵묵히 취미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중년의 모델러입니다.”
언제부터 프라모델 덕후가 되셨나요.
“프라모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제가 네 살 때쯤이었습니다. 굉장히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그때 만들었던 몇몇 프라모델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할 정도로 어린 시절의 저에게 커다란 임팩트를 주었습니다. 기묘한 형태의 작은 부품들을 하나하나 끼워 맞춰 멋진 모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당시의 또래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때부터 모델러의 길을 걷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재 프라모델은 어느 정도일까요. 가격대로도 셈이 가능할까요.
“저는 만드는 것 자체를 즐기는 쪽이라 사실 수집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프라모델을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어린 시절에는 프라모델을 모은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기에 그냥 만들고 가지고 놀다가 어느덧 부서지거나 사라져 버리기 일수였죠. 물론 어머니께서 갖다 버리신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요. 가끔 장터나 커뮤니티에서 당시 제가 가지고 있었던 프라모델들이 몇백 배로 뛴 가격에 거래가 되는 것을 보면 정말 놀랍고도 아쉽더군요. 현재 제가 보유한 프라모델은 도색까지 해서 완성한 모형은 한 80개 정도 되고, 조립만 해 놓고 도색을 준비 중인 모델이 30~40개 정도, 그리고 아직 개봉도 못하고 박스째 쌓여 있는 프라모델이 200여 개쯤 됩니다. 가격으로 셈한다면 3000만 원어치 될 것 같지만 이쪽 세계에서 이 정도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입니다.”
그중 가장 애정하는 프라모델이 있다면.
“2005년에 나왔던 일명 ‘페가수스 건담’이라는 프라모델입니다. 예전부터 도색을 계속 시도해 왔지만 제대로 된 작업 환경이 없다 보니 완성작을 내기가 힘들었는데 명절 연휴 때 아내에게 욕 얻어먹을 각오를 하고 보일러실에 틀어박혀서 결국 완성한 저의 첫 도색 완성 작품입니다. 또 하나의 애장품은 ‘보물섬 특호’입니다. ‘보물섬’은 초등학생 시절 프라모델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로망이었지만 너무도 비싼 가격에 문방구 아주머니의 눈총을 받아가며 하염없이 박스만 쓰다듬었던 프라모델이었죠. 먼 훗날에야 그때 그 모델은 내용물이 많이 축소된 복제품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 원본을 구하기 위해 몇 년간 장터를 뒤진 결과 결국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애로사항은 없나요.
“예전에는 만드는 속도보다 새로운 프라를 구입하는 속도가 빨라서 프라모델 박스들이 공간을 차지해 나가느라 가족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애로사항이었지만,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씁쓸하게도 노안입니다. 프라모델 작업은 굉장히 세밀하고 디테일한 작업이 필요한데 40대 중반부터 노안이 찾아오는 바람에 작업용 돋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정교한 작업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것이 정말 후회가 됩니다.”
경제적 부담은 없으신가요.
“프라모델은 사실 꽤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 취미입니다. 프라모델 자체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장비와 도구, 소모품들이 지속적으로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다행히 제가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라서 그쪽에 쓸 돈을 취미생활에 사용하고 있어서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취미생활로 인한 경제적 이득은 없나요.
“특별히 되팔기를 하거나 제 개인 완성작을 판매하지는 않고 있습니다만,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통해서 요청하는 분들의 프라모델 조립 의뢰를 받아 작업하면서 약간의 작업비를 받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도색에 필요한 도료 값 정도나 벌어 볼까 하고 시작한 조립 의뢰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지속적으로 의뢰를 맡겨 주셔서 저의 취미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충분히 충당하고도 남을 만큼 수익을 보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과 커뮤니케이션도 하나요.
“제가 운영 중인 ‘산뜻한 중년의 덕’s 라이프’ 블로그와 몇몇 온라인 모형 동호회 등을 통해서 여러 모델러 분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습니다. 완성작을 올려서 다양한 조언을 듣기도 하고, 새로운 기법이나 도구에 대한 많은 정보를 나누고 있습니다.”
중년의 덕질이 삶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또래의 많은 중년 친구들을 보면, 삶의 무게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무언가를 찾고는 싶어 하지만 결국에는 술자리 같은데서 한 잔 술로 현실을 잠깐 잊어버리는 정도에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그렇기에 내가 정말로 좋아하고 몰두할 수 있는 덕질이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과도 같은 탈출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주도적으로 외부의 압박 없이 무언가를 이루어나가는 성취감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커다란 활력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프라모델이라는 취미는 완성을 해 내는 희열 자체도 크지만, 이전에 만들었던 작품들을 보면서 언제든지 당시에 작업하던 느낌을 계속해서 떠 올릴 수 있기에 삶의 텐션을 지속적으로 즐겁게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에게도 무언가에 빠지는 삶을 추천하나요.
“추천하는 정도가 아니라, 중년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뭔가에 빠질 수 있는 취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중년의 나이에 기존에 익숙하지 않은 뭔가를 접하는 계기를 만나는 것도, 또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해 나간다는 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의지를 가지고 한 발짝 용기를 내 보신다면 기존에 느낄 수 없었던 활기찬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혹시나 특별히 뭘 찾아볼지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프라모델이라는 고급스러운 덕질의 세계를 자신 있게 추천해 봅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9호(2020년 04월) 기사입니다.]
남들보다 조금 다른 삶으로 조금 더 행복한 사람들, 중년 덕후들을 만났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1973년생으로 올해 만 47세인 김성익이라고 합니다. 약 18년 정도 모바일 게임회사에서 개발 업무를 해 왔고 최근에 1인 개발 인디게임을 준비하면서 사무실 겸 프라모델 작업장인 마이스터 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3명의 딸들과 아내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묵묵히 취미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중년의 모델러입니다.”
언제부터 프라모델 덕후가 되셨나요.
“프라모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제가 네 살 때쯤이었습니다. 굉장히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그때 만들었던 몇몇 프라모델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할 정도로 어린 시절의 저에게 커다란 임팩트를 주었습니다. 기묘한 형태의 작은 부품들을 하나하나 끼워 맞춰 멋진 모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당시의 또래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때부터 모델러의 길을 걷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재 프라모델은 어느 정도일까요. 가격대로도 셈이 가능할까요.
“저는 만드는 것 자체를 즐기는 쪽이라 사실 수집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프라모델을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어린 시절에는 프라모델을 모은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기에 그냥 만들고 가지고 놀다가 어느덧 부서지거나 사라져 버리기 일수였죠. 물론 어머니께서 갖다 버리신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요. 가끔 장터나 커뮤니티에서 당시 제가 가지고 있었던 프라모델들이 몇백 배로 뛴 가격에 거래가 되는 것을 보면 정말 놀랍고도 아쉽더군요. 현재 제가 보유한 프라모델은 도색까지 해서 완성한 모형은 한 80개 정도 되고, 조립만 해 놓고 도색을 준비 중인 모델이 30~40개 정도, 그리고 아직 개봉도 못하고 박스째 쌓여 있는 프라모델이 200여 개쯤 됩니다. 가격으로 셈한다면 3000만 원어치 될 것 같지만 이쪽 세계에서 이 정도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입니다.”
그중 가장 애정하는 프라모델이 있다면.
“2005년에 나왔던 일명 ‘페가수스 건담’이라는 프라모델입니다. 예전부터 도색을 계속 시도해 왔지만 제대로 된 작업 환경이 없다 보니 완성작을 내기가 힘들었는데 명절 연휴 때 아내에게 욕 얻어먹을 각오를 하고 보일러실에 틀어박혀서 결국 완성한 저의 첫 도색 완성 작품입니다. 또 하나의 애장품은 ‘보물섬 특호’입니다. ‘보물섬’은 초등학생 시절 프라모델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로망이었지만 너무도 비싼 가격에 문방구 아주머니의 눈총을 받아가며 하염없이 박스만 쓰다듬었던 프라모델이었죠. 먼 훗날에야 그때 그 모델은 내용물이 많이 축소된 복제품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 원본을 구하기 위해 몇 년간 장터를 뒤진 결과 결국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애로사항은 없나요.
“예전에는 만드는 속도보다 새로운 프라를 구입하는 속도가 빨라서 프라모델 박스들이 공간을 차지해 나가느라 가족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애로사항이었지만,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씁쓸하게도 노안입니다. 프라모델 작업은 굉장히 세밀하고 디테일한 작업이 필요한데 40대 중반부터 노안이 찾아오는 바람에 작업용 돋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정교한 작업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것이 정말 후회가 됩니다.”
경제적 부담은 없으신가요.
“프라모델은 사실 꽤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 취미입니다. 프라모델 자체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장비와 도구, 소모품들이 지속적으로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다행히 제가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라서 그쪽에 쓸 돈을 취미생활에 사용하고 있어서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취미생활로 인한 경제적 이득은 없나요.
“특별히 되팔기를 하거나 제 개인 완성작을 판매하지는 않고 있습니다만,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통해서 요청하는 분들의 프라모델 조립 의뢰를 받아 작업하면서 약간의 작업비를 받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도색에 필요한 도료 값 정도나 벌어 볼까 하고 시작한 조립 의뢰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지속적으로 의뢰를 맡겨 주셔서 저의 취미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충분히 충당하고도 남을 만큼 수익을 보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과 커뮤니케이션도 하나요.
“제가 운영 중인 ‘산뜻한 중년의 덕’s 라이프’ 블로그와 몇몇 온라인 모형 동호회 등을 통해서 여러 모델러 분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습니다. 완성작을 올려서 다양한 조언을 듣기도 하고, 새로운 기법이나 도구에 대한 많은 정보를 나누고 있습니다.”
중년의 덕질이 삶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또래의 많은 중년 친구들을 보면, 삶의 무게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무언가를 찾고는 싶어 하지만 결국에는 술자리 같은데서 한 잔 술로 현실을 잠깐 잊어버리는 정도에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그렇기에 내가 정말로 좋아하고 몰두할 수 있는 덕질이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과도 같은 탈출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주도적으로 외부의 압박 없이 무언가를 이루어나가는 성취감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커다란 활력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프라모델이라는 취미는 완성을 해 내는 희열 자체도 크지만, 이전에 만들었던 작품들을 보면서 언제든지 당시에 작업하던 느낌을 계속해서 떠 올릴 수 있기에 삶의 텐션을 지속적으로 즐겁게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에게도 무언가에 빠지는 삶을 추천하나요.
“추천하는 정도가 아니라, 중년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뭔가에 빠질 수 있는 취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중년의 나이에 기존에 익숙하지 않은 뭔가를 접하는 계기를 만나는 것도, 또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해 나간다는 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의지를 가지고 한 발짝 용기를 내 보신다면 기존에 느낄 수 없었던 활기찬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혹시나 특별히 뭘 찾아볼지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프라모델이라는 고급스러운 덕질의 세계를 자신 있게 추천해 봅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9호(2020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