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이동찬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누구나 한 번쯤은 꽃을 선물하고 선물 받았다. 꽃을 사러 매장의 문을 열었을 때 느낌은 어땠는가. 꽃을 고르는 동안은 또 어떤 기분이었는가. 꽃을 선물했을 때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무엇을 느꼈는가. 반대로 선물 받았을 때의 기분은 어땠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부정적인 단어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꽃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다. 이에 정신없이 매료된 남자들이 있다. 동네 꽃집 아저씨가 아닌, 진짜 ‘남자’ 플로리스트 5인의 향긋한 이야기.
플로리아트 최원창“꿈 꿨던 세계 1등, 한국 꽃 산업 알렸죠”2015년, 권위적인 글로벌 대회인 인터플로라 월드컵에서 한국인 최초로 당당히 챔피언을 차지한 플로리스트 최원창. 해외에서는 알렉스 초이(Alex Choi)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플로리스트다. 아이돌에 방탄소년단(BTS)이 있다면 플로리스트에는 최원창, 아니 알렉스 초이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는 아직도 공부가 부족한 모양이다.
스스로를 ‘꽃집 아저씨’라고 소개하셨어요.
“친형이 꽃집을 해서 어렸을 때부터 꽃을 보고 살았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쯤 형이 운영하는 꽃집에 일손을 도운 적이 있었어요. 부케 주문이 들어왔는데, 제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부케 만드는 공부를 6개월 동안 했어요. 그러다 보니 꽃꽂이를 해 보지 않겠느냐는 권유가 들어왔죠.”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이네요.
“그 당시는 꽃집에서 화분 심는 것과 꽃꽂이를 하는 것이 완전히 분리된 분야였어요. 꽃꽂이는 양갓집 규수들이 결혼하기 전 받는 신부 수업이라는 인식이 강했죠. 저도 처음에는 남자가 무슨 꽃꽂이냐고, 관심 없다고 거절했는데, 결국에는 못 이기는 척 하게 됐어요. 그런데 못한다는 소리를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어요. 저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는데 선생님들은 저를 계속 칭찬하니까 그게 또 싫은 거예요. 2002년에 처음 경기대회를 나갔는데 운 좋게 1등을 하고 나서부터는 더 깊이 있게 꽃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15년 인터플로라 월드컵 1등의 서막이군요.
“내 속에 알 수 없는 뭔가가 가득한데, 이걸 끄집어낼 수 있는 선생님이 필요했어요. 그러면서도 저와 코드와 스타일이 맞아야 했죠. 2004년 독일 베를린 인터플로라 월드컵 출전을 위한 국내 선발전에 구경을 하러 갔는데, 운 좋게도 저와 너무 맞는 분이 계신 거예요. 기자를 통해 소개를 받아 제자로 받아달라고 했어요. 그분이 지금 플로리아트의 박진영 대표죠. 1년 동안 수업을 받고, 2005년부터 경기대회를 본격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했어요. 10년 동안 13번 대회에서 1등을 했죠. 2015년에는 꿈에 그리던 인터플로라 월드컵에서 1등을 하게 됐고요.”
박 대표와의 만남이 큰 터닝 포인트였네요.
“박 대표를 만나기 전, 제가 꽃을 배울 때는 획일화된 방식으로 가르쳤어요. 1번 꽃을 꽂을 때는 얼마큼, 2번 꽃을 꽂을 때는 몇 ㎝ 띄우고, 각도를 이만큼 기울여서 꼽고, 세 번째는 또 다르게 꼽는 식으로요. 참고할 만한 가이드라인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거든요. 반면 박 대표는 느낌을 강조했어요. 꽃은 자연에서 자라 색상도 다르고 표정도 다 다른데, 그것을 플로리스트가 보고 아름답게 표현해야 하는 거거든요. 따라서 식물마다 가지고 있는 특색과 생김새를 잘 파악해서 제 감성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해요.”
단순히 동네 꽃집 아저씨라 하기엔 타이틀이 대단하신데요.
“만약 제가 꽃 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그냥 동네 꽃집 아저씨가 됐겠죠. ‘아저씨 꽃 한 단만 주세요’라는 소리를 들으면서요. (웃음) 지금도 계속 꽃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그러면 주변에선 아직도 공부하느냐, 그만할 때 되지 않았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해요. 사실 우리나라에는 외국에 유학 갔다 와서 깊은 고민 없이 꽃집을 차리고, 또 금세 문을 닫는 플로리스트들도 많은데, 좀 안타까워요. 이 아름다운 꽃을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과 연구가 필요합니다. 인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이 사람에게 주는 에너지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거든요.”
꽃이 큰 행복감을 주는 것 같아요.
“꽃으로 뭔가를 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 예쁜 꽃을 멋있게 구현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행복입니다. 물론 수많은 대회에서 1등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감동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소소하게는 제가 만든 꽃다발을 선물했을 때 상대방이 행복하면 저도 같은 감정을 느껴요. 기억에 남는 건 외국에서 200명을 상대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장난식으로 수업을 마치고 나면 제가 만든 꽃다발을 수강생들에게 경매로 내놓거든요. 어떤 분이 50만 원에 그 꽃다발을 사더니 같이 듣는 친구에게 생일선물로 건네더라고요. 저뿐만 아니라 선물 받았던 그 친구, 그리고 수강생 전부 큰 감동을 받았죠. 꽃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른 플로리스트와 차별화된 장점이 있다면.
“물론 많은 작가들도 그렇겠지만, 저는 제 작품에 사용되는 오브제들을 직접 만들어요. 용접부터 나무 재단, 페인팅까지 전부 다요. 원래는 외주업체에 설치물 제작을 맡겼는데 원체 까다롭게 주문을 하다 보니 다들 혀를 내두르더라고요. 차라리 제가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용접을 배워서 설치물들을 만들었죠. 처음엔 엉성하기도 하고 보호장비도 잘 착용하지 않아서 눈화상이 나기도 했어요. 지금은 꽤 잘하는 편이에요.(웃음) 아무리 꽃이 위주인 작업이라 해도 꽃으로만 작품을 만드는 건 한계가 있어요. 꽃과 오브제, 설치물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 시너지 효과가 대단하죠. 저는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는 작업을 하는 거고요. 작품이 완성되면 사진도 제가 직접 촬영합니다. 사진도 처음에는 엉망이었는데 이제는 곧잘 찍어요.”
인테리어나 선물을 위한 꽃을 추천해 주세요.
“봄이라는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달이 바로 4월이죠. 꽃이 피는 풀인 초화류도 좋고, 유리화병에 담을 수 있는 꽃나무들을 추천합니다. 산당화나 목련, 벚꽃이 가장 아름다울 때죠.”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필드에서 뛴다고 하잖아요. 앞으로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 10년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작품 활동이나 전시는 더 오래 할 순 있겠죠. 이젠 저를 모델로 삼아서 해외 진출을 하는 제자들을 양성하고 싶어요. 제가 처음 공부할 때만 해도, 외국에서 선생님을 초빙해 배우거나 자비로 유학 가서 공부를 했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된 상황입니다. 2015년 인터플로라 월드컵을 통해 한국의 꽃 산업을 전 세계가 알게 됐고, 꽃 분야에서는 후진국인 줄 알았던 한국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어요. 물론 개인적인 타이틀로도 영광이긴 하지만, 문화의 흐름 자체를 바꿔놓았으니 후배들에게 있어선 해외로의 진출 경로가 열린 셈이죠.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로 플로리스트들이 전 세계적으로 위상을 드높였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공부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피오니페페 정준호“꽃은 선물의 순수함만 남기죠”꽃은 언젠가 져서 소멸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 플라워 아티스트 정준호는 꽃의 비영속성에 매료됐다고 말한다.
매장을 보니 색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확실히 색깔에 관심이 많은 편이긴 하죠. 눈에 안정감을 주는 파스텔 톤이 인기가 많은데, 저는 시선을 확 사로잡는 원색적인 색감들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꽃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고요. 아무래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특화된 젊은 소비자들에겐 0.1초 만에눈길을 사로잡을 무언가가 필요하니까요.”
플로리스트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원래 순수회화를 전공했어요. 어느 날 작품을 만들다가 꽃을 처음 활용했는데 흥미로웠어요. 미술 재료는 영속적인 게 많은데 꽃은 피고 지는, 비영속적인 속성이 강하잖아요. 예술을 계속 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들던 참이고, 꽃을 제대로 배워 보고 싶어서 영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그 뒤로 플라워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7~8년 전에 이곳에 꽃집을 열게 됐죠.”
남자가 꽃을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요.
“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를 느낀 게 영국에서 유학할 당시에는 학생 중에 남자가 반 이상을 차지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꽃을 배웠을 때는 수강생 중에 저만 남자인 경우가 많았어요. 한국에서는 남자 플로리스트가 블루오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플로리스트들은 대부분 개인 소비자와 접할 일이 많은데 저는 사업체나 공기관과 일을 많이 했던 편이에요. 단지 남자라는 이유 하나라고 일반화하고 싶진 않지만, 규모가 있는 프로젝트들이 여성 플로리스트들에 비해 많이 들어오는 편이긴 합니다.”
공간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군요.
“현재 인스톨레이션, 설치 미술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보니 꽃을 단순히 오브제 하나로 보는 게 아니라 공간 전체를 보려고 해요. 꽃을 활용해 공간과 분위기를 연출하는 쪽에 관심이 많고요. 제 주 특기이면서 앞으로도 쭉 활동하고 싶은 영역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공기관과 꽃을 연계해서 작업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지난해에 콜롬비아 대사관과 협업했어요. 2019 고양 국제 꽃박람회의 콜롬비아 섹션을 꾸미는 일이었습니다. 콜롬비아는 전 세계적으로 꽃을 제일 많이 수출하는 국가 중 하나예요. 10만 송이로 99㎡ 정도 되는 공간을 전부 꽃으로 채우는 작업이었습니다. 3~4일 밤을 샐 정도로 고된 프로젝트였는데, 콜롬비아 대사관 최초로 꽃 박람회 연출상을 탔고 전 세계 트위터에 수상 소식이 올라갔을 때는 뿌듯하더라고요.”
인테리어나 선물을 위한 꽃을 추천해 주세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작약입니다. 매장 이름도 작약을 뜻하는 피오니(peony)와 식물을 뜻하는 페페(pepe)로 지었을 만큼요. 봄은 작약이 가장 많이 피는 때이기도 하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갑갑한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을 새장 오브제에 작약과 다양한 꽃으로 배열해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꽃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선물을 한다면 보통 오래도록 남아 있는 유형의 물건을 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그 사람의 마음보다는 눈에 보이는 게 항상 남아 있으니 그 물건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어요. 선물하는 이의 마음을 가장 순수하게 느끼게 해 주는 것이 바로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꽃은 선물했을 때 가장 아름다웠다가, 금세 시들어 사라지니 그 사람의 마음만 남게 되거든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저는 스스로 플로리스트보다는 플라워 아티스트라고 소개해요.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첨단 기술에 관심이 생겨서, 꽃과 AI를 결합한 작품들을 구상 중이에요. 예를 들면 꽃이 센서에 반응해 마치 애완동물처럼 키울 수 있도록 만드는 거죠. 그래서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어우를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9호(2020년 04월) 기사입니다.]
플로리아트 최원창“꿈 꿨던 세계 1등, 한국 꽃 산업 알렸죠”2015년, 권위적인 글로벌 대회인 인터플로라 월드컵에서 한국인 최초로 당당히 챔피언을 차지한 플로리스트 최원창. 해외에서는 알렉스 초이(Alex Choi)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플로리스트다. 아이돌에 방탄소년단(BTS)이 있다면 플로리스트에는 최원창, 아니 알렉스 초이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는 아직도 공부가 부족한 모양이다.
스스로를 ‘꽃집 아저씨’라고 소개하셨어요.
“친형이 꽃집을 해서 어렸을 때부터 꽃을 보고 살았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쯤 형이 운영하는 꽃집에 일손을 도운 적이 있었어요. 부케 주문이 들어왔는데, 제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부케 만드는 공부를 6개월 동안 했어요. 그러다 보니 꽃꽂이를 해 보지 않겠느냐는 권유가 들어왔죠.”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이네요.
“그 당시는 꽃집에서 화분 심는 것과 꽃꽂이를 하는 것이 완전히 분리된 분야였어요. 꽃꽂이는 양갓집 규수들이 결혼하기 전 받는 신부 수업이라는 인식이 강했죠. 저도 처음에는 남자가 무슨 꽃꽂이냐고, 관심 없다고 거절했는데, 결국에는 못 이기는 척 하게 됐어요. 그런데 못한다는 소리를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어요. 저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는데 선생님들은 저를 계속 칭찬하니까 그게 또 싫은 거예요. 2002년에 처음 경기대회를 나갔는데 운 좋게 1등을 하고 나서부터는 더 깊이 있게 꽃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15년 인터플로라 월드컵 1등의 서막이군요.
“내 속에 알 수 없는 뭔가가 가득한데, 이걸 끄집어낼 수 있는 선생님이 필요했어요. 그러면서도 저와 코드와 스타일이 맞아야 했죠. 2004년 독일 베를린 인터플로라 월드컵 출전을 위한 국내 선발전에 구경을 하러 갔는데, 운 좋게도 저와 너무 맞는 분이 계신 거예요. 기자를 통해 소개를 받아 제자로 받아달라고 했어요. 그분이 지금 플로리아트의 박진영 대표죠. 1년 동안 수업을 받고, 2005년부터 경기대회를 본격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했어요. 10년 동안 13번 대회에서 1등을 했죠. 2015년에는 꿈에 그리던 인터플로라 월드컵에서 1등을 하게 됐고요.”
박 대표와의 만남이 큰 터닝 포인트였네요.
“박 대표를 만나기 전, 제가 꽃을 배울 때는 획일화된 방식으로 가르쳤어요. 1번 꽃을 꽂을 때는 얼마큼, 2번 꽃을 꽂을 때는 몇 ㎝ 띄우고, 각도를 이만큼 기울여서 꼽고, 세 번째는 또 다르게 꼽는 식으로요. 참고할 만한 가이드라인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거든요. 반면 박 대표는 느낌을 강조했어요. 꽃은 자연에서 자라 색상도 다르고 표정도 다 다른데, 그것을 플로리스트가 보고 아름답게 표현해야 하는 거거든요. 따라서 식물마다 가지고 있는 특색과 생김새를 잘 파악해서 제 감성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해요.”
단순히 동네 꽃집 아저씨라 하기엔 타이틀이 대단하신데요.
“만약 제가 꽃 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그냥 동네 꽃집 아저씨가 됐겠죠. ‘아저씨 꽃 한 단만 주세요’라는 소리를 들으면서요. (웃음) 지금도 계속 꽃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그러면 주변에선 아직도 공부하느냐, 그만할 때 되지 않았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해요. 사실 우리나라에는 외국에 유학 갔다 와서 깊은 고민 없이 꽃집을 차리고, 또 금세 문을 닫는 플로리스트들도 많은데, 좀 안타까워요. 이 아름다운 꽃을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과 연구가 필요합니다. 인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이 사람에게 주는 에너지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거든요.”
꽃이 큰 행복감을 주는 것 같아요.
“꽃으로 뭔가를 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 예쁜 꽃을 멋있게 구현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행복입니다. 물론 수많은 대회에서 1등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감동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소소하게는 제가 만든 꽃다발을 선물했을 때 상대방이 행복하면 저도 같은 감정을 느껴요. 기억에 남는 건 외국에서 200명을 상대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장난식으로 수업을 마치고 나면 제가 만든 꽃다발을 수강생들에게 경매로 내놓거든요. 어떤 분이 50만 원에 그 꽃다발을 사더니 같이 듣는 친구에게 생일선물로 건네더라고요. 저뿐만 아니라 선물 받았던 그 친구, 그리고 수강생 전부 큰 감동을 받았죠. 꽃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른 플로리스트와 차별화된 장점이 있다면.
“물론 많은 작가들도 그렇겠지만, 저는 제 작품에 사용되는 오브제들을 직접 만들어요. 용접부터 나무 재단, 페인팅까지 전부 다요. 원래는 외주업체에 설치물 제작을 맡겼는데 원체 까다롭게 주문을 하다 보니 다들 혀를 내두르더라고요. 차라리 제가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용접을 배워서 설치물들을 만들었죠. 처음엔 엉성하기도 하고 보호장비도 잘 착용하지 않아서 눈화상이 나기도 했어요. 지금은 꽤 잘하는 편이에요.(웃음) 아무리 꽃이 위주인 작업이라 해도 꽃으로만 작품을 만드는 건 한계가 있어요. 꽃과 오브제, 설치물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 시너지 효과가 대단하죠. 저는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는 작업을 하는 거고요. 작품이 완성되면 사진도 제가 직접 촬영합니다. 사진도 처음에는 엉망이었는데 이제는 곧잘 찍어요.”
인테리어나 선물을 위한 꽃을 추천해 주세요.
“봄이라는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달이 바로 4월이죠. 꽃이 피는 풀인 초화류도 좋고, 유리화병에 담을 수 있는 꽃나무들을 추천합니다. 산당화나 목련, 벚꽃이 가장 아름다울 때죠.”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필드에서 뛴다고 하잖아요. 앞으로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 10년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작품 활동이나 전시는 더 오래 할 순 있겠죠. 이젠 저를 모델로 삼아서 해외 진출을 하는 제자들을 양성하고 싶어요. 제가 처음 공부할 때만 해도, 외국에서 선생님을 초빙해 배우거나 자비로 유학 가서 공부를 했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된 상황입니다. 2015년 인터플로라 월드컵을 통해 한국의 꽃 산업을 전 세계가 알게 됐고, 꽃 분야에서는 후진국인 줄 알았던 한국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어요. 물론 개인적인 타이틀로도 영광이긴 하지만, 문화의 흐름 자체를 바꿔놓았으니 후배들에게 있어선 해외로의 진출 경로가 열린 셈이죠.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로 플로리스트들이 전 세계적으로 위상을 드높였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공부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피오니페페 정준호“꽃은 선물의 순수함만 남기죠”꽃은 언젠가 져서 소멸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 플라워 아티스트 정준호는 꽃의 비영속성에 매료됐다고 말한다.
매장을 보니 색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확실히 색깔에 관심이 많은 편이긴 하죠. 눈에 안정감을 주는 파스텔 톤이 인기가 많은데, 저는 시선을 확 사로잡는 원색적인 색감들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꽃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고요. 아무래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특화된 젊은 소비자들에겐 0.1초 만에눈길을 사로잡을 무언가가 필요하니까요.”
플로리스트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원래 순수회화를 전공했어요. 어느 날 작품을 만들다가 꽃을 처음 활용했는데 흥미로웠어요. 미술 재료는 영속적인 게 많은데 꽃은 피고 지는, 비영속적인 속성이 강하잖아요. 예술을 계속 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들던 참이고, 꽃을 제대로 배워 보고 싶어서 영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그 뒤로 플라워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7~8년 전에 이곳에 꽃집을 열게 됐죠.”
남자가 꽃을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요.
“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를 느낀 게 영국에서 유학할 당시에는 학생 중에 남자가 반 이상을 차지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꽃을 배웠을 때는 수강생 중에 저만 남자인 경우가 많았어요. 한국에서는 남자 플로리스트가 블루오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플로리스트들은 대부분 개인 소비자와 접할 일이 많은데 저는 사업체나 공기관과 일을 많이 했던 편이에요. 단지 남자라는 이유 하나라고 일반화하고 싶진 않지만, 규모가 있는 프로젝트들이 여성 플로리스트들에 비해 많이 들어오는 편이긴 합니다.”
공간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군요.
“현재 인스톨레이션, 설치 미술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보니 꽃을 단순히 오브제 하나로 보는 게 아니라 공간 전체를 보려고 해요. 꽃을 활용해 공간과 분위기를 연출하는 쪽에 관심이 많고요. 제 주 특기이면서 앞으로도 쭉 활동하고 싶은 영역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공기관과 꽃을 연계해서 작업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지난해에 콜롬비아 대사관과 협업했어요. 2019 고양 국제 꽃박람회의 콜롬비아 섹션을 꾸미는 일이었습니다. 콜롬비아는 전 세계적으로 꽃을 제일 많이 수출하는 국가 중 하나예요. 10만 송이로 99㎡ 정도 되는 공간을 전부 꽃으로 채우는 작업이었습니다. 3~4일 밤을 샐 정도로 고된 프로젝트였는데, 콜롬비아 대사관 최초로 꽃 박람회 연출상을 탔고 전 세계 트위터에 수상 소식이 올라갔을 때는 뿌듯하더라고요.”
인테리어나 선물을 위한 꽃을 추천해 주세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작약입니다. 매장 이름도 작약을 뜻하는 피오니(peony)와 식물을 뜻하는 페페(pepe)로 지었을 만큼요. 봄은 작약이 가장 많이 피는 때이기도 하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갑갑한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을 새장 오브제에 작약과 다양한 꽃으로 배열해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꽃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선물을 한다면 보통 오래도록 남아 있는 유형의 물건을 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그 사람의 마음보다는 눈에 보이는 게 항상 남아 있으니 그 물건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어요. 선물하는 이의 마음을 가장 순수하게 느끼게 해 주는 것이 바로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꽃은 선물했을 때 가장 아름다웠다가, 금세 시들어 사라지니 그 사람의 마음만 남게 되거든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저는 스스로 플로리스트보다는 플라워 아티스트라고 소개해요.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첨단 기술에 관심이 생겨서, 꽃과 AI를 결합한 작품들을 구상 중이에요. 예를 들면 꽃이 센서에 반응해 마치 애완동물처럼 키울 수 있도록 만드는 거죠. 그래서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어우를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9호(2020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