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중년 덕후, 문화 시장 큰손 되다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우리 사회 주요 소비자인 중년들의 관심사는 돈이 되고 산업이 된다. 그래서일까. 수년째 문화계는 물론 유통업계가 중년 덕후 신드롬에 주목하고 있다. 사진 한국경제DB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9 K팝 굿즈 플리마켓. 사진 한국경제DB]
‘411만4843장.’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2월 21일 발표한 앨범 ‘맵 오브 더 솔(Map of the Soul): 7’의 9일간 판매량이다. 한국 가수 최다 앨범 판매 기록이자, 일대의 사건이다. 특히, 음악을 소장하지 않고, 바로 바로 소비하는 작금의 시대에서 이 같은 음반 판매량은 그들의 팬덤이 얼마나 견고하고, 뜨거운지 고스란히 보여 준다.

실제로 BTS의 경제적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앨범 판매수익 외에도 전 세계 콘서트 투어수익, 각종 광고 및 굿즈 수입 등 ‘한국 최고의 글로벌 문화 상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2018년 현대경제연구원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BTS의 연평균 생산유발 효과는 4조1400억 원으로, 부가가치 유발 효과까지 합치면 5조500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자고로 덕질의 본질은 ‘조건 없는 사랑’이라고 했다. 덕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의 행복과 발전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주저하지 않고 지갑을 꺼낸다. ‘000아, 하고 싶은 거 다해’, ‘꽃길만 걸어’라는 응원은 덤이다.

특히 요즘 팬덤은 ‘내 스타’를 직접 발굴하고 키우는 데 적극적이다. 여기에 물심양면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응원하고, 그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마치 내 가족, 연인이 잘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애틋한 팬심으로 이어지는 것. 이는 곧 팬덤이 소비 시장의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라인프렌즈와 BTS가 협업해 만든 ‘BT21’ 캐릭터. 사진출처 한국경제DB]

최근엔 이러한 팬덤 소비 시장에 지각변동이 생겼다. 바로, 중년 덕후가 부상하고 있는 것. 이들은 대개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액티브 시니어’, ‘오팔세대’로서 나를 위한 소비를 아끼지 않는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고서에 따르면 건강과 레저, 스포츠, 문화 등 시니어 관련 산업 규모가 2010년 27조3800억 원에서 2020년에는 72조8305억 원으로 3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보건복지부는 이 시장이 매년 14% 이상 성장해 2020년이면 125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낙관했다.

오팔세대들은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에서도 핵심 고객으로 부상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온라인 통합 쇼핑플랫폼 SSG닷컴은 지난 2016년 1월 1일부터 지난해 10월 31일까지 약 4년간 연령대별 주문건수 추이를 분석한 결과 50대 이상 고객의 주문 비중이 매년 2~3%포인트씩 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18년 이커머스 기업 옥션도 2014년부터 최근 5년간 연령대별로 구매한 상품 수를 분석한 결과 50~60대가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고 밝힌 바 있다. 60대의 증가율은 이 기간 171%, 50대는 130%에 달했다.

문화소비 큰손으로 떠오른 중년
탄탄한 구매력을 갖춘로 중년 덕후들의 ‘덕질소비’도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 관련 팬덤 소비다.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 기록은 물론이고 관련 음원, 콘서트 티켓, 굿즈 모두 출시하는 즉시 뜨겁게 판매되고 있다.

[<미스터 트롯>에서 최종 5위를 차지한 정동원 군. 특히, 5060세대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사진출처 한국경제 DB]

굿즈는 아이돌, 영화, 드라마, 소설, 애니메이션 등 대중문화 장르의 스타 등을 소재로 만든 일종의 문화 상품을 의미한다. BTS도 굿즈 판매량이 전체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현재 대중문화 속 굿즈 소비 시장은 날로 커지고 있다.

유통업계도 이러한 팬덤을 활용한 상품 및 서비스 판매에 주목하고 있다. 11번가는 지난해 9월 <미스 트롯>의 우승자 ‘송가인 굿즈’를 단독 한정 판매해 눈길을 끌었다. 송가인 굿즈는 당시 온·오프라인 최초로 판매된 것으로 고급 유기 수저세트, 송가인 얼굴이 들어간 ▲소주잔 4개 세트 ▲쿠션 ▲실크 스카프 ▲벨벳 파우치 ▲3단 자동우산 등 다양한 상품들을 판매해 인기를 몰았다.

11번가 관계자는 “송가인 굿즈 주요 소비층은 성별 구분 없이 40~50대가 대부분”이었다며 “선물용으로 20~30대 구매도 이뤄졌으며, 여기에 최근 문화 전반의 트로트 흥행이 더해져 그 폭이 넓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또 “많은 중년들이 온라인에서 공연 티켓, 굿즈, 음반들을 구매하면서 온라인 쇼핑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며 “실제로 굿즈를 구매하기 위해 11번가에 가입하거나 구매 방법을 팬카페에서 공유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 출연자들 팬카페에 들어가 보면 응원하는 가수들의 스케줄 외에도 각종 굿즈 판매처, 티켓 양도, 정모 공지 등 활발한 정보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또한 중년의 팬덤은 공연 시장에서도 두드러진다. 얼마 전 종영한 <미스터 트롯> 전국 콘서트의 경우, 3월 20일 티켓 예매 창이 열림과 동시에 빠르게 좌석이 팔려 나갔으며, 결국 10분 만에 2만 석이 완판 됐다. <미스 트롯> 역시 지난해 5월 6개 도시 공연이 전석 매진되기도 했다.

<미스터 트롯> 전국 콘서트 예매처인 인터파크 관계자는 “의외로 이번 콘서트 예매자 대부분이 20대와 30대가 압도적”이라며 “아마 10대와 20대 예매자들 가운데는 부모를 대신해서 자녀가 예매해 주는 경우가 상당수 될 것으로 추측된다. 경제적으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소득 수준이 타 연령대 대비 높은 중년층이라면 앞으로 문화 소비에 있어서도 앞으로 큰손으로 떠오를 잠재력이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가수 송가인 굿즈들]

11번가 관계자도 “문화소비 관련해서는 뮤지컬 같은 경우, 기본 티켓 가격 등이 높기 때문에 소득 수준이 높은 40~50대가 고정적 지출을 진행해 왔다”며 “다만, 공연 관련 기존 중장년층이 주로 소비하던 분야가 연말 디너쇼 정도였다면, 최근 트로트 열풍으로 콘서트 매출의 상승 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9호(2020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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