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중년은 외롭다.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최근 이런 중년들에게 강력한 진통제가 등장했다. 바로 ‘중년 덕후 신드롬’이다. 과연 그들이 열광하는 이 팬덤 현상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중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정체성에 혼란을 겪곤 한다. 나는 누구이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과연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건지 이런저런 고민들에 사로잡혀 잠 못 이룬 이들도 있을 터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중년의 위기’로 설명한다.
캐나다의 정신분석학자 엘리엇 자크가 1965년 주창한 개념으로, 여기서 중년은 사람이 삶의 유한성에 직면하면서 젊은 시절에 가질 수 있었던 꿈과 목표가 점차 사그라지는 시기라고 정의한다. 실제로 중년들 상당수가 그전까지 인생의 가치나 숭고함과 같은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일에만 매진해 왔다. 그런데 그 목표가 사그라졌을 때 느끼는 허망함과 박탈감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게다가 이런 불안감을 품고 남은 50여 년을 더 산다고 생각하면 암담하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최근 수년째 전 세계적으로 행복한 중년 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뉴노멀 중년’, ‘액티브 중년’, ‘오팔세대’ 등 사회, 경제, 문화, 라이프스타일의 핵심 소비 키워드로 중년이 지목되는 이유다.
이 중 올해의 소비 트렌드로 꼽힌 ‘오팔세대’는 활기찬 인생을 살아가는 신노년층이란 표현으로 ‘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영문 앞 글자를 딴 단어다. 베이비부머를 대표하는 ‘58년생 개띠’의 ‘오팔’과도 동음이다. 이들은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나’를 위한 소비를 아끼지 않는다.
라이나전성기재단이 2018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와 연구·조사한 ‘대한민국 50+세대의 라이프 키워드’에 따르면 50대 이상 세대는 ‘자신에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대로 나열하세요’라는 질문에 53.9%가 ‘나 자신’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이들은 주로 문화 측면에서 활발한 소비력을 보인다. 지난해 서울문화재단이 발표한 ‘2018년 서울시민문화향유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민은 1년 평균 약 12만 원의 문화비를 지출하며 연평균 6~7회 문화 관람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연간 문화 활동 관람률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50대(남성 77%, 여성 88.5%)로 베이비부머의 문화 활동이 두드러진다. 이런 흐름 속에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 <보이스퀸> 등의 TV 프로그램이 중년들 사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일명 ‘중년 덕후 신드롬’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년 덕후 신드롬의 배경은
전문가들은 현재 중년 덕후 신드롬의 배경에 대해 크게 ▲사회·경제적 여유 ▲기대수명의 연장 ▲자기표현의 욕구 ▲대중문화 채널의 다양화 등을 꼽는다. 강보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현재 40~50대 중년층은 젊은 시절부터 대중문화의 수혜를 어느 정도 입은 세대라 할 수 있다”며 “사회·경제적으로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지금 자신이 원하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선택해 즐기고 싶다는 욕망이 어느 정도 투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그러면서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특정 연령대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조금 유연해진 것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며 “예전 같으면 부모 세대나 중년층에게 요구하는 엄숙한 태도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전반적으로 기대수명이 늘면서 나이를 기준으로 해야 할 행동과 그렇지 말아야 할 행동을 구분 짓는 것이 무의미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또한 중장년의 각종 미디어 채널 이용이 활발해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애플리케이션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2018년 4월 기준 50대 이상의 유튜브 총 사용 시간은 51억 분에 달했다. 이는 10대(76억 분), 20대(53억 분)의 사용 시간보다 적지만 30대(42억 분), 40대(38억 분)보다는 높은 수치다. 온라인 기반 시장조사기관인 오픈서베이가 실시한 소셜미디어 이용 관련 설문조사에서도 유튜브는 40대와 50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셜미디어로 여기에 인터넷 커뮤니티 기반이나 모바일을 이용한 투표 참여 등 중장년층이 평소 사용하고 있는 미디어를 통해 팬덤 문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주요했다.
<미스터 트롯>의 열혈 팬인 50대 이진경(가명) 씨는 “본방은 물론, 방송이 끝나고 유튜브나 팬카페 사이트를 통해 보고 싶은 영상을 다시 보기도 하고, 다른 팬들과 소통도 한다”며 “이 과정에서 ‘아, 나랑 똑같은 마음인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새삼 놀랍고, 반가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감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년들의 팬덤 현상 이면에는 중년의 외로움도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개 1970~1980년대 초고속 성장기를 살았던 40~50대들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고민을 할 새 없이 중년을 맞았다. 그러다 보니 중년에 이르러 세상에 홀로 버려진 듯한 외로움은 물론 가슴 속 깊은 곳의 공허한 감정이 불현듯 찾아오기 마련이다. 중년의 이런 감성 변화를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설명하기도 한다.
인간은 생물학적 생존뿐만 아니라 동물과는 달리 문화를 함께 계승하는 것이 생존과 번영에 필수적인데, 인생의 전반부가 생물학적 생존을 위한 시기였다면, 인생의 후반부는 문화를 계승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외로움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게 좋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고,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느껴 보라는 것.
이에 대해 문현선 세종대 공연·영상·애니메이션 대학원 초빙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은 큰 에너지이자,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가령, 가족의 사망이나 출산 및 육아 후유증 등을 겪으면서 감정적인 상실을 마주하기 마련이죠. 그 대안으로 누군가는 종교에 귀의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팬이 되기도 해요. 사람들은 팬덤 문화를 통해 자신과 동일한 감정을 경험하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요. 그것이 감정적인 안정과 균형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세대를 초월한 팬덤 문화
이 밖에도 중년 덕후 현상은 세대 간 가교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부터 분 ‘트로트 열풍’이다. <미스터 트롯>은 전작 <미스 트롯>에 이어 트로트 열풍에 정점을 찍었다. 이후 각종 음원 사이트에 트로트 차트가 신설되는가 하면, <미스터 트롯>에서 선보였던 경연곡이 차트에 오르며 역주행한 곡들이 생겨났다. 무엇보다 그동안 중장년층 전유물로 여겨져 왔던 트로트가 전 세대의 주목을 받으며, 세대를 초월한 팬덤 문화로 번지고 있는 것.
문 교수는 “실제로 평소 원만하지 않았던 가족 관계에서도 동일한 대상을 좋아함으로써 공감대가 형성되고 소통의 기회가 늘어나는 사례가 많다”며 “세대별 팬덤 문화라는 형태로 팬덤을 구별하는 것보다는 ‘팬덤 문화’ 안에서 세대별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세대의 전승과 연속에도 도움이 될 테고 우리 대중문화의 역사에도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 연구원 역시 “몇 년 전 <프로듀스 101> 때에도 ‘엄마와 딸이 함께 원픽을 응원한다’는 이야기를 팬덤 내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며 “청년이든 중년이든 팬덤 문화 자체를 즐긴다면 그 이상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다만 자신이 좋아하는 마음이 앞서 그 이외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가치 절하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성찰하는 태도는 필요해 보인다”고 전했다.
CHECK POINT덕후 관련 용어들덕후
일본어 오타쿠(御宅)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로, 현재는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덕질
‘오타쿠’의 줄임말인 ‘오덕’에서 나온 ‘덕’과 어떠한 행동을 낮추어 부르는 접미사 ‘~질’이 합쳐진 합성어다. 어느 한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관련된 행동을 한다는 의미다.
덕통사고
‘오타쿠’의 줄임말인 ‘오덕’에서 나온 ‘덕’과 ‘교통사고’가 합쳐진 합성어다. 모종의 이유로 갑자기 특정 유명인의 팬이 됨을 의미한다. 동시에 ‘반했다’라는 표현을 차에 치이듯 ‘치였다’고도 표현한다.
머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을 부를 때에 쓰는 말이다. 인터넷상에서는 ‘팬이 아닌 일반인’이나 ‘흔하디흔한 일반인’이라는 표현으로 쓰인다.
어덕행덕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의 줄임말이다. 팬들끼리 덕담처럼 활용하기도 한다.
입덕
만화, 애니메이션 등 덕질에 들어간다는 뜻. 덕후로서 살아가겠다는 뜻.
탈덕
덕후 생활을 끝내다, 덕후에서 벗어난다는 뜻.
휴덕
덕후 생활을 잠시 그만하겠다는 뜻. 흔히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게 정설.
최애
‘최고로 애호하는’이라는 뜻으로 덕질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한다.
차애
‘두 번째로 애정하는’이라는 뜻이다. 최애와 마찬가지로 덕질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한다.
연덕
연예인과 오타쿠의 합성어다. 연예인에게 과도하게 집착한다는 의미다. 유사어로 해외 연예인을 좋아하는 ‘해연덕’이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9호(2020년 04월) 기사입니다.]
중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정체성에 혼란을 겪곤 한다. 나는 누구이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과연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건지 이런저런 고민들에 사로잡혀 잠 못 이룬 이들도 있을 터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중년의 위기’로 설명한다.
캐나다의 정신분석학자 엘리엇 자크가 1965년 주창한 개념으로, 여기서 중년은 사람이 삶의 유한성에 직면하면서 젊은 시절에 가질 수 있었던 꿈과 목표가 점차 사그라지는 시기라고 정의한다. 실제로 중년들 상당수가 그전까지 인생의 가치나 숭고함과 같은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일에만 매진해 왔다. 그런데 그 목표가 사그라졌을 때 느끼는 허망함과 박탈감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게다가 이런 불안감을 품고 남은 50여 년을 더 산다고 생각하면 암담하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최근 수년째 전 세계적으로 행복한 중년 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뉴노멀 중년’, ‘액티브 중년’, ‘오팔세대’ 등 사회, 경제, 문화, 라이프스타일의 핵심 소비 키워드로 중년이 지목되는 이유다.
이 중 올해의 소비 트렌드로 꼽힌 ‘오팔세대’는 활기찬 인생을 살아가는 신노년층이란 표현으로 ‘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영문 앞 글자를 딴 단어다. 베이비부머를 대표하는 ‘58년생 개띠’의 ‘오팔’과도 동음이다. 이들은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나’를 위한 소비를 아끼지 않는다.
라이나전성기재단이 2018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와 연구·조사한 ‘대한민국 50+세대의 라이프 키워드’에 따르면 50대 이상 세대는 ‘자신에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대로 나열하세요’라는 질문에 53.9%가 ‘나 자신’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이들은 주로 문화 측면에서 활발한 소비력을 보인다. 지난해 서울문화재단이 발표한 ‘2018년 서울시민문화향유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민은 1년 평균 약 12만 원의 문화비를 지출하며 연평균 6~7회 문화 관람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연간 문화 활동 관람률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50대(남성 77%, 여성 88.5%)로 베이비부머의 문화 활동이 두드러진다. 이런 흐름 속에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 <보이스퀸> 등의 TV 프로그램이 중년들 사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일명 ‘중년 덕후 신드롬’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년 덕후 신드롬의 배경은
전문가들은 현재 중년 덕후 신드롬의 배경에 대해 크게 ▲사회·경제적 여유 ▲기대수명의 연장 ▲자기표현의 욕구 ▲대중문화 채널의 다양화 등을 꼽는다. 강보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현재 40~50대 중년층은 젊은 시절부터 대중문화의 수혜를 어느 정도 입은 세대라 할 수 있다”며 “사회·경제적으로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지금 자신이 원하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선택해 즐기고 싶다는 욕망이 어느 정도 투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그러면서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특정 연령대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조금 유연해진 것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며 “예전 같으면 부모 세대나 중년층에게 요구하는 엄숙한 태도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전반적으로 기대수명이 늘면서 나이를 기준으로 해야 할 행동과 그렇지 말아야 할 행동을 구분 짓는 것이 무의미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또한 중장년의 각종 미디어 채널 이용이 활발해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애플리케이션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2018년 4월 기준 50대 이상의 유튜브 총 사용 시간은 51억 분에 달했다. 이는 10대(76억 분), 20대(53억 분)의 사용 시간보다 적지만 30대(42억 분), 40대(38억 분)보다는 높은 수치다. 온라인 기반 시장조사기관인 오픈서베이가 실시한 소셜미디어 이용 관련 설문조사에서도 유튜브는 40대와 50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셜미디어로 여기에 인터넷 커뮤니티 기반이나 모바일을 이용한 투표 참여 등 중장년층이 평소 사용하고 있는 미디어를 통해 팬덤 문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주요했다.
<미스터 트롯>의 열혈 팬인 50대 이진경(가명) 씨는 “본방은 물론, 방송이 끝나고 유튜브나 팬카페 사이트를 통해 보고 싶은 영상을 다시 보기도 하고, 다른 팬들과 소통도 한다”며 “이 과정에서 ‘아, 나랑 똑같은 마음인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새삼 놀랍고, 반가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감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년들의 팬덤 현상 이면에는 중년의 외로움도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개 1970~1980년대 초고속 성장기를 살았던 40~50대들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고민을 할 새 없이 중년을 맞았다. 그러다 보니 중년에 이르러 세상에 홀로 버려진 듯한 외로움은 물론 가슴 속 깊은 곳의 공허한 감정이 불현듯 찾아오기 마련이다. 중년의 이런 감성 변화를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설명하기도 한다.
인간은 생물학적 생존뿐만 아니라 동물과는 달리 문화를 함께 계승하는 것이 생존과 번영에 필수적인데, 인생의 전반부가 생물학적 생존을 위한 시기였다면, 인생의 후반부는 문화를 계승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외로움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게 좋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고,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느껴 보라는 것.
이에 대해 문현선 세종대 공연·영상·애니메이션 대학원 초빙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은 큰 에너지이자,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가령, 가족의 사망이나 출산 및 육아 후유증 등을 겪으면서 감정적인 상실을 마주하기 마련이죠. 그 대안으로 누군가는 종교에 귀의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팬이 되기도 해요. 사람들은 팬덤 문화를 통해 자신과 동일한 감정을 경험하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요. 그것이 감정적인 안정과 균형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세대를 초월한 팬덤 문화
이 밖에도 중년 덕후 현상은 세대 간 가교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부터 분 ‘트로트 열풍’이다. <미스터 트롯>은 전작 <미스 트롯>에 이어 트로트 열풍에 정점을 찍었다. 이후 각종 음원 사이트에 트로트 차트가 신설되는가 하면, <미스터 트롯>에서 선보였던 경연곡이 차트에 오르며 역주행한 곡들이 생겨났다. 무엇보다 그동안 중장년층 전유물로 여겨져 왔던 트로트가 전 세대의 주목을 받으며, 세대를 초월한 팬덤 문화로 번지고 있는 것.
문 교수는 “실제로 평소 원만하지 않았던 가족 관계에서도 동일한 대상을 좋아함으로써 공감대가 형성되고 소통의 기회가 늘어나는 사례가 많다”며 “세대별 팬덤 문화라는 형태로 팬덤을 구별하는 것보다는 ‘팬덤 문화’ 안에서 세대별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세대의 전승과 연속에도 도움이 될 테고 우리 대중문화의 역사에도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 연구원 역시 “몇 년 전 <프로듀스 101> 때에도 ‘엄마와 딸이 함께 원픽을 응원한다’는 이야기를 팬덤 내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며 “청년이든 중년이든 팬덤 문화 자체를 즐긴다면 그 이상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다만 자신이 좋아하는 마음이 앞서 그 이외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가치 절하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성찰하는 태도는 필요해 보인다”고 전했다.
CHECK POINT덕후 관련 용어들덕후
일본어 오타쿠(御宅)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로, 현재는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덕질
‘오타쿠’의 줄임말인 ‘오덕’에서 나온 ‘덕’과 어떠한 행동을 낮추어 부르는 접미사 ‘~질’이 합쳐진 합성어다. 어느 한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관련된 행동을 한다는 의미다.
덕통사고
‘오타쿠’의 줄임말인 ‘오덕’에서 나온 ‘덕’과 ‘교통사고’가 합쳐진 합성어다. 모종의 이유로 갑자기 특정 유명인의 팬이 됨을 의미한다. 동시에 ‘반했다’라는 표현을 차에 치이듯 ‘치였다’고도 표현한다.
머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을 부를 때에 쓰는 말이다. 인터넷상에서는 ‘팬이 아닌 일반인’이나 ‘흔하디흔한 일반인’이라는 표현으로 쓰인다.
어덕행덕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의 줄임말이다. 팬들끼리 덕담처럼 활용하기도 한다.
입덕
만화, 애니메이션 등 덕질에 들어간다는 뜻. 덕후로서 살아가겠다는 뜻.
탈덕
덕후 생활을 끝내다, 덕후에서 벗어난다는 뜻.
휴덕
덕후 생활을 잠시 그만하겠다는 뜻. 흔히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게 정설.
최애
‘최고로 애호하는’이라는 뜻으로 덕질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한다.
차애
‘두 번째로 애정하는’이라는 뜻이다. 최애와 마찬가지로 덕질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한다.
연덕
연예인과 오타쿠의 합성어다. 연예인에게 과도하게 집착한다는 의미다. 유사어로 해외 연예인을 좋아하는 ‘해연덕’이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9호(2020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