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세계 경제 '우환'되나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한 폐렴)’의 공포가 일파만파 퍼지며 중국 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 2003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에 비해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폭 커진 만큼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는 올해 세계 경제의 최대 우환(憂患)이 될 전망이다.
‘블랙스완(black swan)’은 발생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일단 일어나면 엄청난 충격과 부정적 파급효과를 초래하는 사건을 뜻한다. 이 용어는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미국 뉴욕대 교수가 2007년 월가의 허상을 파헤친 <블랙스완(The Black Swan)>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면서 경제 분야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1697년 호주에서 검은색 백조를 처음 발견하기 전까지 유럽인들은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고 생각해 왔다. 당시 발견으로 블랙스완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상황이 실제 발생하는 것’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돼 왔다.
블랙스완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들 수 있다. 2007년 발생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에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이 어려움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1929년 발생했던 대공황에 버금가는 전 세계적인 경제 혼란을 야기했다. 당시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전혀 없었다.
◆중국 경제, 블랙스완 우려
‘코로나19’가 중국 경제의 블랙스완이 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우한 폐렴이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장밋빛 꿈’에 부풀었던 중국 경제에 최대의 악재가 되고 있다. 실제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춘제(음력 설) 연휴(1월 24~30일)를 앞두고 2개의 경제 성과를 달성한 것에 매우 고무된 모습을 보였다.
첫째는 지난해 1인당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7만892위안(1만276달러)을 기록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1만 달러는 세계은행(WB) 기준으로 고소득 국가(1만2375달러)에 바짝 다가선 ‘중상위 소득 국가’ 수준이다. 시 주석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공언해 왔기 때문에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돌파는 사실상 목표 달성에 근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지난해 중국 GDP 성장률이 6.1%를 기록한 것이다. 중국 정부가 미국 정부와 무역전쟁에도 불구하고 당초 정했던 6.0∼6.5%의 경제성장률 목표치 달성에 성공한 셈이다. 시 주석과 공산당 지도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와 보호무역주의 정책 등의 압박을 견디면서 나름대로 선방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시 주석은 내년에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고, 중국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6%대를 지키는 ‘바오류(保六)’를 위한 청사진을 짜는 작업에 몰두해 왔다.
그런데 난데없이 발생한 코로나19가 중국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가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12월 30일 세계보건기구(WHO)에 처음으로 공식 보고한 이후 최근까지 코로나19에 감염된 중국의 확진 환자와 사망자는 사스보다 훨씬 많다. 사스는 2002년 11월 중국 광둥성에서 시작돼 2003년 7월까지 37개국으로 확산돼 8096명이 감염됐고, 774명이 사망했다. 중국에선 5327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 중 349명이 숨졌다. 코로나19는 사스에 비해 치사율은 낮지만 전염력이 훨씬 강한 데다, 대규모 인구 이동이 일어나는 중국 춘제 기간을 틈타 중국 내외로 빠르게 전파됐기 때문에 환자와 사망자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국제 보건 전문가들 중 상당수는 환자 수가 앞으로 1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사스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 피해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기 때문이다. 2003년에만 해도 중국 경제 규모가 세계 6~7위에 머물고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 수준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미국에 이은 세계 2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비중도 16~17%에 달한다. 시 주석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악마다”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 피해, 사스 ‘253억 달러’ vs 코로나19 ‘?’
네덜란드계 금융기관 ING의 로버트 카넬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003년 당시 중국의 경제 규모는 2조 달러(2357조 원)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4조 달러(1경6501조 원)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베이징대 중국경제연구센터가 내놓은 2004년 보고서에 따르면 사스로 인한 중국 경제의 피해액은 253억 달러에 달했다. 당시 중국 GDP 성장률은 1~2%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추정됐다.
중국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분야는 관광 등 서비스 산업이다. 서비스 산업은 사스 때보다 비중이 더욱 커졌기 때문에 이번 코로나19에 따른 피해 규모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서비스 산업의 GDP 대비 비중은 2003년 39%였는데, 지난해에는 59.4%를 차지했다. 실제로 코로나19는 중국의 서비스 산업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중국 정부의 국내외 단체관광 금지 조치에 따라 주요 관광지들은 이미 폐쇄됐다. 최대 관광지인 베이징의 자금성을 비롯해 만리장성의 바다링(八達嶺)을 포함한 일부 구간이 폐쇄됐다. 시안의 인기 관광지인 진시황릉 병마용, 항저우의 서호, 상하이 디즈니랜드 등 각 지역마다 많은 사람이 몰리는 관광지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게다가 영화관을 비롯해 뮤지컬이나 음악회 등이 열리는 각종 공연장들도 휴업에 들어갔다. 또 식당, 쇼핑몰, 백화점, 호텔 등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중국 국민들은 대부분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가계소비와 맞물린 서비스 산업이 지속적으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스위스 은행인 UBS는 “코로나19가 단기간에 잡히지 않으면 올해 1분기와 2분기를 중심으로 중국의 소매 매출과 관광, 호텔 등 서비스 산업이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중국 전문 연구기관인 플리넘(Plenum)은 “코로나19로 인해 서비스 산업이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 중국의 1분기 GDP 성장률이 최대 4%포인트 하락한 2%대를 기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서비스 산업이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 대규모 실업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황이핑 베이징대 교수는 “코로나19의 가장 직접적 영향은 집 밖을 나서는 사람이 줄어 서비스 상품을 포함한 소비가 감소하는 것”이라며 “집 밖에 나가지 않으면 생산과 투자에도 반드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을 지낸 황 교수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소비와 투자, 생산 등 경제 전반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는 실업 증가 등으로 이어져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2018년을 기준으로 서비스 산업 종사자가 3억6000만 명이었는데, 만일 이 가운데 5%가 일자리를 잃는다면 2000만 명이 실업자가 되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는 대량 해고 사태로 인한 사회 불안을 가장 우려해 왔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그동안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경제성장률 6%를 유지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잘해야 5%대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스 때 중국의 2003년 1분기 경제성장률은 11.1%였지만, 2분기는 9.1%를 기록하며 급속히 둔화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통화 완화 등 부양정책을 통해 3분기 성장률을 10%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2003년은 중국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였지만 지금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톈레이 황 미국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애널리스트는 “현재 중국은 대규모 재정적자 상태”라면서 “사스 때처럼 경기 부양을 시도할 여지가 줄었다”고 지적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도 “코로나19로 미·중 1단계 무역합의가 무색한 결과를 낳게 될 수 있다”면서 “중국 정부가 코로나19를 빠르게 통제하지 못하면 단기적으로 내수시장이 침체되고, 중기적으로 전 산업이 타격을 받게 되며, 장기적으로 경기 침체에 빠질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영국의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은 “중국의 올해 실질 GDP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얼라이언스 번스타인은 “중국 정부가 3개월 내에 코로나19를 통제한다면 경제성장률은 0.8%포인트, 9개월간 지속된다면 1.9%포인트 하락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중국의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소비의 급격한 둔화가 예상된다”면서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2%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올해 내내 코로나19가 수습되지 않을 경우 중국 경제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사이몬 뱁티스트 EIU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가 올해 말까지 지속되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4%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IHS마킷은 “코로나19가 중국 경제에 블랙스완이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도 “우한 폐렴이 중국 경제에 올해 첫 블랙스완이 될 수 있으며, 취약한 중국 경제를 교란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중국은 이른바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질 수도 있다. 중진국 함정이란 개발도상국이 중진국 수준에 도달한 후 어느 순간에 성장이 장기간 정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코로나19로 자칫하면 시 주석의 ‘중국몽(夢)’이 일장춘몽이 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19로 중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경우 세계 경제가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는 점이다. 배리 아이켄그린 미국 UC버클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제 더 이상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 중국에만 머물지 않는다”며 “거대한 경제주체가 된 중국은 세계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의 자회사인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에서 2.5%로 하향 조정했다. 영국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3%로 낮췄다. 영국 싱크탱크인 해외개발연구소(ODI)는 사스로 인한 세계 경제 피해액이 500억 달러(59조 원)였다면 코로나19로 인한 피해액은 3600억 달러(427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특히 중국의 부품 공장들의 생산이 장기간 중단되는 등 세계 공급 사슬망(global supply chain)이 붕괴될 경우 한국을 비롯해 중국에 의존해 온 각국이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경제가 나빠지면 가장 피해를 볼 국가로 한국을 꼽았다. FT는 “역사상 최초로 미국이 아닌 중국으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며 “최근 4차례의 세계적 경기 침체는 미국 소비자 위축으로 촉발됐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중국 소비자가 지갑을 닫기 시작하면 중국과의 무역과 중국인 관광객 유치로 성장해 온 세계 경제에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우한 폐렴(코로나19)이 올해 세계 경제의 최대 우환(憂患)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8호(2020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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