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양보라 여행전문기자]등산 왕초보가 우리나라 최고봉 한라산(1950m)을,
그것도 겨울에 올랐다. 감히 말한다. 겨울 한라산 등반은 별것 아니었고 한라산 설경은 정녕 별것이었다고. 도시에서 하이힐 신고 다닐 체력만 있으면 백화점 크리스마스트리보다 더 반짝거리는 흰 눈꽃을 볼 수 있다고 말이다.
한경 머니에 산행기를 연재하는 건 월 1회 이상 산으로 향하는 2600만여 명(한국리서치, 2019년)의 등산 고수를 위해서가 아니다. 등산보다 쇼핑이 훨씬 재미있는 여가 활동이라 굳게 믿는, 아직 겨울 한라산을 경험하지 못한 나와 비슷한 이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알려 주고자 함이다.
신발장 깊숙이 박아 둔 등산화를 만지작거리게 만드는 풍경이 있었다. 겨울 딱 한 시즌 볼 수 있는 한라산 눈꽃이다. 한라산은 겨우내 하얗게 센 정수리를 이고 있다. 그 속에 들어서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 나뭇가지마다 엉겨 붙은 두툼한 상고대가 보인다는데, 그 하얀 세상은 지금까지 오로지 사진으로만 접할 뿐이었다.
한라산은 덕유산이나 설악산같이 케이블카가 연결되지도 않아 애초 그 풍경을 실제로 볼 생각은 접어 뒀다. “하이힐 신을 체력이 있으면 한라산 오르는 데 문제가 없다”는 자칭 타칭 한라산 전문가 이원근 승우여행사 대표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라산을 100번쯤 올랐다는 이 팀장은 한라산 분화구를 바라보면서 걷는 5개 코스 중 백록담 등반을 목적으로 삼는 성판악 코스 말고, 백록담 기준 남서쪽에서 출발하는 영실 코스를 추천했다. 이 코스라면 등산 초보도 ‘손쉽게’ 한라산 산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또 영실 코스는 등산하는 내내 반짝거리는 눈꽃을 감상하기도 제격이란다. 여자라면 안다.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눈앞에 있다면 서너 시간쯤 힐을 신고 백화점을 누벼도 끄떡없다는 사실을. 그렇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해발 1000m에서 ‘택시’를 외치다
영실 코스를 타는 한라산 산행은 풍문으로 들어 온 것과 다른 점이 많았다. 먼저 출발 시각. 한라산에 오르려면 새벽녘에 출발해 늦은 오후에나 하산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번 여행은 아침나절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아침에 사우나도 가고 호텔 조식도 먹었다. 성판악 코스는 입산에서 하산까지 장장 10시간이 걸리지만, 영실 코스는 왕복 4~5시간만 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겨울 산행은 복장도 남달라야 할 것 같았는데 이 팀장은 평소 입는 방한복 그대로 입으라고 주문했다. 고어텍스 등 고가의 등산복 대신 겨우내 입던 패딩 점퍼를 걸쳤다. 딱 한 가지, 등산화에 끼는 아이젠은 따로 준비했다. 백상아리 이빨처럼 생긴 아이젠은 발이 미끄러지지 않고 눈밭을 거침없이 걷게 하는 등산용품이다. 등산 전날 제주시에서 3만 원에 장만했다.
나름 만만의(?) 준비를 하고 드디어 한라산 등반을 위해 렌터카로 이동했다. 영실 코스는 해발 1000m 영실탐방안내소에서 시작해 영실휴게소(해발 1280m)~병풍바위(1600m)~윗세오름(1700m)~남벽분기점(1600m)까지 8.2km 이어진다. ‘해발 1700m까지 딱 700m만 고생해서 오르자’고 생각했는데, 케이블카보다 반가운 문명 세계가 보였다.
택시다. 영실탐방안내소에서 영실휴게소까지 2.4㎞ 구간(해발 1280m)은 서귀포시에서 특별 허가를 받은 택시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택시비는 1명이 타든 4명이 타든 편도 1만 원이다. 스터드 타이어, 일명 못 박은 타이어를 장착한 택시는 눈길을 거침없이 달렸다. 혹여 여행에 동행한 이들이 4명에 미달해도, 초과해도 걱정 마시라. 택시를 기다리는 등산객이 알아서 4명씩 짝지어 사이좋게 승차하는 미덕이 있다. 챙길 건 등산스틱 말고 컵라면이더라
영실휴게소부터 본격 등산 코스로 진입했다. 서울에 영하 10도 한파가 몰아치던 날 영상 8도의 제주는 빠르게 걸으면 땀이 날 정도였다. 그래도 1000m 고도를 넘어서니 수은주는 영하 4도로 떨어졌다. 서늘한 기운을 느낄 새 없이 영실 코스 최대 난관 병풍바위 경사 구간이 드러났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는 영실분화구 능선을 따라 걷는 이 구간의 난이도를 A등급(어려움)으로 책정했다. 영실 코스 나머지 구간은 전부 C등급(쉬움)이다.
C등급 구간을 걸을 때는 콧노래마저 흘러 나왔는데, 과연 난이도A는 만만한 게 아니었다. 가파른 경사를 한 발 한 발 오르니 금세 숨이 찼고,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새 없이 식었다. 다른 등산객은 고도가 높아지면서 점점 트이는 시야에 환호했지만, 훤히 드러난 한라산 오름 군락, 또렷이 보이는 서귀포시 전망에 감동할 여유가 없었다. 40분간 직선거리로는 1.5km를 올랐고 해발고도는 1300m에서 1550m로 높아졌다. 터질 듯한 심장을 달래려 큰 숨을 몰아쉬었다. 이 구간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의심이 깊어질 무렵, 푸릇푸릇했던 사위는 어느새 새하얀 세상으로 변했다. 딱 40분 고생하고 나니 어느덧 병풍바위 위에 올라선 것이다.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40분. 잡생각을 했어도 금세 흘렀을 그 시간을 견딘 덕분에 제법 한라산 등산객의 태가 났다. 이제 고위평탄면 같은 산속의 대지를 타박타박 걸어가기만 하면 됐다.
긴장이 누그러지자 풍경이 눈에 와 박혔다. 문외한인 내게도 왜 한라산이 우리나라 최고의 눈꽃 여행지로 꼽히는지 알 만했다. 한라산 눈꽃은 왜소하지 않고 화려했다. 한라산에 자생하는 우리나라 고유종 구상나무는 한겨울에도 푸른 잎을 떨구지 않는 상록수인데 구상나무 잎사귀에 상고대가 얼어 미러볼처럼 보였다. 눈 세상은 생각보다 풍광이 다채로웠다. 구상나무 군락지는 눈 조명을 잔뜩 달아 놓은 터널같이 아기자기했다. 한라산 정상 분화구 주변은 시야를 가리는 나무 한 그루 없이 허연 대지가 드러나 시원했다.
하얀 산 아래 하얀 구름을 내려다봤다. 두 발로 이 산에 오르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고생한 것 치고, 주어진 선물이 크다고 생각했다. 눈꽃을 배경 삼아 인증샷을 남기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업로드하며 ‘한라산’을 태그했다.
숲길을 걷는 것처럼 뽀드득뽀드득 눈길을 밟고 목적지 윗세오름에 도착했다. 영실 코스는 윗세오름부터 남벽분기점까지 이어지지만, 방향을 틀어 한라산 정상 기준 북서쪽 어리목 코스로 하산하기로 했다. 해발 1700m 윗세오름대피소 매점에 들러 컵라면으로 생애 최초 한라산 등반을 자축하기로 했다. 웬걸. 매점 문은 굳게 닫혔다. 애석하게도 매점 직원들이 파업에 돌입한 때였다. 아뿔싸. 컵라면에 뜨거운 물까지 챙겨와 후루룩후루룩 라면을 먹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 순간 라면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었다. 코를 찌르는 라면의 감칠맛 나는 냄새에 왠지 서럽기도 했다. 라면을 먹어야 한라산 등산의 완성이라는데, 아직 나의 겨울 한라산은 미완성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다시 산을 오르겠노라고. 눈꽃 풍경도, 꿀맛 라면도 오른 자의 몫이므로. 다음 번 겨울 한라산 등정에는 컵라면 하나 갖고는 부족하겠다.
양보라 여행전문기자는…
단연코 여행의 재미는 소비에 있으며 온갖 살 것이 넘치는 메트로폴리탄이야말로 궁극의 여행지라고 믿어 왔다. 인생의 분기점을 넘은 것인지, 자연으로 파고드는 여정이 즐거워졌다. 이제 막 걷기 여행의 매력에 눈을 뜬 초보 트레커다. 걸어보지 않고는 못 배길 국내외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를 소개할 예정이다. 중앙일보와 월간지 트래비 여행 기자로 글을 써 왔다.
[여행 정보]한라산 정상 부근까지 닿는 등산 코스는 모두 5개. 영실휴게소부터 윗세오름까지 걷는 영실 코스는 편도 1시간 30분 거리로 가장 난도가 낮다. 한라산 입산 전 한라산국립공원 홈페이지(hallasan.go.kr)를 통해 통제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눈이 많이 내리면 입산이 금지되는 경우가 있다. 또 2020년 2월부터는 한라산을 등반하려면 사전에 예약해야 한다. 한라산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의 경우 사전 탐방 예약제가 시범 운영되기 때문이다. 한편, 한라산 여행에는 꼭 가져가야 하는 준비물이 있다. 미끄럼을 방지하는 아이젠. 그리고 마실 물과 허기짐을 채워 줄 간식이다. 눈에 반사된 햇볕에 그을릴 수 있으니 선크림도 꼭 챙기시라.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6호(2020년 01월) 기사입니다.]
그것도 겨울에 올랐다. 감히 말한다. 겨울 한라산 등반은 별것 아니었고 한라산 설경은 정녕 별것이었다고. 도시에서 하이힐 신고 다닐 체력만 있으면 백화점 크리스마스트리보다 더 반짝거리는 흰 눈꽃을 볼 수 있다고 말이다.
한경 머니에 산행기를 연재하는 건 월 1회 이상 산으로 향하는 2600만여 명(한국리서치, 2019년)의 등산 고수를 위해서가 아니다. 등산보다 쇼핑이 훨씬 재미있는 여가 활동이라 굳게 믿는, 아직 겨울 한라산을 경험하지 못한 나와 비슷한 이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알려 주고자 함이다.
신발장 깊숙이 박아 둔 등산화를 만지작거리게 만드는 풍경이 있었다. 겨울 딱 한 시즌 볼 수 있는 한라산 눈꽃이다. 한라산은 겨우내 하얗게 센 정수리를 이고 있다. 그 속에 들어서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 나뭇가지마다 엉겨 붙은 두툼한 상고대가 보인다는데, 그 하얀 세상은 지금까지 오로지 사진으로만 접할 뿐이었다.
한라산은 덕유산이나 설악산같이 케이블카가 연결되지도 않아 애초 그 풍경을 실제로 볼 생각은 접어 뒀다. “하이힐 신을 체력이 있으면 한라산 오르는 데 문제가 없다”는 자칭 타칭 한라산 전문가 이원근 승우여행사 대표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라산을 100번쯤 올랐다는 이 팀장은 한라산 분화구를 바라보면서 걷는 5개 코스 중 백록담 등반을 목적으로 삼는 성판악 코스 말고, 백록담 기준 남서쪽에서 출발하는 영실 코스를 추천했다. 이 코스라면 등산 초보도 ‘손쉽게’ 한라산 산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또 영실 코스는 등산하는 내내 반짝거리는 눈꽃을 감상하기도 제격이란다. 여자라면 안다.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눈앞에 있다면 서너 시간쯤 힐을 신고 백화점을 누벼도 끄떡없다는 사실을. 그렇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해발 1000m에서 ‘택시’를 외치다
영실 코스를 타는 한라산 산행은 풍문으로 들어 온 것과 다른 점이 많았다. 먼저 출발 시각. 한라산에 오르려면 새벽녘에 출발해 늦은 오후에나 하산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번 여행은 아침나절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아침에 사우나도 가고 호텔 조식도 먹었다. 성판악 코스는 입산에서 하산까지 장장 10시간이 걸리지만, 영실 코스는 왕복 4~5시간만 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겨울 산행은 복장도 남달라야 할 것 같았는데 이 팀장은 평소 입는 방한복 그대로 입으라고 주문했다. 고어텍스 등 고가의 등산복 대신 겨우내 입던 패딩 점퍼를 걸쳤다. 딱 한 가지, 등산화에 끼는 아이젠은 따로 준비했다. 백상아리 이빨처럼 생긴 아이젠은 발이 미끄러지지 않고 눈밭을 거침없이 걷게 하는 등산용품이다. 등산 전날 제주시에서 3만 원에 장만했다.
나름 만만의(?) 준비를 하고 드디어 한라산 등반을 위해 렌터카로 이동했다. 영실 코스는 해발 1000m 영실탐방안내소에서 시작해 영실휴게소(해발 1280m)~병풍바위(1600m)~윗세오름(1700m)~남벽분기점(1600m)까지 8.2km 이어진다. ‘해발 1700m까지 딱 700m만 고생해서 오르자’고 생각했는데, 케이블카보다 반가운 문명 세계가 보였다.
택시다. 영실탐방안내소에서 영실휴게소까지 2.4㎞ 구간(해발 1280m)은 서귀포시에서 특별 허가를 받은 택시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택시비는 1명이 타든 4명이 타든 편도 1만 원이다. 스터드 타이어, 일명 못 박은 타이어를 장착한 택시는 눈길을 거침없이 달렸다. 혹여 여행에 동행한 이들이 4명에 미달해도, 초과해도 걱정 마시라. 택시를 기다리는 등산객이 알아서 4명씩 짝지어 사이좋게 승차하는 미덕이 있다. 챙길 건 등산스틱 말고 컵라면이더라
영실휴게소부터 본격 등산 코스로 진입했다. 서울에 영하 10도 한파가 몰아치던 날 영상 8도의 제주는 빠르게 걸으면 땀이 날 정도였다. 그래도 1000m 고도를 넘어서니 수은주는 영하 4도로 떨어졌다. 서늘한 기운을 느낄 새 없이 영실 코스 최대 난관 병풍바위 경사 구간이 드러났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는 영실분화구 능선을 따라 걷는 이 구간의 난이도를 A등급(어려움)으로 책정했다. 영실 코스 나머지 구간은 전부 C등급(쉬움)이다.
C등급 구간을 걸을 때는 콧노래마저 흘러 나왔는데, 과연 난이도A는 만만한 게 아니었다. 가파른 경사를 한 발 한 발 오르니 금세 숨이 찼고,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새 없이 식었다. 다른 등산객은 고도가 높아지면서 점점 트이는 시야에 환호했지만, 훤히 드러난 한라산 오름 군락, 또렷이 보이는 서귀포시 전망에 감동할 여유가 없었다. 40분간 직선거리로는 1.5km를 올랐고 해발고도는 1300m에서 1550m로 높아졌다. 터질 듯한 심장을 달래려 큰 숨을 몰아쉬었다. 이 구간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의심이 깊어질 무렵, 푸릇푸릇했던 사위는 어느새 새하얀 세상으로 변했다. 딱 40분 고생하고 나니 어느덧 병풍바위 위에 올라선 것이다.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40분. 잡생각을 했어도 금세 흘렀을 그 시간을 견딘 덕분에 제법 한라산 등산객의 태가 났다. 이제 고위평탄면 같은 산속의 대지를 타박타박 걸어가기만 하면 됐다.
긴장이 누그러지자 풍경이 눈에 와 박혔다. 문외한인 내게도 왜 한라산이 우리나라 최고의 눈꽃 여행지로 꼽히는지 알 만했다. 한라산 눈꽃은 왜소하지 않고 화려했다. 한라산에 자생하는 우리나라 고유종 구상나무는 한겨울에도 푸른 잎을 떨구지 않는 상록수인데 구상나무 잎사귀에 상고대가 얼어 미러볼처럼 보였다. 눈 세상은 생각보다 풍광이 다채로웠다. 구상나무 군락지는 눈 조명을 잔뜩 달아 놓은 터널같이 아기자기했다. 한라산 정상 분화구 주변은 시야를 가리는 나무 한 그루 없이 허연 대지가 드러나 시원했다.
하얀 산 아래 하얀 구름을 내려다봤다. 두 발로 이 산에 오르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고생한 것 치고, 주어진 선물이 크다고 생각했다. 눈꽃을 배경 삼아 인증샷을 남기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업로드하며 ‘한라산’을 태그했다.
숲길을 걷는 것처럼 뽀드득뽀드득 눈길을 밟고 목적지 윗세오름에 도착했다. 영실 코스는 윗세오름부터 남벽분기점까지 이어지지만, 방향을 틀어 한라산 정상 기준 북서쪽 어리목 코스로 하산하기로 했다. 해발 1700m 윗세오름대피소 매점에 들러 컵라면으로 생애 최초 한라산 등반을 자축하기로 했다. 웬걸. 매점 문은 굳게 닫혔다. 애석하게도 매점 직원들이 파업에 돌입한 때였다. 아뿔싸. 컵라면에 뜨거운 물까지 챙겨와 후루룩후루룩 라면을 먹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 순간 라면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었다. 코를 찌르는 라면의 감칠맛 나는 냄새에 왠지 서럽기도 했다. 라면을 먹어야 한라산 등산의 완성이라는데, 아직 나의 겨울 한라산은 미완성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다시 산을 오르겠노라고. 눈꽃 풍경도, 꿀맛 라면도 오른 자의 몫이므로. 다음 번 겨울 한라산 등정에는 컵라면 하나 갖고는 부족하겠다.
양보라 여행전문기자는…
단연코 여행의 재미는 소비에 있으며 온갖 살 것이 넘치는 메트로폴리탄이야말로 궁극의 여행지라고 믿어 왔다. 인생의 분기점을 넘은 것인지, 자연으로 파고드는 여정이 즐거워졌다. 이제 막 걷기 여행의 매력에 눈을 뜬 초보 트레커다. 걸어보지 않고는 못 배길 국내외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를 소개할 예정이다. 중앙일보와 월간지 트래비 여행 기자로 글을 써 왔다.
[여행 정보]한라산 정상 부근까지 닿는 등산 코스는 모두 5개. 영실휴게소부터 윗세오름까지 걷는 영실 코스는 편도 1시간 30분 거리로 가장 난도가 낮다. 한라산 입산 전 한라산국립공원 홈페이지(hallasan.go.kr)를 통해 통제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눈이 많이 내리면 입산이 금지되는 경우가 있다. 또 2020년 2월부터는 한라산을 등반하려면 사전에 예약해야 한다. 한라산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의 경우 사전 탐방 예약제가 시범 운영되기 때문이다. 한편, 한라산 여행에는 꼭 가져가야 하는 준비물이 있다. 미끄럼을 방지하는 아이젠. 그리고 마실 물과 허기짐을 채워 줄 간식이다. 눈에 반사된 햇볕에 그을릴 수 있으니 선크림도 꼭 챙기시라.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6호(2020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