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알아야 할 IT 트렌드 ⑥ 완성차 vs IT, 자율주행 패권경쟁
입력 2019-12-30 04:55:43
수정 2019-12-30 04:55:43
[한경 머니=정순인 LG전자 책임연구원·<당신이 잊지 못할 강의> 저자] “미래를 예측하는 최고의 방법은 미래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당연한 1등은 없다. 1998년부터 13년간 세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1위였던 노키아. 지금 어린 학생들은 이름도 잘 모른다. 지금 치열하게 미래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분야 ‘자율주행 자동차’. 과연 자율주행차의 주도권은 누가 잡게 될까.
빅데이터와 5G를 건 싸움
자율주행은 결국 빅데이터다. 자율주행차와 외부 요소가 주고받는 데이터가 자율주행을 결정한다. 자율주행차 외부 요소는 교통 시스템, 다른 차량, 도로 환경 등 무궁무진하다. 자율주행차에는 여러 대의 카메라가 탑재돼 이 외부 요소들을 감지한다. 자율주행차가 주행할 때 전방카메라에 다양한 이미지가 찍힌다. 보행자, 다른 차량, 신호등, 건물, 장애물, 동물 등 말이다.
자율주행차는 이 이미지 데이터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분석해서 유의미한 데이터 정보를 얻어 놔야 한다. 교통 체증이 예상되는 지점에 왔는데 계속 직진해도 되는지, 옆 차가 차선 변경을 시도하는데 이 시점에 속도를 줄여야 하는지, 1분 후 전방 장애물이 예상되지는 않는지, 이 정도 폭우라면 앞 차와의 간격을 어느 정도로 유지해야 하는지 등의 정보가 자율주행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와 외부 요소는 이 정보를 서로 주고받으며 통신한다. 상호 통신을 통해서 안전하고 정확한 자율주행이 가능해진다. 이런 이미지 데이터를 최대한 다양하게 수집·분석하고 학습해 외부 요소와 상호 공유하는 것이 자율주행의 생명이기에 자율주행은 결국 빅데이터라고 말할 수 있다. 빅데이터에 더해 자율주행을 위해서는 도로, 차, 관제 시스템 등을 모두 제어할 수 있는 통신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이 기술을 V2X(Vehicle to X: 차량과 모든 사물 간 통신)라 한다. 학계에서는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약 90분 동안 달리면 약 4테라바이트(TB)의 데이터가 생성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방대한 데이터를 끊김 없이 수집-분석-전달-공유하기 위해서는 5세대(5G)가 필요하다. 기존의 LTE(Long Term Evolution)로는 이 과정에 필요한 속도와 정확도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5G V2X는 이동통신망을 통해 다른 차량, 관제센터, 신호 시스템과 실시간으로 교통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전방 사고 등에 차량이 미리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단연 정보기술(IT)업체가 잘하는 분야다.
자율주행 기술의 높은 진입장벽은 인공지능(AI) 기술, 특히 딥러닝으로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을 중심으로 딥러닝을 활용한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는 기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자율주행의 주도권은 누구에게로 갈까. IT업체일까, 완성차업체일까 아니면 이 둘의 협업일까.
현재 자율주행을 선도하는 기업은 구글이다. 블룸버그는 2018년 5월 자율주행 기업 16개 기술 수준 순위를 발표했는데 “구글의 웨이모가 ‘분명한 리더(The Clear Leader)’가 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구글은 2009년부터 자율주행 연구를 시작한 뒤 2018년 12월 세계 최초 상용화 무인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시작했다. 상용화, 즉 실제 승객을 탑승시키고 운행했다는 뜻이다.
미국의 유력 기술조사업체인 내비건트리서치에서도 구글 웨이모를 1위로 꼽았다. 자율주행에 필수적인 IT 기술을 가진 기업, 그리고 강력한 IT 거점인 실리콘밸리를 가지고 있는 미국 기업들이 상위에 랭크돼 있다. V2X와 빅데이터, 딥러닝이 전문 분야인 IT업체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구글 웨이모와 제너럴모터스(GM) 크루즈는 자율주행을 테스트한 거리가 많은 업체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동일하게 1위, 2위를 차지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테스트한 거리가 많다는 뜻은 자율주행 운행을 위한 빅데이터를 많이 보유했다는 뜻이다. 빅데이터를 많이 보유했다는 뜻은 자율주행 기술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는 뜻이다.
자율주행차가 전방을 확인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카메라 센서와 V2X다. 자율주행차에 탑재된 라이다(빛을 이용한 감지 센서), 레이더(전자기파를 활용한 감지 센서), 카메라를 통해 자율주행차 전방의 상황을 확인한다. 신호등, 보행자, 장애물들을 모두 이 센서와 카메라로 확인한다. 자율주행차 카메라 센서의 가시 영역을 벗어난 곳(보통 150m 정도)에서 발생하는 사고, 돌발 상황은 빠르게 인지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은 자율주행차 이외 다른 사물 간 네트워크나 교통 인프라에 대한 의존도는 적다는 것이 장점이다.
V2X는 어떨까. 자율주행차가 5G를 통해 초고속, 초저지연으로 교통 상황을 수집한다. 스마트폰, 신호등, 보행자, 장애물, 폐쇄회로(CC)TV 등이 모두 네트워크상에서 상호 통신하며, 현재 교통 정보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한다. 예를 들어 내 앞 차량의 앞 차량이 고장 났거나 횡단보도 옆 골목에서 한 보행자가 긴급히 뛰어나오고 있다든지 하는 상황도 미리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교통 빅데이터를 다루게 될 V2X 기술은 단연 IT회사가 경험과 역량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독일 지식재산권 시장조사업체 아이플리틱스가 최근 발표한 ‘전 세계 자율주행 특허 분석 보고서’를 보면 LG전자와 삼성전자는 각각 특허 367건을 보유해 공동 7위를 기록했다. LG전자는 차량과 차량, 차량과 인프라 시설을 통신으로 연결해 자율주행을 고도화하는 통신 관련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차량용 정보, 오락 제공 장치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자회사를 운영하는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 572건을 보유해 4위를 차지했다.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절반은 완성차업체가 아닌 IT기업으로 집계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실리콘밸리 남단에서 여의도 면적 4배 크기의 자율주행차 테스트 단지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도 IT업체의 도전에 힘을 실어 준다. 자율주행차, 공유자동차, 5G 기술로 인해 자동차 산업이 IT 산업의 성격을 많이 가져가고 있기 때문에 대규모 자동차 테스트 단지를 아예 실리콘밸리에 만드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디트로이트가 아니라 실리콘밸리에 말이다. 2022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복합단지가 조성되면 실리콘밸리와 IT업체들이 자율주행 시장에서 입지를 더욱 굳히게 될 것이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되면 차량 제조업체들이 차량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 이들에게 대여해 주거나 공유해 주는 회사로 변신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완성차업체들은 실리콘밸리의 동향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한 테스트가 활발하다. 2019년 10월 10일, LG마곡 사이언스파크에서는 LG전자와 LG유플러스 등 LG그룹에서 V2X, 5G 통신, 센서 기술을 활용한 자율주행 시범이 있었다.
약진하는 IT 공룡 vs M&A 추진 완성차업체
완성차업체의 생존 전략은 ‘인수·합병(M&A)’이다. 자동차업체들은 소프트웨어 기술력에서 뒤처지지만, 기존 자동차 기계적 특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실제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는 방법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부족한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단기간에 확보하기 위해 M&A 전략을 택하고 있다.
GM은 2016년 스타트업 기업 크루즈를 10억 달러에 인수했다. 2017년에는 라이다 장비를 개발하는 스트로브를 인수해 하드웨어 부문 기술도 확보했다.
포드는 AI 플랫폼업체 아르고 AI에 10억 달러를 투자해 자율주행 기술력을 보충했다. 포드는 우버, 리프트와 정밀지도를 공유해 자율주행을 위한 데이터 공유도 계획하고 있다.
다임러, 폭스바겐, 도요타는 2016년부터 딥러닝 관련 스타트업을 인수하거나 사내에서도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 IT 관련 연구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도요타와 소프트뱅크는 합작회사를 설립해 자율주행 셔틀 사업인 ‘이팔레트’ 사업을 계획했다. 여기에는 혼다까지 지분을 투자했다. IT 기술이 워낙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다 보니 일본 내 1위, 2위 완성차업체가 모두 IT업체인 소프트뱅크와의 협력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완성차업체의 하드웨어 제조 기술 역량과 IT업체의 소프트웨어 기술 역량을 접목시켜 자율주행 개발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단축하려는 전략이다.
‘M&A’뿐만이 아니다. 완성차업체가 보여 주고 있는 자율주행 기술 전략으로는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도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은 2019년 초 사업모델을 묻는 질문에 “밀레니얼 세대는 자동차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공유하길 희망한다.
비즈니스를 제조에서 서비스 부문으로 전환한다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동차 판매 대상을 개인이 아니라 차량공유업체로 전환하고 보험과 운영 등 차량 공유 서비스에까지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이동 문화는 ‘공유’로 변환하고 있다. 소비재였던 자동차는 결국 준공공재적인 성격으로 변할 것이라는 예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공유 자동차의 궁극적 목표는 그냥 ‘공유 자동차’가 아니라 자율주행과 결합된 ‘무인 공유 자동차’다. 운전할 줄 모르거나 운전할 수 없는 상황의 사람들까지 자유롭게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공유 자동차 비즈니스라 할 수 있다. 외국인, 장애인, 노인, 어린이, 아픈 사람, 차 안에서 운전 말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사람 모두가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시장이 확장되고 유의미해지기에 완성차업체들이 이 포인트에 힘을 모으고 있다.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최근 폭스바겐은 차량 소프트웨어 전문 연구·개발(R&D) 거점으로 ‘위(We) 캠퍼스’를 개관했다. ‘위 캠퍼스’는 폭스바겐의 ‘카.소프트웨어(Car.Software)’ 조직 내 핵심 연구개발센터로, 모빌리티 서비스와 신규 부가가치 서비스를 개발할 예정이다. 제품 개발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사용자경험(UX) 디자이너 등으로 멤버를 구성하고 서비스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 경쟁력이 ‘제조’에서 ‘이동 서비스’로 급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도요타는 어떨까. 도요타는 소프트뱅크와 합작사 ‘모넷’을 설립해 자율주행과 AI, 빅데이터를 결합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다임러도 차량 소프트웨어 모빌리티 서비스 전문 연구 조직 ‘엠비션(MBition)’을 독일 베를린에 개설, 향후 실리콘밸리 등으로 확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메르세대스-벤츠는 회사를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정의하고 차는 궁극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라고 명명했다. 벤츠는 2019년 모터쇼가 아닌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이례적으로 신차를 내놓으면서 “벤츠의 목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선구적인 모바일 디바이스를 구축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같은 장소에서 현대차는 “차는 스마트폰, 자동차회사는 앱스토어다”라고 정의했다.
이 모든 것이 일관되게 가리키고 있는 콘셉트는 이제 자동차업이 서비스업이라는 점이다.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모터쇼가 아닌 CES에서 부스를 꾸리고, 신차를 공개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일도 아니다. 완성차업체들은 CES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콘셉트를 설명하는 장으로 쓰고 있다. 이제 그들은 차를 파는 것이 아니라 모빌리티 서비스를 팔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성차업체들은 자율주행차 시대에 소비자가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액티비티, 콘텐츠, 체험 제공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운전석 앞 스크린에 ‘일, 운동, 탐험, 쇼핑’이라는 4가지 버튼을 만들고 소비자가 이 버튼을 누르면 카테고리별로 콘텐츠를 제공한다. 물론, 운전석에 운전대가 없으니까. 아우디는 엔터테인먼트에 집중한다. 월트 디즈니와 협업해 높은 퀄리티의 영상 콘텐츠 제공에 힘쓴다. 보쉬는 자동차 좌석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콘셉트를 잡았다.
차 안에서 회의를 하기 위해 탑승자끼리 마주볼 때, 의자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 차 안에서 낮잠을 자고 싶을 때, 고민이 많아 명상을 하고 싶을 때, 몸이 안 좋아 눕고 싶을 때는 의자를 침대처럼 눕힐 수도 있다.
IT업체, 완성차업체 모두 각자 고유한 장점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주도권은 누가 가져갈까. 고유한 장점과 경쟁력을 빅데이터를 중심으로 IT 기술을 장악하는 쪽이 승자가 될 것이다.
정순인 책임연구원은…
LG전자 VS(Vehicle Component Solutions)사업본부에서 오토모티브(Automotive) SPICE 인증과 품질보증(Quality Assurance) 업무를 한다. 소프트웨어공학(SW Engineering), Technical Documentation 사내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내에서 2016~2017년 연속 최우수 강사상을 수상했다. 강의와 프레젠테이션 기법을 다룬 책 <당신이 잊지 못할 강의>를 썼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6호(2020년 01월) 기사입니다.]
당연한 1등은 없다. 1998년부터 13년간 세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1위였던 노키아. 지금 어린 학생들은 이름도 잘 모른다. 지금 치열하게 미래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분야 ‘자율주행 자동차’. 과연 자율주행차의 주도권은 누가 잡게 될까.
빅데이터와 5G를 건 싸움
자율주행은 결국 빅데이터다. 자율주행차와 외부 요소가 주고받는 데이터가 자율주행을 결정한다. 자율주행차 외부 요소는 교통 시스템, 다른 차량, 도로 환경 등 무궁무진하다. 자율주행차에는 여러 대의 카메라가 탑재돼 이 외부 요소들을 감지한다. 자율주행차가 주행할 때 전방카메라에 다양한 이미지가 찍힌다. 보행자, 다른 차량, 신호등, 건물, 장애물, 동물 등 말이다.
자율주행차는 이 이미지 데이터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분석해서 유의미한 데이터 정보를 얻어 놔야 한다. 교통 체증이 예상되는 지점에 왔는데 계속 직진해도 되는지, 옆 차가 차선 변경을 시도하는데 이 시점에 속도를 줄여야 하는지, 1분 후 전방 장애물이 예상되지는 않는지, 이 정도 폭우라면 앞 차와의 간격을 어느 정도로 유지해야 하는지 등의 정보가 자율주행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와 외부 요소는 이 정보를 서로 주고받으며 통신한다. 상호 통신을 통해서 안전하고 정확한 자율주행이 가능해진다. 이런 이미지 데이터를 최대한 다양하게 수집·분석하고 학습해 외부 요소와 상호 공유하는 것이 자율주행의 생명이기에 자율주행은 결국 빅데이터라고 말할 수 있다. 빅데이터에 더해 자율주행을 위해서는 도로, 차, 관제 시스템 등을 모두 제어할 수 있는 통신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이 기술을 V2X(Vehicle to X: 차량과 모든 사물 간 통신)라 한다. 학계에서는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약 90분 동안 달리면 약 4테라바이트(TB)의 데이터가 생성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방대한 데이터를 끊김 없이 수집-분석-전달-공유하기 위해서는 5세대(5G)가 필요하다. 기존의 LTE(Long Term Evolution)로는 이 과정에 필요한 속도와 정확도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5G V2X는 이동통신망을 통해 다른 차량, 관제센터, 신호 시스템과 실시간으로 교통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전방 사고 등에 차량이 미리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단연 정보기술(IT)업체가 잘하는 분야다.
자율주행 기술의 높은 진입장벽은 인공지능(AI) 기술, 특히 딥러닝으로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을 중심으로 딥러닝을 활용한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는 기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자율주행의 주도권은 누구에게로 갈까. IT업체일까, 완성차업체일까 아니면 이 둘의 협업일까.
현재 자율주행을 선도하는 기업은 구글이다. 블룸버그는 2018년 5월 자율주행 기업 16개 기술 수준 순위를 발표했는데 “구글의 웨이모가 ‘분명한 리더(The Clear Leader)’가 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구글은 2009년부터 자율주행 연구를 시작한 뒤 2018년 12월 세계 최초 상용화 무인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시작했다. 상용화, 즉 실제 승객을 탑승시키고 운행했다는 뜻이다.
미국의 유력 기술조사업체인 내비건트리서치에서도 구글 웨이모를 1위로 꼽았다. 자율주행에 필수적인 IT 기술을 가진 기업, 그리고 강력한 IT 거점인 실리콘밸리를 가지고 있는 미국 기업들이 상위에 랭크돼 있다. V2X와 빅데이터, 딥러닝이 전문 분야인 IT업체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구글 웨이모와 제너럴모터스(GM) 크루즈는 자율주행을 테스트한 거리가 많은 업체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동일하게 1위, 2위를 차지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테스트한 거리가 많다는 뜻은 자율주행 운행을 위한 빅데이터를 많이 보유했다는 뜻이다. 빅데이터를 많이 보유했다는 뜻은 자율주행 기술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는 뜻이다.
자율주행차가 전방을 확인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카메라 센서와 V2X다. 자율주행차에 탑재된 라이다(빛을 이용한 감지 센서), 레이더(전자기파를 활용한 감지 센서), 카메라를 통해 자율주행차 전방의 상황을 확인한다. 신호등, 보행자, 장애물들을 모두 이 센서와 카메라로 확인한다. 자율주행차 카메라 센서의 가시 영역을 벗어난 곳(보통 150m 정도)에서 발생하는 사고, 돌발 상황은 빠르게 인지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은 자율주행차 이외 다른 사물 간 네트워크나 교통 인프라에 대한 의존도는 적다는 것이 장점이다.
V2X는 어떨까. 자율주행차가 5G를 통해 초고속, 초저지연으로 교통 상황을 수집한다. 스마트폰, 신호등, 보행자, 장애물, 폐쇄회로(CC)TV 등이 모두 네트워크상에서 상호 통신하며, 현재 교통 정보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한다. 예를 들어 내 앞 차량의 앞 차량이 고장 났거나 횡단보도 옆 골목에서 한 보행자가 긴급히 뛰어나오고 있다든지 하는 상황도 미리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교통 빅데이터를 다루게 될 V2X 기술은 단연 IT회사가 경험과 역량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독일 지식재산권 시장조사업체 아이플리틱스가 최근 발표한 ‘전 세계 자율주행 특허 분석 보고서’를 보면 LG전자와 삼성전자는 각각 특허 367건을 보유해 공동 7위를 기록했다. LG전자는 차량과 차량, 차량과 인프라 시설을 통신으로 연결해 자율주행을 고도화하는 통신 관련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차량용 정보, 오락 제공 장치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자회사를 운영하는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 572건을 보유해 4위를 차지했다.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절반은 완성차업체가 아닌 IT기업으로 집계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실리콘밸리 남단에서 여의도 면적 4배 크기의 자율주행차 테스트 단지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도 IT업체의 도전에 힘을 실어 준다. 자율주행차, 공유자동차, 5G 기술로 인해 자동차 산업이 IT 산업의 성격을 많이 가져가고 있기 때문에 대규모 자동차 테스트 단지를 아예 실리콘밸리에 만드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디트로이트가 아니라 실리콘밸리에 말이다. 2022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복합단지가 조성되면 실리콘밸리와 IT업체들이 자율주행 시장에서 입지를 더욱 굳히게 될 것이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되면 차량 제조업체들이 차량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 이들에게 대여해 주거나 공유해 주는 회사로 변신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완성차업체들은 실리콘밸리의 동향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한 테스트가 활발하다. 2019년 10월 10일, LG마곡 사이언스파크에서는 LG전자와 LG유플러스 등 LG그룹에서 V2X, 5G 통신, 센서 기술을 활용한 자율주행 시범이 있었다.
약진하는 IT 공룡 vs M&A 추진 완성차업체
완성차업체의 생존 전략은 ‘인수·합병(M&A)’이다. 자동차업체들은 소프트웨어 기술력에서 뒤처지지만, 기존 자동차 기계적 특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실제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는 방법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부족한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단기간에 확보하기 위해 M&A 전략을 택하고 있다.
GM은 2016년 스타트업 기업 크루즈를 10억 달러에 인수했다. 2017년에는 라이다 장비를 개발하는 스트로브를 인수해 하드웨어 부문 기술도 확보했다.
포드는 AI 플랫폼업체 아르고 AI에 10억 달러를 투자해 자율주행 기술력을 보충했다. 포드는 우버, 리프트와 정밀지도를 공유해 자율주행을 위한 데이터 공유도 계획하고 있다.
다임러, 폭스바겐, 도요타는 2016년부터 딥러닝 관련 스타트업을 인수하거나 사내에서도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 IT 관련 연구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도요타와 소프트뱅크는 합작회사를 설립해 자율주행 셔틀 사업인 ‘이팔레트’ 사업을 계획했다. 여기에는 혼다까지 지분을 투자했다. IT 기술이 워낙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다 보니 일본 내 1위, 2위 완성차업체가 모두 IT업체인 소프트뱅크와의 협력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완성차업체의 하드웨어 제조 기술 역량과 IT업체의 소프트웨어 기술 역량을 접목시켜 자율주행 개발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단축하려는 전략이다.
‘M&A’뿐만이 아니다. 완성차업체가 보여 주고 있는 자율주행 기술 전략으로는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도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은 2019년 초 사업모델을 묻는 질문에 “밀레니얼 세대는 자동차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공유하길 희망한다.
비즈니스를 제조에서 서비스 부문으로 전환한다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동차 판매 대상을 개인이 아니라 차량공유업체로 전환하고 보험과 운영 등 차량 공유 서비스에까지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이동 문화는 ‘공유’로 변환하고 있다. 소비재였던 자동차는 결국 준공공재적인 성격으로 변할 것이라는 예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공유 자동차의 궁극적 목표는 그냥 ‘공유 자동차’가 아니라 자율주행과 결합된 ‘무인 공유 자동차’다. 운전할 줄 모르거나 운전할 수 없는 상황의 사람들까지 자유롭게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공유 자동차 비즈니스라 할 수 있다. 외국인, 장애인, 노인, 어린이, 아픈 사람, 차 안에서 운전 말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사람 모두가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시장이 확장되고 유의미해지기에 완성차업체들이 이 포인트에 힘을 모으고 있다.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최근 폭스바겐은 차량 소프트웨어 전문 연구·개발(R&D) 거점으로 ‘위(We) 캠퍼스’를 개관했다. ‘위 캠퍼스’는 폭스바겐의 ‘카.소프트웨어(Car.Software)’ 조직 내 핵심 연구개발센터로, 모빌리티 서비스와 신규 부가가치 서비스를 개발할 예정이다. 제품 개발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사용자경험(UX) 디자이너 등으로 멤버를 구성하고 서비스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 경쟁력이 ‘제조’에서 ‘이동 서비스’로 급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도요타는 어떨까. 도요타는 소프트뱅크와 합작사 ‘모넷’을 설립해 자율주행과 AI, 빅데이터를 결합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다임러도 차량 소프트웨어 모빌리티 서비스 전문 연구 조직 ‘엠비션(MBition)’을 독일 베를린에 개설, 향후 실리콘밸리 등으로 확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메르세대스-벤츠는 회사를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정의하고 차는 궁극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라고 명명했다. 벤츠는 2019년 모터쇼가 아닌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이례적으로 신차를 내놓으면서 “벤츠의 목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선구적인 모바일 디바이스를 구축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같은 장소에서 현대차는 “차는 스마트폰, 자동차회사는 앱스토어다”라고 정의했다.
이 모든 것이 일관되게 가리키고 있는 콘셉트는 이제 자동차업이 서비스업이라는 점이다.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모터쇼가 아닌 CES에서 부스를 꾸리고, 신차를 공개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일도 아니다. 완성차업체들은 CES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콘셉트를 설명하는 장으로 쓰고 있다. 이제 그들은 차를 파는 것이 아니라 모빌리티 서비스를 팔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성차업체들은 자율주행차 시대에 소비자가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액티비티, 콘텐츠, 체험 제공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운전석 앞 스크린에 ‘일, 운동, 탐험, 쇼핑’이라는 4가지 버튼을 만들고 소비자가 이 버튼을 누르면 카테고리별로 콘텐츠를 제공한다. 물론, 운전석에 운전대가 없으니까. 아우디는 엔터테인먼트에 집중한다. 월트 디즈니와 협업해 높은 퀄리티의 영상 콘텐츠 제공에 힘쓴다. 보쉬는 자동차 좌석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콘셉트를 잡았다.
차 안에서 회의를 하기 위해 탑승자끼리 마주볼 때, 의자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 차 안에서 낮잠을 자고 싶을 때, 고민이 많아 명상을 하고 싶을 때, 몸이 안 좋아 눕고 싶을 때는 의자를 침대처럼 눕힐 수도 있다.
IT업체, 완성차업체 모두 각자 고유한 장점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주도권은 누가 가져갈까. 고유한 장점과 경쟁력을 빅데이터를 중심으로 IT 기술을 장악하는 쪽이 승자가 될 것이다.
정순인 책임연구원은…
LG전자 VS(Vehicle Component Solutions)사업본부에서 오토모티브(Automotive) SPICE 인증과 품질보증(Quality Assurance) 업무를 한다. 소프트웨어공학(SW Engineering), Technical Documentation 사내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내에서 2016~2017년 연속 최우수 강사상을 수상했다. 강의와 프레젠테이션 기법을 다룬 책 <당신이 잊지 못할 강의>를 썼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6호(2020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