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백화점 생기며 소비 행사로 거듭나

[한경 머니=백정림 갤러리 이고 대표·<앤티크의 발견> 저자 | 사진 서범세 기자] 세월의 아쉬움을 송년 행사의 분주함으로 달래게 되는 12월이 되면 연말 의식이라도 치르듯 백화점을 시작으로 거리 여기저기가 성탄절 준비로 분주해진다. 크리스마스는 언제부터 지금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을까.

(사진_왼쪽부터 시계 방향) 라인이 아름답게 표현된 레드 화병(빈티지),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독일 작가의 핸드페인팅 작품), 골드 오버레이 와인 잔(아르누보), 크리스털 레드 저그(아르누보), 레드 받침 에칭 칵테일 잔(아르누보), 24K로 핸드페인팅 된 아름다운 수프볼(아르누보).

크리스마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산타클로스, 트리, 캐럴, 자선냄비 등이다. 종교개혁 이전 먼 옛날부터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들의 축제로 지켜졌고,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헨리 8세,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도 신에게 감사하고 가난한 이웃을 환대하는 기념일이었다.

이후 줄곧 교회의 3대 축일 가운데 하나로 기념돼 왔지만 지주층과 같은 부유한 가정에서만 화려하게 즐기는 행사였다. 당시 먹고살기 힘들었던 평민들에게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배층만의 축제로 있어 왔던 크리스마스는 19세기 중엽 중산층의 증가와 가정을 중요시하는 빅토리안 시대의 사회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모두의 크리스마스로 부활하게 됐다.

(사진) 스터링 컷카드 화병(아르누보).

따뜻한 안식처, 위로의 이벤트

빅토리안 시대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1850년대에 우리가 오늘날 모두 즐기고 있는 행복한 크리스마스의 전통이 시작됐다. 이 시기에 유럽 사람들은 산업의 발전으로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자신의 능력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갈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1850년대에는 중산층에 속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배고픔에서 해방돼 차와 커피, 초콜릿을 즐기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귀족들만 누렸던 여행이 보통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 패키지여행상품과 여행자수표가 이 시기에 등장했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따뜻한 가정을 가장 중요시했고, 이때 영국을 다스렸던 빅토리아 여왕도 부군인 앨버트공과 4남 5녀를 두며 단란한 가정의 표본이 됐다.

대량 생산과 교통의 발달로 풍요로움을 누렸지만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남자들에게 사회는 치열한 경쟁의 세계가 됐다. 그래서 가정은 일터에서 돌아온 남자들을 위로해줄 따뜻한 안식처가 돼야 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음습하고 추운 겨울이 되면 사람들을 위한 즐거운 이벤트가 필요했다.

국가의 발전과 함께 극빈층이 대부분이었던 사회계층 구조는 급격히 변해서 중산층이 전체 사회계층의 20%를 차지하게 됐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단칸방에서 비참하게 생활하는 극빈층이었다.

한 도시 안에 최고의 부를 누리는 부자와 비참한 생활을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 환경은 부유층의 의무가 자선이라는 자연스러운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캐럴, 빈부를 뛰어넘어 모두가 함께 즐기는 행복한 크리스마스의 명절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러한 생각이 널리 퍼지는 데 크게 기여했던 것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이었다. 스크루지 영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은 물질적 즐거움을 향유하고 있는 부유층이 가져야 하는 자선의 의무를 강조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사람들은 카드에 저마다의 소망을 담아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었고, 아이들이 캐럴을 들으며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상자를 기다리는 것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후 기독교인들만의 축제였던 크리스마스는 비기독교인들도 즐기는 축제가 돼 하루뿐이었던 크리스마스 휴일은 연말에 긴 홀리데이 기간이 돼 오늘의 크리스마스 풍경이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요즘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분위기를 북돋운 것은 때마침 생겨난 백화점의 영향이 컸다. 1852년 세계 최초의 백화점으로 탄생한 파리의 봉마르셰 백화점은 종교적 의미의 성탄절을 모두가 기뻐하는 즐거운 소비 행사로 바꾸었다.

성탄절이면 조용히 성당에 예배 보러 가는 것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념했던 것이 전부였던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에는 집집마다 트리 장식을 해야 하고 아이들에게 산타할아버지가 돼 선물을 나눠주는 분위기를 북돋웠다.

(사진) 레드 초가 꽂혀 있는 스털링 오버레이 촛대(빈티지).
19세기 중반, 오늘날 크리스마스로 거듭나

크리스마스 특수를 누리기 위해 백화점 바깥에 커다란 트리를 세우고 연일 캐럴을 크게 틀며 진열장을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가득 채웠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크리스마스 명절은 이미 19세기 중반에 그렇게 유럽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것이 루돌프 사슴이 이끄는 썰매를 타고 빨간 옷에 흰 수염을 한 산타클로스일 것이다. 여기에 아이들에게 더욱 동화적 로망을 주기 위해 이 썰매를 탄 산타클로스가 성탄절 이브에 하늘을 날며 굴뚝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이미지가 추가된다.

누구나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산타클로스를 기다렸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이런 동화적 이미지의 산타클로스는 19세기와 20세기 초 어른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3

세기경 살았던 실존 인물인 성 니콜라스 대주교는 ‘어린이를 보호하는 성자’라는 칭호를 로마 교회로부터 받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선행을 베풀었다고 한다. 이러한 실존 인물에 1931년 하든 선드블롬이라는 화가가 코카콜라로부터 상업광고를 의뢰받고 동화적 각색을 한 것이 바로 썰매와 빨간 옷에 흰 수염을 한 산타클로스였다.

19세기 중반 가정의 행복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백화점의 기발한 마케팅 전략, 그리고 20세기 초엽 한 음료 회사의 상업적 의도가 함께 어우러져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가 탄생했다.

그 시작이 무엇이었던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가득한 연말에 저마다의 소망을 서로 기원하고 이웃과 자선을 나눌 수 있기에 크리스마스는 우리에게 따뜻한 설렘과 위안을 주는 것이 분명하다.
앤티크 컬렉터 백정림은…
하우스 갤러리 이고의 백정림 대표는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 컬렉터로서, 품격 있고 따뜻한 홈 문화의 전도사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티크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티크 컬렉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 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고갤러리 02-6221-4988, 블로그 blog.naver.com/yigo_gallery, 인스타그램 yigo_gallery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5호(2019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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