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재혼…배우자 사망 시 연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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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기고 =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 황혼 재혼으로 가족관계가 복잡해지면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그나마 부부가 함께 사는 동안은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지만, 둘 중 누구라도 한 사람이 먼저 사망하면 생존 배우자와 피상속인의 자녀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여기서는 공적연금과 주택연금 가입자가 사망했을 경우 재혼한 배우자가 연금을 계속 수령할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A(65, 가명) 씨는 25년 전 B(69, 가명) 씨와 재혼했다. 재혼 당시 공무원이었던 B씨는 전처 사이에 자녀가 셋이나 있었다. A씨는 이들을 자기 자식처럼 키웠고, 지금은 자녀들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 독립했다. 그리고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알뜰살뜰 저축을 해서 남편 명의로 아파트도 한 채 장만했다. B씨는 5년 전 정년퇴직을 했고, 그때부터는 공무원연금과 주택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이 돈이면 호화롭게 살지는 못해도 그렇다고 살아가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공무원연금이고 주택연금이고 모두 남편 명의로 돼 있다는 점이다. 부부가 한 날 한 시에 사망하면 별 걱정이 없겠지만, 세상에 그런 일은 흔치 않다. 문제는 남편이 먼저 사망했을 때다. 이때도 A씨는 계속 연금을 수령할 수 있을까. 혹시 전처의 자녀와 A씨 사이에 연금 수령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은 없을까.
매년 꾸준히 늘어나는 황혼 재혼
급속한 고령화로 황혼 이혼의 증가가 이슈가 되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황혼 재혼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00년 당시 971건에 불과했던 65세 이상 남성의 재혼 건수는 2018년에는 2759건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동안 65세 이상 여성의 재혼도 202건에서 1347건으로 증가했다. 채 20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고령 남성의 재혼은 2.8배, 고령 여성의 재혼은 6.7배나 늘어난 셈이다.
전체 재혼에서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00년 당시만 하더라도 남성 재혼자(4만3370명) 중에서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2.2%(971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2018년에는 전체 남성 재혼자(4만1115명) 가운데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6.7%(2759명)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재혼 여성 중에서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0.4%에서 2.9%로 늘어났다.
황혼 재혼으로 가족관계가 복잡해지면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 갈등도 깊어진다. 특히 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사망하면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피상속인의 매개로 맺어져 있던 가족의 끈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상속재산을 분할하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생존 배우자 입장에서는 유족연금 수급권을 확보할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 특히 재혼한 다음 별다른 소득 없이 사망자가 받던 연금에 의지해 생활해 왔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공적연금과 주택연금 가입자가 사망했을 경우 재혼한 배우자가 연금을 계속 수령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국민연금
재혼 시기 상관없이 배우자에게 유족연금 지급
먼저 국민연금부터 살펴보자. 국민연금공단에서는 노령연금을 수령하던 자,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0년 이상인 가입자(였던 자), 보험료 납부 기간이 가입 대상 기간의 3분의 1 이상인 가입자(였던 자) 등이 사망하면, ‘사망 당시’ 이들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던 자에게 유족연금을 지급한다. 따라서 재혼 시기와 관계없이 ‘사망 당시’ 혼인 상태라면 유족에 포함된다. 배우자 이외에도 자녀와 부모 등 다른 유족이 있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유족연금은 누가 수령할까.
‘국민연금법’에서는 유족이 여러 명일 때에 대비에 연금 수령 순서를 정하고 있는데, 1순위는 배우자다. 배우자가 없는 경우에는 자녀, 자녀도 없는 경우에는 부모에게 유족연금이 지급된다.
황혼에 재혼한 부부들 중에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에도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을까. 가능하다. 현행법에서는 법률상 혼인관계에 있는 배우자뿐만 아니라 사실혼관계의 배우자도 유족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혼은 두 사람이 모두 혼인할 의사가 있고, 실제로도 부부관계에 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상 부부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사실혼을 인정받아 유족연금을 수령하려면 사망자와 사망 당시 주거와 생계를 함께하고 있었거나, 생활비와 요양비 등 경제적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유족연금액은 사망자의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따라 달라진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0년 미만이면 사망자의 기본연금액의 40%, 10년 이상 20년 미만이면 50%, 20년 이상이면 60%에 부양가족연금을 더해 유족연금으로 수령한다.
공무원연금
재직 당시 재혼한 배우자에게만
퇴직유족연금 지급
이번에는 공무원연금을 살펴보자. 먼저 용어부터 간단히 정리해보자. 공무원연금에서 국민연금의 노령연금에 해당되는 것이 ‘퇴직연금’이고, 유족연금에 해당되는 것이 ‘퇴직유족연금’이다. 퇴직유족연금으로는 사망자 공무원연금의 60%가 지급된다.
공무원 또는 공무원연금 수령자가 사망했을 때, 재혼한 배우자가 퇴직유족연금을 수령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배우자를 유족으로 인정하는 기준은 국민연금보다 공무원연금이 더 까다롭다. 먼저 공무원 또는 연금수령자가 사망할 당시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때 혼인관계는 법률혼뿐만 아니라 사실혼도 인정한다. 여기까지는 국민연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음으로 혼인 시기가 중요하다. 국민연금은 혼인 시기와 상관없이 사망 당시 혼인관계 여부만 따지지만, 공무원연금은 다르다. 공무원 재직 당시에 혼인한 경우에만 유족으로 인정받는다. 따라서 사망자가 퇴직한 다음에 결혼한 배우자는 유족연금을 수령할 수 없다.
다만 공무원 퇴직 후 혼인했다고 하더라도 결혼 시점이 1995년 12월 31일 이전이면 유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는 배우자의 유족 범위를 ‘재직 당시 혼인관계에 있던 자’로 한정한 ‘공무원연금법’이 1996년 1월 1일부터 시행됐기 때문이다.
공무원 재직 기간 중에 잠시 이혼했다가 재결합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때는 ‘공무원 재직 당시에 혼인했다’는 것과 ‘사망 전에 재결합해 혼인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다.
배우자 이외에 다른 유족이 있으면 퇴직유족연금은 누가 수령할까. 앞서 국민연금에서는 1순위 유족인 배우자가 단독으로 유족연금을 수령했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에서는 민법에서 정한 상속 순위에 따라 유족연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현행 민법에서는 사망자에게 자녀가 있으면 자녀와 배우자가 동 순위로 상속하고, 자녀가 없을 경우 부모와 배우자가 공동 상속인이 된다. 사망자에게 자녀도 부모도 없으면 배우자가 단독으로 상속을 받는다.
앞서 A씨와 B씨 부부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A씨는 B씨가 공무원 재직 당시에 재혼했다. 따라서 B씨가 사망하면 유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또한 B씨와 전처 사이에 자녀들 셋도 유족이다. A씨와 자녀 셋이 공동으로 1순위 유족이 되는 셈이다.
그러면 B씨가 남긴 퇴직유족연금을 어떻게 나눠서 수령할까. 여기 답하기 전에 하나 더 따져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퇴직유족연금 수급권 상실 여부다. ‘공무원연금법’에서는 퇴직유족연금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 사망하거나 재혼하면 수급권을 상실한다. 그리고 장해가 없는 자녀가 만 19세에 도달한 경우에도 수급권을 상실한다. 이렇게 수급권을 상실하면, 그들이 받던 연금액은 동 순위 유족에게 이전된다. B씨의 자녀들은 이미 만 19세를 넘어섰기 때문에 유족연금 수급권을 상실했다. 따라서 A씨가 단독으로 퇴직유족연금을 수령하게 된다.
사학연금도 공무원연금과 마찬가지로 재직 당시에 혼인관계에 있던 배우자만 유족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군인연금은 다르다. 퇴직 이후라도 60세 이전에 혼인했다면, 배우자가 유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 밖에 유족의 순서와 동 순위자가 여러 명일 때 유족연금 분할 방식은 공무원연금과 같다.
주택연금
주택 소유자가 사망하면 자녀 동의 있어야
계속해 연금 수령
주택연금은 살고 있던 집을 담보로 맡기고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제도다. 살던 집 이외에 다른 재산이 없는 은퇴자 입장에서는 안정된 주거와 노후생활비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다. 주택연금의 주요한 장점 중 하나로 종신토록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주택연금에 가입하면서 ‘종신 방식’으로 연금을 수령하겠다고 선택하면, 본인과 배우자가 모두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문제는 주택 소유자가 주택연금에 가입한 다음에 재혼한 경우다. 예를 들어 C씨가 종신 방식으로 주택연금에 가입한 다음 D씨와 재혼했다고 치자. 이때 주택 소유자인 C씨가 먼저 사망하면 D씨는 계속해 연금을 받을 수 있을까. 이때는 C씨가 사망하면 바로 연금이 중단된다. 주택연금 가입 당시부터 법률상 혼인관계에 있던 배우자만 배우자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먼저 재혼을 하고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괜찮을까. 이때도 주택 소유자와 전처 사이에 자녀가 있으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앞서 A씨, B씨 부부의 사례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주택 소유자인 B씨가 먼저 사망할 경우 A씨가 계속해 연금을 수령하려면 2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주택연금 관련 채무를 전부 인수해야 한다. 둘째, B씨가 사망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담보주택 소유권을 넘겨받아야 한다.
연금 관련 채무를 넘겨받겠다는 약속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주택 소유권을 취득하는 일이다. B씨가 별다른 유언을 남기지 않고 사망한 경우 해당 주택은 A씨와 세 자녀에게 공동으로 상속된다. 따라서 A씨가 주택연금을 받으려면 자녀 3명이 소유권을 포기해야 한다.
첫째 조건이야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둘째 조건은 그렇지 않다. B씨가 별다른 유언 없이 사망했다면 해당 주택은 B씨와 전처 사이 세 자녀와 A씨에게 공동으로 상속된다. 따라서 B씨의 자녀들이 소유권을 포기해야만 A씨가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자녀들이 쉽게 동의해줄지 의문이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주택 소유자가 먼저 사망했을 때 자녀들이 동의해주지 않아 남은 배우자가 연금을 못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주택금융공사에서는 주택 소유자가 사망하면 연금 지급을 일시 중단했다가 생존 배우자가 채무 인수와 소유권 이전등기를 완료하면 연금 지급을 재개한다. 만약 6개월 이내에 2가지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해당 주택을 처분해 부채를 상환해야 한다. 앞서 A씨 사례에서도 자녀들이 주택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주택을 처분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같은 문제를 사전에 방지할 수는 없을까. 일단 주택 소유자가 본인 사망 시 해당 주택의 소유권을 재혼한 배우자에게 상속하겠다고 유언을 해 두면 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자녀들이 본인들의 유류분을 침해당했다고 소송을 하는 경우에는 주택 지분 중 일부를 자녀가 가져갈 수도 있다. 현행 민법에서는 자녀는 본인의 법정상속지분의 2분의 1을 유류분으로 주장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고자 ‘신탁 방식 주택연금’을 도입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 법제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신탁 방식 주택연금이란 주택 소유자가 주택 소유권을 주택금융공사에 위탁하는 방식이다. 주택금융공사는 수탁자, 주택 소유자는 위탁자 겸 수익자가 되고, 배우자는 사후수익자로 지정된다. 이렇게 하면 되면 주택 소유자가 사망하더라도 배우자는 연금을 계속 수령할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5호(2019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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