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부의 추월차선
[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부의 계급화, 부자로 가는 사다리가 끊긴 시대라고 말한다. 과연 부의 추월차선은 존재할까.
세상에는 3가지 길이 있다. 인도(人道), 서행차선, 추월차선이다. <부의 추월차선>의 저자 엠제이 드마코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인도를 뚜벅뚜벅 걷는 사람들과 서행차선에서 적당히 달리는 사람들을 모두 앞지르는 부(富)의 추월차선에 서둘러 올라타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월급 노예’에서 벗어나 사업이나 투자 등의 추월차선에 뛰어들라는 조언이다.
이 책은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와 함께 경제·경영 서적 판매 순위에서 상위권을 꾸준히 점하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지난해 출간된 후속작 <언스크립티드: 부의 추월차선 완결판>도 6개월 만에 5만 부가 판매되며 소위 대박을 쳤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한다고 해도 서울의 집 1채 장만하기 어렵고 중산층의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위기감이 사회에 퍼져 있다”며 “최근 부동산과 주식 부자의 경험을 담은 책들의 유행은 저성장·고령화의 대안이 적절히 제시되지 못한 사회에서 개인이 부의 추월차선을 찾도록 내몰리고 있는 현실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용(龍)이 날 개천이 마르고 있다
주병기 서울대 분배정의연구센터 교수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2019)’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갈수록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사회가 되고 있다는 ‘개천용 불평등지수’를 발표했다. 개천용 불평등지수는 부모의 학력·소득 수준이 자녀의 학력·소득 수준을 어느 정도로 결정하는지 상관관계를 알려주는 것으로, 기회가 평등한다면 성공할 수 있던 사람이 기회의 불평등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정도를 수치화했다.
개천용 불평등지수는 2000년대 초반 15~20% 수준에서 2013년에는 35%로 껑충 뛰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기회의 불평등으로 10명 중 1~2명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2013년에는 3~4명이 좌절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부모의 학력·소득이 자녀의 성공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커졌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향후 저성장·고령화로 ‘금수저·흙수저론’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뚝뚝 떨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전망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겨우 2%에 턱걸이했다. 고도성장기에는 저축률도 높았지만, 2018년 가계저축률은 6.9% 수준이다. 앞으로는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로 사망자가 늘어나면 자연히 상속자산의 규모도 늘어날 전망이다. 김낙연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 논문에서 “경제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는 상황에서는 개인이 부를 축적할 기회가 많았지만, 저성장기에는 상속이나 증여에 의한 자산이 중요해지는 시기로 빠르게 이행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2030세대 올인하거나 무민하거나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는 시대는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계층 고착화로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편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불나방 같은 ‘올인 투자’도 성행하고 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최근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자신이 ‘무민세대’라고 생각하는 20대는 47.9%, 30대는 44.8%에 달했다. 심지어 40대도 21.3%, 50대 이상도 22.1%에 달한다. ‘무민세대’는 ‘없다’의 ‘無’와 ‘의미’의 ‘mean’, 그리고 ‘세대(世代)’가 합쳐져 만들어진 조어다. 의미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무의미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세태를 일컫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나은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자조가 섞여 있다.
반대로 ‘인생 한방’의 동아줄을 찾는 쏠림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국토교통부로부터 주택취득자금 집계 현황을 받아 분석한 결과, 지난해 12월 10일부터 올해 9월 30일까지 서울에서 주택을 구매한 20대는 전체 매매가격 가운데 64%를 빚으로 충당했다. 30대는 주택 구매에 차입금(빚) 비율이 55%에 달했다. 이들 20~30대 집주인의 차입금 비중은 같은 기간 다른 연령과 비교해도 과도한 수준이다. 40대(47%), 50대(41%), 60대 이상(29%) 등을 크게 웃돈다.
정 대표는 “집값이 더욱 높아질까 봐 두려워하는 20대와 30대가 과도한 부채를 감수하며 집을 사는 것은 매우 슬픈 현실”이라며 “대출금 상환이나 생활고에 시달릴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우리 사회를 휩쓴 가상화폐 광풍과도 맞닿아 있다. 단기 고수익을 추구하는 현상과 맞물려 ‘투자 또는 투기’에 과도한 에너지가 쏠리고 있다는 우려다.
그렇다면 실제 부의 추월차선은 어디에 있을까. 한국 부자들은 실제 어떻게 부를 쌓았을까. KEB하나은행과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분석한 ‘2019 한국 부자 보고서’에 의하면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들의 자산 기여도에서 부동산 투자가 27%로 가장 높았지만, 사업소득 20%, 근로소득 19%, 금융자산 투자 19%의 영향도 컸다. 부모의 증여·상속 기여도는 15% 순으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펴낸 ‘2019 한국 부자 보고서’에선 ‘사업소득(47.0%)’이 1위를 차지했다. 이는 두 번째 순위를 기록한 ‘부동산 투자(21.5%)’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부자들은 능력과 노력으로 좌우되는 사업소득을 주요 부의 원천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컸다.
수저 계급보다 강한 무기는
“만약 세상을 떠날 때도 가난하다면 그것은 내 탓이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성공을 위한 야망을 강조한 말이다. 실제 추월차선에 올라탄 부자들은 수저계급론이 지배하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그로 인해 좌절감과 상실감에 무력해지는 것을 더욱 경계한다.
사회의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소득 격차가 커지고 있지만, 희망을 꿈꾸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의 성인 38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 갈등 인식조사를 보면, “인생에 성공하는 데 부유한 집안이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한 비율은 ‘매우 중요’가 3.17%, ‘대체로 주요’가 49.2%였다. 한편으로 중요하지 않거나 보통이라고 생각한 비율은 19.2%였다. 10명 중 2명은 수저 계급이 인생의 중요 성공 요인이라고 여기지 않는 셈이다.
‘일생 노력하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매우 높다’와 ‘약간 높다’는 의견은 각각 1.6%와 36.6%에 달했다.
김진세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아무리 많은 자산을 가졌어도 한순간에 다 잃을 수 있고, 최고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될 수 있다”며 저서 <태도의 힘>에서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버클리대 심리학자인 켈트너와 허커는 여자대학 졸업앨범 속 사진을 보고 그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건강하고 성공했는지를 알아냈습니다. 어떻게 사진 한 장만 보고 인간의 미래를 점칠 수 있을까요. 바로 미소였습니다.” 그는 “사진을 찍을 때 진짜 미소를 지은 학생들은 더 많이 결혼을 했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연봉도 높았던 것으로 조사됐다”며 “학벌, 경제력, 집안과 같은 조건들보다 ‘좋은 태도’가 모든 것을 이기고 세상을 내 편이 되게 해줄 수 있는 진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5호(2019년 12월) 기사입니다.]
[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부의 계급화, 부자로 가는 사다리가 끊긴 시대라고 말한다. 과연 부의 추월차선은 존재할까.
세상에는 3가지 길이 있다. 인도(人道), 서행차선, 추월차선이다. <부의 추월차선>의 저자 엠제이 드마코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인도를 뚜벅뚜벅 걷는 사람들과 서행차선에서 적당히 달리는 사람들을 모두 앞지르는 부(富)의 추월차선에 서둘러 올라타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월급 노예’에서 벗어나 사업이나 투자 등의 추월차선에 뛰어들라는 조언이다.
이 책은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와 함께 경제·경영 서적 판매 순위에서 상위권을 꾸준히 점하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지난해 출간된 후속작 <언스크립티드: 부의 추월차선 완결판>도 6개월 만에 5만 부가 판매되며 소위 대박을 쳤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한다고 해도 서울의 집 1채 장만하기 어렵고 중산층의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위기감이 사회에 퍼져 있다”며 “최근 부동산과 주식 부자의 경험을 담은 책들의 유행은 저성장·고령화의 대안이 적절히 제시되지 못한 사회에서 개인이 부의 추월차선을 찾도록 내몰리고 있는 현실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용(龍)이 날 개천이 마르고 있다
주병기 서울대 분배정의연구센터 교수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2019)’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갈수록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사회가 되고 있다는 ‘개천용 불평등지수’를 발표했다. 개천용 불평등지수는 부모의 학력·소득 수준이 자녀의 학력·소득 수준을 어느 정도로 결정하는지 상관관계를 알려주는 것으로, 기회가 평등한다면 성공할 수 있던 사람이 기회의 불평등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정도를 수치화했다.
개천용 불평등지수는 2000년대 초반 15~20% 수준에서 2013년에는 35%로 껑충 뛰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기회의 불평등으로 10명 중 1~2명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2013년에는 3~4명이 좌절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부모의 학력·소득이 자녀의 성공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커졌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향후 저성장·고령화로 ‘금수저·흙수저론’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뚝뚝 떨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전망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겨우 2%에 턱걸이했다. 고도성장기에는 저축률도 높았지만, 2018년 가계저축률은 6.9% 수준이다. 앞으로는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로 사망자가 늘어나면 자연히 상속자산의 규모도 늘어날 전망이다. 김낙연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 논문에서 “경제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는 상황에서는 개인이 부를 축적할 기회가 많았지만, 저성장기에는 상속이나 증여에 의한 자산이 중요해지는 시기로 빠르게 이행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2030세대 올인하거나 무민하거나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는 시대는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계층 고착화로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편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불나방 같은 ‘올인 투자’도 성행하고 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최근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자신이 ‘무민세대’라고 생각하는 20대는 47.9%, 30대는 44.8%에 달했다. 심지어 40대도 21.3%, 50대 이상도 22.1%에 달한다. ‘무민세대’는 ‘없다’의 ‘無’와 ‘의미’의 ‘mean’, 그리고 ‘세대(世代)’가 합쳐져 만들어진 조어다. 의미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무의미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세태를 일컫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나은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자조가 섞여 있다.
반대로 ‘인생 한방’의 동아줄을 찾는 쏠림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국토교통부로부터 주택취득자금 집계 현황을 받아 분석한 결과, 지난해 12월 10일부터 올해 9월 30일까지 서울에서 주택을 구매한 20대는 전체 매매가격 가운데 64%를 빚으로 충당했다. 30대는 주택 구매에 차입금(빚) 비율이 55%에 달했다. 이들 20~30대 집주인의 차입금 비중은 같은 기간 다른 연령과 비교해도 과도한 수준이다. 40대(47%), 50대(41%), 60대 이상(29%) 등을 크게 웃돈다.
정 대표는 “집값이 더욱 높아질까 봐 두려워하는 20대와 30대가 과도한 부채를 감수하며 집을 사는 것은 매우 슬픈 현실”이라며 “대출금 상환이나 생활고에 시달릴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우리 사회를 휩쓴 가상화폐 광풍과도 맞닿아 있다. 단기 고수익을 추구하는 현상과 맞물려 ‘투자 또는 투기’에 과도한 에너지가 쏠리고 있다는 우려다.
그렇다면 실제 부의 추월차선은 어디에 있을까. 한국 부자들은 실제 어떻게 부를 쌓았을까. KEB하나은행과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분석한 ‘2019 한국 부자 보고서’에 의하면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들의 자산 기여도에서 부동산 투자가 27%로 가장 높았지만, 사업소득 20%, 근로소득 19%, 금융자산 투자 19%의 영향도 컸다. 부모의 증여·상속 기여도는 15% 순으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펴낸 ‘2019 한국 부자 보고서’에선 ‘사업소득(47.0%)’이 1위를 차지했다. 이는 두 번째 순위를 기록한 ‘부동산 투자(21.5%)’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부자들은 능력과 노력으로 좌우되는 사업소득을 주요 부의 원천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컸다.
수저 계급보다 강한 무기는
“만약 세상을 떠날 때도 가난하다면 그것은 내 탓이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성공을 위한 야망을 강조한 말이다. 실제 추월차선에 올라탄 부자들은 수저계급론이 지배하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그로 인해 좌절감과 상실감에 무력해지는 것을 더욱 경계한다.
사회의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소득 격차가 커지고 있지만, 희망을 꿈꾸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의 성인 38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 갈등 인식조사를 보면, “인생에 성공하는 데 부유한 집안이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한 비율은 ‘매우 중요’가 3.17%, ‘대체로 주요’가 49.2%였다. 한편으로 중요하지 않거나 보통이라고 생각한 비율은 19.2%였다. 10명 중 2명은 수저 계급이 인생의 중요 성공 요인이라고 여기지 않는 셈이다.
‘일생 노력하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매우 높다’와 ‘약간 높다’는 의견은 각각 1.6%와 36.6%에 달했다.
김진세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아무리 많은 자산을 가졌어도 한순간에 다 잃을 수 있고, 최고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될 수 있다”며 저서 <태도의 힘>에서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버클리대 심리학자인 켈트너와 허커는 여자대학 졸업앨범 속 사진을 보고 그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건강하고 성공했는지를 알아냈습니다. 어떻게 사진 한 장만 보고 인간의 미래를 점칠 수 있을까요. 바로 미소였습니다.” 그는 “사진을 찍을 때 진짜 미소를 지은 학생들은 더 많이 결혼을 했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연봉도 높았던 것으로 조사됐다”며 “학벌, 경제력, 집안과 같은 조건들보다 ‘좋은 태도’가 모든 것을 이기고 세상을 내 편이 되게 해줄 수 있는 진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5호(2019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