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영국 최고의 구두 장인, 토니 가지아노를 만나다

토니 가지아노, 가지아노 앤 걸링 창립자

[한국 경제 = 글·사진 김창규 프리랜서] 가지아노 앤 걸링은 ‘영국 최고의 구두 브랜드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5개 슈메이커 중 하나로 꼽힌다. 2019 가을·겨울 트렁크쇼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창립자이자 구두 장인인 토니 가지아노와 구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TG73 라스트를 사용해 만든 세인트 제임스 II는 가지아노 앤 걸링 최초의 구두이자 가장 대표적인 모델이다.
영국 구두의 미래
신사화는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렇기에 종주국인 영국에는 기라성 같은 슈메이커들이 즐비하다. 런던에서 북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노샘프턴은 슈메이커들의 성지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영국 구두 메이커는 여기서 탄생했다. 가지아노 앤 걸링(Gaziano & Girling) 역시 2006년 이곳에서 설립됐다.
‘영국을 대표하는 하이엔드 신사화 브랜드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많은 전문가들은 존 롭(1866년), 에드워드 그린(1890년), 포스터 앤 선(1840년), 조지 클레버리(1898년), 그리고 가지아노 앤 걸링을 꼽는다. 다른 브랜드보다 백 살 이상 어린 가지아노 앤 걸링이 현재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설립자인 토니 가지아노와 딘 걸링이 앞서 언급한 유서 깊은 브랜드들에서 슈메이커로 활동했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전통을 중요시하는 영국의 상류층에게 브랜드 론칭과 동시에 큰 사랑을 받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다른 브랜드들은 탄생한 지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서 창립자의 직계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는 곳도 있다. 하지만 가지아노 앤 걸링은 젊은 브랜드답게 창립자가 직접 제품 생산에 관여하며, 발이 편할 때까지 길들이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는 영국 구두의 고질적인 단점을 크게 상쇄한 구두를 선보여 ‘정통파 영국 슈메이커의 미래’로 불린다.
가지아노 앤 걸링은 현재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 위치한 클래식 맨즈웨어 편집숍 ‘안드레아서울’에서 정기적으로 트렁크쇼(trunk show: 소수의 선택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 패션쇼)를 개최하고 있다. 이곳에서 직접 고객을 응대한 토니 가지아노(Tony Gaziano)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토니 가지아노, 가지아노 앤 걸링 창립자
Q_당신과 딘 걸링의 경력에 대해 얘기해달라.
A_나는 치니에서 슈메이커로서 경력을 쌓은 뒤, 에드워드 그린으로 옮겼다가 조지 클레버리에서 근무했고, 다시 에드워드 그린에서 일했었다. 딘 걸링은 프리랜서 비스포크 슈즈 전문 계약직으로 활동하며 존 롭, 조지 클레버리, 포스터 앤 선의 구두들을 만들었다. 우린 조지 클레버리에서 각자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합심해 회사를 차리게 됐다.

Q_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슈메이커가 즐비한 영국에서 2006년에 설립한 가지아노 앤 걸링이 주류 하이엔드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A_품질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고, 디자인적 특성도 이유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국 제화 산업은 100년 이상 지속돼 오면서 마치 고인 물처럼 디자인적인 요소들이 멈춰져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요가 있었고, 우린 그것을 전반적인 실루엣의 변화로 반영했다. 영국 구두는 런던 스타일의 날렵한 비스포크 슈즈와 영국 노샘프턴의 묵직한 비즈니스용 슈즈로 크게 나뉜다. 우린 이 2가지를 적절하게 융합해 노샘프턴에 뿌리를 두고, 비스포크적인 요소를 담아내고 있다.
비즈니스맨들을 위한 벤치 메이드 라인
악어가죽, 가오리 가죽, 파티나 염색을 한 카프 등 최고급 소재와 예술적인 감각으로 무장한 데코 라인
Q_가지아노 앤 걸링은 벤치 메이드 라인과 데코 라인으로 나뉘어 전개하는 브랜드다. 두 라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
A_벤치 메이드 라인은 좋은 소재를 사용해 노샘프턴 슈메이킹을 충실히 따르는 신사화 컬렉션이다. 고품질의 비즈니스 슈즈를 찾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데코 라인은 날 위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컬렉션으로 비스포크 슈즈에서나 맛볼 수 있었던 고급스러운 사양들을 적용했다. 1920년대 슈메이킹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Q_로마시대 때 만들어진 태너리(tannery: 무두질 작업장)의 가죽으로 밑창을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다.
A_사실이다. 2000여 년 전에 로마인들이 만든 시설에서 가공된 오크바크 가죽(oakbark leather: 오크나무를 이용해 특유의 제조 방법으로 만들어진 가죽)을 사용해 밑창을 만든다. 무두질에 12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이 가죽은 비스포크 슈메이커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우린 모든 구두 밑창에 이 가죽을 사용하는 유일한 기성화 브랜드다. 습기를 머금었을 때 형태 보존력이 좋고, 가죽의 밀도가 높다. 구두를 만들기 더 편하고, 신는 사람 역시 뛰어난 착화감을 경험할 수 있다.

Q_가장 대표적인 라스트와 대표적인 모델을 소개해달라.
A_TG73 라스트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스퀘어 토 실루엣인 이 라스트를 사용해 만든 구두는 비스포크 슈즈처럼 보이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고 있다. 세인트 제임스 II는 가지아노 앤 걸링의 첫 번째 모델이자 TG73 라스트를 사용한 신발이다. 클래식과 컨템퍼러리의 균형이 뛰어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Q_어떤 슈메이커로 불리고 싶은가.
A_‘오리지널 슈메이커’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면 좋겠다.
MTM 서비스를 위한 다양한 가죽 샘플.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만의 구두를 주문할 수 있다.
MTM 고객들의 시착을 위한 다양한 사이즈의 샘플 슈즈
클래식 맨즈웨어 편집숍 ‘안드레아서울’에서는 매년 가지아노 앤 걸링 트렁크쇼를 개최하고 있다.
안드레아서울
최근 클래식 맨즈웨어 시장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은 셀렉트숍으로 꼽히는 안드레아서울은 2017년 4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가지아노 앤 걸링뿐 아니라 전설적인 이탈리아 슈트메이커인 리베라노 앤 리베라노, 오라치오 루치아노 등의 트렁크쇼가 열리며, 체사레 아톨리니, 코히런스의 하이엔드 기성복 컬렉션도 만날 수 있다. 합리적인 가격과 뛰어난 품질로 유명한 링자켓, 까사델사르토, 코랄로 로쏘 등의 기성복, 피렌체를 대표하는 세븐폴드 넥타이, 일 미치오의 레더 굿즈 등 다양한 아이템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4호(2019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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