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1977년에 도입한 유류분 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개정 요구는 줄곧 이어져 왔지만 여전히 개혁의 움직임은 더딘 모양새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유류분 제도의 변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일본 사례에 견줘 알아보자.
2017년에 20년 이상 제 삶의 터전이 됐던 법원을 떠날 때 겉으로는 신선한 자유를 꿈꾸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많았습니다. 지인들이 퇴직 이유를 물을 때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연구나 발표를 맘껏 해보고 싶다고 하니 철없는 소리라고 웃더군요.
마침 그때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재혼가족 부부의 재산상 평등권 제고 방안’을 같이 연구하자는 제의를 받고, 정말 반가웠습니다. 이후 저는 변호사 1년 차의 치기로 이 작업에 몰두하던 중 일본의 문헌에 기재된 재혼부부의 부부재산계약 등기 사례를 발견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재혼가족 부부의 재산상 평등권 제고 방안’이라는 연구 보고서(송효진·김은지·배인구·김연재, 2017년)에서도 일부만을 인용해 소개했는데 그 인용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부부재산계약(도쿄법무국 제58호 소화(昭和)
62년(1987) 10월 28일 58호)
【제1조】
부부의 재산 중 다음의 것은 각자의 재산으로 한다.
① 부의 재산(이하 부의 특유재산이라 한다)
1. (재산표시 생략)
② 처의 재산(이하 처의 특유재산이라 한다)
1. (재산표시 생략)
③ 위 ①, ② 외의 재산은 모두 부부의 공유로 한다.
【제2조】
혼인 중 부 또는 처가 새로이 취득한 재산은 부부 공유로 한다.
【제3조】
① 부의 특유재산은 부의 사망 후, ◯◯(부의 자)에게만 상속된다.
② 처의 특유재산은 처의 사망 후, 및 △△(처의 자)에게만 상속된다.
【제4조】
부 또는 처는 전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혼인신고 후 신속하게 각각 민법 제1043조 소정의 유류분 포기의 절차를 가정법원에 하고, 부는 그 특유재산이 ◯◯에게 상속된다는 취지로 유언을 하고, 처는 그 특유재산이 및 △△ 2명에게 상속된다는 취지의 유언을 하는 것으로 한다.
이 연구를 위해 만났던 재혼을 계획하거나 재혼 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들은 재산에 관한 명확한 의사를 가지고 있었고, 본인이 일군 재산이 본인의 직계 가족들에게만 상속되길 희망하고 있었는데, 사례의 계약서는 그들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계약서를 작성하고 등기를 하더라도 계약 당사자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상 법이 그 약속의 이행을 강제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계약 이행을 법과 제도가 강제할 수 있다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부부재산계약과 관련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일본의 유류분 제도를 소개하려 합니다.
일본의 유류분 규정은 2018년 일본 개정 민법에 따르면 제1042조부터 제1049조입니다. 제1042조는 유류분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자와 그 비율을 정하고 있는데 우선 ‘형제자매 이외의 상속인’을 유류분 권리자로 규정해 형제자매를 명시적으로 제외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 유류분 분쟁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증여에 대해 제1044조는 “증여는 상속 개시 전에 1년간에 이루어진 것에 한하고, 상속인에 대한 증여의 경우 10년간에 이루어진 것에 한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사자 쌍방이 유류분 권리자에게 손해를 가할 것을 알면서 증여한 때에는 그보다 이전에 행한 것에 대해서도 그 가액을 산입해 유류분을 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0년 전에 상속인에게 행해진 증여의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유류분 산정을 위한 재산에 편입되기 때문에 심한 경우에는 상속인이 태어났을 때부터 피상속인 사망 전까지의 모든 재산 변동을 조회하려고 하고, 그 결과 분쟁과 갈등의 정도가 심화됩니다.
10년이란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이렇게 상속인들 사이의 분쟁이 격화되지 않도록 피상속인의 사망 이전 10년간으로 정해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유류분의 포기가 가능하도록 규정된 일본 민법 제1049조를 보겠습니다. 제목을 유류분의 포기라고 한 조문의 내용은, “① 상속 개시 전의 유류분 포기는 가정재판소의 허가를 받은 때에 한하여 그 효력이 발생한다. ② 공동상속인 중 1명이 한 유류분의 포기는 다른 각 공동상속인의 유류분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입니다.
우리 민법은 상속 개시 전 상속 포기는 물론 유류분 포기에 관해 명시적으로 규율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피상속인이 강제로 상속인에게 상속 포기를 강요할 수 있기 때문에 인정하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판례 역시 “유류분을 포함한 상속 포기는 상속이 개시된 후 일정한 기간 내에만 가능하고 가정법원에 신고하는 등 일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야만 그 효력이 있으므로, 상속 개시 전에 이루어진 상속포기약정은 그와 같은 절차와 방식에 따르지 아니한 것으로 그 효력이 없다(대법원 1994. 10. 14. 선고 94다8334 판결)”거나 “유류분은 상속분을 전제로 한 것으로서 상속이 개시된 후 일정한 기간 내에 적법하게 상속 포기 신고가 이루어지면 포기자의 유류분반환청구권은 당연히 소멸하게 된다(대법원 2012. 4. 16. 자 2011스191,192 결정)”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즉, 상속 개시 이후 상속 포기는 가능하지만 상속 개시 전 유류분을 포함한 상속 포기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가정재판소의 허가를 받는 경우에는 상속 개시 전에도 유류분을 포기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류분의 사전포기제도는 1948년 1월부터 시행됐는데, 그 이유는 가산의 분산 방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현대 ‘상속법’의 이념이 가산(家産)보다 상속인의 생활 보장을 우선하는 점에서 보면 유류분의 사전포기제도는 이에 배치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피상속인이 생전에 상속인 A에게도 일정 정도 재산을 분여해주었는데, 상속인 A는 상속재산이 없어도 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상속인 B는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상속재산이 생계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경우에 B가 전부 상속받도록 하고 A는 유류분을 포기하는 것이라면 상속인의 생활 보장을 위해 유류분의 사전 포기는 오히려 필요할 수 있습니다.
또 피상속인의 입장에서도 상속인 A는 너무 많은 비행을 저질러서 재산을 상속받는 것이 부도덕한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 민법은 제1004조에 상속인의 결격 사유를 정하고 있고, 이에 해당한 자는 상속인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민법이 정하고 있는 ①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 그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자, ②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과 그 배우자에게 상해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자, ③ 사기 또는 강박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 또는 유언의 철회를 방해한 자, ④ 사기 또는 강박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을 하게 한 자, ⑤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서를 위조, 변조, 파기 또는 은닉한 자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그 외에도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상속인이라고 하기에는 부적합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와 남처럼 지내던 자식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부모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더라도 부모가 병에 걸려 입원했는데 들여다보지도 않고, 전혀 걱정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죽을 날만 기다리는 부도덕한 자녀가 있다면 그런 자녀에게 상속을 하고 싶은 부모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자녀가 가정법원에 유류분 포기의 허가 신청을 할 가능성이 없겠지만 남남처럼 지낸 지 오래된 경우에는 거리낌 없이 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일각에서는 유류분의 사전 포기 외에 유언으로 유류분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피상속인이 잔여 재산 전부를 공익을 위해 기부하려는 경우에도 유류분은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피상속인 면전에서는 아무 말도 없던 상속인들이 피상속인 사후에 유류분을 주장할 수도 있으니까요. 일본 가정재판소는 유류분 사전 포기의 허가 기준으로 ① 유류분 권리자가 진의에 의해 그 권리를 포기하는 것인지, ② 유류분을 사전 포기하는 데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하는지, ③ 포기에 따른 재산을 제공받았는지 여부를 심리하고, 특히 ①과 ②의 요건을 갖추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공익재단에 출연하는 경우에는 유류분의 사전포기제도를 도입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재혼 부부의 경우에는 유류분의 사전포기제도가 불공평하다고 할 수 없고, 상속인이 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사실혼 부부가 많이 존재한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원만한 재혼 생활을 촉진할 수도 있습니다.
분쟁과 갈등이 증가되는 사회라면 그 피해는 전체 구성원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따라서 분쟁과 갈등이 감소될 해법이 있다면 과감하게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전통적인 상속 제도로 인해 법률 분쟁이 증가하지 않도록 유류분 제도의 개혁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우리보다 천천히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일본이 ‘상속법’ 분야에서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도 고령화 사회로 변화하는 것과 많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유류분 제도에 대한 각 이슈들이 현명한 법률 개정으로 통합돼 많은 유류분 분쟁이 해결되고 소멸되길 기대합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4호(2019년 11월) 기사입니다.]
2017년에 20년 이상 제 삶의 터전이 됐던 법원을 떠날 때 겉으로는 신선한 자유를 꿈꾸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많았습니다. 지인들이 퇴직 이유를 물을 때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연구나 발표를 맘껏 해보고 싶다고 하니 철없는 소리라고 웃더군요.
마침 그때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재혼가족 부부의 재산상 평등권 제고 방안’을 같이 연구하자는 제의를 받고, 정말 반가웠습니다. 이후 저는 변호사 1년 차의 치기로 이 작업에 몰두하던 중 일본의 문헌에 기재된 재혼부부의 부부재산계약 등기 사례를 발견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재혼가족 부부의 재산상 평등권 제고 방안’이라는 연구 보고서(송효진·김은지·배인구·김연재, 2017년)에서도 일부만을 인용해 소개했는데 그 인용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부부재산계약(도쿄법무국 제58호 소화(昭和)
62년(1987) 10월 28일 58호)
【제1조】
부부의 재산 중 다음의 것은 각자의 재산으로 한다.
① 부의 재산(이하 부의 특유재산이라 한다)
1. (재산표시 생략)
② 처의 재산(이하 처의 특유재산이라 한다)
1. (재산표시 생략)
③ 위 ①, ② 외의 재산은 모두 부부의 공유로 한다.
【제2조】
혼인 중 부 또는 처가 새로이 취득한 재산은 부부 공유로 한다.
【제3조】
① 부의 특유재산은 부의 사망 후, ◯◯(부의 자)에게만 상속된다.
② 처의 특유재산은 처의 사망 후, 및 △△(처의 자)에게만 상속된다.
【제4조】
부 또는 처는 전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혼인신고 후 신속하게 각각 민법 제1043조 소정의 유류분 포기의 절차를 가정법원에 하고, 부는 그 특유재산이 ◯◯에게 상속된다는 취지로 유언을 하고, 처는 그 특유재산이 및 △△ 2명에게 상속된다는 취지의 유언을 하는 것으로 한다.
이 연구를 위해 만났던 재혼을 계획하거나 재혼 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들은 재산에 관한 명확한 의사를 가지고 있었고, 본인이 일군 재산이 본인의 직계 가족들에게만 상속되길 희망하고 있었는데, 사례의 계약서는 그들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계약서를 작성하고 등기를 하더라도 계약 당사자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상 법이 그 약속의 이행을 강제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계약 이행을 법과 제도가 강제할 수 있다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부부재산계약과 관련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일본의 유류분 제도를 소개하려 합니다.
일본의 유류분 규정은 2018년 일본 개정 민법에 따르면 제1042조부터 제1049조입니다. 제1042조는 유류분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자와 그 비율을 정하고 있는데 우선 ‘형제자매 이외의 상속인’을 유류분 권리자로 규정해 형제자매를 명시적으로 제외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 유류분 분쟁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증여에 대해 제1044조는 “증여는 상속 개시 전에 1년간에 이루어진 것에 한하고, 상속인에 대한 증여의 경우 10년간에 이루어진 것에 한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사자 쌍방이 유류분 권리자에게 손해를 가할 것을 알면서 증여한 때에는 그보다 이전에 행한 것에 대해서도 그 가액을 산입해 유류분을 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0년 전에 상속인에게 행해진 증여의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유류분 산정을 위한 재산에 편입되기 때문에 심한 경우에는 상속인이 태어났을 때부터 피상속인 사망 전까지의 모든 재산 변동을 조회하려고 하고, 그 결과 분쟁과 갈등의 정도가 심화됩니다.
10년이란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이렇게 상속인들 사이의 분쟁이 격화되지 않도록 피상속인의 사망 이전 10년간으로 정해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유류분의 포기가 가능하도록 규정된 일본 민법 제1049조를 보겠습니다. 제목을 유류분의 포기라고 한 조문의 내용은, “① 상속 개시 전의 유류분 포기는 가정재판소의 허가를 받은 때에 한하여 그 효력이 발생한다. ② 공동상속인 중 1명이 한 유류분의 포기는 다른 각 공동상속인의 유류분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입니다.
우리 민법은 상속 개시 전 상속 포기는 물론 유류분 포기에 관해 명시적으로 규율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피상속인이 강제로 상속인에게 상속 포기를 강요할 수 있기 때문에 인정하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판례 역시 “유류분을 포함한 상속 포기는 상속이 개시된 후 일정한 기간 내에만 가능하고 가정법원에 신고하는 등 일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야만 그 효력이 있으므로, 상속 개시 전에 이루어진 상속포기약정은 그와 같은 절차와 방식에 따르지 아니한 것으로 그 효력이 없다(대법원 1994. 10. 14. 선고 94다8334 판결)”거나 “유류분은 상속분을 전제로 한 것으로서 상속이 개시된 후 일정한 기간 내에 적법하게 상속 포기 신고가 이루어지면 포기자의 유류분반환청구권은 당연히 소멸하게 된다(대법원 2012. 4. 16. 자 2011스191,192 결정)”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즉, 상속 개시 이후 상속 포기는 가능하지만 상속 개시 전 유류분을 포함한 상속 포기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가정재판소의 허가를 받는 경우에는 상속 개시 전에도 유류분을 포기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류분의 사전포기제도는 1948년 1월부터 시행됐는데, 그 이유는 가산의 분산 방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현대 ‘상속법’의 이념이 가산(家産)보다 상속인의 생활 보장을 우선하는 점에서 보면 유류분의 사전포기제도는 이에 배치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피상속인이 생전에 상속인 A에게도 일정 정도 재산을 분여해주었는데, 상속인 A는 상속재산이 없어도 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상속인 B는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상속재산이 생계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경우에 B가 전부 상속받도록 하고 A는 유류분을 포기하는 것이라면 상속인의 생활 보장을 위해 유류분의 사전 포기는 오히려 필요할 수 있습니다.
또 피상속인의 입장에서도 상속인 A는 너무 많은 비행을 저질러서 재산을 상속받는 것이 부도덕한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 민법은 제1004조에 상속인의 결격 사유를 정하고 있고, 이에 해당한 자는 상속인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민법이 정하고 있는 ①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 그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자, ②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과 그 배우자에게 상해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자, ③ 사기 또는 강박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 또는 유언의 철회를 방해한 자, ④ 사기 또는 강박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을 하게 한 자, ⑤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서를 위조, 변조, 파기 또는 은닉한 자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그 외에도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상속인이라고 하기에는 부적합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와 남처럼 지내던 자식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부모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더라도 부모가 병에 걸려 입원했는데 들여다보지도 않고, 전혀 걱정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죽을 날만 기다리는 부도덕한 자녀가 있다면 그런 자녀에게 상속을 하고 싶은 부모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자녀가 가정법원에 유류분 포기의 허가 신청을 할 가능성이 없겠지만 남남처럼 지낸 지 오래된 경우에는 거리낌 없이 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일각에서는 유류분의 사전 포기 외에 유언으로 유류분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피상속인이 잔여 재산 전부를 공익을 위해 기부하려는 경우에도 유류분은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피상속인 면전에서는 아무 말도 없던 상속인들이 피상속인 사후에 유류분을 주장할 수도 있으니까요. 일본 가정재판소는 유류분 사전 포기의 허가 기준으로 ① 유류분 권리자가 진의에 의해 그 권리를 포기하는 것인지, ② 유류분을 사전 포기하는 데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하는지, ③ 포기에 따른 재산을 제공받았는지 여부를 심리하고, 특히 ①과 ②의 요건을 갖추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공익재단에 출연하는 경우에는 유류분의 사전포기제도를 도입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재혼 부부의 경우에는 유류분의 사전포기제도가 불공평하다고 할 수 없고, 상속인이 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사실혼 부부가 많이 존재한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원만한 재혼 생활을 촉진할 수도 있습니다.
분쟁과 갈등이 증가되는 사회라면 그 피해는 전체 구성원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따라서 분쟁과 갈등이 감소될 해법이 있다면 과감하게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전통적인 상속 제도로 인해 법률 분쟁이 증가하지 않도록 유류분 제도의 개혁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우리보다 천천히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일본이 ‘상속법’ 분야에서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도 고령화 사회로 변화하는 것과 많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유류분 제도에 대한 각 이슈들이 현명한 법률 개정으로 통합돼 많은 유류분 분쟁이 해결되고 소멸되길 기대합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4호(2019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