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IF IN ART] 양산(parasol), 여자의 멋과 교양

[한경 머니 =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 햇볕이 뜨거운 여름, 해변이나 거리에서 양산은 해로운 자외선을 막아주는 요긴한 보호 장비다. 근대의 여성에게 양산은 멋과 교양을 뽐낼 수 있는 중요한 패션 소품이기도 했다.

근대의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는 20대 후반부터 당시 화가로 성공한 처남의 주선으로 왕립 태피스트리 제작소에서 일감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드리드의 엘 파르도 궁의 벽에 걸릴 태피스트리를 위한 직업을 맡게 됐다. 그 일은 긴 시간이 필요한 큰 작업이었다. 고야는 무려 5년여 동안 태피스트리 밑그림으로 사용할 유화를 42점이나 제작했다. 그 시리즈는 일상 공간의 장식용이었기 때문에 가벼운 소재로 다양한 사회 계층의 여가 활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양산>이라는 그림은 가장 아름답고 명랑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그림은 훗날 카를로스 4세가 되는 왕자 부부의 식당에 걸릴 태피스트리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고야는 왕실의 요구를 반영해 특별히 경쾌한 분위기로 그림을 완성했다.

고야의 초록 양산
그림 <양산>은 자연을 배경으로 젊은 남녀가 함께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들은 길을 가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일까. 아니면 어느 한적한 모퉁이에서 밀애를 즐기는 중일까. 여자는 노란색 넓은 치마와 몸에 꼭 끼는 하늘색 상의에 흰색 망토를 걸치고 풀밭에 편안히 앉아 있다. 오른손에는 접은 부채를 들고 무릎에 검은 개를 올려놓고 있다. 프랑스풍이 감도는 복장으로 한껏 멋을 낸 이 여인은 귀한 신분일까. 그녀 옆에 청년이 여유롭게 서서 커다란 양산을 펼쳐 여자의 뽀얀 얼굴에 햇빛이 들지 않도록 막아주고 있다. 노란 상의에 갈색 하의, 붉은 조끼, 흰색 크라바트, 검은 스카프, 넓은 벨트와 머리장식…. 그 역시 만만찮게 멋을 부렸다. 그런데 이런 옷차림은 귀족이 아니라 당시 하층민인 마호(majo)와 마하(maja)들이 즐기던 스타일이다. 그들은 자유분방한 행동과 특유의 패션 감각으로 눈길을 끌었다. 당시 유행한 프랑스풍 대신 스페인의 전통 의상을 과장해 독특하고 강렬한 패션을 창조하곤 했다. 여자는 양산으로 남자의 보호를 받으며 짐짓 귀부인인 척 하고 있으나 그녀도 남자와 같은 신분의 마하다. 가슴에 달린 커다란 꽃장식이나 허리에서 길게 늘어뜨린 흰 천, 특히 남자와 같은 스타일의 머리장식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그림에는 프랑스의 로코코풍 연애 장면처럼 우아하고 감미로운 분위기와 스페인의 마호 문화에서 온 거침없는 활달함이 공존한다.
그림의 구성은 인물들이 안정된 삼각형 구도를 이루며, 밝은 노란색이 중심을 지키는 가운데 파랑, 빨강, 초록의 선명한 색상들이 자연광에 따라 톤이 변화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배경은 왼쪽 어두운 부분과 오른쪽 밝은 부분으로 양분된다. 왼쪽에서 회색 담장이 그늘을 드리우지만 청년은 그 너머에서 들어오는 햇볕마저도 막으려는 듯 양산을 들어 여자의 얼굴을 안전하게 가려주고 있다. 양산의 방향은 담장의 비스듬한 기울기와 거의 일치하며 반대쪽의 기울어진 나뭇가지와 대칭을 이룬다.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한쪽으로 쏠려 의외로 바람이 다소 강하게 불고 있다고 알려준다. 양산의 짙은 녹색 천은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초록빛 숲과 조응하며 화면의 균형을 맞춘다. 녹색은 위쪽 나뭇가지의 푸른 나뭇잎과도 연결되고 그 너머 파란 하늘, 즉 밝은 세계로 이어진다. 활짝 펼친 양산이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준다. 이 정도면 햇볕뿐 아니라 어둠이나 바람으로부터도 그녀를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여인의 무릎에서 편안히 앉아있는 강아지가 폭풍 속에서도 이들의 사랑이 무사할 것임을 암시한다.
멋진 패션, 우아함과 자유로움, 아름다운 자연, 달콤한 사랑…. 이 모든 것을 지켜줄 안전한 장비가 있다면! 고야의 그림에서는 초록 양산이 그 보호 역할을 기꺼이 맡아준다. 그러니 누구라도 이 그림을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고야는 태피스트리 연작을 그리면서 왕실의 호감을 얻었고 마침내 궁정화가로서 당당히 왕궁으로 입성하게 된다.

모네의 양산 패션
19세기에 유럽에서는 양산이 단순히 햇빛을 막는 도구가 아니라 여성 패션에서 필수품이 됐다. 여자들은 외출할 때 반드시 양산을 들어야 했다. 거리에서, 마차에서, 정원에서, 물가나 시골 같은 야외에서 그들은 항상 양산을 펼쳤다. 어딜 가나 양산이 너무 많다고 남자들은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 어떤 글에서는 이제 양산은 끔찍한 무기가 됐다고 불평하는 남자를 볼 수 있다. 양산 때문에 몸을 좌우로 돌리기도 힘들고 눈을 찔릴 수도 있으며 승합마차에서 자리에 앉을 때는 양산 위에 앉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산은 여러 가지 모양과 색상으로 만들어져 때에 따라 선택할 수 있었다. 장식이 많은 양산은 축제나 꽃 박람회 같은 행사 때 잘 어울렸다. 보통 때는 무난하게 회색 민무늬 양산을 주로 썼다. 어떤 옷에나 어울리고 때도 적게 타기 때문이었다. 검은색 양산은 상복에 걸맞지만 사회적 지위가 있는 여성의 검소한 패션으로도 애용됐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는 야외 풍경 속에 양산 쓴 여인들을 자주 그렸다. 1870년 작품 <트루빌 해변>에도 양산을 쓴 두 여성이 등장한다. 이 그림은 모네가 결혼한 직후 노르망디 지방 트루빌 해변에서 한때를 보내면서 그린 것이다. 그림 왼쪽에 앉은 흰 옷을 입은 여인이 모네의 부인 카미유이고, 오른쪽의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은 선배 화가 외젠 부댕의 부인이다. 두 사람은 각기 자기 옷에 맞는 양산을 쓰고 있다. 부댕의 부인은 흰 칼라가 달린 검은 옷을 단정하게 입고 역시 검정 양산을 썼다. 그녀는 책인지 신문인지를 읽고 있는데 표정이 좋지 않다. 아마도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시작됐다는 뉴스가 아닐까. 검은 양산에 둘러싸인 그늘진 얼굴이 암울한 느낌을 강조한다.
이에 비해 카미유는 복잡한 세상사에 무관심한 듯 지루한 표정이다. 그녀는 흰 옷에 어울리는 밝은색 양산을 썼다. 안쪽은 파란색, 바깥쪽은 흰색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모네가 밝은 햇빛을 의식하고 색을 처리한 결과다. 그래서 그 양산이 실제로 무슨 색인지 확신할 수 없다. 흰색인데 안쪽이 어두워서 파랗게 표현한 걸까. 아니면 파란색인데 바깥쪽이 빛을 받아 하얗게 보이는 걸까. 모네는 이때 이미 인상주의의 근본 개념을 터득하고 있었다. 모든 사물의 색은 빛에 의해 끊임없이 달라질 뿐 고유한 색이란 없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양산의 그림자에 의해 카미유의 얼굴에도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이 확실하게 나뉜다. 모네는 저 흐린 하늘처럼 혼탁한 세상으로부터 아내를 보호하고 싶었을까. 마치 오염되지 않은 밝은 세상만 바라보려는 듯, 그녀는 모래가 날리는 해변에서도 흰 드레스를 입고 꽃장식이 달린 모자를 쓴 채 희고 푸른 양산을 똑바로 들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1호(2019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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