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문혜원 객원기자│사진 각 사 제공] 패션이 집으로 들어왔다. 그동안 내 아이덴티티를 옷, 가방, 액세서리로 드러냈다면 이제는 집에서도 나를 드러내고 멋을 드러내는 것. 고가의 아이템을 다른 이들에게 자랑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패션이든 인테리어든 결국엔 자기만족과 자기 우월감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리빙 상품군 매출은 2013년부터 매년 10∼15%가량 성장했다. 올 상반기(1∼6월)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증가했다. 다른 분야가 침체된 것과 비교하면 주목할 만한 수치다. 리빙 시장의 전망은 앞으로도 밝을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7조 원 규모였던 국내 리빙 시장은 2015년 12조5000억 원으로 증가했고, 2023년 18조 원 수준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홈 컬렉션에서도 역사가 깊은 에르메스를 비롯해 베르사체, 펜디는 최근 새롭게 라인업을 확장하는 분위기다. 구찌는 가장 최근 홈 컬렉션을 선보이며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이 밖에 아르마니 까사, 베르사체 홈, 티파니 홈 등 다양한 패션 브랜드가 홈 컬렉션을 론칭해 판매 중이다. 평소 자신과 궁합이 맞았던 패션 브랜드가 있다면 홈 컬렉션에도 눈을 돌려보는 건 어떨까. 패션과 리빙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리빙도 유서 깊은 에르메스 ‘라 메종’
켈리백의 최고급 가죽과 정교한 새들스티치, 또 화려한 색감과 프린트의 스카프로 유명한 에르메스는 이미 리빙 시장에서도 우아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에르메스의 집 이야기는 한 세기 전이나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에르메스는 1922년 골프백과 스포츠 오브제를 시작으로 이듬해 쿠션과 담요 등을 선보였다. 하지만 본격적인 홈 컬렉션은 1924년 프랑스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장 미셸 프랑크를 만나고부터였다.
에르메스 가문의 4대손 장 르네 게랑은 프랑크에게 “당신의 가구에 에르메스의 가죽 장인들이 가죽 커버를 씌우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렇게 프랑스 최고의 디자이너와 최고의 가죽 장인들이 만나 가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가죽의 정교한 스티치는 에르메스 기존 제품을 그대로 반영하며 에르메스 고객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진정한 미니멀리즘의 선구자이기도 한 프랑크는 실내공간의 불필요한 겉치레를 벗겨내고 순수함과 단순함에 큰 비중을 두었다. 그는 단순하지만 값비싼 소재(밀짚을 사용한 상감세공, 분칠해 나뭇결을 강조한 참나무, 가죽, 양피지, 상어 가죽 등), 내추럴 색상(화이트, 베이지, 브라운), 엄격한 비례와 형태를 사용해 아주 작은 부분에도 완벽함을 추구했다.
프랑크의 작업을 연구해 온 전문 미술사학자 피에르 에마뉘엘 마르탱 비비에는 “그의 작품을 통해 소재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변덕스런 상상의 형태를 통해서가 아니라 소재 자체가 가지는 물리적 속성을 그대로 표현했을 때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에르메스는 2010년부터 장 미셸 프랑크 리에디션을 판매 중이다.
1980년대부터는 포셀린 도자기, 파양스 도자기, 크리스털, 실버, 텍스타일, 데커레이션 컬렉션을 통해 에르메스 스타일은 삶의 영역으로 다양하게 스며들었다. 1987년에는 실내 건축가 르나 뒤마(Rena Dumas)와 피터 콜스(Peter Coles)가 ‘피파(Pippa)’ 시리즈를 만들었다. 접이식 가구 콘셉트의 이 제품군은 에르메스가 지향하는 노마드적인 삶과 여행의 이상을 구현한다.
에르메스는 2011년 밀란 건축박람회에 처음으로 참가하며 본격적으로 리빙 브랜드로서의 외연을 확장한다. 카펫, 가정용 패브릭은 물론 벽지 컬렉션, 키즈 리빙용품 등 리빙 카테고리의 전 영역을 포함한 것이다. 에르메스의 총괄 아티스틱 디렉터인 피에르 알렉시 뒤마는 이를 두고 ‘집’을 위한 전 영역에 에르메스의 심볼을 찍었다고 표현했다.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디자인을 입은 구찌 데코
2017년 여름, 패션과 리빙 시장의 이목이 구찌에 집중됐다. 구찌가 처음으로 홈 컬렉션인 ‘구찌 데코’를 출시한 것. 구찌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디자인한 구찌의 옷을 그대로 입은 듯한 가구와 소품, 텍스타일로 구찌의 현 모습을 그대로 인테리어로 드러냈다. 최근의 미니멀리즘 경향은 안중에도 없는 듯, 로맨틱하면서도 과감한 구찌만의 정체성을 담은 구찌 데코의 컬렉션은 구찌 마니아를 열광하게 했다.
구찌 데코 컬렉션은 기존의 정형화된 장식용 스타일이 아니다. 미켈레의 홈 커스터마이징 철학을 담아 개개인의 개성을 살려 주거 공간을 연출할 수 있는 게 특징. 구찌 데코는 미켈레의 쇼에 자주 등장하는 다양한 디자인 모티브를 제품에 담아냈다. 각종 동식물 등 자연 친화적인 ‘구찌 가든(Gucci Garden)’ 요소를 스크린, 쿠션, 주전자 등에 반영한 것이다.
올해도 새롭게 홈 컬렉션을 추가한 구찌 데코는 미켈레가 지향하는 바를 또다시 그대로 구현했다. 구찌의 패션쇼를 통해 익숙해진 다양한 모티브 빛깔, 패턴 및 디자인이 어떠한 규칙도 없이 놀랍고 즐겁게 혼재돼 있는 것이다. 활짝 피어난 꽃과 다양한 생명체가 등장하는 구찌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의자, 쿠션 혹은 찻주전자 등 거의 모든 제품에서 느낄 수 있다.
컬렉션의 모든 제품은 100% 이탈리아에서 제작된다. 이는 이탈리아 공예가들의 기교와 솜씨를 이어가려는 의지를 보여주며 이탈리아 예술의 다채로운 문화를 기념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1735년 설립된 피렌체 소재의 세계적인 기업 리처드 지노리(Richard Ginori)가 생산한 포슬린이다.
구찌는 수작업의 숙련도와 높은 수준의 전문 지식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자기 굽기 과정을 활용해 눈길을 사로잡는 다양한 작품들을 개발했다. 실제로 구찌의 포슬린 제품 중 상당수가 핸드페인팅 기법을 필요로 해 화기류의 검은색 뱀 모양 손잡이는 채색 과정에만 5시간이 소요되며 모두 수작업으로 채색이 이루어진다.
장미, 별 패턴 등 신선한 아트워크가 적용된 새로운 머그, 티컵 및 캔들 홀더에 이어 이번에 합류한 대형 캔들 홀더는 ‘스타 아이(Star Eye)’ 문양과 앙투아네트 푸아송(A Paris Chez Antoinette Pois)을 창립한 파리의 크리에이티브 3인방이 디자인한 오리지널 플라워 모티브가 적용된 제품으로, 초를 다 태우고 나면 보관함이나 화기로 사용할 수 있다. 특별한 오브제이자 열쇠, 동전 및 장신구의 보관함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들 제품에는 스타 아이, 식물, 별, 장미, 미스틱 캣 디자인 등 구찌의 심볼과 패턴이 다양하게 적용됐다.
벽지류는 비닐, 종이 혹은 실크 소재로 한층 더 파격적으로 변신했다. 티안, 그로테스크 라이언, 태피스트리 및 타이거 페이스 디자인 등 더욱 다양한 구찌의 프린트 및 패턴이 등장하며, 구찌 하면 떠오르는 플로럴 프린트를 새롭게 해석한 제품도 출시됐다.
이번 신제품 외에도, 구찌 데코의 명실상부한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해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제품들도 주목할 만하다. 뚜껑이 달린 다양한 머그잔류 및 캔들 홀더 제품이 대표적으로, 검은 표범, 스타 아이 및 메종 드 라무르(Maison de l’Amour) 그래픽 모티브가 적용된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폴딩 메탈 테이블, 쿠션과 장식용 폴딩 스크린 등 기존 컬렉션을 통해 선보였던 제품들 역시 계속해서 만나볼 수 있다.
우아함의 극치, 펜디 까사
이탈리아 로마의 명품 브랜드인 펜디는 1987년 리빙 브랜드인 펜디 까사를 선보였다. 알베르토 비냐텔리가 설립한 펜디 까사는 패션 브랜드로서의 아이코닉한 특징을 가구에 투영한 가구를 디자인하고 있다. 펜디 까사는 패션 브랜드로서 독특한 상상력과 재미를 가구에 접목하는 동시에 펜디의 시그니처인 부드러운 가죽 소재를 사용한 제품을 선보인다. 패션 디자인에 사용하는 텍스처, 컬러, 시그니처 스티치를 홈 컬렉션에서도 볼 수 있는 것. 펜디 까사에서 제작되는 모든 제품은 전통 기술을 가진 이탈리아 장인이 90% 이상 수작업으로 만들고 있으며, 가구와 소품은 물론 아웃도어 키친, 드레스룸의 인테리어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펜디의 홈 컬렉션은 한두 가지로 정의하기 어렵다. 도시적인 모던한 디자인부터 클래식한 디자인까지 다양한 카테고리를 다루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1호(2019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