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자신의 경험, 스마트폰에 가두지 말아야”

최승미 한국정보화진흥원 스마트쉼센터 책임상담사

[한경 머니=공인호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 독일, 일본 등 세계 각국은 향후 초래될 스마트폰 중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국민 10명 가운데 9명이 스마트폰을 보유할 정도로 정보통신기술(ICT) 기기가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스마트쉼센터’의 소속 상담사들이 그 선봉에 서 있다.

전국 17개 시도에 설립된 스마트쉼센터는 디지털 기기와 관련된 개인 상담은 물론 영유아부터 노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과의존 방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굳이 디지털 ‘중독’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과다 사용 여부를 진단하고 올바른 디지털 기기 활용에 대한 조언도 받을 수 있다. 특히 광화문에 위치한 서울센터에는 모래놀이, 인형 등과 같은 다양한 치료도구는 물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측과 협업해 마련한 가상현실(VR) 치료 프로그램도 구비돼 있다.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춘 이 프로그램은 스마트폰은 물론 개인용컴퓨터(PC) 게임 과의존 자녀들의 사회성 증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다만 스마트쉼센터의 경우 개설 20년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센터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는 예산 부족에 따른 홍보 미흡이 주된 원인으로 풀이된다. 올해에는 프로그램 대상이 영유아로 확대됐지만 관련 예산은 매년 축소일로다.
최승미 한국정보화진흥원 스마트쉼센터 책임상담사 역시 스마트폰 과몰입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가족, 전체 사회공동체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지만, 예산 부족에 따른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다음은 최 책임상담사와의 일문일답.

스마트쉼센터와 본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의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은 정보화를 통한 사회 현안 해결 및 세계 최고의 ICT 전문 기관을 지향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역기능에 대응하고자 신설된 기관이 ‘스마트쉼센터’입니다. 2002년에 설립된 국내 첫 인터넷 중독 대응기관인데, 이후 인터넷중독대응센터, 인터넷중독상담센터 등으로 기관명이 변경되다가 지난 2015년 지금의 ‘스마트쉼센터’로 확정됐죠. 센터는 전국 17개 시도에 18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스마트쉼센터라는 명칭은 ‘중독’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을 완화하면서, 이제는 스마트폰이 일상생활의 일부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을 감안해 고안됐습니다.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것으로 볼 수 있겠죠. 또한 중독이라는 말은 자칫 병리적으로 오인될 수 있어 현재는 ‘과의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PC 인터넷에 국한됐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스마트폰을 비롯해 다양한 디지털 기기가 출시되고 있어 대응 범위도 더욱 넓어질 것으로 보이네요.”

8년 가까이 상담 업무를 해 오면서 느꼈던 소회가 있다면.
“모든 상담 업무가 그렇겠지만 디지털 과의존 상담 역시 어려움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피상담자들이 디지털 중독, 과의존 문제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불안, 우울, 분노, 무기력감 등 부정적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때로는 큰 도움이 못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무기력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많은 분들이 상담을 통해 본인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 뿌듯하기도, 또 감사하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이 상담 업무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네요. 다만 상담 업무 역시 정신적 소진이 반복되는 일인 만큼 자기 자신을 잘 컨트롤해야 합니다. 자신이 소진된다는 느낌을 받으면 제대로 된 상담을 할 수 없죠. 그런 경우에는 어렵게 센터를 찾은 피상담자를 위해서라도 상담자 자신을 탐색해보는 시간을 갖거나 슈퍼비전(supervision)을 통해 전문적 역량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10년 디지털 환경이 급변하면서 상담 업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게임 중독이 개인은 물론 가정 파탄과 사회적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심각한 문제였죠. 상담 업무를 시작한 뒤 게임과 현실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반면 스마트폰의 경우 PC 게임과 달리 점진적으로 과의존 상태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완전한 중독 상태는 아니더라도 스마트폰에 끌려 다니면서 자기 주도적 삶을 점차 잃어버리는 거죠. 물론 스마트폰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도 많지만, 단순히 사용 시간으로 과의존이 측정되기 어려운 만큼 공식적인 통계치보다 과의존에 노출된 사람이 훨씬 많을 수 있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로 보이네요. 여기에 최근에는 디지털 기기와 프로그램이 세분화되면서 다양한 경로의 과의존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유아들이 태블릿PC에 많이 노출된다거나, 성인들의 경우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부터 모바일 게임, 검색, 쇼핑 등이 과의존의 대상이 되고 있는 거죠.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은 과거 10대와 20대가 주로 인터넷 중독에 빠졌다면, 지금은 유아는 물론 고령층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중장년층의 경우 과의존 안전지대로 봐도 무방한가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4050세대의 경우 30대 전후로 스마트폰을 접한 세대라 디지털 기기 이용에 능숙하고 활용 빈도도 높은 편입니다. 과거 PC 기반일 때는 전 연령대에서 남성들의 상담 건수가 압도적이었던 반면, 스마트폰 등장 이후에는 센터별로 여성 상담 건수가 앞지르는 사례가 종종 목격되기도 합니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SNS로 인해 고통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SNS를 통해 보이는 이미지에만 매몰돼 상대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관심과 흥미에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열등감과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거죠. 또 40~50대 남성들의 경우 조직생활에서 느끼는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물론 가정에서조차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사례가 많은데, 이를 해소하고 회피하는 수단으로 스마트폰 과의존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네요.”

기억에 남는 상담 사례가 있었다면.
“보통 아이들이 스마트폰 과의존에 빠질 경우 부모들이 내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동행하기를 거부하는 거겠죠. 이런 경우 대부분 부모와 자녀 간의 소통 부재가 근본 원인인 경우가 많아 상담사가 부모와 아이 간 소통을 위한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각자의 생각과 마음을 전달해주는 건데, 이 과정에서 가족 관계가 개선되면 스마트폰 과의존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합니다. 상담사로서는 이런 사례가 가장 기억에 남고 뿌듯하죠. 반면 일부 부모의 경우 ‘아이 문제인데 내가 왜 고쳐야 하느냐’고 되묻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대응은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죠.
부부간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아내가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단순히 남편 혼자만의 문제라기보다는 공동의 문제로 인식하고 자신의 태도 변화를 통해 남편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우를 보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이 같은 해결 과정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스마트폰만으로 대인관계를 맺고, 즐거움을 찾다 보면 실제 현실에서는 어떤 변화의 노력도 기울이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고 기피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겠죠.”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이 스마트폰 과의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 있습니다. 체감하는지.
“저희 센터 역시 무료 상담인 만큼 애초에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조손가정이나 한 부모 가정 등을 대상으로 가정방문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최근에는 강남 등 중산층 이상 가정의 상담 요청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희 센터도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죠. 자녀들의 스마트폰 과의존이 일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닐뿐더러 정보의 비대칭이 이런 현상으로 이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교육열이 높은 지역 학부모들 사이에서 스마트쉼센터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고 있는 거죠. 자녀의 스마트폰 과의존 문제는 소득 격차에서 비롯됐다기보다 부모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아이와 소통하고, 부모 자신이 스마트폰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활용하는지를 몸소 보여주고 지도하는지가 더욱 중요한 게 아닐까 싶네요.”

끝으로 디지털 기기 과의존을 피할 수 있는 팁이 있다면.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 자체는 실생활에 유용한 측면이 많습니다. 문제는 이를 사용하는 이용자의 태도죠. 따라서 스마트폰의 사용 시간보다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과의존 여부를 결정합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얼마나 활용하겠다는 스스로의 계획과 자기 조절이 그만큼 중요해진 거죠. 디지털 과의존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오프라인’ 활동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흥미를 갖는 것입니다. 온라인상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흥미와 취미 생활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중 상당수는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에 더 관심을 갖고, 직접 대면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등 자신의 경험을 스마트폰에 가두지 말고 확장시키는 게 올바른 디지털 밸런스가 아닐까 하네요.”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1호(2019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