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퐁나께방국립공원, 동굴 트레킹의 성지를 만나다


[한경 머니 기고=양보라 여행전문기자] 지난해 베트남을 방문한 한국인은 343만 명에 이른다. 한국인 여행자가 특히 몰리는 곳이 다낭, 나짱 등 바닷가 휴양 도시라, 베트남의 이미지는 가성비가 좋은 바다 휴양지로 굳어지는 듯하다. 그러나 바다만 즐긴다면 베트남을 절반만 본 것이나 다름없다.

베트남은 국토의 50%가 산과 정글인 나라다. 베트남 산악지대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여행지가 베트남 중부 꽝빈주인데, 이곳에는 2003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퐁나께방국립공원’이 있다. 동굴 트레킹 성지로 꼽히는 이곳에서 여행자는 빽빽한 정글을 헤집고 깊숙한 석회동굴에 찾아 들어가는 수고를 무릅쓴다. 그리고는 기기묘묘한 동굴 안에서 잊지 못할 밤을 보낸다.

폭우의 반전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500㎞ 떨어진 꽝빈주의 벽촌, 퐁나의 풍경은 1970년대 우리 농촌을 촬영한 자료 화면을 보는 듯했다. 둥그스름한 동산이 사위를 두르고 있고, 산 밑자락엔 정성껏 빚어 놓은 논밭이 펼쳐졌다. 도로 위에 달구지를 끄는 소도 이따금 출몰했다. 인구 3000명이 사는 이 평화로운 농촌에 무슨 근심이 있을까 싶었는데, 퐁나에서 나고 자란 가이드 ‘윰’은 “내 고향은 10여 년 전만 해도 베트남에서 손꼽히는 빈촌(貧村)이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퐁나를 가난하게 만든 건 ‘비’예요. 해마다 홍수가 나서 애써 기른 곡식을 수확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거든요.”
퐁나의 연 강수량은 2270㎜로 우리나라(1200㎜)보다 2배 많은데, 이 많은 비가 9~
11월 석 달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진단다. 폭우는 많은 것을 파괴했지만 선물을 안겨주기도 했다. 바로 퐁나가 자랑하는 세계 최대 면적(2000㎢)의 카르스트(석회) 지대다. 퐁나는 바다에 잠겼다가 5만 년 전 융기한 땅이다. 석회암 틈 사이로 빗물이 줄기차게 파고들어 퐁나 곳곳에 널찍한 동굴을 뻥뻥 뚫었다.

퐁나 지역에 지금껏 발견된 석회동굴이 400개에 이르고, 동굴의 길이를 모두 합치면 100㎞가 넘는다. 2000년 베트남 정부는 퐁나에 있는 공원(께방)이라는 뜻에서 카르스트 지대이자 원시림인 퐁나의 산간을 퐁나께방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서울(605㎢)보다 더 넓은 국립공원(857㎢)은 2003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도 등재됐다.

정글과 동굴을 탐험하려는 여행객이 퐁나께방국립공원에 모여들자, 빈궁한 농부였던 퐁나 주민 대다수는 여행 가이드, 홈스테이 운영 등으로 생계 수단을 바꿨다. 그 결과 베트남 농촌 지역 평균 소득은 1인 월 10만 원 수준인데, 퐁나의 주민은 월 25만 원을 번다. 윰은 “퐁나 주민은 이제 비가 쏟아져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카르스트 지대로
현재 퐁나께방국립공원을 개별적으로 여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베트남 정부는 자연보호를 위해 지역 여행사를 통해서만 동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퐁나께방에서 업력이 가장 오래된 현지 여행사 ‘옥자일스(Oxails)’를 찾아갔다. 퐁나께방국립공원에서 여행객에게 개방된 동굴은 딱 15곳인데, 이 중에는 길이 9㎞, 높이 200m, 폭 150m인 세계 최대 석회동굴 ‘손둥동굴’도 포함됐다. 옥자일스가 손둥동굴 트레킹을 독점적으로 운영하는 여행사였다.

이왕 동굴 트레킹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이상, 세계 최대 손둥동굴에 도전하고 싶었지만 손둥은 감히 트레킹 초보가 도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동굴 안에서 사흘을 머무는데, 암벽 등반을 해야 하고 하루에 30㎞를 걸을 만한 강철 체력이 요구됐다. 손둥동굴 트레킹은 미래의 로망으로 남겨 두고 베트남에서 두 번째,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동굴 ‘항은동굴’ 트레킹 프로그램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 여행 상품도 옥자일스가 진행했다.

트레킹에 동행한 여행객은 4명. 여기에 가이드 2명, 안전 가이드 1명, 포터 2명, 요리사 1명이 가세해 모두 10명의 동굴 원정대가 꾸려졌다. 항은동굴 트레킹의 첫 여정은 해발 300m에서 해발 10m까지 이어진 가파른 산길을 내려가는 것이었다. 길의 끝에 동굴 트레커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반둥 마을이 나타난다. 기껏 300m밖에 안 되는 동산인데 뭐가 힘들겠나 싶어 호기롭게 첫발을 뗐지만, 태곳적 원시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만 절감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산길은 말 그대로 진창이었다. 바닥이 찐득찐득해 등산화가 벗겨지기 일쑤였다.

습기가 가득한 정글의 주인은 거머리였다. 거머리는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인간을 호시탐탐 노렸다. 행여 미끄러질세라 발바닥에 힘을 주며 걷고, 사방에서 공격해 오는 거머리를 부지런히 떼어내느라 정신없이 산을 내려갔다. 동굴 트레킹에 이런 장애물이 있을 줄 몰랐다는 말에 가이드 ‘다이’는 “모든 게 모험의 일부라고 생각해라” 하며 웃었다. 원시림의 한복판에서 이 고비를 잘 넘기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지하에서 만난 천상
1시간 비탈진 산길을 내려와 반둥 마을에서 간식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평탄한 길을 3시간만 걸으면 동굴 입구에 다다른다는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뗐지만, 곧 계곡이 앞을 막았다. 다이가 아무렇지 않게 계곡을 건너갔다. 베트남 가이드와 포터들은 구멍이 뻥뻥 뚫린 빨간색 샌들을 신고 진창과 계곡을 잘도 헤집었다. 베트남에서는 이 샌들을 ‘호찌민 신발’이라고 부른단다. 호찌민이 식민지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베트남의 정글을 누빌 때 신은 신발이라고 생각하니, 베트남 사람들이 잘 걷는 이유는 아마도 저 신발에 숨은 힘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계곡물을 건너려는 내게 가이드는 “지금부터 숱하게 계곡을 만나니까 벗을 필요 없다”고 충고했다. 하릴없이 계곡물에 첨벙첨벙 발을 담그자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 신발 속으로 파고들었다. 물을 뚝뚝 흘리며 정글을 헤치고, 계곡을 건너는 일을 반복했다. 30번 물길을 가로질렀더니 어느덧 계곡 앞에서 머뭇거렸던 마음이 사라졌다. 몸은 점점 녹초가 돼 가고 거머리와의 싸움도 힘에 부칠 즈음, 동굴 원정대가 “동굴! 동굴!” 하며 외쳤다. 절벽 아래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항은동굴 입구가 드러났다. 땀과 계곡물에 푹 젖어 온몸이 무거웠는데도 드디어 동굴에 다다랐다는 반가움에 펄쩍펄쩍 만세를 불렀다.

항은동굴 안에는 인공조명이 없어 랜턴을 머리에 달고 암벽을 기어 내려갔다. 목구멍같이 좁은 터널을 통과하자 폭 200m, 높이 100m, 길이 2㎞에 달하는 항은동굴의 속살이 드러났다. 피노키오가 제페토 할아버지를 만났던 고래 뱃속이 이런 광경일 거라 짐작했다. 항은동굴에는 수심 7m의 호수도 고여 있었다. 동굴 틈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자 호숫물이 퍼렇게 빛났다. 동굴에 닿기 위해 흘렸던 땀이 모두 보상되는 광경이었다.

호수 주변에는 천연 백사장이 있었다. 석회석이 풍화돼 모래로 바뀐 것이 호수 근처에 퇴적된 것이다. 백사장에 설치된 텐트가 동굴에서 하룻밤을 날 숙소였다. 동굴 생활은 뭐든 체험이었다. 단순이 씻고 화장실을 가고 밥을 먹는 것도 특별했다. 고급 호텔에서 묵는 것처럼 욕조에 몸을 담그지는 못했지만, 트레킹 가이드가 미리 정수해 둔 물로 얼굴과 손발을 닦았다. 화장실은 그늘막 텐트에 숨어 있었는데 물로 씻어내는 대신, 배설물에 톱밥을 흩뿌렸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먹는 것이었다. 트레커와 동행한 요리사가 동굴에서 밥을 만들어줬다.

돼지고기구이며 채소볶음이며 갓 지어낸 따뜻한 밥을 잔뜩 먹곤 텐트에 벌러덩 누웠다. 텐트 입구를 활짝 열어 젖혔는 데도 모기가 한 마리가 없었다. 동굴 내부 기온이 연중 영상 15~18도로 유지되는 터라 모기가 활동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동굴에는 모기의 천적인 박쥐가 서식하기 때문이었다. 바깥세상은 찜통 같은 여름인데, 동굴은 선선하고 쾌적했다. 새까만 어둠이 찾아든 동굴에 바위 틈새로 달빛이 밀려 왔다. 억겁의 시간이 만든 석순과 석주가 흐릿하게 빛났다. 지상의 소란스러움이 지하 세계까지는 닿지 못한 듯 동굴의 밤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베트남은 한국보다 2시간 느리다. 화폐는 동을 쓴다. 100동이 약 5원. 퐁나께방국립공원은 동호이국제공항에서 차로 45분 거리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동호이까지 닿는 직항은 없다. 하노이국제공항에서 베트남 국내선으로 동호이까지 1시간 걸린다. 퐁나께방국립공원은 현지 투어로만 입장할 수 있다. 11개 여행사가 동굴 당일 투어나 동굴 숙박 상품 등을 운영한다. 옥자일스가 세계 최대 동굴 순둥동굴(4박 5일, 6980만 동, 약 340만 원)과 세계 세 번째로 큰 항은동굴(1박 2일, 760만 동, 약 37만 원) 트레킹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문 가이드와 포터가 동행해 기본적인 트레킹 경험이 있으면 누구나 동굴 트레킹에 참여할 수 있다.

양보라 여행전문기자는…
단연코 여행의 재미는 소비에 있으며 온갖 살 것이 넘치는 메트로폴리탄이야말로 궁극의 여행지라고 믿어 왔다. 인생의 분기점을 넘은 것인지, 자연으로 파고드는 여정이 즐거워졌다. 이제 막 걷기 여행의 매력에 눈을 뜬 초보 트레커다. 걸어보지 않고는 못 배길 국내외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를 소개할 예정이다. 중앙일보와 월간지 트래비 여행 기자로 글을 써 왔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0호(2019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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