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if in Art] 쇼윈도(show window), 소비의 환상을 자극하다
입력 2019-06-28 12:32:55
수정 2019-06-28 12:32:55
[한경 머니 =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 쇼윈도는 상점 밖에서 상품을 들여다보도록 설치한 유리창, 즉 진열창을 말한다. 쇼윈도는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매혹적인 상품으로 소비의 환상을 자극한다.
연출된 상품의 미학
도심의 번화한 상가나 백화점에 만약 쇼윈도가 없다면 어떨까? 쇼윈도 없는 도시의 거리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미 쇼윈도는 도시 속 편리한 소비 공간이자 즐거운 구경거리가 됐다.
상점의 쇼윈도는 18세기 말 런던의 거리에 처음 등장했다. 산업혁명으로 제품이 대량 생산되고 소비가 급증하면서 고급 제품을 구매하려는 대중의 욕구가 점점 커졌다. 이에 부응해 상인들은 가게 전면에 큰 유리창을 설치하고 길에서도 상품이 보이도록 진열하기 시작했다. 이 방법은 기대 이상의 매출 효과를 거뒀고, 머지않아 쇼윈도가 유럽 도시들의 거리를 장식하게 된다.
19세기 중엽 근대식 백화점이 탄생하면서 쇼윈도는 더욱 화려하게 변신한다. 백화점에서는 상품을 대량으로 쌓아 놓지 않고 넓은 유리창 안에 물건을 하나씩 진열하고 배경과 장식을 첨가했다. 세련된 진열로 고급스러움을 연출해 상품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열은 상품에 대한 새로운 매혹의 형태인 ‘상품미학’을 탄생시켰다. 상품미학이란 제품에 대한 가치가 기능보다 디자인, 포장, 진열, 광고 등에 의해 좌우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쇼윈도는 그러한 외적 요소들을 부각시켜 상품미학을 창출하는 공간이다.
20세기 초 패션 시장이 팽창함에 따라 패션과 연관된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는 명품점들이 쇼윈도 진열 방식을 선도했다. 이 시기 독일 화가 아우구스트 마케(August Macke)는 쇼윈도를 주제로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 <크고 밝은 쇼윈도>는 상품이 가득 찬 쇼윈도 앞에 서 있는 여성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 여인은 크림색 긴 드레스와 모피 깃을 두른 하늘색 코트를 입고 붉은 장식이 달린 넓은 모자를 썼다. 세련되고 유행에 민감한 멋쟁이다. 상점의 커다란 유리창 안에는 알록달록 많은 물건이 진열돼 있다. 여인은 신상품의 유혹에 끌려 갈 길을 잊은 모양이다. 어떤 제품이 그녀를 사로잡았을까? 그런데 묘사된 상품 중에서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겨우 가운데 걸린 옷감 정도다. 그 위 약간 우측에 모자 쓴 남자의 옆모습이 작게 보이고 여인의 왼쪽 팔 옆에 말과 계단 형태가 보이지만 그 형상들이 상점 내부에 있는 상품인지, 밖에서 비친 반영인지 알 수 없다.
마케는 여인을 제외한 화면 전체에 직선과 사선과 곡선들을 이리저리 교차시켜 다양한 시점을 구사했다. 분할된 시각에 따라 건물의 내부와 외부, 실제와 반영이 뒤섞여 그 구분이 모호해진다. 사물들은 구체적인 형태가 파괴되고 추상적인 점, 선, 면, 색채의 복잡한 조화로 전환된다. 오직 기둥처럼 꼿꼿한 여인의 자세만이 침해받지 않고 화면에서 선명한 부동의 축을 이룬다. 쇼윈도가 쏟아내는 대량 소비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화가의 의지일까? 모더니스트 화가 마케는 시각적 혼란을 회화의 요소로 변화시킴으로써 대중문화의 습격에 저항하고 미술 작품의 자율성을 추구한다.
도시의 언캐니한 구경거리
쇼윈도의 유혹을 뿌리치고 상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쇼윈도는 또 다른 욕망을 충족시키는 장소가 된다. 진열된 물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상을 펼치며 쾌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진작가 외젠 아제(Eugène Atget)의 작품에서 그러한 쇼윈도의 작용을 엿볼 수 있다. 아제는 근대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파리에서 도시의 사라져 가는 것들을 기록하는 작업을 맡았다. 그가 파리의 구석구석을 촬영한 수많은 사진 중에 1925년 스트라스부르 거리의 코르셋 가게를 찍은 사진이 있다. 이 가게는 여성의 속옷인 코르셋을 하나씩 토르소 모양의 마네킹에 입혀 유리창 안은 물론 밖에도 걸어 놓았다. 이러한 진열은 은밀한 속옷을 길거리에 공공연히 전시해 지나가는 사람의 관능적 욕망을 자극한다. 이제 상품은 소유욕, 구매욕, 성욕과 같은 복합적인 욕망을 투사하는 ‘물신(fetish)’으로 숭배되며, 물신이 거주하는 쇼윈도는 ‘상품의 신전’으로 간주된다. 쇼윈도의 상품은 욕망을 상상 속에서 충족시켜주는 좋은 구경거리, 즉 거리의 스펙터클이 된다.
도시를 거니는 사람들은 구경꾼으로서 쇼윈도 속의 다양한 상품을 보고 즐긴다. 그런데 그 행위가 단지 구경으로, 즐거운 상상으로 그칠 수 있을까? 아제의 또 다른 사진을 보자. 파리 고블랭가의 양복점을 찍은 사진에는 쇼윈도 안에 표시가 붙은 남성복 바지들이 걸려 있고 그 뒤에 정장을 갖춰 입은 마네킹들이 보인다. 마네킹은 실생활 같은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상품 자체를 강조하기보다는 그것이 가져다줄 행복한 삶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네킹이 있는 쇼윈도는 친숙하지만 어딘지 낯설고 섬뜩한 감정, 즉 언캐니(uncanny)의 느낌을 준다. 아제의 사진처럼 마네킹이 웃고 있거나 머리가 없다면 섬뜩함은 더욱 커진다. 마치 유령처럼 하나의 사물에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을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 사물은 삶 속에 항상 잠재해 있는 죽음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아제의 양복점 쇼윈도는 실내의 사물에 외부 세계의 반영이 겹쳐서 더욱 혼란스럽다. 거리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가로수, 행인의 실루엣 등 생생한 도시 풍경이 유리창 안의 사물들과 한데 섞여 있다. 그곳에선 현실과 가상이 불합리하게 공존하며 그 기이함이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쇼윈도를 바라보는 사람은 상품과 함께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과거에 우리가 거울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았다면, 현대에는 거울 대신 쇼윈도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브랜드, 포장, 진열 등 인위적으로 조장된 사물을 바라본다. 상품은 실용성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 계층, 유행 등을 가리키는 기호로 변화한다. 기호들의 질서인 가상의 세계가 현실보다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 자신마저도 유리에 비친 이미지로서, 또 다른 가상으로서 그곳에 흡수된다.
투명한 유리창 안에 가격표를 달고 손에 잡힐 듯이 놓여 있는 사물들은 누구나 같은 값을 지불하면 쉽게 동일한 제품을 가질 수 있다고 손짓한다. 우리는 구매를 하면서 스스로 욕망을 채우고 자아를 확인하는 기쁨에 젖는다. 하지만 환상은 잠시일 뿐. 금세 결핍이 찾아오고 자신을 잊은 채 또다시 쇼윈도 앞으로 달려간다. 오늘날 쇼윈도는 매장을 넘어 그 자체가 독립된 예술 작품이 되곤 한다. 상품 진열이 아닌 기업의 이미지 메이킹 장소로 더 큰 매출을 견인하는 것이다. 상품마저 사라지고 기호와 이미지만 남은 그곳에서 모든 것은 더욱 더 현실을 벗어나 가상이 돼 간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0호(2019년 07월) 기사입니다.]
연출된 상품의 미학
도심의 번화한 상가나 백화점에 만약 쇼윈도가 없다면 어떨까? 쇼윈도 없는 도시의 거리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미 쇼윈도는 도시 속 편리한 소비 공간이자 즐거운 구경거리가 됐다.
상점의 쇼윈도는 18세기 말 런던의 거리에 처음 등장했다. 산업혁명으로 제품이 대량 생산되고 소비가 급증하면서 고급 제품을 구매하려는 대중의 욕구가 점점 커졌다. 이에 부응해 상인들은 가게 전면에 큰 유리창을 설치하고 길에서도 상품이 보이도록 진열하기 시작했다. 이 방법은 기대 이상의 매출 효과를 거뒀고, 머지않아 쇼윈도가 유럽 도시들의 거리를 장식하게 된다.
19세기 중엽 근대식 백화점이 탄생하면서 쇼윈도는 더욱 화려하게 변신한다. 백화점에서는 상품을 대량으로 쌓아 놓지 않고 넓은 유리창 안에 물건을 하나씩 진열하고 배경과 장식을 첨가했다. 세련된 진열로 고급스러움을 연출해 상품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열은 상품에 대한 새로운 매혹의 형태인 ‘상품미학’을 탄생시켰다. 상품미학이란 제품에 대한 가치가 기능보다 디자인, 포장, 진열, 광고 등에 의해 좌우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쇼윈도는 그러한 외적 요소들을 부각시켜 상품미학을 창출하는 공간이다.
20세기 초 패션 시장이 팽창함에 따라 패션과 연관된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는 명품점들이 쇼윈도 진열 방식을 선도했다. 이 시기 독일 화가 아우구스트 마케(August Macke)는 쇼윈도를 주제로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 <크고 밝은 쇼윈도>는 상품이 가득 찬 쇼윈도 앞에 서 있는 여성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 여인은 크림색 긴 드레스와 모피 깃을 두른 하늘색 코트를 입고 붉은 장식이 달린 넓은 모자를 썼다. 세련되고 유행에 민감한 멋쟁이다. 상점의 커다란 유리창 안에는 알록달록 많은 물건이 진열돼 있다. 여인은 신상품의 유혹에 끌려 갈 길을 잊은 모양이다. 어떤 제품이 그녀를 사로잡았을까? 그런데 묘사된 상품 중에서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겨우 가운데 걸린 옷감 정도다. 그 위 약간 우측에 모자 쓴 남자의 옆모습이 작게 보이고 여인의 왼쪽 팔 옆에 말과 계단 형태가 보이지만 그 형상들이 상점 내부에 있는 상품인지, 밖에서 비친 반영인지 알 수 없다.
마케는 여인을 제외한 화면 전체에 직선과 사선과 곡선들을 이리저리 교차시켜 다양한 시점을 구사했다. 분할된 시각에 따라 건물의 내부와 외부, 실제와 반영이 뒤섞여 그 구분이 모호해진다. 사물들은 구체적인 형태가 파괴되고 추상적인 점, 선, 면, 색채의 복잡한 조화로 전환된다. 오직 기둥처럼 꼿꼿한 여인의 자세만이 침해받지 않고 화면에서 선명한 부동의 축을 이룬다. 쇼윈도가 쏟아내는 대량 소비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화가의 의지일까? 모더니스트 화가 마케는 시각적 혼란을 회화의 요소로 변화시킴으로써 대중문화의 습격에 저항하고 미술 작품의 자율성을 추구한다.
도시의 언캐니한 구경거리
쇼윈도의 유혹을 뿌리치고 상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쇼윈도는 또 다른 욕망을 충족시키는 장소가 된다. 진열된 물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상을 펼치며 쾌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진작가 외젠 아제(Eugène Atget)의 작품에서 그러한 쇼윈도의 작용을 엿볼 수 있다. 아제는 근대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파리에서 도시의 사라져 가는 것들을 기록하는 작업을 맡았다. 그가 파리의 구석구석을 촬영한 수많은 사진 중에 1925년 스트라스부르 거리의 코르셋 가게를 찍은 사진이 있다. 이 가게는 여성의 속옷인 코르셋을 하나씩 토르소 모양의 마네킹에 입혀 유리창 안은 물론 밖에도 걸어 놓았다. 이러한 진열은 은밀한 속옷을 길거리에 공공연히 전시해 지나가는 사람의 관능적 욕망을 자극한다. 이제 상품은 소유욕, 구매욕, 성욕과 같은 복합적인 욕망을 투사하는 ‘물신(fetish)’으로 숭배되며, 물신이 거주하는 쇼윈도는 ‘상품의 신전’으로 간주된다. 쇼윈도의 상품은 욕망을 상상 속에서 충족시켜주는 좋은 구경거리, 즉 거리의 스펙터클이 된다.
도시를 거니는 사람들은 구경꾼으로서 쇼윈도 속의 다양한 상품을 보고 즐긴다. 그런데 그 행위가 단지 구경으로, 즐거운 상상으로 그칠 수 있을까? 아제의 또 다른 사진을 보자. 파리 고블랭가의 양복점을 찍은 사진에는 쇼윈도 안에 표시가 붙은 남성복 바지들이 걸려 있고 그 뒤에 정장을 갖춰 입은 마네킹들이 보인다. 마네킹은 실생활 같은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상품 자체를 강조하기보다는 그것이 가져다줄 행복한 삶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네킹이 있는 쇼윈도는 친숙하지만 어딘지 낯설고 섬뜩한 감정, 즉 언캐니(uncanny)의 느낌을 준다. 아제의 사진처럼 마네킹이 웃고 있거나 머리가 없다면 섬뜩함은 더욱 커진다. 마치 유령처럼 하나의 사물에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을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 사물은 삶 속에 항상 잠재해 있는 죽음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아제의 양복점 쇼윈도는 실내의 사물에 외부 세계의 반영이 겹쳐서 더욱 혼란스럽다. 거리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가로수, 행인의 실루엣 등 생생한 도시 풍경이 유리창 안의 사물들과 한데 섞여 있다. 그곳에선 현실과 가상이 불합리하게 공존하며 그 기이함이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쇼윈도를 바라보는 사람은 상품과 함께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과거에 우리가 거울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았다면, 현대에는 거울 대신 쇼윈도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브랜드, 포장, 진열 등 인위적으로 조장된 사물을 바라본다. 상품은 실용성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 계층, 유행 등을 가리키는 기호로 변화한다. 기호들의 질서인 가상의 세계가 현실보다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 자신마저도 유리에 비친 이미지로서, 또 다른 가상으로서 그곳에 흡수된다.
투명한 유리창 안에 가격표를 달고 손에 잡힐 듯이 놓여 있는 사물들은 누구나 같은 값을 지불하면 쉽게 동일한 제품을 가질 수 있다고 손짓한다. 우리는 구매를 하면서 스스로 욕망을 채우고 자아를 확인하는 기쁨에 젖는다. 하지만 환상은 잠시일 뿐. 금세 결핍이 찾아오고 자신을 잊은 채 또다시 쇼윈도 앞으로 달려간다. 오늘날 쇼윈도는 매장을 넘어 그 자체가 독립된 예술 작품이 되곤 한다. 상품 진열이 아닌 기업의 이미지 메이킹 장소로 더 큰 매출을 견인하는 것이다. 상품마저 사라지고 기호와 이미지만 남은 그곳에서 모든 것은 더욱 더 현실을 벗어나 가상이 돼 간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0호(2019년 0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