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낯설어진 가족을 하나로 묶는 ‘매직 솔루션’
입력 2019-04-26 16:09:38
수정 2019-04-26 16:09:38
[한경 머니=정채희 기자·윤기혁 칼럼니스트·최경송 보드게임 강사 I 사진 한국경제DB]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하고, 여행을 가고. 친구들과는 일상이었던 일들이 가족과는 왜 그리 낯설던가.
위기의 가족을 하나로 묶는 해법, 나의 일상으로 가족을 초대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solution 1 여행
한 번의 선택, 평생의 추억
5월 가족의 달을 맞아 가족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이 많다. 가물가물해진 유년기의 즐거웠던 그때 그 가족여행을 기억하며. 그러나 환상을 안고 떠난 여행이 악몽이 돼 돌아오는 일이 부지기수다. 정말 내 부모가 맞나, 내 새끼가 맞나 싶을 정도다. 모든 게 내 마음 같지 않고 하루에도 열두 번 참을 인(忍)이 새겨진다. 입국 후 공항 문을 박차며 외치는 한 마디. “다신 가족여행 안 가!”
위기의 가족을 구출하기 위해 가족여행 계획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관문이 하나 있다. 바로 ‘패키지와 자유여행’ 선택지다. 흔히 이 결정은 ‘어디’를 ‘어떻게’ 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보다 후순위로 밀리게 되지만 다녀온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하곤 한다. ‘어떤 결정보다 중요했노라’고.
여행 전문 업체인 인터파크투어의 박선미 대리는 “구성원의 연령대나 추구하는 여행 스타일에 따라 패키지 혹은 자유여행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정 짜기 고민에서부터 여행지에서 일행 챙기기까지 이 모든 게 귀찮고, 힘들 것 같다면 당연히 A부터 Z까지 다 해주는 ‘패키지’가 제격이다. 요즘에는 패키지도 천편일률적인 일정이 아니라 특정 테마 혹은 일정을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이 많다.
반면 정해진 틀 안에서 행동하는 것에 불편을 느끼는 ‘자유인’이 있거나 도전정신이 넘치는 ‘행동가’들이 있다면 자유여행을 선택하는 쪽이 좋다. 장기간에 걸쳐 가족 의견을 모으다 보면 충돌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단 누군가 한 명이 가이드 역할을 대신해야 하는 희생의 자충수를 두지는 말아야 한다. 한 명에게만 짐을 몰아주지 말고 모두에게 여행의 역할을 분배해보자.
떠나기 전, 가족 간 ‘규칙’을 만드는 것도 좋다. 가족 간에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 있다는 것만 기억한다면 가족 화합을 단기간 내에 이룰 수 있는 마법으로 여행만 한 것도 없다. 오랜 기간 한 공간에서 몸을 부딪치며 산 나의 부모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어떤 것에 행복해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도 준다. 내가 몰랐던 나의 가족을 알게 되는 소중한 기회를 갖고 싶다면, 올해 5월에는 가족여행에 도전해보자.
solution 2 게임
가족 간 유희, 대화의 희열
보드게임 강사 최경송
“아빠, 이 옷이랑 바지랑 양말이랑 셋(set)이야, 그치?”
지금은 고3인 아들이 일곱 살이었을 때로 기억한다. 아이 외침에 돌아보니 같은 파란색 계통이면서 무늬는 각각 다른 옷과 바지와 양말을 걸치고 있다. 나도 모르게 후훗 웃음이 터졌다. 며칠 전 가르쳐준 보드게임 ‘세트(SET)’가 재밌었나 보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접한 보드게임이 바로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들르신 작은아버지에게 건네받은 ‘세트’라는 게임이었다. 저녁에 부모님, 두 동생들과 둘러앉아 편을 나누고 눈에 불을 켜며 게임을 했다. 막내 여동생이 딱 일곱 살, 난 우리 집 아이만 했을 때였다. 독보적인
1등은 막내 차지. 도형지각력이 필요한 이 게임의 실력은 정확히 나이와 반비례했다.
우리 삼남매는 새로운 보드게임들을 구해 나갔다. 부모님이 잠드시고 나면 나랑 남동생은 여동생을 우리 방으로 불러들였다. 밤새 보드게임 삼매경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형광등 스위치에 끈을 매놓고 혹시나 부모님이 방을 나오시는 기척이 있으면 잽싸게 줄을 당겨서 불을 끄고 숨죽여 기다렸다. 아침식사 자리에서 벌건 눈을 하고서는 낄낄대면서 게임 이야기를 나누면 부모님은 까닭을 모르시는 채 어리둥절했다.
이 경험은 나를 끝내 보드게임 강사로 인도했다. 동네 꼬마들을 모아놓고 온갖 보드게임을 즐길 때면 문득 지난 시절 삼남매의 밤샘 모임이 떠오르곤 한다. 이제는 삼남매 대신 나의 아이, 그리고 가족들과 보드게임을 즐긴다. 세월이 흘렀어도 보드게임은 여전히 나의 동반자다.
solution 3 사진
잊고 있던 시간을 연결하는 타임머신
<육아의 온도> 저자 윤기혁 칼럼니스트
오랜만에 부모님을 뵈러 고향에 갔다. 300km가 넘게 떨어져 산다는 핑계로 고속철도(KTX)로는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에 가기를 미루고 또 미루었다. 그간의 미안함에 짧은 포옹을 하고 외식하러 갔다. 식사 중 문득 “다음에 내려오면 함께 가족사진을 찍자”는 어머니의 말씀에 “그러지요. 그게 뭐 어렵나요?” 하며 당연한 듯 넘겼지만, 부모님 댁 거실에 걸린 사진을 보니 스무 해가 훨씬 더 지난 것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앉아 빛바랜 사진첩을 꺼내 펼쳤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찍찍거리는 소리에 세월을 거슬러 아이를 낳기 전, 결혼하기 전, 급기야 내가 아이였을 때, 지금의 나보다 더 젊은 부모님을 만나기에 이르렀다.
지금 내게는 두 명의 자녀가 있다. 한 명은 열 살을 지나 점점 더 또래와의 교집합을 넓혀 가고 있다. 가끔 가족끼리 나들이 가서 “여기 봐~ 인증사진 찍어야지”라며 말해보지만, 녀석은 이미 아빠의 카메라 앵글 밖으로 벗어난 지 오래다. 이렇게 나와 아이의 공집합은 점점 커져 간다. 내가 부모님에게서 떨어져 나온 것처럼 말이다.
자녀가 성장할수록 부모와 자식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인간의 숙명인 걸까. 느슨해진 연결고리를 바짝 당겨 관계의 탱탱함을 유지할 순 없을까.
고향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사진을 찍어 일주일에 한 번씩 카카오톡으로 부모님께 소식을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로 웃고 우는 손주들의 표정을 담았고, 종종 꽃이 피고 지는 계절의 변화를 전했다. 짧은 감상과 지난 추억을 곁들이니 일흔이 넘은 부모님이 하트가 담긴 답문을 보내주셨다.
이는 곧 네이버 밴드(SNS)로 이어졌다. 나의 식구와 부모님에서, 유일한 형제인 형네 식구까지 함께하는 공간으로 확장됐다. 부모님의 생신과 기념일은 물론 형네 식구들의 소식까지 공유하면서 더 큰 가족 이야기를 담는 기회가 됐다. 별도의 카메라나 필름 없이도 순식간에 수십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보정할 수 있으며 시차 없이 전송하고 공유할 수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뚝딱이다.
물론 가족사진으로 부모님과의 관계가, 자녀와의 관계가 급격히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가수 김진호의 노래 ‘가족사진’에서처럼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부모님이 가족의 일상이 담긴 사진으로 인해 잠시나마 웃음꽃을 피울 수 있다면 이미 성공한 것 아닐까.
solution 4 음악
시대를 연결하는 감성 오작교
‘음악의 힘은 위대하다.’ 이 오래된 격언을 또 새롭게 되새김질하게 되는 일이 최근에 있었다. 지난해 전 세계를 휩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이다.
가수 퀸(Queen)의 귀환은 단순 복고풍 콘텐츠의 부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연령별 관객 비중은 20대 32.5%, 30대 25.9%, 40대 24.4%, 50대 이상 13.6%로 고르게 분포됐다.
부모 손을 잡고 극장을 찾은 청소년들도 줄을 이었다. 영화를 본 딸은 엄마에게 당대의 퀸에 대해, 프레디 머큐리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단순히 기성세대의 추억 소비를 넘어 세대 간 교감과 세대 통합을 이끌어낸 것이다.
평론가들에게는 혹평을 들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전 세대를 극장으로 이끌며 흥행가도를 달린 것은 음악이 가진 힘이 가장 주효했다. 퀸의 음악을 들으며 청년기를 보낸 4050은 영화를 보며 나의 젊은 날을 꺼내들었고, 퀸은 몰랐지만 퀸의 음악에는 익숙했던 2030은 뉴트로(new-tro: new와 retro를 합친 신조어)에 눈을 떴다.
오작교가 어디 퀸뿐인가.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케이팝(K-pop) 아이돌 방탄소년단(BTS)은 부모님이 아는 유일한 아이돌로서 전 세대의 사랑을 받는다. “아이돌을 좋아하면 밥이 나오냐?” 하고 화내던 엄마는 이제 “BTS 노래 좀 들어보자”며 딸의 방문을 연다. 그렇게 귀를 열고, 닫혔던 마음이 열린다. 음악이 주는 힘은 가족에게도 유효하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8호(2019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