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숙성된 이탈리아 오페라의 중심


[한경 머니 기고=이석원 여행전문기자] 오랫동안 나폴리는 로마보다 앞선 이탈리아의 이미지였다. 푸른 지중해로 뻗은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 그 찬란한 지중해에 떠 있는 배 위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를 바라보는 기분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아름다운 동산 행복에 나폴리
산천과 초목들 기다리누나.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정든 나라에 행복아 길어라.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중학교 음악 시간에 처음 들은 노래 ‘산타루치아(Santa Lucia)’는 이탈리아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사회과부도의 유럽 지도에서 긴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를 찾은 후 정강이 아래쪽에 나폴리라는 지명을 찾고는 묘하게 뛰는 가슴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다시 들은 ‘산타루치아’는 매력적인 이탈리아어와 함께 나폴리에 대한 상상을 푸른 지중해로 한층 더끌고 갔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호세 카레라스도 마치 나폴리 앞 바다에서 노를 저으며 부르는 듯한 그 황홀한 착각.

Sul mare luccica / l’astro d’argento
Placida e’ l’onda / prospero e’ il vento
Sul mare luccica / l’astro d’argento
Placida e’ l’onda/ prospero e’ il vento
Venite all’agile / barchetta mia
Santa Lucia / Santa Lucia
Venite all’agile / barchetta mia
Santa Lucia / Santa Lucia

나폴리 하나를 그리며 무작정 잡아 든 책 <이탈리아 여행>에서 대문호 괴테는
“오늘도 정신없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데 시간을 보냈다. 어떤 말도, 어떤 그림도 이 경치의 아름다움에는 당하지 못한다. 나폴리에 오면 사람들이 들뜬다고 하더니 헛말이 아닌 것 같다”고 흥분한다.

사람들이 왜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Vedi Napoli e poi muoia!)”고 말했는지, 괴테는 왜 그토록 흥분했는지, 그리고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왜 “내 노래의 모든 것은 나폴리에 있다”고 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산타루치아항을 봐야 했고, 진짜 나폴레타나(napoletana)를 들어야 했고, 진짜 이탈리아를 봐야 했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도시?…나폴리의 ‘역설’
아직 가슴 두근거림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눈앞에 펼쳐진 넓은 나폴리 중앙역 앞 광장은 그 오랜 시간 동안 가슴을 뛰게 하던 그것이 아니었다. 서울보다 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도로 위 자동차와 오토바이,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그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자전거와 지친 사람들, 소매치기 당한 사람의 비명은 처절한데 구경하듯 무심히 다른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경찰관들의 무표정. 정녕 이것이 그 나폴리란 말인가.

중앙역 주변의 골목들은 더 가관도 아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들은 마치 자기들이 거리를 꾸미는 꽃인 양 너무 당당하다. 아무도 치우려는 사람도 없고, 쓰레기들 사이사이로 삶에 지친 사람들의 무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생각했던 나폴리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소개하고 있다.

서둘러 이 참담한 도시의 비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름다운 산타루치아 항구를 조망하려면 산마르티노 언덕에 올라야 한다. 그곳에서 지중해로 뻗은 항구의 속살을 들여다봐야 한다.
산마르티노 언덕에 오르기 위해서는 몬테산토역(Stazione di Montesanto)에서 그 유명한 푸니쿨라를 타야 한다. 대표적인 나폴레타나인 ‘푸니쿨리 푸니쿨라(Funiculi-Funicula)’는 나폴리 인근 베수비오 화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인 푸니쿨라를 홍보하려고 만들어진 곡이다.

1880년 9월 베수비오 화산을 오르는 최초의 푸니쿨라가 개통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두려워서 타기를 꺼렸다. 푸니쿨라를 설치한 코머스 쿡은 이 케이블카를 홍보할 노래를 만들게 했다. 노래는 피에디그로타 가요제에서 히트를 쳤고, 더불어 푸니쿨라에도 손님이 몰렸다.
나폴리의 고지대를 가기 위해서는 푸니쿨라는 필수다. 그래서 여러 개 노선의 푸니쿨라가 있는데, 몬테산토역의 푸니쿨라가 특히 유명한 것은 바로 그 아랫 동네인 스파카 나폴리(Spacca Napoli) 때문이다.

길게 뻗은 골목을 가로질러 공중에 아무렇게나 매달린 빨래들은 나폴리 옛 골목의 상징과도 같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부터 시민의 주거지역이었던 스파카 나폴리는 나폴리 서민의 기질을 그대로 담고 있다. 산마르티노 수도원 아래 파스콸레 스쿠라 거리에서 동쪽으로 뻗친 포르첼라 거리에서 끝나는 약 2km의 직선도로 양쪽에 위치한다. 스파카는 ‘자른다’라는 뜻인데, 보메로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이 길이 시가를 둘로 갈라놓고 있다.

스파카 나폴리를 둘러본 후 푸니쿨라를 타고 오르는 산마르티노 언덕은 산타루치아 항구는 물론 나폴리 전체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산마르티노 수도원(Certosa di San Martino)과 산텔모성(Castel Sant’Elmo)을 품고 있는 나폴리 최고의 휴식처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른 아침 이곳에서 나폴리를 비추며 떠오르는 태양을 감상하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은 지중해를 물들인 나폴리의 석양을 즐긴다. 가장 나폴리다운 여유다.

산마르티노 수도원의 한쪽 난간에 기대면 새파란 지중해를 품은 산타루치아 항구가 눈에 들어온다. 왼쪽 초대형 크루즈들이 정박하기 위한 신식 부두는 오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구항과 대비를 이루며 변화된 나폴리를 보여준다. 나지막한 테너의 목소리로 흐르는 나폴레타나 ‘산타루치아’가 어디선가 들린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이 자리에서 여러 번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사람들에게 목격된 적도 있다고 한다. 특히 파바로티가 유명해지기 전 홀로 나폴리 여행 중에 산마르티노 수도원 계단 한쪽 옆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가 그 소리에 매료된 그리스 여성과 잠시 사랑에 빠진 적도 있다는 말도 전해온다. 하긴 이 풍경 속 그 노래를 듣고 사랑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다.

이탈리아의 매력을 가장 많이 담은 도시
산타루치아 항구 부근은 나폴리의 유명한 볼거리들이 몰려 있다. 산카를로 가극장(Teatro di San Carlo)은 나폴레타나로 숙성된 이탈리아 오페라의 중심이다. 1737년 도메니코 사로의 오페라 <스키로의 아킬레우스> 공연을 시작으로 문을 연 산카를로 가극장은 모든 오페라 작곡자나 성악가가 꿈에 그리는 무대다.

조아키노 로시니는 1715년에서 1822년까지 극장의 거주 작곡가였고, 주제페 베르디는 이 극장을 위해 세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자코모 푸치니의 많은 작품도 무대에 올랐다. 파바로티는 “밀라노의 라스칼라, 빈 국립 오페라극장,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보다도 행복한 곳이 산카를로다”고 말한 바 있다.

나폴리 왕궁과 산프란치스코 디 파올라 교회의 열주에 둘러싸인 플레바시토 광장(Piazza del Plebiscito)이며, 산카를로 가극장 건너편의 움베르토 1세 아케이드(Umberto I Arcade), 노르만족의 요새였던 카스텔 델로보(Castel Dell’Ovo), 그리고 프랑스 앙주 가문이 지은 웅장하고 고색창연한 카스텔 누오보(Castel Nuovo), 이들은 산타루치아 항구가 더불어 품고 있는 나폴리 매력의 본질이다.

나폴리는 제노바 다음가는 이탈리아 제2의 상업항이었다. 영어로는 네이플스(Naples)라고 부르는데, 이탈리아 반도에서 로마와 밀라노에 이은 제3의 도시다. 이미 기원전 7세기부터 ‘새로운 도시’라는 뜻의 네아폴리스(Neapolis)라고 불렸고, 중세를 지나면서 비잔틴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이탈리아 토착 문화와는 또 다른 문화로 번성했던 곳이다.

그리고 이탈리아 민요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는 나폴레타나는 1200년대부터 나폴리에서 불린 민요였다. 16세기 무렵부터 3성에서 6성의 다성 양식인 폴리포니로 아름답게 변모했고, 18세기 중반부터 나폴리에서 민요제가 개최되면서 유명해졌다. 숱한 다른 민족의 침략 속에 복합적인 문화를 만들어내면서도 이탈리아 남부 특유의 애환을 그대로 담아 나폴레타나라는 독특한 노래를 만들어낸 곳. 세상의 위대한 성악가들은 한번쯤 머물기를 원했고, 일개 지역의 민요를 클래식 음악의 반열로 올려놓은 도시다.

소렌토를 향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뱃길을 품은 나폴리는 예전의 낭만과 사랑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도시를 가득 메운 쓰레기와 좀도둑, 무질서와 혼잡으로 인해 예전의 명성을 그대로 유지하지는 못하지만, 어쩌면 가장 이탈리아의 매력을 많이 담고 있는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은 서슴지 않고 외친다.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Vedi Napoli e poi muoia!)”고. 이 말은 나폴리에서 이탈리아 고유의 감성을 지닌 나폴레타나를 들으며 평생을 살아도 행복할 것이라는 말의 또 다른 울림으로 들린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5호(2019년 02월) 기사입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