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하진우 어반베이스 대표 “전 세계 건축물의 가상화에 도전”
입력 2019-01-02 14:45:55
수정 2019-01-02 14:45:55
[한경 머니 = 공인호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은 4차 산업혁명에서도 대표 신기술로 꼽혀 왔다. 구글(Google)을 비롯해 한때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 공략에 나섰지만 그나마 성공 사례로 꼽히는 것이 게임 ‘포켓몬고(GO)’ 정도다. 어반베이스(Urbanbase)는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건축과의 융합 아이디어로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다.
“지금 보고 계신 제품이 고객님 집 안 구조에 가장 적합할 것 같네요.”
국내 대형 가전제품 기업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판매 대리점의 모습이다. 아파트 주소만 알려주면 대리점 직원이 알아서 적당한 제품을 소개해주고 직접 배치된 모습까지 확인시켜준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이 접목된 공간데이터 플랫폼 ‘어반베이스’ 기술 덕분이다. 어반베이스는 2차원(2D)의 건축 도면을 3차원(3D)으로 구현해내고 그 위에 인테리어 등 가상의 모습을 덧입힐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LG 등 대형 전자제품 회사뿐 아니라 일룸, 롯데마트, 이건창호 등 공간 서비스 활용이 필요한 40여 개 브랜드와 기술 제휴를 맺고 있다.
글로벌 기업 구글 등이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는 위성기술을 통해 전 세계의 외형을 데이터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아파트를 비롯해 대형 건축물의 내부 구조는 여전히 미개척 영역으로 남아 있다. “현대 사회의 많은 재난 사고는 공간데이터가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탓이 크다”며 전 세계의 모든 건축물을 3D로 구현해내고 싶다는 하진우 어반베이스 대표를 직접 만났다.
‘어반베이스’에 대해 생소해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어반베이스는 공간데이터 플랫폼입니다. 가상이 현실과 융합되는 기술과 데이터를 통해 기존 평면 설계도면을 3D로 구현해내는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죠. 그런 가상공간에서 소비자들은 가구도 배치해볼 수 있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공간에서의 VR 투어도 가능합니다. 부동산 포털 업체 등으로부터 전국 80%가량의 아파트 정보를 제공받고 있어 기존 규격화된 서비스에 비해 정확도를 월등히 높일 수 있었죠. 현재 일반인들은 무료로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지만, 가구사와 전자제품 회사, 통신사 등은 별도의 비즈니스 버전을 통해 영업 툴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방영 중인 LG전자 ‘베스트샵’ 광고에서도 어반베이스의 서비스가 소개되고 있는데, 기업들은 자체적인 재고관리 및 고객관리까지 가능하도록 시스템이 구축돼 있습니다. 클라우드를 통해 실시간으로 서비스 업그레이드도 제공하고 있어 기업들의 반응도 좋습니다. LG전자 외에도 일룸, 퍼시스 등의 대형 가구 업체들은 물론 40여 개의 부동산 플랫폼, 가전·가구 및 인테리어 브랜드와 기술 제휴를 맺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로 고안된 서비스로 알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기획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의 어반베이스 기술은 ‘세월호 사고’로부터 출발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건축가로 일했는데 3D 게임을 워낙 좋아해 막연하게 현실을 가상공간으로 구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머신러닝을 통해 2D 도면을 3D로 구현하는 알고리즘 개발에 착수했었죠. 그러던 중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고 일부 잠수부들이 내부 수색 과정에서 실종됐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도 아이들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세월호 내부를 3D로 구현해 각 언론사에 제보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세월호 도면을 구하기 어려워 일본 사이트까지 뒤졌죠. 하지만 너무 늦게 전달된 탓인지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고 발생 이전에 공간데이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었죠. 사실 건축 도면이라는 게 건축 이후에는 쓸모없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3D로 구현해 놓는다면 세월호 사고처럼 대형 재난이나 화재 발생 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죠. 어반베이스의 창업은 이런 사명감이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부동산 거래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개인용컴퓨터(PC) 기반의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죠. 하지만 앞으로는 데이터가 자산이 되고 구글맵처럼 여러 사람들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PC 기반을 과감히 버렸습니다. 머신러닝을 도입해 애플리케이션(App)이나 웹, VR, AR에서도 데이터를 꺼내 쓸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든 거죠. 구글맵의 경우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거대 플랫폼이지만 건축물의 내부는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사실상 내비게이션 기능이 전부인 셈이죠. 실내의 경우 재난, 안전, 홈 시뮬레이션,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다방면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회라고 판단했죠.”
어반베이스 출시 이후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가 있었나요.
“기술 기반 스타트업의 경우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쉽지 않습니다. 취약한 자금력 탓에 기술 완성 이전에 매각되는 사례가 많죠. 어반베이스는 예상보다 빠르게 손익이 안정화되고 있습니다. 누적 투자 규모는 50억 원가량으로 5년 이내 주식시장 상장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해외에서도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것 같습니다. 우선 공략 대상은 일본 시장인데 부동산 붐이 가속화되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도 타진하고 있습니다. 일본 내 부동산 플랫폼 기업이 2D 도면을 제공해주면 저희가 3D 도면을 제공해주는 형태죠. 당장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일본은 물론 일부 글로벌 가구사들과의 미팅 일정도 잡혀 있습니다.
이미 미국, 일본, 유럽, 중국, 홍콩 등에도 관련 특허를 출원한 만큼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너무 특허에 매달리다 보면 기술 쪽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어 회사 역량을 세일즈 쪽에도 적절하게 배분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의 핵심 자산 역시 기술이 아닌 데이터죠.”
사업 기획 및 추진 과정에서 애로사항은 없었나요.
“지금은 사람들의 인식과 여건이 많이 개선됐지만 창업 당시인 4년 전에만 해도 AR, VR라는 용어 자체를 접하기 어려웠죠. 따라서 당시에는 ‘가상공간’을 수익 모델로 할 수 있겠느냐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습니다. 그나마 게임과 관련된 투자 수요만 있었는데, 결국 100여 곳이 넘는 투자처에서 거절당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곳만 더 만나보자고 했던 곳이 어반베이스의 첫 투자자인 액셀러레이터 ‘스파크랩’이었습니다. 이후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운영하는 팁스(TIPS) 프로그램을 통해 마련된 초기 투자금 10억 원으로 시작했죠.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 2019년에는 좀 더 공격적으로 투자금을 모집할 계획입니다. 사실 규제 측면에서는 큰 애로사항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데이터 생태계’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관련 규제들이 점차 늘어날까 봐 걱정입니다. 저희들로서는 정부의 데이터 개방에 기대를 걸고 있거든요. 허가된 모든 건물의 도면을 보유하고 있는 정부가 데이터를 개방해주면 우리나라 전체를 가상화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어반베이스의 도면은 대부분 사기업으로부터 제공받는데, 모든 사업자를 일일이 만나고 자료 제공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기에는 한계가 뒤따릅니다. 정부가 데이터를 개방해주면 이런 고민이 한번에 해결되는 셈이죠.
하지만 정부 내에서도 이해관계가 엇갈려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 등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보신주의’가 가장 큰 걸림돌인 것 같습니다. 개인주택은 배제하더라도 공공시설물 정보라도 제공해주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대규모 재난 등에 대비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어반베이스가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앞서 말씀드렸듯 어반베이스의 설립 배경은 엄청난 수익이 아닙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공간 정보를 구축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시작한 거죠. 다소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전 세계 모든 건물의 가상화를 통해 인류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게 어반베이스의 지향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재난은 공간적 문제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월호 이전에 발생한 씨랜드 화재사고 역시 공간 정보만 제대로 구축돼 있었다면 대참사로까지 이어지지 않고 좀 더 민첩한 대응이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일반인들의 경우 직업 파괴 등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담론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 대표님이 보는 4차 산업혁명은.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지난 2007년 모바일 혁명부터 이미 시작된 거죠. 현대인들은 하루 평균 4시간가량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미 가상 속에 살고 있고 스마트폰 앱으로 택시와 열차를 타고 있죠. 건축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반베이스의 3D 구현 속도를 접한 건축가들은 탄성을 자아내면서도 직업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합니다. 하지만 기술의 변화는 또 다른 비즈니스를 만들어내죠. 도면은 과거 수천 년간 존재해 왔지만 지금은 AR, VR는 물론 보안, 사물인터넷(IoT), 군사훈련, 프롭테크(proptech) 등으로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수많은 산업을 형성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신산업 쪽에서는 ‘전문가가 없다’며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고, 일반 취업 시장은 실업률이 역대 최고 수준이라며 암울한 전망을 쏟아냅니다.
사실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학생들조차 곧바로 실무에 투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죠. 교육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겁니다. 반면 호기심이 왕성하고 도전을 즐기는 사람들은 개발자를 넘어 스타트업 창업까지 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저희 직원 중에서도 3D 프린팅에 관심을 두더니 관련 컨퍼런스와 세미나, 학원을 다니다가 3D 프린팅 회사로 이직을 했습니다. 다양한 산업을 접하면서 아이디어를 융합하고 결국 창업까지 하게 된 거죠. 무엇보다 직업에 대한 보신주의를 버리고 새롭게 등장할 직업을 고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진우 대표는…
(현) 어반베이스 대표
서울건축 건축가
명승건축그룹 디자인연구원
경희대 건축공학과 졸업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4호(2019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