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펴낸 양창순 정신과 전문의 인터뷰
big story 당신을 위한 위로와 치유[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인생이 찰나처럼 짧은데, 왜 불필요한 감정에 시간을 쓰는가.”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박사는 아등바등 살아온 삶의 무게를 덜 수 있도록 ‘담백함’이라는 처방을 내린다.
“세 살에 행복하지 않으니, 여든 살에도 행복하지 않은 거죠.” 정신과 전문의인 양창순 박사는 어느 날 TV에서 나온 한 명사의 얘기를 듣고 무릎을 쳤다. 정말 그랬다. 유아 시절부터 영재반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하고, 초등학생들이 아파트 브랜드와 평수를 비교하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은 시대다. 이렇게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살다 보니, 노이로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양 박사는 “수천 명, 아니 수만 명의 사람을 만나고 상담해 왔지만, 삶이 쉽고 순탄하기만 하다고 말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현대인을 위한 처방전으로 ‘담백(淡白)’을 강조했다. 양 박사는 신간 <담백하게 산다는 것>을 통해 스스로도 ‘태생적으로 비관론자’이며 ‘지나치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버릇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때부터인가 ‘제발 좀 담백하게 살아보자’는 말이 삶의 버킷리스트가 됐다”고 했다.
양 박사는 “모순되게도 우리가 스스로의 마음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산다”며 “과도한 기대치로 자신을 들볶는 것은 ‘심리적 자해’와 같다”고 말했다.
“우리 옛말에 ‘마음을 먹는다’고 하잖아요. 우리 마음은 딱 두 가지를 먹고 자라는데, 희망과 의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그 일을 해결해야 하는 ‘의미’와 잘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양 박사는 “우리 몸에 상처가 나도 시간이 지나면 새 살이 돋듯이, 마음도 똑같이 스스로 회복하는 힘이 있다”며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여유를 가지라”고 당부했다.
우울을 호소하는 중장년층이 특히 많은데요, 원인이 무엇인가요.
“요즘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을 얘기하지만, 중장년층에게는 먼 얘기로 들리는 경향이 있어요. 중장년 가장들의 경우 자녀들 교육비에 가족 생활비도 많이 들어가는데, 정작 자기 자신에게 쓸 돈과 여유가 어디 있냐는 거죠. 그렇다고 집에 일찍 들어가면 환영을 받나요. 그래서 적은 비용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당구장이 호황이라네요. 최근에는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중장년들이 많이 모인다고 해요. 직장에서도 젊은 친구들에게 ‘왕따’이기 쉽고, 가정에서도 소외되기 일쑤니 불행한 거죠.”
아픈 중장년층은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요.
“지구상의 어떤 생물과도 인간이 다른 점은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는 겁니다. 가령 코끼리가 왜 내가 사자가 아닌가를 고민하지 않잖아요. 정신과에서는 ‘의미 치료’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살이라는 것이 결국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거잖아요. 그 사람에게 당신이 가족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 의미만 찾으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작은 변화에 도전하는 것도 좋습니다. 어린 시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그림이든, 책이든, 작은 변화에서부터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저서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로 큰 호응을 얻었는데, ‘담백’한 삶과는 어떤 연결점이 있나요.
“이 세상에서 ‘나’를 보호해야 할 사람은 ‘나’이잖아요.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는 상대를 너무 의식해서 거절하고 싶은데도 거절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상대에게 맞춰주고 후회하지 말고, 세상과 나 사이에 경계선을 분명히 하자는 거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스트레스가 있잖아요. 이에 <담백하게 산다는 것>을 통해서 삶, 사랑, 인간관계가 조금이라도 편안해지는 태도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기대치, 상대에 대한 기대치를 현실에 맞게 하자는 거죠. 건강하다는 것은 현실적인 기대치를 갖는 것이고, 담백하게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도한 기대로 ‘심리적 자해’를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요.
“정신과에서는 어떤 사람이 얼마나 건강한지, 노이로제 상태인지를 ‘세상에 대한 기대치’로 평가해요. 세상에 대해 지나치게 기대치를 가지면 실망도 크잖아요.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기대치를 가진 사람은 그것 때문에 불행하거나 우울하게 되고, 그것이 노이로제인 거죠. 인간관계에서도 그래요. 가령 아무리 천사처럼 행동한다 해도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어요. 부모도, 아이도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고요. 가까운 사람이라도 ‘거리 두기’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자기보다 못난 사람하고 비교하지 않잖아요.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는 우리의 마음 에너지를 낭비하게 합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내려놓기’는 포기나 후퇴로도 이해될 수 있을 텐데요.
“성공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에게 ‘내려놓기’를 얘기하면 무슨 소리냐고 하겠죠. 하지만 ‘포기’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는 그냥 받아들이겠다는 덤덤한 마음이 중요한 거죠. 이를테면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1등일 수도 있고 2등일 수도 있습니다. 꼭 1등이어야 한다면 공부가 더 안 되지 않을까요. 인간관계도 그렇고, 비즈니스도 그렇습니다. 과도한 욕심으로 출발하면, 목표에 이르기도 전에 지치기 쉽습니다. 마음의 에너지도 저축해야 합니다.”
마음의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저축할 수 있을까요.
“동화 <황금 뇌를 가진 사나이>가 있어요. 뇌에 황금이 가득해 돈을 아끼지 않고 마구 쓰다가 마지막에 그것이 자기 생명과 맞바꾼 것임을 알고 후회하죠. 마음의 에너지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돈과 시간은 절약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마음 에너지는 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울증은 마음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입니다. 남을 미워하면서, 불안해하면서 마음을 쓰고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세요. 가령 나를 괴롭히는 상사를 퇴근 후에도 생각하면서 괴로워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가 당신이 죽을 때 옆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내려놓는 것이 좋습니다. 24시간 도망갈 수 없는 스스로의 마음부터 보살펴주세요.”
전문 기관을 찾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마음 치유법이 있나요.
“너무 바쁜 스케줄 탓에 아내와 결혼생활이 삐걱거린다는 최고경영자(CEO)가 있었어요. 그에게 하루 단 10분만 눈을 맞추고 고민을 들어주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 단 10분으로 아내가 너무 행복해하더라는 거예요. 그렇게 자신에게도 10분만 투자해보세요.
상담을 자주 못 오는 사람들에게는 일기 쓰기를 권해요. 마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을 써 내려가다 보면, 스트레스로 약화된 좌뇌의 기능이 살아납니다. 다음 날 보면 ‘내가 왜 이런 것을 썼지’ 하는데, 그러면서도 마음을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상담을 해보면 스스로 본인 문제의 해결 방법을 다 알고 있습니다. 정리가 안 되는 것뿐이거든요. 그것을 정리하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 전문의의 역할입니다. 조금만 정리를 해주면 길을 잘 찾아가세요.
잠을 잘 자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루 8시간은 자야 합니다. 꿈 수면 시간은 낮에 썼던 에너지를 보완하는 시간이고, 비꿈 수면 시간은 낮에 썼던 신체적 에너지를 보충하는 시간입니다. 잠자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신체적·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돼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난관에 부딪혔을 때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치유의 시간을 주십시오. 흔히 난관에 부딪혀 힘들어하면 빨리 잊으라고 하거나 극복하라고 말하는데, 그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누군가하고 헤어져서 힘든데, 그때 아픈 마음에 서둘러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잘못 만날 확률이 높습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 서둘러 새로운 비즈니스를 선택하면 잘못 판단할 가능성이 큽니다. 우울한 감정의 영향으로 기억력, 판단력, 집중력에 대한 장애를 일으키거든요.
몸의 상처도 아물고 새살이 나려면 최소 6개월이 필요합니다. 다쳤을 때 자꾸 만지면 덧나잖아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상처는 빨리 극복해야만 강한 사람처럼 생각해서 몰아치는데, 주위 사람들이라면 지지와 격려를 해주면서 조금 여유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마음도 재생 능력이 있습니다. 마음의 새살도 6개월, 1년이 흐르면 돋아납니다.”
양창순 박사는…
정신건강의학과·신경과 전문의. 연세대 의과대학과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SBS의 <양창순의 라디오 카페>, CBS의 <양창순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저서로는 40만 베스트셀러인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와 등 다수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3호(2018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