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당신을 위한 위로와 치유
[한경 머니 =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 칼럼니스트] 과거형 문장으로 시작한다. 어떤 음악이 우리를 위로했을까. 힘들었을 때이리라. 무척 큰 시련이었던 외환위기가 떠오른다. 도산과 실직, 절망과 자살이 잇따르던 그때, 아이러니컬하게도 슬픈 곡을 담은 음반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지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오르간의 우울하고 슬프게 천천히 하강하는 저음, 순간 그 위로 시리도록 푸르게 비상하는 한 줄기 바이올린의 고음. 누구라도 숨을 죽일 야사 하이페츠가 연주한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의 ‘샤콘느’였다.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란 음반이었다. 그 시절 쓸쓸하고 패배주의적인 정서와 더불어 일세를 풍미한 선율이다. 하이페츠는 일반적인 피아노 반주 대신 레스피기가 편곡한 오르간 반주 악보를 채택, 서로 다른 질감의 음향을 대비시켜 그 효과를 극대화했다. 곡이 진행될수록 바이올린은 듣는 이 대신 흐느낀다.
비탈리의 ‘샤콘느’는 강렬하다. 실컷 운 뒤에 훌쩍 훌쩍대며 점차 추스르듯, 감상 후 얻어내는 카타르시스도 강하다. 또 다른 ‘샤콘느’인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는 슬픔을 추스르는 논리가 정연하다. 감성을 앞세운 비탈리에 비해 더욱 이성적이고 면밀하다. 비탈리의 ‘샤콘느’가 대신 울어주는 음악이라면 바흐의 ‘샤콘느’는 눈물을 닦아주는 음악이다.
위로하는 음악을 쓴 작곡가로 슈베르트를 빼놓을 수 없다. ‘현악 5중주 D956’은 작곡가의 마지막 실내악곡이다. 생애가 끝나던 1828년 9월 현악 4중주 편성에 첼로 한 대를 추가해 완성했다. 작품에서 첼로는 테너가 돼 아리아를 부르는 듯하다. 때로는 베이스 가수처럼 깊은 저음으로 침잠하며 듣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영감으로 가득 찬 2악장은 듣는 이에게 위로를 선사한다. 뚜렷한 선율선보다 연속하는 화음이 흐름을 만들어내며 주제를 이룬다. 2악장 중간 부분에서 슈베르트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슬픔과 격정을 폭발시킨 후 극도의 여린 음으로 마무리하며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감정의 기복을 담아냈다.
명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이 슈베르트 ‘현악 5중주의 2악장’을 ‘천국의 문’ 같은 곡이라며 아꼈다. 루빈스타인은 자신의 장례식 때 이 곡의 연주를 들려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숙연하게 참아내는 슬픔이 슈베르트 특유의 표현으로 물방울처럼 맺혀 있다.
만년의 시기에 슈베르트는 자기가 쓰고 싶은 곡만을 작곡했다.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Op.100 D929’도 그런 곡이다. 이 곡에서는 슈베르트의 개성과 함께 베토벤의 영향이 비친다. 심오하고 지적인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 피아노 3중주에서는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정열이 대담한 노래가 돼 흘러넘친다.
2악장은 <해피엔드>, <피아니스트>, <슈베르트와 쇼버> 등 영화에 많이 쓰였다. 비 오는 날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창밖을 바라보고픈 선율이다. 피아노와 현이 날 위로하는 듯하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마음이 아플 때 귀로 먹는 약이다.
눈물의 위로
마음의 병 하면 슈만이 떠오른다. 그는 정신분열증을 앓았다. 급기야 라인강에 투신하기까지 했다. 외향적인 플로레스탄과 내향적인 오이제비우스, 이 두 개의 자아가 그의 음악에 존재한다.
그의 유일한 ‘첼로 협주곡’은 듣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슈만은 어려서 첼로를 배웠고, 시적이면서 열정적인 첼로의 악기적 특성을 자신의 작품에 발휘했다. ‘첼로 협주곡’은 1850년 10월 뒤셀도르프에서 작곡됐다. 작곡의 속도는 빨랐다. 6일 만에 스케치를 끝내고 8일 후 완성했다. 아내 클라라는 심한 환각 증세에 시달리다 깨어난 슈만이 고통을 무릅쓰고 이 작품을 수정하려 안간힘을 썼다고 전한다.
1악장에서 바이올린의 분산 화음을 배경으로 첼로가 고뇌에 찬 주제 선율을 시작한다. 리듬과 선율의 대조보다는 서정적인 표현에 올인한다. 명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이 악장에 대해 “슈만은 고통 속 절규와 위로받을 수 없는 애통함을 교차시켰다”고 말했다.
이흥렬의 ‘섬집아기’를 연주하는 리처드 용재 오닐의 비올라 연주에 눈물을 흘리며 위로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용재 오닐이 연주하는 블로흐의 ‘기도(Prayer)’는 현이 위로하는 노래다. 스위스의 유대인 작곡가 에른스트 블로흐가 1924년 완성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스케치 ‘유대인의 생활에서’ 중 첫 번째 곡이다. 블로흐는 유대인 내면의 감성과 이국적인 분위기를 통해 다양한 색채를 자신의 음악에 담았다. ‘유대인의 생활에서’는 ‘기도’, ‘애원’, ‘묵상’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도’는 안단테 모데라토로 읊조리듯 연주된다.
차이콥스키의 ‘기도’도 있다. 1887년 오페라 <돈 조반니>의 100주년을 기념해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네 번째 관현악 모음곡에 수록됐다. 모차르트 피아노 작품들에 기초한 이 모음곡에는 ‘모차르티아나’란 이름이 붙었다. 3악장 ‘기도’는 모차르트 ‘아베 베룸 코르푸스’와 알레그리 ‘미제레레’를 리스트가 피아노로 편곡한 악보 중 모차르트 부분만 취했다. 목관과 하프가 연주하고 약음기를 낀 현이 정교하게 뒤를 잇는다. 간구하고 애원하는 마음이 숭고함으로 향하면서 점차 우리의 마음을 위로한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우리 가곡을 부를 때 눈물을 흘리곤 한다. 오랜 외국 생활에서 조국의 존재가 더욱 짠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라 했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로 위로받는 것도 좋겠다. 많은 곡 중에 ‘아베마리아’를 골라본다. 샤를 구노는 프랑스 작곡가다. ‘파우스트’, ‘로미오와 줄리엣’ 등 오페라 작품을 남겼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BWV846’ 중 전주곡과 푸가 ‘1번 C장조’ 중에서 전주곡의 앞부분을 구노가 편곡했다. 그래서
‘바흐/구노의 아베마리아’라고도 한다. 듣다 보면 세상의 나사와 톱니바퀴가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며 위안을 준다.
기적과 치유의 교향곡
완전히 코너에 몰린 상태에서 가끔씩 기적을 바랄 때가 있다. ‘기적’이란 제목이 붙은 교향곡을 소개한다. 하이든의 ‘교향곡 96번’이다. 1791년 하이든이 교향곡을 지휘하고 있을 때였다. 음악홀의 커다란 샹들리에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청중이 크게 놀랐을 건 자명한 일. 떨어진 샹들리에는 산산조각이 났지만, 사상자는 없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때 연주됐던 하이든의 작품에 ‘기적’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대중적인 주제가 론도 형식으로 돌아오는 4악장은 여러 성부가 얽혀 건강한 긴장감을 띠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 정도의 기적은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시간은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흘러갔으면 좋겠다.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을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간주곡은 오페라 막간에 연주하는 짧은 악곡이다. 베리스모(사실주의) 오페라의 걸작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은 안단테 소스테누토 템포로 천천히 느리게 이어가며 연주된다. 맑고 경건한 선율은 하프와 오르간을 덧붙여 종교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오페라를 즐겨 듣지 않는 사람에게도 잊지 못할 순간을 선사할 이 곡은 영화 <성난 황소>에 쓰여서 유명해졌다. 좋은 시간들이여 느릿느릿 가라. 고통의 시간일랑 빨리 빨리 가고.
‘부활’이란 말에는 종교적인 의미만 담긴 게 아니다. 일상에서의 치유도 부활이다. 슬픔과 상실을 겪고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원광’ 또는 ‘태초의 빛’이라 번역되는 ‘Urlicht’는 말러의 ‘교향곡 2번-부활’ 4악장의 알토 독창 부분이다. 말러 가곡 <어린이의 마법 뿔피리> 중의 노래다. 가장 낮은 음역으로 어둡고 우울하게 시작되지만 희망을 예고하고 장엄한 코랄로 이어진다. 중심부에서 희망은 점차 확실해지고 의심은 사라지며, 평화로운 무아지경으로 끝을 맺는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평화를, 피스, 피스.
종교에서 감사와 찬양은 신을 향한 발산이다. 이는 결국 자신을 향한 사랑으로 수렴한다. 이타적인 행동과 사랑이 자신을 충만케 한다. 주는 것이 결국 받는 것이다. 감사는 끝내 위로로 귀결된다.
1748년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싣고 미국으로 가는 노예선의 선장이며 노예 상인이던 영국인 존 뉴턴은 항해 중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의 위험에 처하자 하나님께 매달리며 구원을 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뉴턴은 그동안의 노예 상인 생활을 청산하고 종교에 귀의해 독실한 신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뉴턴은 그 후 노예제도 반대에 앞장선다. 나중에 목사가 된 그는 자신을 구해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작사한다. 방탕하고 부도덕한 노예 상인이었던 자신과 같은 죄인을 구원한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찬양한다는 내용인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널리 애창되기 시작했다.
끝으로 제목 자체가 ‘위로’인 곡을 소개한다. 프란츠 리스트가 작곡한 ‘콘솔레이션(Consolation)’이다. 제목처럼 감미롭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이 곡을 쓸 당시 리스트는 러시아의 카롤리네 비트겐슈타인 백작부인과 함께 바이마르에서 사랑의 도피 중이었다. 이 행복한 나날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6곡으로 구성된 ‘콘솔레이션’ 중에 쇼팽의 ‘녹턴’과 유사한 형식의 3번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요즘도 수많은 피아니스트의 앙코르 곡으로 사랑받는다. 조용히 다가와 어깨에 손 얹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음악이 있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는…
월간 객석 기자 및 편집장을 역임했고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을 거쳤으며 현재 같은 재단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KBS 클래식FM <출발 FM과 함께> 토요일 코너 ‘클래식 탐구생활’에 출연 중이며, 저서로 <한국인의 열정으로 세계를 지휘하라>(명진출판)와 공저 <클래식 튠>(모노폴리), <당신과 하루키와 음악>(그책)이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3호(2018년 12월) 기사입니다.]
[한경 머니 =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 칼럼니스트] 과거형 문장으로 시작한다. 어떤 음악이 우리를 위로했을까. 힘들었을 때이리라. 무척 큰 시련이었던 외환위기가 떠오른다. 도산과 실직, 절망과 자살이 잇따르던 그때, 아이러니컬하게도 슬픈 곡을 담은 음반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지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오르간의 우울하고 슬프게 천천히 하강하는 저음, 순간 그 위로 시리도록 푸르게 비상하는 한 줄기 바이올린의 고음. 누구라도 숨을 죽일 야사 하이페츠가 연주한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의 ‘샤콘느’였다.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란 음반이었다. 그 시절 쓸쓸하고 패배주의적인 정서와 더불어 일세를 풍미한 선율이다. 하이페츠는 일반적인 피아노 반주 대신 레스피기가 편곡한 오르간 반주 악보를 채택, 서로 다른 질감의 음향을 대비시켜 그 효과를 극대화했다. 곡이 진행될수록 바이올린은 듣는 이 대신 흐느낀다.
비탈리의 ‘샤콘느’는 강렬하다. 실컷 운 뒤에 훌쩍 훌쩍대며 점차 추스르듯, 감상 후 얻어내는 카타르시스도 강하다. 또 다른 ‘샤콘느’인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는 슬픔을 추스르는 논리가 정연하다. 감성을 앞세운 비탈리에 비해 더욱 이성적이고 면밀하다. 비탈리의 ‘샤콘느’가 대신 울어주는 음악이라면 바흐의 ‘샤콘느’는 눈물을 닦아주는 음악이다.
위로하는 음악을 쓴 작곡가로 슈베르트를 빼놓을 수 없다. ‘현악 5중주 D956’은 작곡가의 마지막 실내악곡이다. 생애가 끝나던 1828년 9월 현악 4중주 편성에 첼로 한 대를 추가해 완성했다. 작품에서 첼로는 테너가 돼 아리아를 부르는 듯하다. 때로는 베이스 가수처럼 깊은 저음으로 침잠하며 듣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영감으로 가득 찬 2악장은 듣는 이에게 위로를 선사한다. 뚜렷한 선율선보다 연속하는 화음이 흐름을 만들어내며 주제를 이룬다. 2악장 중간 부분에서 슈베르트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슬픔과 격정을 폭발시킨 후 극도의 여린 음으로 마무리하며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감정의 기복을 담아냈다.
명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이 슈베르트 ‘현악 5중주의 2악장’을 ‘천국의 문’ 같은 곡이라며 아꼈다. 루빈스타인은 자신의 장례식 때 이 곡의 연주를 들려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숙연하게 참아내는 슬픔이 슈베르트 특유의 표현으로 물방울처럼 맺혀 있다.
만년의 시기에 슈베르트는 자기가 쓰고 싶은 곡만을 작곡했다.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Op.100 D929’도 그런 곡이다. 이 곡에서는 슈베르트의 개성과 함께 베토벤의 영향이 비친다. 심오하고 지적인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 피아노 3중주에서는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정열이 대담한 노래가 돼 흘러넘친다.
2악장은 <해피엔드>, <피아니스트>, <슈베르트와 쇼버> 등 영화에 많이 쓰였다. 비 오는 날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창밖을 바라보고픈 선율이다. 피아노와 현이 날 위로하는 듯하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마음이 아플 때 귀로 먹는 약이다.
눈물의 위로
마음의 병 하면 슈만이 떠오른다. 그는 정신분열증을 앓았다. 급기야 라인강에 투신하기까지 했다. 외향적인 플로레스탄과 내향적인 오이제비우스, 이 두 개의 자아가 그의 음악에 존재한다.
그의 유일한 ‘첼로 협주곡’은 듣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슈만은 어려서 첼로를 배웠고, 시적이면서 열정적인 첼로의 악기적 특성을 자신의 작품에 발휘했다. ‘첼로 협주곡’은 1850년 10월 뒤셀도르프에서 작곡됐다. 작곡의 속도는 빨랐다. 6일 만에 스케치를 끝내고 8일 후 완성했다. 아내 클라라는 심한 환각 증세에 시달리다 깨어난 슈만이 고통을 무릅쓰고 이 작품을 수정하려 안간힘을 썼다고 전한다.
1악장에서 바이올린의 분산 화음을 배경으로 첼로가 고뇌에 찬 주제 선율을 시작한다. 리듬과 선율의 대조보다는 서정적인 표현에 올인한다. 명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이 악장에 대해 “슈만은 고통 속 절규와 위로받을 수 없는 애통함을 교차시켰다”고 말했다.
이흥렬의 ‘섬집아기’를 연주하는 리처드 용재 오닐의 비올라 연주에 눈물을 흘리며 위로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용재 오닐이 연주하는 블로흐의 ‘기도(Prayer)’는 현이 위로하는 노래다. 스위스의 유대인 작곡가 에른스트 블로흐가 1924년 완성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스케치 ‘유대인의 생활에서’ 중 첫 번째 곡이다. 블로흐는 유대인 내면의 감성과 이국적인 분위기를 통해 다양한 색채를 자신의 음악에 담았다. ‘유대인의 생활에서’는 ‘기도’, ‘애원’, ‘묵상’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도’는 안단테 모데라토로 읊조리듯 연주된다.
차이콥스키의 ‘기도’도 있다. 1887년 오페라 <돈 조반니>의 100주년을 기념해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네 번째 관현악 모음곡에 수록됐다. 모차르트 피아노 작품들에 기초한 이 모음곡에는 ‘모차르티아나’란 이름이 붙었다. 3악장 ‘기도’는 모차르트 ‘아베 베룸 코르푸스’와 알레그리 ‘미제레레’를 리스트가 피아노로 편곡한 악보 중 모차르트 부분만 취했다. 목관과 하프가 연주하고 약음기를 낀 현이 정교하게 뒤를 잇는다. 간구하고 애원하는 마음이 숭고함으로 향하면서 점차 우리의 마음을 위로한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우리 가곡을 부를 때 눈물을 흘리곤 한다. 오랜 외국 생활에서 조국의 존재가 더욱 짠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라 했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로 위로받는 것도 좋겠다. 많은 곡 중에 ‘아베마리아’를 골라본다. 샤를 구노는 프랑스 작곡가다. ‘파우스트’, ‘로미오와 줄리엣’ 등 오페라 작품을 남겼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BWV846’ 중 전주곡과 푸가 ‘1번 C장조’ 중에서 전주곡의 앞부분을 구노가 편곡했다. 그래서
‘바흐/구노의 아베마리아’라고도 한다. 듣다 보면 세상의 나사와 톱니바퀴가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며 위안을 준다.
기적과 치유의 교향곡
완전히 코너에 몰린 상태에서 가끔씩 기적을 바랄 때가 있다. ‘기적’이란 제목이 붙은 교향곡을 소개한다. 하이든의 ‘교향곡 96번’이다. 1791년 하이든이 교향곡을 지휘하고 있을 때였다. 음악홀의 커다란 샹들리에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청중이 크게 놀랐을 건 자명한 일. 떨어진 샹들리에는 산산조각이 났지만, 사상자는 없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때 연주됐던 하이든의 작품에 ‘기적’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대중적인 주제가 론도 형식으로 돌아오는 4악장은 여러 성부가 얽혀 건강한 긴장감을 띠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 정도의 기적은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시간은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흘러갔으면 좋겠다.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을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간주곡은 오페라 막간에 연주하는 짧은 악곡이다. 베리스모(사실주의) 오페라의 걸작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은 안단테 소스테누토 템포로 천천히 느리게 이어가며 연주된다. 맑고 경건한 선율은 하프와 오르간을 덧붙여 종교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오페라를 즐겨 듣지 않는 사람에게도 잊지 못할 순간을 선사할 이 곡은 영화 <성난 황소>에 쓰여서 유명해졌다. 좋은 시간들이여 느릿느릿 가라. 고통의 시간일랑 빨리 빨리 가고.
‘부활’이란 말에는 종교적인 의미만 담긴 게 아니다. 일상에서의 치유도 부활이다. 슬픔과 상실을 겪고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원광’ 또는 ‘태초의 빛’이라 번역되는 ‘Urlicht’는 말러의 ‘교향곡 2번-부활’ 4악장의 알토 독창 부분이다. 말러 가곡 <어린이의 마법 뿔피리> 중의 노래다. 가장 낮은 음역으로 어둡고 우울하게 시작되지만 희망을 예고하고 장엄한 코랄로 이어진다. 중심부에서 희망은 점차 확실해지고 의심은 사라지며, 평화로운 무아지경으로 끝을 맺는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평화를, 피스, 피스.
종교에서 감사와 찬양은 신을 향한 발산이다. 이는 결국 자신을 향한 사랑으로 수렴한다. 이타적인 행동과 사랑이 자신을 충만케 한다. 주는 것이 결국 받는 것이다. 감사는 끝내 위로로 귀결된다.
1748년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싣고 미국으로 가는 노예선의 선장이며 노예 상인이던 영국인 존 뉴턴은 항해 중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의 위험에 처하자 하나님께 매달리며 구원을 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뉴턴은 그동안의 노예 상인 생활을 청산하고 종교에 귀의해 독실한 신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뉴턴은 그 후 노예제도 반대에 앞장선다. 나중에 목사가 된 그는 자신을 구해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작사한다. 방탕하고 부도덕한 노예 상인이었던 자신과 같은 죄인을 구원한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찬양한다는 내용인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널리 애창되기 시작했다.
끝으로 제목 자체가 ‘위로’인 곡을 소개한다. 프란츠 리스트가 작곡한 ‘콘솔레이션(Consolation)’이다. 제목처럼 감미롭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이 곡을 쓸 당시 리스트는 러시아의 카롤리네 비트겐슈타인 백작부인과 함께 바이마르에서 사랑의 도피 중이었다. 이 행복한 나날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6곡으로 구성된 ‘콘솔레이션’ 중에 쇼팽의 ‘녹턴’과 유사한 형식의 3번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요즘도 수많은 피아니스트의 앙코르 곡으로 사랑받는다. 조용히 다가와 어깨에 손 얹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음악이 있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는…
월간 객석 기자 및 편집장을 역임했고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을 거쳤으며 현재 같은 재단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KBS 클래식FM <출발 FM과 함께> 토요일 코너 ‘클래식 탐구생활’에 출연 중이며, 저서로 <한국인의 열정으로 세계를 지휘하라>(명진출판)와 공저 <클래식 튠>(모노폴리), <당신과 하루키와 음악>(그책)이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3호(2018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