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PB포럼] “진정한 패밀리오피스는 가문의 가치 보존”
입력 2018-11-29 10:56:22
수정 2018-11-29 10:56:22
이태영 웰씨앤와이즈 대표
[한경 머니 = 공인호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국내에서 프라이빗뱅킹(PB)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대 초반이다. 이와 달리 유럽 등 금융 선진국의 경우 1900년대 후반 명망 있는 가문의 자산관리를 돕는 ‘패밀리오피스(family office)’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국내 금융사들의 경우 최근에서야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에 나서고 있다.2018년 한경 머니 PB포럼의 2강 ‘패밀리오피스의 글로벌 트렌드와 성공 사례’를 주제로 한 강의는 이태영 웰씨앤와이즈(Wealthy&Wise) 대표가 직접 강단에 섰다. 사실 패밀리오피스의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가문의 일상생활과 가문과 관련된 업무를 도와주는 조직’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관련 업무를 특정하기 어렵고 광범위하다는 의미다. 금융사들이 제공하는 자산관리(WM)와 서비스의 통상적 범주를 벗어나 특정 가문의 회계관리 및 지배구조 지원 서비스까지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대표는 “진정한 패밀리오피스로 불리기 위해서는 정형화된 자산관리를 넘어 더 다양하고 많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세무 관련 업무는 물론 자산관리 및 신탁 서비스, 문서 관리 및 기록 보관 서비스, 비용 관리, 청구서 관리, 회계 관리와 함께 구성원의 금융 교육 및 가문 지원, 지배구조 서비스까지 포함된다”고 소개했다.
지난 1989년 설립돼 글로벌 패밀리오피스로 자리 잡은 FOX(Family Office Exchange)의 경우 개별 가문의 평균 운용 자산은 5억 달러(5500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패밀리오피스 서비스 지원을 위해 23개국 출신의 15개 분야 전문가들이 활동 중이다. 또 FOX의 회원사 역시 370여 개에 달하며 세계 각지에 125개 자문사를 두고 있다.
특히 패밀리오피스의 대표 성공 사례이자 롤모델로는 ‘베서머 트러스트(Bessemer Trust)’가 꼽히는데,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동업자였던 헨리 핍스 가문의 패밀리오피스로 시작한 이곳은 140여 명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총 2400여 명의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 자산 운용 규모는 1000억 달러, 한화로 무려 113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금 혜택 활용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설계까지
이 대표는 한국의 경제 구조 역시 선진국처럼 ‘부의 집중화’가 심화되고 있는 만큼 향후 패밀리오피스에 대한 수요도 점차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가문(회사)의 부가 크게 늘어날 경우 유산 상속 과정에서의 세금 문제와 구성원 간 분란의 소지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중소기업은 물론 중견·대기업들 역시 경영권 이전 과정에서 과도한 상속세 부담 등으로 기업의 영속성마저 위협받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대표도 패밀리오피스의 수요 증가 배경으로 교육, 재정 안정, 정보 보호, 가문의 지속, 맞춤형 재무, 코디네이터, 투자 전략, 비용 절감, 이해 상충, 개별 서비스 등의 10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가문들은 공동체 의식과 구성원 간 결속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패밀리오피스는 개별 및 가문 전체의 목표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을 평가함으로써 가문 공동의 이익을 이해하고 획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설명했다.
특히 가문 관리의 경우 단순한 자산 보호를 넘어 세대가 지날수록 자산 증식과 함께 각 세대를 아우르는 가문의 전통과 가치 보존을 위한 가족 헌법, 가문위원회, 지배구조, 후계자 교육 등의 통합적 가문 관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세금 혜택을 활용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설계까지 가능하다.
현재까지 등장한 패밀리오피스의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한 개의 가문을 대상으로 한 ‘싱글 패밀리오피스’, 여러 개의 가문들을 대상으로 한 ‘멀티 패밀리오피스’, 그리고 회사 형태로 운영되는 ‘회사형 패밀리오피스’로 구분된다.
이 대표는 “이제 국내에서도 패밀리오피스 시장 개척과 함께 역량 강화에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6년 말 18만7500명 수준이었던 글로벌 슈퍼부자(자산 규모 3000만 달러 이상)의 경우 2025년까지 26만3500여 명으로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 세계에서 활동 중인 1만2000개 이상(자산 규모 27조 달러)의 패밀리오피스 가운데 절반 정도는 15년 이내에 설립됐다는 점도 후발주자로서는 크게 불리한 환경은 아니다.
이 대표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과 달리 국내의 경우 고액자산가들의 자산 구조에서 부동산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며 “향후 패밀리오피스의 역할이 그만큼 커질 수 있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3호(2018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