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전력난 심각…에너지 시장 뜨겁다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중국에 이어 ‘세계의 공장’으로 각광받으며 높은 경제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 국가들은 경제 발전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맞추기 위해 전력 공급 확대가 절실해졌으며, 에너지원 확보는 생존의 조건이 돼 가고 있다.

라오스는 인도차이나 반도 중앙부에 있는 내륙 국가다. 동쪽으로 베트남, 남쪽으로 캄보디아, 서쪽으로 태국, 북서쪽으로 미얀마, 북쪽으로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국토는 한반도 면적의 1.1배이지만, 인구는 655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라오스 국내총생산(GDP)은 15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2705달러에 불과하다. 제조업 기반이 거의 갖춰지지 않아 국민들 대부분이 쌀농사를 짓고 살아가고 있다.

흔히들 ‘은둔과 신비의 땅’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동안 국제사회와 별다른 교류가 없었지만 라오스 정부는 최근 들어 경제 발전을 위해 수력발전에 적극 나서고 있다. 라오스는 수력발전에 적합한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강수량이 풍부하다. 연평균 강수량이 1800㎜에 달한다. 게다가 메콩강이 라오스를 관통하고 있다. 메콩강은 총길이 4020㎞에 유역 면적이 80만 ㎢에 달한다.

메콩강은 중국 티베트 고원에서 시작해 윈난성을 거쳐 미얀마~라오스~태국~캄보디아~베트남을 지난 뒤 남중국해로 흐른다. 총길이의 37%에 달하는 1500㎞가 라오스를 통과한다. 특히 라오스는 국토의 70%가 산악 지역으로 수력발전을 위한 댐 건설에 안성맞춤이다. 라오스에는 53개 수력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이 발전소들의 설비 전력량은 7082메카와트(㎿)다. 2020~2021년 완공 예정인 47개 발전소의 전력 설비 5980㎿를 모두 합하면 1만3062㎿로 늘어난다.

라오스 정부는 2025년까지 모두 145개 수력발전소를 운영해 전력 생산능력을 2만9931㎿로 확대할 계획이다. 라오스 정부는 앞으로 건설될 수력발전소들에서 생산된 전력 중 대부분을 이웃 국가들로 수출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라오스의 최대 수출 품목은 구리와 금을 비롯한 광물이지만 앞으로 전력이 될 것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라오스, ‘동남아 배터리’로 불리는 이유

라오스는 현재 생산 중인 전력의 85%를 수출하고 있다. 특히 초고전압 송전(UHV)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장거리에 전력을 송전해도 전력 손실률이 높지 않다. 라오스는 이 덕분에 수력발전소들에서 생산된 전력을 국경 넘어 이웃 국가들로 송전하고 있다. 라오스가 ‘동남아의 배터리’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라오스는 현재 4260㎿를 태국에 수출하는데 2025년에는 9000㎿로 늘릴 계획이다. 라오스는 또 베트남에도 250㎿를 수출하고 있는데, 2025년까지 5000㎿의 전력을 추가 수출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게다가 라오스는 올해 초 인접국인 태국을 넘어 국경을 접하지 않고 있는 말레이시아에 전력 100㎿를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라오스 수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이 태국의 송전 설비를 거쳐 말레이시아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라오스는 또 2020년까지 말레이시아를 거쳐 싱가포르까지 전력을 수출하겠다는 목표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7월 라오스 남부를 지나는 메콩강의 지류에 있는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보조댐의 상부가 폭우로 무너지면서 저장했던 물이 하류의 마을 10여 곳으로 덮쳐 40명이 숨지고 31명이 실종됐다. 수천 명이 집을 잃는 등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라오스 정부는 수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시민단체들이 환경 파괴와 안전 우려를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지만, 해당국 정부들은 메콩강위원회(MRC)를 통해 라오스 정부가 사업을 계속하는 데 동의했다. 경제 발전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맞추기 위해 전력 공급 확대가 절실한 동남아 국가들의 입장에선 라오스의 수력발전소 건설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동남아 각국들이 전력 부족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동남아 각국의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에너지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2017년까지 동남아 각국은 연평균 5~7%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동남아 각국들은 최근 5년간 매년 1200억 달러(137조1000억 원)의 해외 직접투자를 받으면서 중국에 이어 ‘세계의 공장’이 되고 있다.

철강, 석유화학, 제지, 알루미늄, 시멘트 등 에너지를 많이 쓰는 중공업 분야의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동남아 지역의 공업 부문 에너지 소비가 70%나 늘었다. 또 소득 증대로 중산층이 확대되고 자동차와 전자 제품 구매가 늘어나면서 가정의 에너지 소비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동남아는 과거에는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를 적게 쓰는 지역이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동남아 인구 6억4000여만 명의 1인당 평균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평균의 절반가량에 불과했다. 아직까지도 동남아 전체 인구의 10%인 6500만 명이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각국의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2000년 이래 동남아의 전력 수요는 매년 6.1%씩 늘었는데, 이는 전 세계 평균보다 2배 이상 빠른 수치다.

베트남 산업 에너지 프로젝트 일환으로 건설된 빈 투안 화력발전소.


◆동남아 에너지 시장 놓고 경쟁 치열

동남아 각국은 수력과 화력 등 각종 발전소를 가동하고 신규 건설에 나서면서 발전량을 같은 기간 2.5배나 늘렸지만, 전력 수요 피크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싱가포르만 30%의 전력예비율을 기록하고 있을 뿐 나머지 국가들은 예비 전력이 거의 없거나 미얀마처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장 가동에 치명적인 정전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지난해 미얀마 기업들 중 96%가 정전을 겪어야만 했다. 미얀마 전기에너지부에 따르면 연간 15%씩 전력 수요가 늘어나고 있어 2025년이면 현재의 3190㎿에서 6000~8000㎿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미얀마 정부는 제대로 전력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전체 인구의 3분의 1만이 전력을 공급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미얀마 공장들은 대부분 비상 발전기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정전 때마다 이를 가동하다 보니 전력 생산에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동남아 각국의 낙후된 송배전망도 전력 부족 문제를 가중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의 송배전망에서 발생하는 전력 손실은 3%에 불과하지만, 동남아에서는 국가에 따라 6~16%의 전력이 중간에서 사라지고 있다.

동남아 각국은 전력 수요 급증에 따라 발전소 신설과 송배전망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아세안 10개 회원국들은 2000년 이래 발전소 증설에 1700억 달러(194조2300억 원), 송배전망 증설에 1950억 달러(222조7900억 원)를 투자했다. IEA에 따르면 동남아 각국은 전력 부문에 오는 2025년까지 3870억 달러(442조1500억 원), 2026년부터 2040년까지 8550억 달러(976조8400억 원)를 투자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남아 각국은 이런 대규모 투자 계획을 세워 놓고 있지만 발전소를 건설할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 때문에 동남아 신규 발전 시장을 노리고 외국 기업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동남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과 일본은 물론 한국과 유럽연합(EU), 러시아 기업들이 치열한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동남아 각국의 전력 상황이 앞으로도 좋아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2000년 이후 동남아에서 건설된 발전소의 경우 발전 용량 기준으로 40%는 석탄 화력, 40%는 가스 화력이었다.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소는 수력을 포함해도 20%에 불과했다. 아세안 10개 회원국들은 2016년 탄소배출량을 제한하기로 합의한 파리기후협약에 비준했다. 아세안 10개 회원국들은 이 협약을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 탄소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화력발전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줄여야만 한다. 화력발전소 신설에 의존해 비교적 쉽게 발전 용량을 늘려 오던 지금까지의 방법을 더 이상 활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동남아 각국은 수력,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6% 중반대를 기록하고 있는 베트남의 경우 에너지원 확보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베트남 전력은 수력 및 석탄 화력발전에서 전체 70% 이상이 생산된다. 연평균 전력수요 증가율은 10% 이상으로 경제성장률을 훨씬 웃돌고 있다. 일각에서는 2020년이면 전력 부족 사태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 정부는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발전소를 더 이상 건설할 수 없는 만큼 대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베트남의 연간 일광 시간은 1400~3000시간으로 태양복사량도 230~250kcal/㎠에 이른다. 일조량이 풍부해 태양광발전을 하기에 충분하다. 베트남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1%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 기간 중 태양광에너지의 설비 규모를 1만200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베트남 정부는 또 현재 180㎿ 규모인 풍력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6000㎿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세워 놓고 있다.

태국 정부도 새로운 전력개발계획(Power Development Plan, 2015~2036년)에 따라 천연가스발전 비중을 현재 70%에서 40%로 낮추고 에너지원을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다변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활용 비율은 현재 8%에서 2036년까지 20%로 늘릴 계획이다. 이 기간 중에 태양광에너지 설비 규모는 6000㎿로 확대할 방침이다. 태국 정부는 2036년까지 태양열에너지 생산량을 6기가와트(GW)까지 늘려 나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많은 전력을 탄소 배출 부담 없이 싸게 생산하는 유일한 대안은 원자력이지만 동남아 어느 국가도 선뜻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 동남아에는 아직 상업용 원전이 하나도 없다. 일부 국가들이 원전 건설을 추진했으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중단했다. 베트남의 경우 2030년까지 총 14기의 원전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2010년 러시아와 일본에 이어 2013년 한국을 원전 협력 국가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1400㎿급 2기를 건설한다는 목표하에 베트남 원전 개발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마치고 본 조사 계약을 추진했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는 2016년 재정 악화를 들어 원전 도입 계획을 철회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정부가 동남아 각국에 원전 수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 국영 원자력 업체인 중핵집단(中核集團)과 캄보디아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원자력 산업의 평화적 이용 합작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중국 정부는 이처럼 대규모 차관 제공 등을 앞세워 동남아 각국에 원전 건설을 은밀하게 설득하고 있다.

이처럼 동남아 각국은 에너지원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각국이 앞으로 동남아 에너지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뜨겁게 경쟁할 것이 분명하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3호(2018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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