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는 색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놓되 인간의 마음이 통해 재현되는 심상에 따라 아름다운 형태로 표현된다. 자수는 사람의 손으로 따뜻한 체취를 담아 실로 이어지는 생동감이 묻어나는 우아한 공예라 할 수 있다.
김영란 한상수자수박물관장 / 사진 한상수자수박물관(서헌강)
일정한 침법으로 무늬를 완성하는 자수는 찔러 넣는다는 뜻의 ‘자(刺)’와 여러 색을 뜻하는 ‘수(繡)’의 한자어로 이름 지어졌다. 따라서 바늘 한 땀씩 색실 한 올마다 머금은 색깔이 조화로운 배색을 통해 이루어지는 자수의 미적 형상은 ‘수무늬’로 나타난다. 우리가 훌륭한 자수품을 대할 때 ‘아!’ 하고 느껴지는 감동이 바로 이러한 수무늬의 아름다운 형태에서 전해진다.
자수는 인류 사회의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그 기예가 고도로 발달한 수공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자수공예는 본래 귀한 신분을 표시하는 데 사용됐다. 일찍부터 동양의 고전문학에서는 ‘금수강산(錦繡江山)’ 등으로 그 값이 금붙이와 같았던 금(錦)직물과 견주며 가장 아름답고 좋은 것을 비유했다. 또한 고대의 지식인들은 수무늬의 아름다움을 빌려 인덕을 수양하는 ‘의례(儀禮)의 미’로 확장해서 논하고 후세에 문예 이론을 전개했다.
자수의 아름다운
수무늬와 변천사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자수 실물은 평양 석암리 일대 왕우 무덤(서기전 45~133년)에서 발견된 2점이 있다. 0.2mm가량의 깨알같이 둥근 모양을 사슬처럼 이어 반복하므로 이름 지어진 사슬수 자수침법으로 넝쿨무늬와 구름무늬를 수놓았다. 사슬수의 흔적은 이보다 앞선 신석기 말기에서부터 서기전 3~1세기 몽골 노인우라 흉노 묘, 한나라 마왕퇴 고분에서도 발굴됐으므로 문명의 상호 교류를 반영하는 보편적 자수 기술이었음을 알려준다.
6~7세기의 자수 양식은 일본으로도 전파됐다. 아스카 시대인 622년 성덕태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제작한 자주색 능문라(菱紋羅)의 ‘천수국수장(天壽國繡帳)’이 대표적이다. 이 수장의 귀갑문 등판에 네 글자씩 수놓아진 명문들이 13세기 일본 황실의 고문서 <상궁성덕법왕제설(上宮聖德法王帝說)>의 기록과 일치한다. 놀라운 사실은 고구려 사람 가서일(加西溢)이 밑그림을 그렸으며 백제 혹은 신라인으로 알려진 진구마(秦久麻)가 총감을 맡았다고 적혀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의상 자수는 당나라의 의복 제도를 그대로 시행했다. 서안, 돈황, 청해 지역에서 출토된 다수의 당나라 자수품을 통해서 우리 자수의 표현 양식도 엿볼 수 있는데, 평사붙임수, 평사띰수 등의 자수침법과 단계별로 색상이 변하는 배색법이 병용됐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출자형 금관이 출토된 경주의 금관총에서는 점토 덩어리에 금녹색의 비단벌레(玉蟲) 날개로 열십(十)자 무늬가 부착된 천의 흔적이 발굴됐다. 이러한 공예 기술은 조개, 옥돌, 구슬들을 꿰어 다는 원시 자수 양식의 올림수 자수침법이 이어졌음을 알려준다.
고려시대는 화조, 산수, 인물 등의 자연 풍물을 중히 여기고 사물을 관찰해 세밀하게 표현하는 관상 용도의 감상자수품이 유행한다. 자수공예도 조형의 무늬 결대로 땀수를 늘리거나 줄이면서 자연스레 색채를 변이시키는 자련수가 성행했다. 14세기 안동 태사묘에 소장된 화훼단원문 자수 잔편이나 전라도 내소사에 전하는 불경덮개에서 꽃과 연못가의 잔잔한 물결, 유유히 노니는 원앙들이 평수, 이음수, 자련수로 섬세하게 표현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궁수(宮繡: 궁중에서 수방나인에 의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수)와 민수(民繡: 민간에서 일반적으로 만들어진 수)로 구분돼 각각 뚜렷한 특징을 보이면서 발전했다. 종래 자수품의 장식적인 성향은 조선시대의 검박한 유교적 사회 풍토에서 초충, 화조, 고사
(古事) 등에 실경을 중시하고 사의(寫意)를 담은 그림자수로 발전했다. 회화 기법과 조선조 화풍이 반영된 자수품에는 필묵과 청벽의 정취를 함께 추구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됐다. 반면 불사와 민간의 신앙은 여전히 정성에 의탁하는 불교자수품으로 공양됐다.
자수 장인들은 나라에 복속돼 궁중의 예복과 용보, 휘장, 병풍, 장신구 등의 자수 생산을 전담했다. <고려사>에는 액정국과 잡직서에서 자수 장인을 관리하고 벼와 쌀을 사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의 <경국대전>에는 자수를 전담한 화아장(花兒匠)의 명칭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지속되는
자수의 매력은
실제 작품을 통해 자수의 매력을 살펴보자. 자수장 한상수의 ‘백수백복 병풍’의 경우 상아색 수직 실크 바탕에 문자도(文子圖)를 수본으로 그려 명주실을 꼬아서 평수로 해 색색의 조화를 이루게 했다. 오래 살고 복을 맘껏 비는 마음으로 색의 조화를 이룬 병풍은 왕가, 사대부가에서 벽에 펼쳐서 방한 겸 장식의 용도로 쓰이는 작품이다.
중간 색조의 누에 실 두 올을 손으로 비벼 꼬아 합사해서 실 꼬임새의 눈목이 도드라져 보인다. 병풍 한 폭마다 연지색, 유록색, 미황색, 아청색, 갈색 계열의 색실을 골고루 배치하고 사선 방향으로 평수를 바늘땀이 고르게 평행하도록 정열해서 수놓는다. 유난히 입체감이 도드라진 것은 색실로 수놓기 전에 목실로 밑수를 놓고 반대 방향으로 사선의 평수를 놓아서다.
이처럼 자수는 색실의 꼬는 방식, 수놓는 방법, 색감의 조절에 따라 입체감도 생기고 원근의 변화도 펼쳐진다. 수는 색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놓되 인간의 마음이 통해 재현되는 심상에 따라 아름다운 형태로 표현된다. 자수는 사람의 손으로 따뜻한 체취를 담아 실로 이어지는 생동감이 묻어나는 우아한 공예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지역의 자연, 시대의 배경, 자신의 성장 환경에 따라 저마다의 특색을 지니며 특색 있는 깊이를 지니게 된다. 자수의 매력은 자신과 마주하며 고아한 정취 속에 한 땀씩 이루어지는 신비로움을 통해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빛나고 아름답게 감동을 준다.
21세기는 문화 경제의 사회다. 한 국가의 문화적 수준이 국가 경쟁력이 된다면 문화 콘텐츠의 트렌드를 선도하고, 높은 수준의 문화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한국 자수는 문화 산업의 각 분야에 모방과 창조, 영감과 계시, 철학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자수품은 시대를 초월하는 민족 정서의 토양 안에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특수한 제품이다. 수를 놓는 행위를 통해 자유로운 창작의 자각이 일어난다. 단기적 자수 체험은 가슴 속이 뻥하고 뚫리는 힐링의 효과도 가져다준다.
김영란 관장은…
198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으로서 최초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은 한상수(1932~2016년) 자수장의 딸이자 고대 방직사를 연구한 공학박사다. 한상수자수박물관장이면서, 수림원 자수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다. 인천시 문화재위원이자 국제박물관협회 박물관학 아시아태평양(ICOFOM_ASPAC)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상수자수박물관은 한상수의 작품과 그가 수집한 자수 유물 및 자수 관련 민속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자수 체험 프로그램과 다양한 문화예술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전통자수 힐링 체험 프로그램’은 자수에 대한 올바른 역사 인식과 체계화된 교육법으로 학생, 직장인,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소모임을 진행한다. 지난해 ICOFOM-ASPAC 포럼에서는 한상수자수박물관에서 재해석한 박물관 문화유산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수 치유 활동을 소개해 박물관의 사회적 공공서비스의 기능을 확대하고 전망하는 데 새로운 이슈를 던진 바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2호(2018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