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기업은행, 베트남서 ‘동반자 금융’ 꽃피운다

[호찌민(베트남)=공인호 기자] IBK기업은행이 동남아 금융벨트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타 시중은행과 비교해 전체 네트워크 규모에서는 다소 밀리지만 국책은행의 강점을 살려 ‘선택과 집중’ 전략에 충실한 모습이다. 이런 행보는 중소기업 전문 은행의 역할론을 강조해 온 ‘동반자 금융’과도 맥이 맞닿아 있다.

베트남 최대 경제도시인 호찌민시. 호찌민에서도 대통령궁을 비롯해 대형 쇼핑몰과 주요 금융기관들이 밀집해 있는 1군 지역에 IBK기업은행 호찌민 지점(다이아몬드백화점 6층)이 들어서 있다. 지난 9월 중순 찾은 이곳은 국내 영업점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업점에 들어서자마자 반기는 현지 직원들의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 인사말도 이목을 끌었다. 베트남 시장에 함께 둥지를 튼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등의 경우 조직, 인력은 물론 브랜드 정체성에 현지 색깔을 덧칠하는 데 공을 들이는 모습과는 사뭇 차이를 보였다.

이는 기업은행이 아직 현지법인 인가를 획득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지만, 중소기업 전문 은행이라는 정체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곽인식 IBK기업은행 호찌민지점장은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 고객들이 많다 보니 모든 직원들이 한국어 인사말 정도는 완벽하게 배웠다”며 “많은 고객들이 신기해하면서도 편안하게 느끼시는 것 같다”고 소개했다.

베트남 진출 13년…법인 전환은 답보상태
현재 기업은행 베트남 지점의 최대 숙원 사업은 현지법인 전환이다. 지난 2005년 12월 호찌민사무소 설립 이후 2008년 지점 설립 인가를 받았지만, 현재까지 법인 전환까지는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법인 전환이 지연되는 배경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이 컸지만 기업은행 본점 차원의 일관성 없는 정책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 됐다.

특히 중장기 전략이 필수적인 해외 사업의 경우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가 밑바탕이 돼야 하는데, 은행장 교체가 빈번한 은행들은 사업 연속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연임 사례가 많고 경영권이 안정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 신한은행(신한베트남은행)과 KEB하나은행(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이 해외 진출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반면 기업은행은 은행장의 연임 사례가 극히 드문 데다 국책은행이라는 이유로 정부와 정치권 등 외풍(外風)에 자주 노출되는 실정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장기 성패를 가늠하기 힘든 해외 진출의 경우 최고경영자(CEO)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며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이 각각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 것은 지속적인 투자와 본점 차원의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말 기준 기업은행의 해외 네트워크는 11개국 27개로 최대 300여 개(우리은행)에 이르는 경쟁사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다만 기업은행 역시 김도진 은행장 취임 이후 해외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김 행장은 지난해 7월 베트남 금융당국에 법인 전환 인가 신청서를 제출한 뒤, 올 초에는 직접 베트남 중앙은행 부총재를 만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 같은 기업은행의 베트남 공략 행보는 비단 수익성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 중소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국책은행으로서의 역할론도 갈수록 무게가 실리고 있다. 현재 베트남 시장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은 호찌민(1000여 개)을 포함해 5000여 개에 육박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의 사드(THAAD) 보복과 근로시간 단축 및 최저임금 이슈가 불거진 지난해부터 중소기업들의 유입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

곽인식 지점장은 “지난 한 해 동안 유입된 신규 고객이 100여 개에 육박한다”며 “저희 영업점 고객만 1000곳 이상인데 특히 지난해 이후 중국과 한국에서 유입된 기업 수가 급격히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중소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이 크게 늘고 있는데 하노이, 호찌민 2개 지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내년 법인 전환 모색…스마트뱅킹 구축 박차
이처럼 베트남 영업점의 법인 전환 문제는 이미 ‘발등의 불’인 상황이지만, 당국 승인 시점은 물론 인가 여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현지 분위기다. 현재 베트남 금융당국은 은행 산업에 대한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말 기준 베트남에는 비엣콤(Vietcom), 비에틴(Vietin), BIDV 등 7개 국영은행을 비롯해 ACB, 테크콤(Techcom) 등 현지 상업은행만 34개에 달한다. 여기에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 은행 96개를 포함하면 무려 138개의 은행이 난립해 있는 상황.

따라서 베트남 금융당국은 외국계 은행의 법인 전환 조건으로 현지 중소형 은행 인수를 내걸고 있지만, 국제기준에 현저히 못 미치는 BB등급 이하의 부실 은행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인수·합병(M&A)도 쉽지 않다. 곽 지점장은 “사실 베트남 중앙은행에서 이미 현지은행 한두 곳 인수를 제안해 오기도 했다”며 “하지만 당국 측에서도 정확한 부실 규모는 물론 회계, 자산건전성 분류 등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어 적극적으로 M&A를 타진하지는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렇다고 마냥 금융당국의 입만 쳐다보고 있기에도 어려운 노릇이다. 법인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기업은행의 영업점은 하노이와 호찌민 등 현재의 2곳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단 기업은행은 통상적인 인가 검토 기간인 2년을 마지노선(내년 7월)으로 M&A와 P&A(Purchase & Assumption: 부실금융기관의 자산과 부채를 우량 금융기관에 인수시키는 것)를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법인 전환을 앞두고 현지 기업 종업원 체크카드 및 마이너스 대출 등을 포함해 다양한 서비스 출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년에는 기업과 개인 고객을 아우를 수 있는 스마트뱅킹 시스템 구축도 예고하고 있다.
한편, 기업은행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3곳을 중심으로 한 ‘IBK 동아시아 벨트’ 구축을 계획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글로벌 네트워크를 20개국 165개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은행 전체 순이익의 20%가량을 해외에서 거두겠다는 복안이다. 올해에는 기업은행 설립 이후 최초로 인도네시아 현지은행 2곳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해 현지법인 전환을 앞두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2호(2018년 11월) 기사입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