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빅데이터 리더십, 거시적 변화 고민해야”

김진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빅데이터MBA학과 주임교수 인터뷰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새로운 황금코끼리가 나타났다. 이름도 그럴싸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바로 그 주인공. 단, 아직까지 이 코끼리의 실체를 오롯이 본 사람은 없다. 하지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그 코끼리의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새로운 기업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엔 ‘빅데이터’가 있다고 강조하는 이 사람, 김진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빅데이터MBA학과 주임교수를 만나봤다. 김 교수가 말하는 빅데이터 시대의 리더십은 과연 무엇일까. 사진 이승재 기자

다보스포럼 창립자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제4차 산업혁명>의 저자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새로운 세계에서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다”고 말했다.

누구나 새로운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 빠른 물고기가 돼야 하는 것에는 큰 이의가 없을 터다. 다만, 왜 빠른 물고기여야 하고, 어떻게 빠른 물고기가 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들이 제시되고 있다.

리더는 조직이나 기업을 이끄는 사람이다. 리더가 조직이나 기업을 이끌기 위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단연 ‘의사결정’이다. 1986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의 경영학 석사학위(MBA) 과정 학생을 대상으로 최고경영자(CEO)를 상징하는 단어나 문구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학생들이 적어낸 많은 단어나 문구 중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정상에서 외로운(lonely at the top)’이라는 문구였다. 결국 리더는 마지막에 자신이 외롭게 홀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과연 다가올 미래의 리더는 어떤 물고기가 돼야 하고, 어떻게 의사결정을 해야 할까. 김진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빅데이터MBA학과 주임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여전히 막연하게만 여겨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성공적인 비즈니스와 리더십을 엿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얘기합니다. 도대체 핵심이 뭔가요.
“4차 산업혁명이든 인공지능(AI)이든 핵심은 데이터입니다. 기존에도 데이터는 끊임없이 저장돼 왔습니다. 기업마다 각각 소비자가 뭘 먹는지, 어디에서 노는지, 무엇을 사는지 꾸준히 정보를 축적했어요. 이제는 고객과 시장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 수많은 데이터들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기업의 경쟁력이 갈리는 시대가 올 겁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디지타이징 비즈니스(digitizing business)’로의 전환이죠.”

디지타이징 비즈니스란 무엇이죠.
“디지타이징 비즈니스란 빅데이터 시대의 5대 핵심 기술인 소셜미디어, 모바일,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빅데이터를 자신의 사업을 혁신하는 새로운 도구로 활용해 비즈니스를 혁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모든 기업은 사업의 어떤 영역에서도 이
5대 핵심 기술 중에서 어떤 기술을 어떻게 결합해 도입함으로써 혁신을 이룰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해야 하죠. 실제 경영 측면에서 보면 요즘 기업들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경쟁 환경에 직면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기업에 경쟁우위를 제공했던 수단들(가격, 기술력 등)은 이제 큰 변별력이 없습니다.

경쟁우위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획기적인 혁신에서 찾아야 하는데 현실에서 획기적인 혁신을 달성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고요. 이런 상황에서 차별적 경쟁우위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은 경영에 있어서 효율성을 높이고 현명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데이터 분석은 이 과정을 수행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고요. 리더가 데이터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데이터 속에서 핵심을 찾고, 소비자의 행동 방식을 읽어내는 통찰력(insight)을 지닌 리더가 경쟁우위를 지닐 수밖에 없어요.”

어떤 통찰력이어야 할까요.
“쉽게 말해서 데이터 속에 ‘이 사람들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끄집어내는 것이 통찰력이죠. 과거와 차이점이 있다면 빅데이터 시대에 지속적으로 영역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 개인화 추천 시스템입니다.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확률이 높은 고객을 예측해 그 고객에게 해당 상품이나 서비스를 추천하는 거죠.

가령, 기존의 온라인에서 자신의 취향과 선호에 맞는 여행지를 정하고 이동수단과 호텔을 선정해 예약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 동안 정보를 탐색해야 했죠. 하지만 개인 맞춤형 여행 추천 시스템은 개인의 인구통계학적 특성, 취향, 과거의 여행 기록 등을 토대로 고객이 가장 흥미를 가질 만한 장소를 예측해 추천해줌으로써 기존 정보 탐색의 부담을 크게 줄여줬죠. 넷플렉스와 아마존의 성공 비결이 바로 이 점에 있습니다.”

넷플렉스, 아마존 외에도 디지타이징 비즈니스에 성공적인 사례들이 있다면요.
“국내 최대 닭고기 전문 기업 하림의 사례가 있습니다. 하림은 530여 개 직영·계약 농장에서 연간 2억 마리의 닭을 키워내요. 그런데 2000년대 이후부터 수요처들의 계량이 까다로워져서 용도별로 닭의 무게가 미달하거나 초과하는 경우에는 닭을 해체해서 부위별로 판매해야 했죠. 문제는 이렇게 판매할 경우 제값을 받지 못해 관련 손실액만 1년에 40억 원에 이렀다고 해요. 기존에는 닭 무게 측정과 예측이 비효율적이었거든요.

그래서 하림은 정확한 무게 예측을 바탕으로 최적의 출하시기를 결정하고자 시범농장, ‘501 양계농장’에 사물인터넷을 도입했습니다. 이 농장에는 닭들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적외선 폐쇄회로(CC)TV, 닭이 물을 마시려고 뛸 때마다 10분의 1초 간격으로 무게를 재는 센서, 온도와 습도·벤젠·톨루엔·먼지를 각각 측정하는 센서, 이런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무선통신 장비를 설치했죠. 이렇게 해서 중앙분석센터에는 매일 86만4000개의 데이터가 축적됐고, 이를 분석해 닭들의 체중 증가 추이, 평균 무게를 정확히 예측해 비용 손실을 줄였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윤이 난 셈이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렇게 축적한 경험과 데이터, 하드웨어와 분석솔루션을 다른 기업에 판매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고객들이 원하는 다양한 서비스와 분석솔루션이 합쳐진 플랫폼을 개발해 다수의 농장이나 기업에 동시 서비스가 가능해지는 거죠. 닭을 키우던 하림이 플랫폼 회사로 변모하는 것, 이런 프로세스가 빅데이터 시대의 필요한 분석력이자 기업의 새로운 이윤 창출로 이어지는 거죠.”

그럼 빅데이터 시대의 기업들은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확실히 최근 몇 년 새 국내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빅데이터’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어요. 그것이 시대의 흐름인 건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죠. 다만, 문제는 아직도 그 분야를 제대로 파고드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점이죠.

가령, 이런 식이에요. 일단, 각 부서에서 사람들을 축출해서 태스크포스(TF)를 꾸미죠. 그럼 ‘이 사람들이 다 TF에 올인하나?’ 그건 또 아니더라고요. 대부분 본래 업무를 하면서 TF팀의 업무까지 병행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그렇다 보니 일의 진전이 있기 어렵죠. 물리적으로도 힘들고요.

그래서 대개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되거나 단기적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래선 안 되죠. 관련 전문가들을 대거 투입하고, 빅데이터 분석에 몰입할 수 있는 부서를 만들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직원들을 교육해야 해요. 그런 점에서 아직까지 국내 기업들이 빅데이터 분석 분야에 소극적인 투자를 하는 점이 다소 아쉽습니다.”

동시에 리더들은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요.
“빅데이터 리더십의 핵심은 크게 3가지예요. 비전과 인프라 구축, 그리고 교육이죠.
비전이란 굉장히 거창한 것 같지만 간단해요. 리더의 비전이란 5년, 혹은 10년 후에도 자신의 기업이 경쟁우위를 확보·유지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죠. 기업 환경과 기술, 고객의 선호가 급속하게 변하고 있는 빅데이터 시대에 현재의 성공은 결코 미래를 보장하진 못하잖아요. 노키아, 소니, 야후 등의 급격한 몰락이 대표적 사례죠. 따라서 리더는 사회, 정보기술(IT), 산업 내의 트렌드, 경쟁 환경 등 거시적인 변화가 자신의 사업에 미칠 영향과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돼요.

인프라 구축도 마찬가지예요. 유명한 리더십 학자인 워런 베니스가 설파했듯이 ‘리더십은 비전을 바꾸는 능력’이죠. 성공적인 리더는 비전을 잘 세우는 것은 물론 그 비전이 달성될 수 있도록 체계를 효과적으로 구축해야 해요. 이는 노자의 <도덕경>에서 말하는 리더의 유형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노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리더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리더가 있다는 것만 아는 리더라고 했어요.

가령, ‘우리 회사 사장이 누구더라? 아, 맞아 000이지’라는 정도로요. 그렇다고 이 리더가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결코 최고의 리더는 아니죠. 이 리더야말로 이미 자신이 나서지 않더라도 모든 일이 진행되도록 체계를 갖춰놓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직원들이 비전과 체계 속에서 최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임직원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해야 하죠. 이 3가지 로드맵이야말로 빅데이터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진호 교수는…
서울대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통계학 부전공). 사회와 기업의 다양한 문제를 계량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연구를 주로 했으며, 기업의 현안을 데이터 분석적으로 해결하면서 동시에 직원들의 분석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여러 기업에서 실행했다. 현재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빅데이터MBA학과 주임교수 겸 빅데이터연구센터장이다. 저서로는 <빅데이터가 만드는 제4차 산업혁명>,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통계 상식 백 가지>, <괴짜 통계학> 등이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2호(2018년 11월) 기사입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