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9·13 대책’ 이후 투자 전략 새판 짜기
입력 2018-09-20 17:21:03
수정 2018-09-20 17:21:03
[한경 머니 기고 =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문재인 정부의 초강도 부동산 대책이 나오면서 ‘부동산 새판 짜기’가 불가피해졌다. 이번에 나온 9·13 부동산대책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8번째다. 수요자들에게 민감한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뿐만 아니라 대출, 신규 주택 임대 규제 등을 망라한 종합 처방의 규제책이다. 강도 높은 수요 억제책이라는 점에서 지난해 8·2 부동산대책과 유사하다.
8·2 부동산대책이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로드맵이었던 2003년 10·29 부동산대책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 9·13 부동산대책은 2005년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완결판인 8·31 부동산대책에 더 가깝다.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규제가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더 강력할 수 있다. 이번 대책은 한마디로 난공불락의 ‘서울 불패신화’ 흐름을 꺾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여느 대책보다는 서울 지역 집 부자에게는 이번 대책이 훨씬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갭투자, 원정투자 등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해 1가구 1주택자에 대해서도 양도세 혜택 요건을 강화하고, 종합부동산세 범위를 대폭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신종 ‘집테크’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을 받아 온 주택 임대사업의 대출과 세제 혜택을 신규 등록자에 대해서 대폭 축소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분양권 보유자를 유주택자로 간주하고 유주택자에게 추첨제 물량을 최소화하는 것도 주택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 ‘똘똘한 한 채’ 제동 걸리나
당장 눈에 띄는 것은 강남권 99.1㎡대에 해당되는 고가 1주택에 대해서 종부세를 대폭 강화한 점이다. 종부세 과표 3억∼6억 원(1주택 시세 18억∼23억 원) 구간을 신설, 당초 정부의 세법개정안의 0.5%에 0.2%포인트를 추가해 0.7%를 부과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외곽 지역이나 지방의 아파트를 팔고 고가 1주택을 보유하려는 ‘똘똘한 한 채 트렌드’를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3주택 이상 보유자와 조정대상지역(서울 등 전국 43곳) 2주택 보유자 역시 현행 대비 0.1~1.2%포인트 종부세율을 인상했지만 시장에서 느끼는 정책의 무게중심은 고가 1주택자인 것 같다.
통계청의 ‘2016년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2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는 198만 명으로 전체의 14.9%를 차지하는데, 이 중 2채를 보유한 소유자가 156만4000명으로 11.7%를 차지한다. 주택 소유자 85%가량이 1주택자라는 얘기다. 3채 이상 소유자는 41만6000명으로 3.1%에 불과하다. 주택 종부세 대상은 27만4000여 명이다. 또 정부는 종부세를 매길 때 시세 할인율을 의미하는 공정시장가액비율도 추가 상향 조정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현재 80%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2022년까지 100%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결국 고통스러울 정도로 강한 보유세 압박을 통해 주택 투자 과열을 꺾어 놓겠다는 복안인 것 같다. 일정한 소득이 없는 은퇴자들은 내년 고지서를 받아보면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낄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비부머 이상 세대를 중심으로 노후의 사적 안전망을 마련하기 위한 주택 투자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이제부터는 1주택 이상 세대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0%’가 적용돼 서울 전역과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에서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다. 무주택자도 공시가격 9억 원 초과(정부 발표 시가 13억 원, 실제 현장조사 결과 강남권은 18억 원 선임) 주택의 경우 실거주가 아니라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다. 대출 옥죄기를 통해 주택 시장으로 자금이 흘러가는 것을 막아 과열 시장을 잡겠다는 것이다.
다주택자의 종부세 부담이 증대됨에 따라 시세차익을 노린 갭투자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전세 가격이 하락하고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세로 갭투자가 위축되고 있는데 종부세 과세까지 겹치면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 실거주 가능한 ‘새 아파트 선호’ 뚜렷해질 듯
고가 1주택자에 대한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 요건도 강화된다. 현재 실거래가 9억 원 초과 1주택자는 거주 기간 요건 없이 보유 기간에 따라 최대 80%(10년 보유 기준)까지 장기보유특별공제를 해준다. 하지만 2020년 1월 1일 이후 양도분에 대해선 2년 이상 거주한 경우에 한해 최대 80% 적용한다는 것이다. 만약 2년 미만 거주할 때는 일반 장기보유특별공제(10년 40%, 15년 30%) 혜택만 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 거주하지 않는 주택에 대해서는 내년부터 적용되는 토지와 상가의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과 보조를 맞추겠다는 것이다.
거주 여부에 따라 10년 기준으로 장기보유특별공제가 4배나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제는 보유만 하고 실거주를 안 하면 앞으로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못 받기 때문에 개정된 장기보유특별공제 제도가 시행되는 2020년 이전에 절세 매물이 나올 수 있다. 주로 10년 전후 보유를 했으면서도 실제 거주하기 힘든 재건축 등의 매물이 나올 것으로 보이나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이처럼 보유세와 양도세 비과세 요건 강화로 낡은 재건축 대상 아파트보다 실거주 여건 좋은 10년 이내 새 아파트에 수요자의 관심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업 속도가 빠른 재개발이나 뉴타운 입주권은 거주 요건 강화에 큰 타격은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청약제도 변경에 1주택자·무주택자 희비
청약 시 추첨제로 당첨자를 선정할 때 무주택 신청자를 우선 선정한 뒤 유주택 신청자 순으로 추첨하기로 했다. 지금은 추첨제에서 유주택자와 무주택자의 구분이 없다. 다만 당첨자를 가릴 때 무주택 신청자 선정 비율을 100%로 정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추첨 물량의 일부만 무주택자에게 배정하고, 나머지는 탈락한 무주택자와 유주택자를 섞어 추첨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더 넓은 아파트나 새 아파트를 원해 분양을 받으려고 했던 1주택자는 이제 추첨제 물량이 줄어들어 불이익을 받게 됐다. 반대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무주택자들의 불안은 다소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부양가족이 없고 무주택 기간이 오래되지 않아 가점이 낮아도 당첨의 기회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과 같은 투기과열지구에서는 전용면적 85.0㎡ 이하는 100% 가점제(추점제 0%)이고 85.0㎡ 초과는 가점제 50%와 추점제 50%의 비율로 각각 당첨자를 가린다. 고양 등 조정대상지역에서 가점제 물량은 85.0㎡ 이하 75%(추첨제 25%)이고 85.0㎡ 초과의 경우 30%(추첨제 70%)다.
또 입주권이나 분양권을 갖고 있는 경우 청약할 때 유주택자로 간주한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그동안 분양권을 사서 전매만 반복하고 주택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청약 시 무주택 기간은 인정돼 지속적으로 당첨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무허가 주택이나 오피스텔 보유자는 무주택자로 인정되는 데 비해 분양권(입주권)은 유주택자가 돼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 꼬마빌딩 등 수익형 부동산 관심 늘 듯
주택과는 달리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꾸준할 것으로 보인다. 요즘 강남권에서는 급등한 아파트보다는 상가빌딩이 오히려 저렴하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다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부담이 늘어나면 자산가들은 상가, 꼬마빌딩 등 수익형 부동산에 노크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2005년 8·31 대책 당시에도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해 종부세를 강화하자 부동자금이 상가 시장으로 몰렸다. 이번에 상가건물에 적용되는 별도합산토지의 세율도 현행대로 유지되고 종부세 과세 금액 기준인 공시지가 80억 원도 변동이 없다. 꼬마빌딩 보유자가 종부세를 내기 위해서는 토지 및 건물을 포함해 시세로 150억~200억 원을 넘어야 과세 대상자가 된다. 개인이 어지간한 상가건물을 보유해도 종합소득세(5월)라면 모를까 종부세(12월)를 내는 경우는 드물다는 얘기다.
실제로 종부세 납부 대상자의 6%에 불과한 기업이 전체 종부세액의 72%를 낸다. 다만 하반기 시중금리가 추가 인상될 가능성이 있고 내수경기도 위축될 수 있는 만큼 알짜 수익형 부동산으로 선별해 투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유동인구가 많은 역세권, 대학가, 먹자골목, 오피스 밀집 지역 등으로 압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꼬마빌딩은 아파트나 오피스텔 같은 표준화·규격화 된 부동산을 사는 것과는 달라 요모조모 따질 게 많다. 같은 동네라도 골목길 사이를 두고 가치가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리품을 팔아 유동인구 흐름, 최근 거래 사례 등을 체크하는 것은 필수다.
꼬마빌딩에 투자할 때 우선적으로 따져야 할 것은 입지 경쟁력과 임대수익률이다. 건물 값을 제외한 땅값이 공시지가의 2배 이내이어야 안정적이다. 명목 임대수익률은 서울 강남권에서는 연 4% 이상이면 무난하나 땅값 상승 기대가 낮은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에서는 연 5% 이상 되는 게 좋다. 최근 꼬마빌딩 주인들의 가장 큰 고민은 공실 문제다. 입지 여건이 떨어지는 이면도로에 위치한 곳일수록 세입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나마 1·2층은 세입자를 채울 수 있지만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공실 위험성이 커진다. 만약 고층 일부를 직접 쓰는 실수요 자 겸 투자자라면 공실 걱정을 덜 수 있다. 하지만 전 층을 임대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상층부 공실 대책을 마련한 뒤 매입 여부를 결정하는 게 좋다.
◆ 집값 적어도 2~3개월은 조용할 듯
이번 대책은 일종의 ‘쇼크요법’이라고 할 만큼 예상보다 고강도 대책이라 파장이 적어도 2~3개월은 지속될 전망이다. 가뜩이나 단기 급등으로 고점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대책이 나와 서울 및 수도권에서는 일단 경계심리가 작동하면서 상승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 투자 수요 성격이 강한 재건축은 정부 정책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특성이 있으므로 적어도 단기 약세는 불가피하다.
올해 가을 이사철은 예년보다 빨리 시작된 만큼 빨리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추석을 고비로 둔화 국면이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주택자들이 양도세 중과 부담으로 매물을 내놓지 않고 있어 ‘매물 잠김 효과’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 따라서 장기적 안정세 가능 여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번 대책 이후 내 집 마련 수요자들 사이에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작동하면서 기존 매매 시장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신규 분양 시장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츠와 펀드 등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이나 해외 부동산 투자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 거인의 어깨에서 보라
시장이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일희일비하기보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 시장을 멀리 바라보는 망원경이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주택 시장의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집값은 지난 2013년 1분기 저점을 찍은 이후 올해로 5년째 상승세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87년 이후 서울 아파트 값은 5년 이상 오른 적이 없다. 강남과 같은 인기 지역에서 아파트 값은 그동안 2~2.2배 정도 상승했다. 상승 에너지를 쏟아내 추가적으로 상승하기에는 녹록하지 않다. 다만 너무 극단적인 사고는 바람직하지 않다. 올해 전국적으로 아파트 입주 물량이 많지만 공급량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전세 가격이라면 모를까 집값은 소유자의 ‘손실 회피심리’가 작용하고 있어 단기간에 집값이 크게 하락하기는 어렵다. 악재가 누적이 돼서 ‘임계점’을 지나야 급락이 오지 그 이전까지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보수적인 전략이 필요할 때다. 무리한 추격 매수는 위험하다. 이번 규제로 나올 급매물을 노리거나 장기 무주택자라면 곧 시작할 분양 시즌을 노려보기를 권한다.
박원갑 수석전문위원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강원대에서 부동산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피드뱅크 부사장 겸 부동산연구소장, 부동산1번지 대표를 거쳐 현재는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으로 있다. 저서로는 <10년 후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산 성공 법칙>, <부동산 미래쇼크>,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등이 있다. 한국경제TV의 ‘올해의 부동산 전문가 대상’(2007년), 한경닷컴의 ‘올해의 칼럼니스트’(2011년)를 수상했다. 국토교통부의 ‘주택정책자문단 위원’(2016년)으로도 활동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1호(2018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