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심야 독서삼매경

[한경 머니 = 이동찬 기자] 왠지 그런 날이 있다. 집에는 일찍 들어가기 싫고, 그렇다고 시끌벅적한 곳에서 흥청망청 금요일을 보내기 싫은 날. 조용히 주말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은 심야 책방을 찾기 시작한다.


‘왠지 바쁜 월요일/ 정신없던 화요일/ 지루했던 수요일은 가고/ 황금 같은 토요일이/ 바로 오늘이잖아요’ 김완선이 부른 ‘기분 좋은 날’의 후렴구다. 만약 이 노래가 지금 나왔다면 ‘황금 같은 토요일’이 ‘불타는 금요일’이 되지 않았을까. ‘불타는 금요일’, 줄여서 ‘불금’은 우리네 생활 패턴의 큰 흐름이 돼 버렸다.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음주가무로 화끈하게 풀어 버린다는 뜻이다.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음악이 넘쳐나는 유흥가의 금요일 밤, 비틀거리며 술과 흥에 취한 이들을 보노라면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점점 이 무의미하고 에너지 소비가 큰 불금의 행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말의 과도한 음주로 인해 주중에도 늘 피로를 달고 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지친 몸을 회복하느라 소중한 주말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점 때문이다. 결국 다른 방법으로 불금을 보낼 방법을 찾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심야 서점을 방문하는 것이다.

심야 서점도 나름의 콘셉트가 있다.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곳도 있고, 책장이 진열된 바처럼 구성된 서점도 있어 가볍게 칵테일 한 잔과 독서를 즐길 수도 있다. 물론 향긋한 커피와 함께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심야 북카페도 있다. 잠은 오지 않고 일찍 귀가하기는 싫은 금요일 밤, 한 지인의 추천으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심야 서점을 방문했다.

1인 입장을 가장 추천한다는 이 책방은 잔잔한 음악소리와 사람들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 투명한 유리잔에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존재했다. 손님들은 홀로 사색에 잠기거나 느슨한 자세로 독서에 열중했다. 그 누구도 소란스럽게 수다를 떨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지 않았다. 모두 오로지 자신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겼다. 여름밤에 어울리는 청량한 하이볼을 한 잔 주문하고, 여행 가고 싶었던 크로아티아의 여행기를 집어 들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뭔가 허전함이 느껴지는 금요일 밤마다 이곳을 찾는다는 김 씨는 “이곳에서 좋아하는 술을 마시며 책을 읽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며 “주말을 더 뜻 깊고 차분하게 맞이할 수 있어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

불금을 더 알차게, 심야 책방의 날
심야 서점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희소식이 하나 더 생겼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함께 읽는 2018 책의 해’를 맞아 동네 서점들이 심야 영업에 나선 것. 2018 책의 해 조직위원회는 지난 6월 29일을 시작으로 12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심야 책방의 날’ 행사를 전국 각지의 참여 서점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심야 책방의 날’이란, 서점이 정규 영업시간보다 연장해서 문을 열고 독자와의 즐거운 소통을 모색하자는 캠페인이다. 보통은 밤 9시 전후로 문을 닫지만, 이날만큼은 밤 12시 넘게까지 운영을 하고 밤새 영업하는 서점도 있다.

‘심야 책방의 날’ 행사 내용은 개성이 넘치고 다채롭다. 수다와 와인은 기본이고 ‘심야의 원고 청탁’, ‘책방고사’, ‘루돌프를 찾아서’, ‘읽다 포기한 책 남에게 읽히기’, ‘동네 빵집·국수집과 콜라보’, ‘서점 주인과 손님의 팔씨름 대회’, ‘작가와 고등어구이 막걸리 파티’ 등 이색적인 축제를 마련했다. ‘심야 책방의 날’ 행사에 참여한 서점 명단은 2018 책의 해 누리집(http://www.book2018.org)을 참고하면 된다. 방문하고 싶은 서점에 사전 문의를 한 후 참여할 것.

관계자는 “최근 들어 전국적으로 작은 서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고 일부 서점들이 점점 단행본 비중을 높이는 등 서점의 면모를 되찾아 가고 있다”며 “책 판매 부수와 독서율이 매년 내림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이런 현상은 독서라는 불씨를 되살릴 수 있는 희망을 엿보게 한다”고 언급했다.

책의 해 조직위는 이러한 서점의 귀환이 일시적인 붐이 아니라 지역마다, 동네마다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서점과 지역주민과의 지속적인 소통의 자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책이 매개가 돼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책과 서점의 지속 가능성은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해 조직위는 ‘심야 책방의 날’이 올해 연말까지 성공적으로 지속된다면 내년부터는 자발적으로 그것이 하나의 작은 전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59호(2018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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